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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월남전에 가다 제1진 참전수기
                   

                                                                 최우식(해간 33기)   -제2대대 6중대 1소대장-



1. 출발에 앞서

월남 파병부대로 포항 제1사단 제2연대가 결정된 후 1965년 8월에 접어들면서 월남전을 대비한 훈련은 연일 계속 되었다. 전투의 가장 기본 훈련인 각개 전투가 4시간, 그리고 나머지 4시간은 월남의 기후, 풍토, 지리 그리고 게릴라 전법에 관한 것이었다.
소대장들은 각자 교안을 짜랴, 훈련을 시키랴, 보충병들을 받아드리랴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없이 한여름의 더위도 잊은 듯 했다.
8월 하고도 중순에 접어들자 날씨는 폭염 그대로 찌는 한낮의 더위가 병사들의 군복을 땀으로 흠뻑 젖게 했다. 월남에 가면 땀께나 흘린다는데 땀 흘리는 훈련도 겸하는 듯싶을 정도로 날씨는 무더웠다. 그러나 파월준비 병사들에게는 강도 높은 한여름의 훈련이 계속 되더니 15일 간의 해양훈련을 겸한 휴식이 주어졌다. 포항 해병 제1상륙사단 동쪽 문밖 ‘몰개올’마을 앞 바다에 분대 천막이 줄지어 처진 병사들의 여름 해양훈련지의 밤은 밤바다의 파도 소리와 영롱한 별빛과 더불어 목청이 터지라고 불러 대는 병사들의 군가 소리로 밤이 지새는 줄 몰랐다.

파월부대의 즐거웠던 휴식을 겸한 해양훈련도 끝나고 계속 이어지는 야전 게릴라 훈련은 1965년 9월 5일 막바지에 이르렀다.
야간에는 게릴라들의 기습을 격퇴하고 낮에는 소탕전, 전투정찰, 호 작업, 피아간의 공방전 등이 계속 되었다.
중대장의 명령을 받으면 3개 소대장들은 서로 서로 자기들의 할 임무를 의논해서 각자가 분담하여 척척 처리하여 나감으로써 중대장 장순규 대위는 항상 마음을 든든히 갖는 바였다.
월남 파병을 앞두고 마지막 훈련이 될 야전기동훈련은 6중대가 게릴라 본부를 공격 점령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3박 4일간의 고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야간 행군의 행렬은 길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는 여름의 마지막을 장식하려는 듯 계속 퍼부어 댔다. 긴 행군 대열은 빗속에 우의를 덮어쓴 채 부대 막사를 향하여 계속 전진 했다. 때마침 내일이 추석이라 집집마다 풍기는 음식 냄새는 가뜩이나 배가 출출한 병사들의 발걸음을 늦추어 놓는 듯 했다. 부대 입구에는 어떻게 알고 왔는지 비를 맞으며 웅성대고 있는 가족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혹 어떤 사람은 행군을 따라오며 아는 병사의 이름을 부르며 따라오기도 했다. 모두가 내일이 추석 이라 월남 가지전에 집에서 마련한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 먹을 것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나 행군 대열은 묵묵히 질퍽거리는 군화 소라만을 내며 무겁게 부대 안으로 계속 들어 가 버렸다.
부대로 돌아온 병사들은 흠뻑 젖은 군복들을 갈아입자 몸이 훈훈해 지며 한결 기분이 좋았다. 저녁 순검 때 내일은 추석이라 휴무이며 대대에서 막걸리와 돼지고기가 나온다고 전하자 병사들은 막사가 떠나갈 듯이 좋아라고 함성을 질렀다.
월남 출전을 앞둔 훈련은 이번에 실시 한 야전기동훈련을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출발 일정만 기다리며 배구며, 축구 등의 운동으로 소일 하게끔 일과가 짜여 졌고 병사들은 어느 누구도 언제 출발할 것인가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막연히 9월 말경에 출발 하리라는 뜬소문만이 부대 내에 감돌고 있었다.
다음날인 추석날 부대는 잔치 기분에 흥청거렸다. 점심 식사를 마치자 비록 양제기 잔에 막걸리를 따라 놓은 조촐한 파티를 연 좌석이지만 부대원들은 술잔이 몇 순배 돌아가자 곧 흥을 돋우어 가며 책상이며 양재기 밥그릇이 쭈그러질 정도로 숟가락으로 두들기면서 노래에 장단을 맞추었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편지를 띄우고----”
“인천에 성냥공장—아가씨---”
노래는 계속 이어졌다.
아직 가시지 낳은 마지막 여름 햇살이라 한 낮에는 땀방울이 맺힐 정도로 더웠다. 부대 안에서의 흥겨운 추석 파티와는 달리 부대 입구에는 많은 면회객들이 모여 위병소 헌병에게 면회를 시켜 달라고 졸랐다.
‘면회는 내일부터’라는 게시문이 붙어 있었지만 어떻게 좀 해 달라고 졸라댔다.
면회 온 사람들 손에는 음식들을 싼 보따리들을 들고 있었고 서울에서 온 사람, 부산, 제주 등 아주 먼 곳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철조망 밖에서 부대 안을 드려다 보다가 혹시라도 멀리서나마 지나기는 모습이라도 보려는 안타까운 마음 들이었다. 면회가 될 줄 알고 왔다가 면회가 미루어지자 여비가 부족하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날 아침부터 모여든 면회객들로 제6중대 연병장은 저자를 이루었다. 대대에서 가설해 놓은 분대 천막으로 만든 면회실만 해도 다섯 군데나 되었지만 그것도 모자랐다.
