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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3 18:24

도솔산의 전우

조회 수 260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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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솔산의 전우

                         海里/姜明漢 

 

  "김상사님, 아까 남대문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정말 놀랐습니다. 군복만 까맣게 물들여 입었을 뿐, 일선에서 같이 전투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더군요."
  "나도 깜짝 놀랐어. 그래 지금 어떻게 지내요?"


며칠 깍지 않아 구레나룻이 무성한 사나이는 그 말에 대답을 하기 전에 소주병을 잇빨로 따고는 호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유리잔에 조금씩 술을 따라 부시고는 술잔을 김상사라 불린 사람에게 내밀었다.

  "먼저 한잔 하고 이야기하시지요."


  자기 잔에도 술을 따른 구레나룻 사나이는 잔을 들고 말했다.
  "김상사님, 도솔산전투에서 살아남은 전우가 다시 모였습니다. 그때 전사한 전우들 명복을 빌면서..."

  둘은 잔을 가볍게 부딪치고는 둘 다 단숨에 들이켰다. 다시 술잔을 채우는 동안 김상사가 말했다.
  "이봐, 장형. 이제 내 이름에서 상사는 떼요. 제대한지 벌써 일년도 더 넘었는데...이젠 듣기 거북해. 당신을 보니 그때 1중대에서 같이 전투에 참가했던 고향친구 기원이놈 생각이 나는구먼. 그때 숱한 사람 죽었지"

 

  김상사는 술잔을 또 단숨에 마셨다. 마시고 난 뒤에도 그는 눈을 지긋이 감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눈은 젖어 있었다. 
 

  6.25전에 과락박물관이었던 옛 통감부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남산 골짜기, 샘을 찾아 가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인데 한여름 낮의 남산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이 고요했다.

 

  "저도 마산에서 같이 입대한 친구 둘을 잃었습니다. 그 애들은 3대대에 있었는데 한 녀석은 도솔산에서 죽고, 또 한 녀석은 나중에 대암산으로 가다가 죽었지요."

  그의 말에 김상사는 생각난 듯이 말했다.
"금년이 60년이니 꼭 9년 전 일이구먼..."
그의 날카로운 눈은 먼 옛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됐나요? 엊그저께 같은 데..."
  "그래, 그게 51년6월4일이야. 잊지 못하지, 내 생일이 6월3일이라서..."

  "6월4일이었습니까? 저는 연대가 화천 저수지 남방에 있을 때 신병으로 배속되어 한 일주일 선배들 따라다니며 447고지 정찰을 하루에 두 번씩 나갔었는데, 예비사단이 되었다고 해서 죽리로 가게되어 좀 쉴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갑자기 출동하라고 해서 쉬지도 못하고..."

 

  "글쎄 말이야. 그때 우리 해병 1연대는 미군 제1해병대에 편입되어 있을 때였잖아?
예비연대 명령을 받은 것이 6월2일이고 원곡지역으로 이동한 것이 6월3일, 내 생일 날이었거던. 오늘은 제대로 먹고 잠도 실컷 잘 수 있다 생각했는데, 웬걸 다음날 새벽에 미해병 1연대가 장악하고 있는 진지를 인수하고 목표 1고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진거라... 그래서 우리 1대대는 610고지를 인계받고 공격을 시작했던 것이지."

  "야아, 그때, 고지에서 내려오는 미군미군들을 보니 이제 죽었구나 싶데요. 군복이 엉망이고 하나같이 수염이 더부룩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한 녀석이 나를 보더니 뭐락하면서 초콜릿을 하나 건네 주던데요. 아마, 죽기 전에 이거나 하나 먹고 죽으라고 했던 모양이지요?"

 

  "하하하..., 설마, 하긴 나도 진지로 올라가 둘러 보고는 죽을 자리로 왔다고 생각했어. 포격 맞아 타 버린 참나무에서 그 때까지도 연기가 피어 오르고, 사방에 인민군 시체가 널부러져 있지, 미군들이 버리고 간 더러운 깡통까지 사방에 널려 있어 스산하기 짝이 없더군. 얼마나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는지 알겠더라구... 그것을 실감한 것은 부대배치 뒤에 1소대와 같이 능선을 따라 목표1 지점으로 진격했을 때였어. 우리 소대는 1소대를 따라갔었지만....."

