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4795 댓글 0

 

 

6여단_~1.JPG

'

 

 

 

이른 봄 군에 간 아들이 지난 주말 첫 외박을 나왔다. 고작 2박3일에 오고 가는 길이 한나절, 그야말로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버렸다. …

겨우 넉 달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또래 누구보다 자유분방했던 아이는 갑자기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나타났다. 정복의 칼날 주름이 행여 무뎌질세라 등을 곧추세워 앉은 채 고된 훈련과 내무생활들을 도리어 자랑스럽게 풀어 놓았다. 하반기에 치러낼 만만치 않은 훈련일정을 얘기하면서도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

아들이 짧은 외박을 마치고 귀대하던 날 포항에는 세찬 장맛비가 내렸다. 부대 멀찍이서 차를 내린 아들은 위병소까지 수백m 외길을 꼿꼿한 자세로 고스란히 폭우를 맞으며 걸어 들어갔다. 군에 보내며 기대했던 모습 이상이었다. …'

(2010. 7.16 한국일보 ‘지평선’칼럼 중)

 

  3년 전 해병 1114기로 입대한 아들의 첫 외박 때 소회를 썼던 글의 일부다. 공군에서 병역을 마친 나는 이 때부터 해병대 마니아가 됐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병대 사이트를 훑어본 뒤 다른 뉴스들을 보고, 해병대 군가를 이어폰으로 들어가며 일을 했다. 난생 처음 상륙돌격장갑차 플라스틱 키트를 사서는 퇴근 후 새벽까지 씨름해댔다.(아들은 1사단 상장승무병이었다) 한 2주쯤 걸렸을까? 만나는 이들마다 늘 손에 말라붙어 있는 본드를 보고 “요즘에 기자 말고 다른 부업도 하느냐?”고 놀렸다.

 

 재작년 하와이의 미 태평양사령부를 방문했을 때 민간재난구조 활동을 하는 백발의 노인을 만났다. 얘기 중에 언뜻언뜻 해병대 경험담이 섞여있는 것 같아 괜히 반가운 마음에 해병대 출신이냐고 물었다. 사람 좋은 미소로 얘기하던 그가 돌연 정색을 했다. “No, I am not an ex-marine. I AM a Marine!(난 전직 해병이 아니다. 나는 해병이다!)” 역시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 해병대만의 남다른 자부심은 미 해병대도 마찬가지였다.  


이준희~1.JPG


 아들은 지난 해 초 전역했다. 군에서 얻은 좋은 습관은 채 한 달이 못 간다던가? 아니었다. 해병대 이전과 이후의 아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성실해졌고, 스스로와 주변에 대한 책임감이 분명해졌다. 국가관도 건강해졌으며, 무엇보다 어떤 어려운 일이든 겁내지 않고 일단 부딪쳐보는 패기가 생겼다. 세상에, 20여 년 엄마의 잔소리와 학교도 해내지 못한 일을 단 2년도 안 되는 기간에 해병대가 해냈다.

 

 지난 여름 국방부에서 군 체험을 제안했을 때 주저 없이 해병대를 택했다. 백령도 도처에 내걸린 ‘우리는 조국의 총 끝, 칼 끝’같은 맹렬한 구호들, 하루에도 몇 번씩 비지땀을 쏟으며 급경사로를 뛰어올라 순식간에 전투태세에 돌입하는 K-9 부대원들, “백령 바다에 적들을 수장(水葬)하자!” 구호와 함께 칠흑 같은 바다에 총탄을 쏟아 붓던 야간사격훈련, 절벽 위 초병들의 매서운 눈빛, 새벽 바다안개 속의 전투수영…. 돌아오는 뱃길, 저 외로운 섬마다 우리의 젊은 해병들이 기꺼이 희생을 감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콧날이 시큰해졌다. 당시의 감동은 지금껏 크고도 깊게 남았다.  


 

해병대~1.JPG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에서 해병대가 전례 없는 전과를 올려 한창 화제가 되던 무렵이었다. 합참 고위관계자에게 농담처럼 제안했다. “타군 교관들을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일정기간 위탁 교육받게 하거나, 해병대 교관들을 타군에 보내 해병대처럼 훈련시켜보면 어떨까?” 그가 고개를 흔들었다. “해병대식으로 훈련시킨다 해서 절대 해병대 같은 전투력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해병대는 스스로가 고통을 선택한 병사들이기 때문에 어떤 훈련이나 지시도 다들 감수할 자세가 돼있다. 대부분 병역의무를 위해 입대한 타군 병사들을 똑같이 훈련 시켰다가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K-9자~1.JPG


 늘 온화하고 신사다운 태도로 정평 있는 언론계 동료가 있다. 언론계 중진끼리의 모임도 막판이면 군대 얘기로 흐르는 건 다를 게 없다. 다들 저 아니면 벌써 대한민국이 망했을 것처럼 잔뜩 과장하는데 이 친구만 빙그레 웃으며 듣고만 있었다. “당신은 할 얘기 없어? 혹시 군대 안 갔어?” “아니, 갔다 왔지.” “그래? 어디서 근무했는데?” “…응, 해병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후 아무도 더 이상 군생활을 자랑하지 않았다. 강함은 평소 함부로 드러내지 않을 때 가장 멋있다는 걸 그 친구를 통해 새삼 깨달았다.       