계속되는 면회객은 9월 20일 청룡부대 결단식이 있던 날 더욱 많아져 면회실 천막을 더 늘려야 했으며 안내 장교는 안내를 하느라 바빴고 면회실에는 떡, 사이다, 통닭 등 가지각색의 음식을 싸가지고 와서는 자식 ,친지, 형제, 남편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들 했다. 훌쩍 훌쩍 흐느끼는 여인네들도 많았다. 모두가 떠나는 마음, 보내는 마음들이 엇갈리는 가운데 면회실 안팎은 분주 했다.
해병 제2여단 천룡부대 결단식이 있은 후 파월부대는 빨간 모자와 희색 런닝셔츠 그리고 빨간 반바지를 입고는 배구나 축구 등으로 소일 하면서 각자 관품을 의낭에 정돈하여 미리 월남으로 탁송하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9월 26일에는 여단 장병들의 관품을 실은 LST 2척이 선발대를 태우고 구룡포항을 출항하여 월남으로 향 하였다.
짐을 다 싣고 가 버리자 부대 안은 텅 비었다. 마치 이사 간 집 모양 같았다. 

1965년 10월2일 07:00 아침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부산했던 새벽이 개이고 완전무장을 한 청룡부대 장병들은 연병장에 정렬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전쟁터 월남으로 떠나는 이들에게는 긴장감이 쌓여 있었다. 초가을 아침, 맑게 개인 파란 하늘이 더한층 그들이 입고 있는 새 작업복을 더욱 말쑥하게 해 주는 듯 했고, 얼룩무늬 덮개를 씌운 철모를 쓴 모습들이 모두가 믿음직스러웠다.
사단장에게 출국신고를 마치고 GMC트럭에 분승한  장병들은 대형 태극기를 흔들며 목청이 터지라고 군가를 불러댔다. 해병부대가 위치하고 있는 포항 시내 쪽으로 줄지어 달리는 도로 연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뜨거운 전송을 해 주고 있었다.
지나가는 트럭을 향하여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할머니의 모습도 보였고, 군인 가족인 듯한 젊은 아낙네들의 눈물짓는 모습도 보였다.
포항여고 학생들의 이별의 노래를 들으며 장병들을 실은 기차는 서서히 포항 역 플랫트홈을 벗어나 일로 부산을 향하여 달렸다.
수많은 군인 가족 그리고 포항 시민들의 인파가 가물가물 해 지며 형산강 물줄기에 반사되는 햇살이 기차 창문에 비춰들었다.
최우식 소위는 눈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대원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려고 썬글라스를 썼다. 그리고는 어금니를 짓누르며 껌을 씹어 댔다. 그래야만 솟구치는 눈물을 억제 할 수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무슨 슬프다거나 서럽다거나 해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다. 그저 이유 없이 눈물방울이 맺혀 졌던 것이다.
기차가 경주, 울산 등지를 지나칠 때마다 들에서나 철로 변 동리에서나 기차를 보는 사람이면 양손을 흔들며 장병들의 필승과 무운을 빌어 주었다. 
기차는 하번도 쉬지 않고 부산에 도착 했다. 부산항 제3부두에는 헌병들의 삼엄한 경계가 처져 있었고 철조망 가에는 가족들이 떠나는 장병들의 마지막 모습을 좀 더 보려고 몰려 있었다. 가족들이 불러대는 소리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기치는 부두 안으로 들어 가 멈추었다.
부두에는 각 군 고급 장교들이 전송을 하려고 나와 있었고 정부의 고관들도 나와 있었다. 질서 정연하게 기차에서 내린 장병들은 완전무장에 의낭을 한 개씩 걸머지고는 곧바로 부두에 정박해 있는 선상으로 승선했다. 일렬로 줄지어선 장병들에게 육군 여군들은 식빵과 따끈한 보리차 한잔씩을 나누어 주었다.
파월 되는 청룡부대 장병들과 여군들과 주고받는 말 속에는 서로의 정을 쏟아 낼 듯 다정했다.
“이기고 돌아오세요.”
“감사합니다.”
그저 무뚝뚝한 말씨였으나 싱글벙글거리는 장병들의 사기 높은 모습들이었다.
장병들이 오르고 있는 배는 초급장교들로서는 처음 타 보는 큰 배였다.
‘엘틴저(ELTINGER)’라는 페인트 글씨가 이 배의 이름을 알려주고 있었다. 2차 대전 중 미군 수송선으로 활약 했었고 전쟁 후에는 반관 반빈 수송선으로 화물 수송을 하다가 월남전이 개시 되자 군 수송을 담당 하게 됐다고 한다.
소대장들에게 할당된 장교 침실은 말이 장교 침실이지 최하급 소위들이라 그랬는지 침실에는 창문이 없어 낮인지 밤인지 전혀 분간할 수가 없었고 침실 안에 있는 수세식 변기에서는 악취가 몹시 났다.
중갑판 303호실에는 6중대 소대장들과 5중대 소대장 등 8명이 배치되었다. 각자 배낭과 의낭을 정돈 하고 나니 침실 안은 몹시도 좁았다.
소대장들은 침실 정돈을 마치고 아래층에 내려가 각자 소대원들의 침실을 정돈해 주고 난 다음에 중대장에게 배치 완료 보고를 끝내고 나서야 갑판에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마실 수 있었다. 그칠 줄 모르게 배에 오르던 장병들의 대열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승선이 모두 끝났다.
부산시내 대신동을 안고 넘어갈듯 태양은 서산마루에서 머뭇거리며 서녘하늘을 온통 붉게 물들여 놓고 있었고 선착장에는 크고 작은 통통선들이 오가고 있었다.
서녘하늘은 점차 붉어지더니 부산 앞 바다를 온통 붉게 물 드려 놓았고 영도섬도 황혼에 젖어 붉디붉게 보였다.