 

  김상사의 시선은 서울 시내 쪽 하늘에 던져진 채, 총탄 속을 뚫고 뛰어갈 때와 같은 험상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장형이라 불렸던 구레나룻 사나이는 입에 대었던 소주잔을 내려 놓으며 말했다.
  "말도 마십시오. 제가 1소대에 있지 않았습니까? 몇 달 뒤에 재편성했을 때부터 김상사님이 계신 2소대에 배속되었지만... 소대장이 앞서서 종대로 나가다가 고지가 보이는 곳까지 나갔을 때 갑자기 두루룩 두루룩, 따콩따콩하고 탄알이 빗발치듯 날아 오는데, 소대장과 앞서 가던 병사들이 나가 떨어지자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웅크리고 있었지요. 그 때 김상사가, 그 땐 일등병조이셨을 때였지요, 뒤에서 달려오시더니 나를 능선 밑으로 제치면서 앞으로 달려 나가시더군요. 그래 나는 얼른 바위 뒤에 숨었어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물러나지 않았습니까."

 

  "맞아, 능선 양옆이 가파라서 중대가 같이 공격할 수 없는 곳이었지. 그래서 중대장, 이영덕중위가 1소대와 2소대를 종대로 진격하게 했던 거지. 1소대 선두가 목표1 고지 정상이 눈에 보이는 데까지 나갔을 때 그놈들 공격이 시작된 거라. 앞에 선 소대장이 넘어지고 뒤에서 따라 가던 서임하사마저 나가 떨어지자 대부분이 신병이었던 병사들이 땅바닥에 쭈구리고 어쩔 줄 몰라 하기에 2소대 선임하사였던 내가 뛰어 나갔던 거야. 그 때 내가 장형을 밀쳤었구나. 닥치는 대로 옆으로 밀치며 나갔으니까..."

 

  "그럼요. 그대로 웅크리고 있었으면 저도 한방 맞았을 겁니다. ...그래도 목표1과 2는 미군들 포 지원사격 덕에 그런 대로 점령할 수 있었는데 목표4고지를 공격할 때는 더 치열했었지요."


  "그 때는 6월이었는데 웬 안개가 그리 짙었는지 어떤 날은 10미터 앞도 보이지 않고 오후 두세 시가 돼야 조금 개이는 날도 있었으니 적의 위치를 포병부대에 정확하게 알려 주지 못했었기 때문이었을 꺼야."

  "아이고, 짙은 안개뿐입니까. 비는 또 얼마나 자주 왔습니까. 심심하면 가는 비가 내려 옷은 늘 축축히 젖어 있어 여름인데도 밤이면 덜덜 떨고 하지 않았습니까. 고지를 올라가야 하는데 바위들은 미끄럽지. 저는 6월27일 오후, 두 번째로 목표4에 돌격해 올라갈 때 바위를 잡은 왼팔에 한방 맞고는 5미터나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었어요.
 

  그 때도 뒤 따라오시던 김상사가 나를 바위 틈으로 쑤셔 넣어 주셨지요. 그 날 저녁 후송되는 바람에 나는 10일 밤의 야간공격에는 나가지 못했어요. 다행히 가벼운 관통상이어서 야전병원에서 다시 후방으로 보내려고 하는 것을 붕대만 감고 일주일 버텼다가 진지구축이 완성된 뒤에 복귀했더니 바로 미군들하고 진지교대를 하더군요. 상처가 완전히 아무는 데는 삼 개월이나 더 걸렸어요."

 

  "지도만 보면 목표2에서 목표4까지는 바로 옆이니까 아무 것도 아니겠지 생각하고 연대본부에서는 빨리 점령하지 못한다고 난리지. 그래서 하루에 네 번씩이나 출격한 날도 있었는데..., 중대장은 나가면 죽는 줄 알면서도 대원들을 진격시키지 않을 수 없었겠지.


  나도 나갈 때마다 등과 팔다리에 수류탄 파편을 맞아 찢어지곤 했지만 압박붕대만 감고 견뎌 냈어. 그땐 옆에서 죽어나가는 전우들 복수를 하고 싶어 눈알이 벌갰을 때라, 옌간하면 전선에서 빠지려 하지 않았지.