이게 해병대다. 국민들이 해병대에 갖는 신뢰는 다른 게 아니다. 직업군인을 안정된 공무원쯤으로 여기고, 군 복무를 좀 길고 빡센 캠프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해병대만은 단연코 그렇지 않다는, 또는 그럴 리 없다는 믿음이다. 실제로 3년 전 연평도 포격전은 충성, 명예, 도전, 희생 등 군 본연의 가치가 해병대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해병대는 이미 대한민국의 일급 브랜드다. 해병대원 한 명 한 명마다 지키고 키워갈 책임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도 이 명예로운 브랜드를 훌륭하게 지켜가고 있는 해병대원 모두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

이준희 한국일보 논설실장 / 해병대블로그 날아라마린보이



?

  1. 진정한 해병과 민주시민 육성

      이해승 / 예비역 해병준장 해병대에서 31년8개월간 근무하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정신이었다. “싸워 이겨야 한다” “주어진 임무는 반드시 완수한다” “불가능은 없다” 등등이 늘 나와 함께했던 정신이었...
    Date2015.11.12 Views857
    Read More
  2. No Image

    울릉도 해병대 주둔 결정 매우 잘한 일이다

    충남일보 사설 2015.11.06 울릉도 해병대 주둔 결정 매우 잘한 일이다 우리 군이 독도수호를 위해 울릉도에 해병대를 배치하기로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다. 울릉도의 해병대 주둔은 그동안 독도를 둘러싼 국인불안해...
    Date2015.11.06 Views2310
    Read More
  3. 해병대·한국조직문화연구회 분대급 전투조직 특성 연구

    과학적 軍조직관리…병영문화 혁신 이끌어 병사·지휘관 패턴, 전투능력에 큰 영향 병사간 소외되는 유형 ‘관심병사’ 파악 유용 지난해 3월 열린 한미연합 상륙훈련에서 가상의 적 해안에 상륙한 한미 해병대원들이 목...
    Date2015.03.10 Views1542
    Read More
  4. 해병대 부대구조 개편개혁, 9여단 및 항공단

    국방부가 국방정책 전반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제고하고 범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2년마다 발간하고 있는 2014 국방백서에 소개된 해병대 부대구조 개편 계획은 다음과 같다. = 다음 = 해병대는 전략도서 ...
    Date2015.01.14 Views3779
    Read More
  5. [국방일보 인터뷰] 해병대사령부 복지·전직지원실장 권영배 대령

    “전역 간부들 최고의 복지혜택은 취업” 복지·전직지원실장 권영배 대령 “전역 간부들에게 최고의 복지혜택은 취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 계약직, 기간제 근무가 아닌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
    Date2014.07.22 Views2860
    Read More
  6. 병원로비에서 만난 이름 모를 해병에게

    병원로비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그는 대한민국 해병이라고 했다. 입대를 앞둔 요즘 장정들이 경쟁을 해야 들어가는 귀신 잡는 해병대원이 무릎을 다쳐 군 병원의 서울이라 할 수 있는 국군수도병원에까지 온 것이다. ...
    Date2014.02.28 Views3438
    Read More
  7. 해병대 부모·가족 커뮤니티…득일까, 실일까

    "비록 마음만이지만 아들과 함께 행군하고 함께 훈련받고 함께 잠듭니다. 이만하면 저도 해병대 가족이죠?" 입소 후 21개월, 위문편지나 잠깐의 면회로만 듣던 아들 혹은 친구의 소식이 매일 들려온다면 어떨까. 몇 ...
    Date2014.02.07 Views10250
    Read More
  8. 자랑스러운 해병대의 창조적 복무를 위해/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토인비는 “인류에게 가장 큰 비극은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데 있다”고 했다. 즉 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비극적인 결과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야 함을 시사해 준다. 예를 들면 북한...
    Date2014.01.21 Views3833
    Read More
  9. 해병대사령부 송예진 일병이 백희진 양에게

    해병대사령부 송예진 일병이 백희진 양에게 사랑하는 백희진씨 안뇽? 난 사랑스런 당신의 남편입니다!  자기야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지 300일이 되었네! 300일이란 시간은 어땠어? 많이 부족한 남자와 300일이란 시...
    Date2014.01.13 Views4207
    Read More
  10. 아저씨라도 좋다! 그 예쁜 마음 덕분에- 주현욱 해병 일병

    주현욱 일병 해병대교육훈련단 본부대대  “군인아저씨! 죽지마세요. 나쁜 놈들이 우리 집을 부수고 우리를 잡아가잖아요. 그러니까 아저씨들은 죽으면 안 돼요. 군인아저씨 늘 고맙습니다.” 나더러 아저씨란다. 상...
    Date2013.12.12 Views3409
    Read More
  11. 서북도서 관광객의 간절한 부탁 - 박진수 해병상병

    박진수 상병 해병대6여단  2013년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전 3주기인 그날, 나는 부대로 복귀하는 여객선에 있었다. 마지막 휴가를 앞두고 적의 사격에 대응하기 위해 부대로 복귀하다 전사한 고(故) 서정우 하사와 ...
    Date2013.12.12 Views3674
    Read More
  12. ‘고난극복 자격증’을 따자 - 지휘관 칼럼-류지영 해병대준장 국방부 근무지원단장

    류지영 해병대준장 국방부 근무지원단장  겨울에는 강추위와 폭설이 예상되는 시기다. 이럴 때 무엇보다 악천후를 이겨내며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는 우리 장병들의 수고가 많게 된다. 살을 엘 듯한 찬바람이 달갑지...
    Date2013.12.10 Views448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35 Next
/ 35
CLOSE

SEARCH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