 
이태리계의 자그마한 노인이 실로폰을 두드리며 식사시간을 알리자 배에서의 첫 식사인지라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식당으로 몰렸다.
장교 식당에는 모든 것이 말끔하게 정돈 되어 있었고 식탁 위에는 온갖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양식에서 풍기는 냄새와 함선의 디젤기름 냄새 등이 범벅이 되어 비위를 틀어 놓는 듯 했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식탁 위에는 많은 음식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어떤 장교는
“이정도 양식이면 한국 식당에 가면 꽤나 비쌀 걸”이라고 했다.
소대장들은 식사시간에도 바쁘다. 빨리 식사를 마치고는 소대원들의 식사를 보살펴 주어 야 하기 때문이다.
저녁 9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대충 저녁식사가 끝이 났고 장병들은 갑판에 나와 옹기종기 모여 전등불빛이 반짝거리는 부산 시가지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밤 10시 경 장교들만의 환송식이 있어 장교들은 하선을 하여 각자 육군 여군들이 걸어주는 화환을 목에 걸었다.
김성은 국방부 장관 등 정부 각료와 각 군 고급 장성들과 아수교환으로 간단한 환송식이 끝나자 배안에 있을 때와는 달리 땅을 딛고 있으니 부산 시내에 나가 한바탕 놀다가 들어오고 싶은 시전 이었다.
부산 제3부두에는 밤늦게 까지 3군 전송부대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으며 잠도 오지 않는 첫 밤을 맞은 장병들은 갑판에 나와 밤을 보내고 있었다.

2. 해병 월남에 가다

다음날 아침 1965년 10월3일 남해바다 저 멀리 보이는 오륙도 앞 바다를 꿰뚫고 올라오는 붉은 태양이 ‘엘틴저’호 갑판위에 햇살을 퍼붓고 있을 때 닫은 올려 지며 출항준비에 바쁜 배가 술렁거렸다.
붕! 붕!
뱃고동소리가 길게 울리자 환송객들은 더욱더 열광적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삼군 군악대 밴드와 연예대의 환송 쑈는 절정에 달했다.
갑판 위에 정렬한 청룡부대 제1진 장병들과 이에 배속된 397명의 육군 야전 공병 1개 중대와 155밀리 포병중대 장병들은 붉은 운동모자를 흔들어 대며 목청을 돋우며 ‘아리랑’을 불러 댔다.
최우식 소위도 이네들 틈에 끼어 부두에서 하얀 손수건을 흔들며 정열 해 서 있는 육군 여군들을 응시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봄들에 흰 나비가 날 듯 흰 손수건을 흔들어 가며 ‘여자가 더 좋아’라는 노래를 부르는 여군들의 모습을 멀리하며 배는 서서히 그 거대한 자태를 영도섬을 비켜가며 남해로 빠져 나갔다. 검푸른 파도를 가르며 이 거대한 철물은 한국 역사의 한 가닥을 이끌며 미지의 나라, 전쟁의 나라, 정글이 덥힌 덥다는 나라를 향하여 서서히 기고 있는 것이다.
망망대해로 들어선 이 커다란 철선은 꼬리에 하얀 여운을 남기며 서남 방향으로 흘러 내려갔다. 배에서 밤을 지내기를 3일째 되던 날 선내 스피커를 통하여 지금 배는 대만해협을 지나고 있다고 했다. 그러자 장사병들은 우르르 함상 갑판에 올라와 부산항을 떠난 후 처음으로 보는 외국 땅을 보려고 좌 우 난간에 기대어 섰다. 희뿌연 안개 속에 마치 고래 등같이 시커먼 대륙이 기다랗게 보이는 것이 대만의 최남단 섬이라고 했다. 배는 대만 남단을 비켜 돌아 계속 나갔다. 저녁식사를 마친 장병들은 갑판에 나와 난간에 기대어 앉아 있는 자, 갑판 바닥에 질펀히 앉아 있는 자, 각자 자유스러운 편안한 모습으로 얘기들을 나누었다. 2소대장 이종길 소위, 3소대장 백성현 소위 들도 이들 틈에 끼어 이야기들을 했다.
항해 도중 최 소위는 식사를 마치고는 가끔 휴게실에 있는 피아노를 쳐서 또한 인기를 끌었다. 이는 고등학교 시절 사범학교를 다녀 배운 실력이었다.
함상에서의 즐거움과 지루함이 엇갈리는 채 하루 중 제일 기분 잡치는 것은 매일 한 번씩 선실 청소 검열을 받는 일이었다. 몇몇 고급장교들은 미군들 앞에서 선실이 더럽다고 대원들에게 호통을 치는 것이었다.
지난번 미군들을 수송했을 때 미군들이 더럽게 해 놓은 바닥의 껌까지 말끔히 닦아 내라는 것이었다. 거미줄같이 이어진 파이프 사이사이에 낀 먼지를 손으로 더듬어 가며 검열하는 갑판장의 새파란 눈알을 초급장교들은 흘겨보고는 했다.
이렇게 까지 굴욕적인 처우를 받아가며 전쟁을 치르러 먼 나라까지 가야만 하는 걸까? 그러나 군인은 명령을 따라야 하는 것, 하는 수 없이 지적당한 곳은 다시금 청소를 해야 했다. 항해도중 함정 승무원들의 짜증은 결국 말단 단위장인 소대장에게 부하들의 감시 감독을 철저히 하라는 상관의 호령이 떨어지게 됐다.