  6월10일 정확히는 11일 02시, 무지원, 무조명에 무선기까지 끊고 겨우 일개소대 병력 정도로 줄어든 중대 전체가 중대장의 진두지휘 아래 최후의 진격을 한 거라....
소리없이 고지에 올라 선 것이 다섯시 반경이었을까? 올라가니 적들이 다 도망가고 텅 비었어.


  그런데..., 고지 후방에 보니까 엄폐호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을 열어 보니까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더군. 거기에 하나 가득 시체를 쳐놓고 도망간 거야. 4일부터 일주일 넘게 전투하는 동안 적들 전력이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약화된 거였지. 우리가 그렇게 많은 희생자를 냈는데, 걔들이라고 성했을 턱이 없지.  김상사는 눈을 감고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제가 원대 복귀해 보니까 120명이 넘었던 우리 중대가 60명정도로 줄어 있더군요. 우리 소대는 소대장 포함해서 겨우 18명이 남았던데, 성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그 뒤에도 저는 전투를 계속했지만 그렇게 치열했던 전투는 경험해 보지 못했어요. 그 땐 제가 신병이어서 더 심했던 것으로 기억하는지는 몰라도..."

 

  "나는 인천상륙 때 부터 평안북도까지 가기도 했는데, 서울 시가전, 중공군의 4월 공세, 5월 공세도 겪어 봤지만 도솔산처럼 치열한 전투는 겪어 보지 못했어."
  "참 많이 죽었지요. 도솔산 다음에 대암산을 공격했을 때도 말입니다. 제 친구 녀석들도 그렇게 싸우다 죽은 거지요."

 
  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허공을 쳐다보며 같이 싸웠던 전우들을 회상했다.
장은 술병을 내밀었다. 김상사는 부어주는 술이 잔에 차자 얼른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크으..., 지난 6월20일에 위령제가 있었다는데, 나는 가 보지 못했지만. 그 날, 나는 위령제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혼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친구와 나는 함흥 북쪽에 있는 홍원이라는 시골에서 중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5학년이었던 48년 봄에 같이 가출해 서울로 온 거였거던. 서울서 대학 가려고..."

 

  "서울 와서 보니 대학이 뭐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서울역에서만 자야하고...그래도 둘은 근처에 있었던 서북청년단에 가서 일하면서 영어와 수학 참고서를 구해 둘이 함께 공부하곤 했는데...6.25가 터지고 부산에 내려가니 더 먹기가 힘들어졌어. 그 때 해병대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같이 입대한 거지. 일본에 가서 훈련 받고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된 거야...38선을 넘어 북진하면서 우리 둘은 고향 가게 되었다고 손을 잡고 기뻐했었는데..그만..."

 

  김상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늘을 쳐다 봤다.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주르륵 흘러 내렸다

준비해 온 소주 두 병이 바닥 날 무렵, 장은 조심스럽게 김상사 눈치를 살피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연지동 동회에서 일하신다는데 먹고 살만합니까?"
  "입에 풀칠이나 하는거지 그게 어디 사는거야? 임시직이라고... 그것도 중대장 하셨던 이응덕 대령이 친구한테 부탁해서 얻어 주신 거지만..."

  "으음, 이 놈의 세상, 더러워서... 전쟁 때는 후방에 숨어 있던 놈들이..., 자기가 애국자라고 큰소리 치며 행세하는 것을 보니, 원."

  "지금 잘 먹고 잘사는 놈들은 다 같아요. 남들이 목숨 걸고 포탄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밀수하고 군수물자 빼어 먹고 벼락부자 된 놈들이지요. 그런 놈들을 보면 울화가 치밀어서 못 견디겠어요."
  "세상이라는 게 다 그래. 고생하는 사람 따로 있고 등쳐 먹는 사람 따로 있지. 그러나저러나 우리 나라 돌아가는 꼴, 이래서 되겠어? 하두 썩어 빠져서 지난 4월에는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 엎어 버린 건 좋은 데, 그래서 이승만을 쫓아내고 나니까 더 엉망 아니야? 단체마다 자기들만이 더 잘살아야 한다고 데모를 하고, 심지어는 국민학교 애들까지 지가 무얼 안다고 국회 앞에서 데모를 해?"

