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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함 백두산은 귀로에 하와이 호놀룰루에 오래 정박했다. 이름만 전투함이지 이 배에는 아직 함포도 레이더도 장착되지 않았5-3.jpg 다. 손원일 제독은 하와이에서 완전한 전투함 모습을 갖출 생각이었다.

하와이 교민들로부터 뜨거운 환영을 받은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백두산함이 호놀룰루 항구로 들어서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국의 군함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온 교민들이었다.

그들은 생각보다 배가 작은 데 실망하는 눈치였으나 고국이 군함을 갖게 된 사실에 크게 감동했다.하와이 교민들은 이를 악물고 사탕수수밭에서 힘에 부치는 중노동을 견뎌 낸 사람들이다. 그렇게 번 돈을 떼어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놓은 그들에게 독립한 고국의 해군이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우리는 번갈아 그들의 집으로 초대받아 푸짐한 고국 음식을 얻어 먹었다.

“고국의 젊은 군인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니 기분이 좋구먼. 자, 더 먹어요. 많이 들어요.”오랜만에 먹는 고국 음식이 맛있기도 했지만, 권유에 못 이겨 배불리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저 배가 떠날 때 따라가면 바로 내 고향인데….”하면서 하염없이 백두산함을 바라보던 진해 웅천출신 교민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사이 손제독은 미 국방성을 졸라 겨우 3인치 포와 레이더를 장착하게 됐다.

뉴욕 항을 떠난 지 3개월이 지나서였다. 귀로에 괌에 들러 3인치 포탄 100발을 구입해 배에 실은 뒤에야 백두산은 완전한 전투함이 됐다.백두산함이 진해에 입항한 것은 1950년 4월 10일이었다. 그로부터 채 3개월이 못 돼 이 배는 엄청난 일을 해낸다. 6·25전쟁이 일어난 바로 그날, 북한 특수부대원을 가득 태운 특공대 수송선을 적발해 대한해협 한바다에 수장시켰다.

그 첫 승리는 부산을 지켜내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이 쾌보를 나는 미국에서 들었다. 704함 인수단원으로 뽑혀 다시 미국에 출장 갔을 때의 일이었다. 내 땀과 혼이 배어 있는 백두산함이 거둔 승전보는 나 자신의 그것에 못지않은 기쁨이었다.한국전쟁이 일어난 그날, 백두산함은 진해에 정박하고 있었다. 국민의 성금으로 사 온 군함을 널리 선보이기 위해 전국의 항구를 순회하고 막 돌아온 참이었다.

오전 11시쯤이었다고 들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김성삼 통제부사령관이 지프에서 내려 최용남 백두산함장(귀국 후 함장이 바뀌었다)과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비상소집을 알리는 기적을 울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출항 준비가 끝난 것은 오후 3시가 지나서였다. 출항에 앞서 김사령관은 ‘비상사태’를 언급하면서 “꼭 이기고 돌아오라”고 당부했다.

출항한 뒤에야 비상사태의 내용이 통보됐다. 그날 새벽 적 병력이 동해안 여러 곳에 상륙했다는 것이었다.한 척뿐인 전함의 승조원이라는 자부심에 불타던 백두산함 장병들은 갑자기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반드시 적을 섬멸하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날 오후 7시 30분쯤, 영일만 장기곶 앞바다를 지나던 백두산함교(브리지) 근무자 김세현 병조장 눈에 수평선의 괴물체가 포착됐다.

검은 연기를 뿜으며 남쪽으로 항해하는 배였다. 이 사실은 즉시 당직사관을 경유해 함장에게 보고됐다.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지고 정체 확인을 위해 거리를 좁혀 가자 괴선박은 항로를 동쪽으로 틀어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백두산함도 속력을 높여 그 배를 앞질렀다. 가까이 접근해 관측한 결과 병력을 가득 태운 적 수송선이었다.

 

5-3.jpg 1000톤이 넘어 보이는 괴선박 갑판에는 완전무장한 병력이 빼곡히 타고 있었다. 선수와 선미에는 57㎜ 포가, 갑판 곳곳에 중기관포가 장착돼 있었다. 완전무장한 적병들의 복장으로 보아 상륙군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지는 뻔했다. 부산을 노린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멀리 돌아서 내려올 이유가 없다. 적선이 틀림없다는 백두산함 보고를 받은 해군본부의 결정으로 작전이 시작됐다.

전원 전투배치가 완료되고,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리 3000. 철갑탄 준비” 명령이 떨어졌다.

“꼭 맞아야 한다. 꼭 맞혀야 해. 부탁한다!”

3인치 포탄 장전수는 사람에게 하듯 포탄에 키스하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장전완료 보고에 이어 발사 명령이 떨어졌다. 26일 0시 30분이었다. 괴선박의 정체를 확인하고 본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 것이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였는지 첫 발은 바다에 떨어진 것 같았다. 침로를 돌려 적선에 접근해 가는 사이 두 번째 발사명령이 떨어졌다.

“거리 1500. 발사.”

함체를 뒤로 젖히면서 날아간 포가 적선의 메인마스트에 명중돼 분질러진 것이 확인됐다. 백두산 갑판 위에 “만세” 함성이 진동했다.

그 순간 적선도 우리 배를 찾으려는지 서치라이트가 켜졌다.

“저 불빛을 겨눠라.”

최용남 함장의 지시에 따라 백두산함은 더욱 적선에 접근하면서 서치라이트를 겨냥했다. 600야드 앞까지 접근해 발사한 포탄이 또 명중됐다.

그 순간 적선에서 맹렬한 반격이 시작됐다. 도망치기를 단념하고 맞서 싸우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어두운 바다에 함포 불빛이 붉게 물들고 새빨간 기관총알이 빗발처럼 날아다니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두 발의 치명타에 기관총 세례까지 받은 적선은 마침내 선체가 기울기 시작했다. 선수부터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항에 상륙시키려던 수백 명의 특공대원을 모조리 수장시키는 순간이었다. 백두산함에도 피해가 있었다. 적탄 한 발이 명중돼 수병 둘이 전사하고 조타실이 크게 부서졌다.

첫 해전에서 눈부신 전과를 올린 백두산함은 전사자 유해와 몇몇 부상자를 포항기지에 내려놓았다. 목적지 묵호로 올라가는 길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됐다.

<동해안의 우리 해군부대는 25일 밤 11시 4분쯤, 부산 이남 20리 지점 전면 해상에서 600톤급 국적 불명의 선박 1척을 발견, 신호했으나 불응하므로 접촉한 결과 무장군인을 가득 태운 소련 선박임을 확인했으며, 그 선박이 남하를 계속하므로 우리 해군은 즉시 공격을 개시해 26일 새벽 4시쯤 격침시켰다. 그 선박에 탄 공비는 600명이고, 37 및 57㎜ 포로 무장돼 있었다.>

당시 국방부 보도과 전황 발표문은 이렇게 돼 있다. 이 작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미국은 함장 최용남 중령에게 은성무공훈장을, 기관장 신만균 소령에게 동성무공훈장을 수여했다. 한국 정부도 최함장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해 공을 치하했다.

맥아더 사령부 정보요원 노만 존스는 훗날 저서 ‘한국전선’에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대한해협 해전의 승리는 한국전쟁의 분수령이 됐다”고 평가했다.

<국방일보 2007.11.5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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