소대장은 항해 도중에도 바빴다. 빨리 장교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에는 병사들 식당에 가서 대원들이 식사하는 것을 보살펴 주어야 했다. 끝없이 꼬불꼬불하게 줄지어선 대원들을 정렬시키면서 후덕지근한 증기기관 디젤 냄새와 밥 짓는 스팀 찜통에서 나오는 밥 냄새 등이 섞여 역겨운 냄새가 도크 안에 온통 감싸여 있어 가뜩이나 더운 배 안이라 구토가 절로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소대장이라는 직책은 이런 것들을 감수 하면서 대원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헌데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소대장들은 함정 승무원들이 짜증을 부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도 같았다. 도대체가 병사들이 한번 식사를 하고 나면 포크며 칼 등이 수십 개씩 없어진다는 것이다. 심지어 물 컵이며 식판 등 도 없어진다는 것이다. 지난번 미군들을 수송했을 때도 약간의 물건들이 없어지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숫자가 없어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비축 분으로 보충은 하고 있지만 이대로 계속 없어지다가는 손으로 식사를 해야 할 형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소대장들에게는 대원들이 배안의 비품을 슬쩍 하는 것을 감독하라는 임무까지 부여 됐다. 그러나 소대장들은 피식 웃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소대장이 집합되어 감독지시를 받은 것은 몇 몇 고급 장교들이 오징어를 푸대로 가져가기 때문에 오징어 냄새가 병사들을 자극하자 오징어를 꺼내 먹는 통에 안달이 난 오징어 임자들이 애꿎은 소대장들만 볶아 댔다. 그러나 소대장들은 이러한 추잡한 지시에는 아랑곳 하지도 않았다. 소대장들 각자는 어떻게 하면 멋진 전투를 치룰 것인가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었다.
배가 인도지나해에 접어들어 이틀째가 되자 멀리 월남 땅이 보였으며 중갑판 벽에 붙어 있는 온도계가 섭씨 34도를 가르켰다. 기온은 점차 높아지면서 내의가 땀에 젖어들 정도로 가열 되어 갔다. 정오에 갑판에 내려 쬐는 햇살은 살갗을 따갑게 했으며 간간히 획 획 몰아 부는 인도지나해의 바다 바람은  후덥지근했다. 계속된 쾌청한 날씨와 잔잔한 물결을 헤치고 항해 한지도 6일째 되던 날 내일 즉 10월 9일 이면 월남 부두에 입항 되리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소대장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월남 지도를 펴 들고는 아득히 보이는 월남 땅을 지도 위에서 찾느라고 서로들 여기다여기다 하며 지도를 드려다 보았다.
이제 배는 젊은 한국군 해병용사들을 태운 배는 서서히 가까이  월남 땅에 접근했다.
 

3. 정글을 헤치며

1965년 10월8일 월남중부지역의 항구인 ‘캄람’(CAM RAMH)만의 밤은 요정들 같이 많은 각종 배들의 마스트 색깔과 전등불빛으로 만 어구 전체가 불야성을 이루는 무도회장 같은 느낌을 주는 항구의 호화로움을 병사들은 갑판에서 볼 수가 있었다. 많은 군수물자를 싣고 온 거대한 배들이 저마다 알룩달룩한 전등을 달고 물 위에 떠 있어 마치 평화로운 항구의 모습 같아 전쟁을 하는 나라라는 기분이 전혀 들지가 않았다.
한국군을 태우고 온 ‘엘틴저’호는 하룻밤 이 만에서 지내고 다음날 9일 아침 일찍 병사들은 상륙할 예정이었다.
배 안에서는 내일을 대비하는 장병들의 장구정리소리가 정막을 깨고 있었다.
실탄 분배며 전투식량인 레이션 분배를 하는 등 내일 아침 상륙할 준비에 모두가 바빴다.
태양을 서서히 어둠을 가시기 시작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장병들은 뜨거워지는 갑판에 나와 하선할 차례를 기다렸다.
각지 완전무장에 의낭을 걸머진 병사들은 질서정연하게 하선하는 즉시 부두에 길게 늘어선 트럭에 분승하여 내륙으로 달렸다. 차마다에는 태극기가 펄럭이며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면서 달렸다. 차의 긴 대열은 ‘캄란’비행장을 끼고 왼편으로 접어들어 대기 중인 상륙용 주정에 차체로 탄 다음 해협을 건너가 또다시 한동안 국도를 따라 달렸다.
길가에 점점이 휘늘어진 야자수 하며 덩그렇게 막 떨어질 것 같은 야자열매 등을 볼 때면 병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처음으로 구경하는 것으로서 신기함을 느끼지 않는 이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만 어구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판자촌 주위에서 무표정하게 우두커니 서서는 트럭의 대열은 응시하는 긴 머리카락에 펄럭이는 아오자이 자락을 날리고 있는 젊은 여인들을 볼 때면 병사들은 휙 휙 하며 휘파람을 불러대곤 했다.
저마다 신비스러움을 느끼는 병사들에게는 지금 전쟁터에 온 것이 아니고 마치 관광이라도 하는 양 싶었다.
잠시 후 트럭은 1번 국도를 따라 한동안 달리다가 숲이 우거진 오른편 길로 접어들면서 점차 정글이 심해져 가는 소로 길을 한동안 달리다가 멈추었다.
병사들은 이제껏 흥분했던 기분을 삽시간에 가셔 버리고 선발대로 와 있는 부 대대장 최창언 소령의 지시에 따라 각자 자기네 임무지역으로 흩어졌다.
제2대대 6중대 맡은 방어지역은 좌우 5중대와 7중대 끼고 중앙에 위치하는 방대한 지역이었다.