 

  "글쎄 말입니다. 내각책임제다. 양원제다 해서 선거를 했지만 과연 우리가 정치가들 믿고 살 수 있겠습니까? 별 수 없습니다. 각자가 자기 살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야지. 국회의원들이 국민을 먹여 주겠습니까?"
  "내가 학력이 모자라 간부후보에 가지 못했는데..., 만약 내가 연대장쯤 된다면 우리 해병대를 끌고 쳐 들어가서 전쟁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놈들이 껍썩대는 걸 모주리 잡아 가두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거야. 이런 개판 속에서 무슨 정치를 해."

 

  그 말에 장은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입은 열지 않았다. 그는 김상사가 흥분해 토로하는 서리를 듣고 있을 뿐 한동안 자기 상념에 빠져 있었다. 김상사가 한바탕 욕지거리처럼 떠들고 잠잠해진 후에야 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상사님. 이래 가지고는 상사님이나 저나 살아가지 못합니다. 무엇인가 수를 써야지. 도솔산에서 전투할 때처럼 목숨을 걸고 한바탕 일을 치러서 밑천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포탄에 맞아 죽습니다. 빨리 고지를 점령해 진지를 구축해야지. 안 그렇습니까?"
  "맞기는 맞는 말인데...하지만 맨손으로 어떻게 해? 도솔산에서는 무기가 있었고 미군들의 지원포격도 있었기 때문에 살아 남은 거지만..."

 

  "저는 맨손으로 할 수 있는 전투를 하자는 겁니다. 사실은, 예.....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건데요. 제 목숨을 여러 번 살려 주신 상사님을 만나는 순간, 상사님이 저를 도와주시려고 또 오셨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에... 그러니까 전쟁 통에 숨어서 떼돈 모은 놈의 집을 털자는 겁니다."
  "에에? 도둑질 하자는 말인가?"
  "도둑질이 아닙니다. 그놈들이 훔쳐서 쌓아 놓은 돈을 회수하는 작전을 우리가 벌이자는 겁니다."

 

  "에이,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해병대 용사가 좀도둑이 된단 말인가?"
"좀도둑이 아니라, 부정축재를 회수하는 거라니까요. 제가 그런 놈, 몇 집을 알고 점 찍어 놓았는데요. 그놈들 사는 것 보니까 대단하더라구요. 현금, 금부치가 수두룩해요. 저는 조그만 건설회사에서 노가다로 일하면서 부자집 수리를 하는 데 쫓아 다녔는데요. 공사대금 지불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니까 개인금고에 현금다발과 금부치가 이렇게 많이 들어차 있더라구요. 은행에도 맡길 수 없는 검은 돈이라서 자기가 금고에 따로 보관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글쎄 그건 사실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그런 짓 할 수는 없지...."

  김상사는 그렇게 말은 했지만 처음처럼 강경하지는 않았다. 그것을 눈치 챈 듯 장은 웅변을 시작했다.


  "도솔산 전투하고 같아요. 사람 죽일 필요는 없지만 그놈들이 점령한 재산을 우리가 공격해 회수하자는 겁니다. 진격로를 결정하고 어떻게 공략해서 어떤 경로로 퇴각할 것인지 완벽한 작전을 짜서 밀고 들어가는 겁니다."

  이 말에 김상사는 고개를 옆으로 저을 뿐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는 다 마시고 난 소주병을 손에 들고 흔들면서 소나무 위에 펼쳐진 여름 하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무엇인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

  8월말, 신문 3면 한 귀퉁이에 강도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복면을 쓴 2인조 강도가 신당동 어느 저택에 통행금지시간이 넘은 새벽 두 시경에 침입해 군용단검으로 위협, 주인과 식구들을 작은 방에 감금하고 집 한 채를 살 수 있을 만큼 많은 현금 5백여만원과 금고에 같이 들어있던 다이야반지, 금반지등을 모두 털고 살아졌다는 것이다. 침입해 사라질 때까지의 시간은 15분도 채 안된 것 같더라는 피해자들의 진술이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그런 수법으로 보아 전문적인 강도단의 소행이라 보고 전과자들을 추적이라 한다.

 

  강도들의 대담한 수법은 신문을 본 사람들의 화제거리가 되었으며, 그보다도 이름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그 집주인이 어째서 그렇게 많은 현금을 집에 보관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모은 돈인지에 대해 더 많이 사람들은 쑥덕거렸다.

 

  (다음해, 61년5월16일에 박정희 육군 소장이 쿠데타를 일으켜 서울로 입성하고 장면 총리는 몸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정권은 군사혁명을 주도했던 군인들의 최고회의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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