중대장 장순규 대위와 소대장들은 각자 전령 1명씩을 대동하고 방어지역 정찰을 나섰다. 앞 뒤 실탄을 장진한 병사들의 호위가 있었지만 옆에서 금방이라도 적들이 튀어 나올듯한 느낌을 주는 정글 숲은 가시 넝쿨로 엉켜있고 길도 없어 방대한 지역을 헤집고 나가는 데는 더위까지 겹쳐 짜증이 났다.
부대는 오후 늦게 되어서야 분대까지 방어구역이 분배되어 각자 호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최 소위도 웃통을 벗고는 대원들과 함께 호 작업을 했다. 호 작업 중 제1분대장 양정보 하사는 대검에 전화통만한 크기의 자라 한 마리를 끼어들고는 소대 본부로 가져 왔다. 양 하사가 파던 땅 속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단장님 보신하시라고 여단 본부로 보냈다.
개인호, 교통호 등의 작업 중에는 여러 종류의 진딧물과 파충류들이 많이 나왔다. 특히나 도마뱀이 어찌나 많은 지 땅 속 이곳저곳에서 튀어 나오다가 삽에 찔려 죽는 것들도 많았다. 호 작업은 계속 되었지만 날이 어둑어둑해서야 개인호 정도밖에 진척이 없어 밤에는 경계를 철저히 해야겠다고 소대장들은 각자가 마음을 굳게 가졌다.
중대장에게 호 작업의 결과를 보고하고 돌아온 최 소위는 분대장들을 집합시켜 놓고 특히나 오늘 저녁은 첫날이라 경계를 철저히 할 것이며 첫날이기에 적의 기습에 만전을 기할 것을 주의 시켰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져 대원들 각자는 첫날의 밤을 맞이하여 온갖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들뜬 기분으로 개인호 속에 들어가 전방을 향하여 총을 겨누고 있었고 소대본부 요원인 선임하사, 향도하사, 통신병 그리고 전령들은 레이션의 비스켓을 먹어가며 도란도란 담소를 하고 있었다.
월남전선의 첫 밤은 이렇다 할 전황 없이 무사히 지냈으나 제2소대에서 한명의 사고가 있었다. 사고 인 즉은 한 대원이 용변을 보려고 참호에서 나와  조금 떨어진 숲속에서 용변을 보던 중 다른 참호에서 인기척이 나자 첫 밤이고 하여 무조건 총을 발사 한 것이 용변을 보던 병사의 엉덩이를 관통시켜 후송시킨 일이 있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인 수색정찰을 나가는 한편 호 작업 또는 장구정리, 식량과 급수보급 등 분주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대원들의 작업은 그칠 줄 모르게 쏟아지는 비로 인하여 참호가 무너지면 다시 파야 했고 식사보급이 끊기면 레이션으로 식사를 해야 했고 급수보급이 늦으면 편초에 비를 받아 마셔야 했다. 대원들은 하루도 빼지 않고 퍼부어 대는 빗속에서 하반신이 물에 잠긴 채 잠을 자야 했고 빗속에서 먹고, 빗속에서 수색정찰을 해야만 했다. 
빨래는 간단했다. 대원들은 옷을 입은 채로 비에 젖은 옷에다가 비누칠을 하고는 잠시만 빗속에서 서 있노라면 빨래가 저절로 되는 것이었다. 비가 계속해서 내리니 제일 아쉽고 귀하게 된 것은 비닐이었다. 방수를 하기 위해서는 비닐로 모든 장구와 소지품들을 싸 가지고 휴대해야 했으며 장구손질, 병기손질은 끊임없이 계속 해야만 했다. 간간히 약 30분 정도 햇빛을 보게 될 때에는 비에 젖은 옷에서 김이 모락모락 났다.
청룡부대 2대대가 상륙하지 15일 만에 ‘캄란’ 제1번 국도변 지역은 거의 수색을 마치고 전술책임지역 확보를 해 놓았다. 청룡부대 제1대대는 ‘캄란’반도에 있는 보급기지와 비행장 방어를 하고 있었고, 제3대대는 제2대대에 인접한 북쪽 지역을 확보해 놓고는 점차 그 지역을 확대 해 나갔다.
10월16일 한국의 KBS방송국 기자가 녹음기를 들고 정글 속에  세워진 최 소위 소대본부로 찾아왔다. 여단본부 정훈장교 박 대위와 함께 온 방송 기자는 최 소위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녹음을 해 갔다. 이것이 한국군이 파월한 이래 최초의 국내 방송이 될 것이라고 기자는 말했다.
부대는 계속 반복되는 상화 이외에는 별다른 일 없이 빗속의 10월 은 하루하루 지나  갔다.
10월28일 밤 9시. 소대본부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네 소대장입니다.”
“나 중대장인데 금일 밤 12까지 부대 이동 준비를 완료하고 보고하라”
느닷없는 야간 부대 이동명령이 내려 졌다. 최 소위는 전화기를 놓고는 옆에서 편지를 쓰고 있는 전령을 시켜 분대장들에게 11까지 전원 이동 준비를 완료하고 무선으로 보고 하라고 지시했다.
이로 인하여 그동안 정 들었던 소대 본부 벙커가 뜯기기 시작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나무를 찍어다 3일씩이나 걸려서 지어 놓고 마음을 붙이고 있던 곳이 헐리는 것을 보니 최 소위나 소대본부 요원들은 참으로 섭섭함을 금 할길 없었다.
철거 작업 중에도 비는 계속 퍼부어대는 통에 장구마다 빗물이 스며들어 작업진전이 잘 안되었다.
이동 준비가 계속 되는 동안 소대장 집합 회의 가 열렸다.
이번의 임무는 남쪽 “판랑”으로 가서 미군들이 건설하고 있는 비행장을 방어 하는 것이었다.
지도를 펴 놓고 각 소대장들은 담당지역을 할당받고 소대로 돌아와 부대 이동 준비에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부대 이동준비가 완료 된 것은 새벽2시가 되어서였다. 중대본부로 각자의 짐을 옮겨 놓고는 깜깜한 밤에 천막도 없는 참호 속에서 어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아 가며 허리까지 차인 물속에서 경계를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새벽 6시. 동이 훤하게 터 오르자 제3대대 10중대에다가 지역을 인계하고 트럭에 분승한 제2대대는 ‘캄란’남쪽 40킬로 떨어져 있는 ‘판랑’을 향하여 달렸다.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트럭의 대열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 달렸다.
2만여 평의 야자나무 과수원도 통과 하고 옛 왕궁시대 고분들이 있는 곳을 지나치기도 하면서 간혹 산허리를 돌때면 여차하면 발사할 수 있도록 총의 안전장치를 푸는 긴장된 순간도 있었다. 또한 들판을 지나노라면 시커먼 색깔의 물소들이 박달나무로 만든 종을 목에다 달고 논을 갈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도대체가 전쟁과는 먼 평화스러운 농촌의 조용한 모습이었다. 마치 전쟁은 한국군들 스스로가 공연스레 찾아다니며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들이 도로 연변에 펼쳐 있는 사이를 한국 해병대는 총알을 장진하고는 트럭을 타고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부슬비로 변한 빗줄기는 ‘판랑’시가 가까워지자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더니 ‘판랑’시가를 통과 할 때는 완전히 개였다. ‘판랑’시가는 조그마한 시골 도시인지라 달리는 트럭 위에서 좌우로 몇 번 고개를 돌려보는 사이에 시가를 벗어나 버리는 것이었다.
‘판랑’시는 비록 작은 시골 도시이지만 군사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시 서북쪽 10킬로 떨어진 곳에서는 미 62공병대대의 비행장 활주로 공사가 한 참 벌어지고 있었다. 이곳에는 한국군이 월남에 상륙하기 전까지 월남군 제25사단이 주둔하고 있었던 것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게 하고 청룡부대 제2대대를 이곳에 투입시켜 이곳 비행장인 ‘뷰손’비행장 활주로 확장공사 기간 동안 방어를 맡으라는 임무가 부여 된 것이다.
트럭의 대열이 공사장을 통과하여 방어지역인 외곽 산악지역으로 계속 달렸다. 그때였다. 미군들은 부대 내에 설치되어 있는 야전 샤워장에 쭉 늘어서서는 샤워를 하면서 트럭의 대열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자기네들의 성기를 흔들어 보이면서 함성을 지르며 한국군들을 환영했다.
공사장을 지나 한동안 달리던 38대의 긴 트럭들은 멈추었다.
각자 장구를 챙겨 트럭에서 내린 장병들은 각자 자기네 임무지역으로 갔다. 제1소대장 최 소위가 맡은 지역은 야산을 중심으로 좌우에 제2소대, 3소대를 끼고 중앙에 위치했다.
최 소위는 각 분대장들에게 지역배치를 해 주기 위하여 소대 방어지역으로 갔다. 그곳에는 이미 월남 군인들이 방어 임무를 맡고 있었던 곳으로 여기 저기 월남군들의 참호와 초소가 지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다. 구역질 날 정도로 이상야릇한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찔러 가까이 가고 싶은 생각이 나질 않았다.
최 소위가 월남군 초소에 도착하자 월남군 장교인 듯한 자가 가까이 다가 왔다.
“아유 푸튼 리더?”(당신이 소대장입니까?)
“예스 아이 앰”(네 그렇습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된 양측 소대장은 서로 인수인계를 했다.
월남군 소대장이 최 소위에게 인계를 마치자 월남 군인들은 철수를 하느라 부산했다. 취사도구로 쓰임직한 쭈그러진 냄비 등을 챙기고 나무기둥 양쪽에 줄로 묶어 침대용으로 쓰던 우의며 담요 등을 거두어 드렸고 아내들은 애기를 들쳐 업는 등 한국군으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이곳 군인들의 생활상을 보는 한국군으로서는 그야 말로 구경꺼리가 아닐 수 없었다. 군인 중에는 칸(막대기 양쪽에 바구니를 달아맨 일종의 지게)에다 짐을 꾸려 한쪽 바구니에 올려놓고 또 한쪽에는 애기를 싣고 가는 군인들도 있었다. 군인들의 뒤를 졸졸 따라가는 부인들의 모습을 한동안 쳐다보던 최 소의는 그네들이 가련 하다기 보다는 전쟁이 가져다주는 이들이 처절한 생활 모습에 뼈저린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월남 군인들이 철수하고 난 뒤를 청소하고 각 분대는 배치가 완료되자 각자 호 작업을 시작했다. 호 작업은 바닥이 암반으로 되어 있어 매우 힘들었고 더디었다. ‘판랑’ 대 평원이 펼쳐져 있는 망망 대륙, 너무나도 아까운 버려진 옥토의 벌판에 불룩하게 솟아오른 16고지 능선에 배치 붙은 제1소대는 인접한 소대들 보다는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시야가 확 트여 전방이 훤히 내려다볼 수가 있어서 최 소위로서는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제2대대가 이곳 ‘판랑’에 주둔한지도 6일째가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적과는 이렇다 할 접전은 없었지만 께름한 것은 ‘판랑’‘뷰숀’비행장 동쪽 5킬로 지점에 까투산이 흉물스럽게도 우뚝 솟아 있었다. 이곳은 난공불락의 순 암반으로 형성 된 산으로 높이는 불과 319미터이나 불인(拂印) 전쟁 당시 프랑스군이 8회나 공격했었으나 실패를 했던 산으로 이곳으로부터 베트콩들은 6-7명씩을 1개 조로 편성하여서는 마을로 내려와 약탈과 세금징수 명목으로 재물을 거두어 가곤 했다. 그리하여 월남 군인들이 몇 차례 공격을 시도 하였으나 번번이 실패를 했던 곳이다.
이 산은 전술적으로 요충지대인 것이 1번 국도가 이 산 밑을 돌라가기 때문에 국도사의 보급 및 병력이동 사항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비행장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제2대대는 작전 계획을 세웠다. ‘백경(白鯨)작전’으로 명명한 대대장 오윤진 중령은 헬리콥터로 지형정찰을 하기위해 비행 했다. 헌데 적들은 3차례나 대공사격을 가하는 등 발악을 했다. 지형정찰을 마친 대대장은 산악이 암반으로 험난한 것을 감안하여 산악중대로 활약이 큰 제5중대 강인수 대위에게 임무를 무여 했다. 그리고 산 후면바다에는 월남 지방군 2개 중대가 적의 퇴로를 차단하는 협공작전을 하기로 하고 제6중대와 7중대는 진지를 화보하고 있었다.
1965년 11월4일 까투산에는 미 공군 전폭기 지원대의 폭탄투하와 5중대에서 쏘아올린 81밀리 박격포탄으로 산을 당장에 무너뜨릴 듯 약 30분간 폭격을 가했다.
그런데 아뿔싸!
미군 전폭기 한 대가 얕게 선회하는 도중에 그만 포탄 햇지가 열리면서 포탄 한 개가 아군 중대본부 진지에 투하되고 말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삽시간에 일어난 폭염은 정유성 일병을 숨지게 했으며 주석근 일병의 양 팔을 날려 버렸으며 그 밖에 4명의 병사에게 부상을 입히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5중대 병사들은 악착같아 베트콩들의 방어사격에도 굴하지 않고 5부 능선까지 육박했다.
그때였다. 한 동굴 안에서 완강하게 저지하는 베트콩을 발견한 제1소대장 정재원 소위는 제1분대장 조영일 하사에게 엄호케 하고는 제1포복으로 근접하여 수류탄을 투척하여 동굴 안에서 버티던 베트콩을 사살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조 하사는 하퇴의 부상을 입고는 하산되었다. 일전 일퇴를 거듭하며 로프를 타고 암벽을 기어 올라가야 했으며 때로는 육박전도 벌려야 하는 등 악전고투하기를 5시간여 끝에 드디어 정상에 태극기를 꽂았다. 참으로 힘이 들었던 전투였다. 공격부대는 점검을 마치고 어둑어둑해진 오후7시가 넘어서야 원 위치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전투는 아군의 희생도 있었지만 1947년 이래 한 번도 점령을 당해보지 못했던 이 산이 한국 해병대 1개 중대에 의하여 점령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는 것이며 한국 해병대가 월남에 상륙하여 벌린 최초의 작전이었다는 데에도 의의가 컸다.
이 ‘백경작전’을 통하여 한국군이 새삼 알게 된 것은 월남군의 문제였다. 도대체가 싸울 의사가 전혀 없는 군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합동작전을 한다지만 오히려 작전에 지장을 주는 그네들이었다. 그들은 사명의식이 없을 뿐 아니라 베트콩을 자기네 동족으로 생각하고 있어 어느 때는 오히려 베트콩을 감싸 들려고 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베트콩들과 내통하는 자까지 있다고 했다. 참으로 월남의 앞날이 암담했다.
월남 정부가 이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뷰숀’비행장 공사는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그러자 제2대대 이동 명령이 하달  되었다.
그동안 찔끔찔끔 내리던 비는 왠지 부대 이동이 있다니깐 그런지 장대같이 퍼부어 댔다. 빗속에서 승차하고 빗속을 달려 제2대대는 전에 주둔했던 캄란지역 ‘동파틴’으로 돌아왔다.
지역을 다시 인계받은 제2대대 6중대는 개인호와를 다시 보수 하고 참호작업을 하는데 하루를 꼬박 보냈다. 대원들은 이제는 영구적인 막사를 지어 보겠다고 굵은 나무를 배어다가 무너지는 벽의 사방을 들러 치며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는 등 자기네들의 보금자리를 만드느라 모두가 열심히 작업을 했다. 
각자 자기네 참호가 좋다고 뽐내던 3일째 되던 날 호 작업이 거의 완료되어 갈 무렵에 이동 명령이 났다. 이번에는 중대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최우식 소대만 이동하라는 것이었다.
제1소대 대원들은 그동안 애써 파놓은 참호 속에서 좀 쉬려니 했었으나 이동 명령에 따라 장구를 꾸려 트럭에 분승하고는 ‘캄란’으로부터 1번 국도를 따라 북으로 한동안 달리다가 서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중대본부로부터 무려 60리 나 떨어진 곳에 소대본부를 구축한 최 소위 소대에게는 월남의 1번국도 외에 유일한 보급로인 철로를 방어 하라는 임무가 부여 됐다. 소대가 맡은 구간은 30리로 1개 소대가 30리 거리를 방어한다는 것은 병력 수로 보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베트콩들은 이 유일한 보급로인 철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야간에는 철로 일부를 절단해 버리거나 철교를 파괴하곤 했다. 그리하여 제1소대로 하여금 이러한 베트콩들의 활동을 사전에 봉쇄케 한 것이다. 철로 변에는 드문드문 촌락이 있었지만 몇 집 안 되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이었다.
최 소위는 소대본부 위치를 잡아 병사들로 하여금 진지구축 명령을 내리고 요소요소 취약점들을 점검하며 정찰에 나섰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병사들을 괴롭혔다. 오히려 비라도 펑펑 쏟아졌으면 시원하겠건만 그렇게 억수같이 쏟아 붓던 비도 그치고 작열하는 햇볕이 내려 쬐여 땀이 온 몸을 적셨다. 목마름과 더위를 참아 가며 정찰 도중이었다. 마치 고양이 새끼만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조그마한 원숭이 10여 마리가 나무 위에서 짹짹거리며 최 소위 일행을 보고는 가느다란 나무 가지를 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야단들이다. 하기야 이곳은 인적이 드문 밀림지대로 하루에 한번 운행되는 기차가 지나치는 일 이외에는 너무나도 조용한 곳으로 원숭이뿐만 아니라 각종 짐승들의 서식처로는 안성맞춤인 지역이다.
정찰대원들은 신기한 듯 원숭이 때들의 요란스러운 율동을 구경하고 있는데 병사 한명이 M1소총을 그들 원숭이에게 겨냥하고는 방아쇠를 당기려 하지 않겠는가,
“야 임마 쏘지마”
 하며 분대장이 고함을 쳤다.
“야 원숭이는 쏘는 게 아니야 전쟁터에서 원숭이를 쏴 죽이면 재수 없어. 알았나?
 임마는 아무대나 쏘아 댈려고 그래, 니 멋대로 하는 거야?“
 분대장은 눈알을 부라리며 총을 쏘려는 병사에게 호통을 쳤다.
최 소위 소대의 철로방어 임무는 지루하고 답답한 나날이었다.
낮 동안에는 정찰대를 편성하여 왕복 60리를 수색과 정찰을 해야 했으며 야간에는 요소요소에 잠복, 매복대를 배치해야 했다.
 최 소위는 병사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하여 낮에는 가끔 정찰도중 소대원을 교대로 마을로 데리고 나갔다. 마을이라고 해 봐야 고작 10여 호 남짓한 곳이지만 그곳에 가서 월남 민간인들 특히나 여인들과 손짓 발짓 해가며 시시덕거릴 수가 있었고 한 가지에 수십개씩 달린 바나나를 주민들로부터 얻어 올 수가 있어서 병사들은 지루함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가 있었다. 얻어온 바나나는 땅속에 4~5일간 묻어 놓았다가 파서 먹으면 그야말로 신선하고 달콤했으며 그 맛과 향기가 싱그러웠다. 병사들은 처음에는 나무에 달린 바나나를 따서 즉석에서 먹다가 떫어서 뱉어 내고는 했었으나 주민들로부터 그 요령을 배워 맛있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최 소위는 철로방어의 임무도 중요했지만 병사들의 갑갑함을 풀어주어 사기를 올려 주는 데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그리하여 사격대회도 개최해 보고 야자수 나무에 높게 달려 있는 야자를 총으로 쏘아 떨어뜨리기도 하는 둥 병사들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 갖가지 신경을 써야 했다.
 최 소위는 이곳에 주둔한 후 부락민들과 접촉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는 자주 드나들던 부락의 한 집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최 소위는 흥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이를 쾌히 응하고는 전령과 함께 점심식사를 초대한 집으로 갔다. 그 집에는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인과 노인영감 그리고 열 살도 채 안 되는 아들이 있었고 남편은 군에 가 있다고 했다.
 초대 점심이라고 해 봐야 이 전쟁 통에 가난한 농촌에서 뭘 변변히 대접할 수가 있겠는가. 후르르 흩어지는 안남미 밥에 멸치젓갈 같은, 구토가 날 정도로 냄새가 나는 젓갈과 생채 비슷한 것으로 이름 모를 풀로 만든 냉국이 고작이었다.
 한 공기도 채 안되게 밥을 덜어낸 최 소위는 냉수에 말아 후루룩 마시다시피 먹고 나서는 “깜언 람.”(매우 감사합니다.)이라고 몇 번이고 인사하고는 진지로 돌아오려는데 한구석에 앉아있던 그 집의 노인 영감이 최 소위에게 다가와서는 최소위의 양쪽 가슴에 달고 있는 수류탄을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팔라는 것이다.
그러자 최 소위는 하도 이상해서
“따이 싸오?”(무엇 때문인가?)하고 묻자 그저 팔라는 시늉만 계속 할 뿐이었다.
 최 소위는 노인의 말을 무시해 버리고는 일어나려고 하다가는 번뜩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어 도로 앉았다.
(“아니다 이건 예사 일이 아니다. 무슨 까닭이 있을 꺼다. 젊은이도 아닌 70이 다된 노인이 수류탄을 팔라고 한다. 더구나 그 집의 여인네도 조용히 하는 눈치이다.”)
 최 소위는 여인네를 불러 왜냐고 무슨 이유로 수류탄을 팔라고 하느냐고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최 소위의 굳은 표정을 보던 영감은 벌벌 떨면서 뒤로 물러났고 여인네는 실토를 했다.
 최 소위는 아연실색,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이 어처구니없는 월남인들에게 공산주의가 어쩌구저쩌구 하다니 한심스러운 일이라고 개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류탄을 베트콩들에게 팔아넘긴다는 것이다. 베트콩들과 무기거래 뿐만 아니라 C레이션도 거래되고 심지어는 칼빈 소총도 뒷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월남군에 가 있는 여인네 남편은 가끔 레이션과 수류탄을 집으로 보내와 중계인을 통하여 베트콩들에게 팔아넘긴다는 것이다. 수류탄 1개당 미화 5불씩 한다고 한다.
 현재 모든 군수품은 미군들이 지원하고 있다. 그리하여 캄란만은 보급기지로 C레이션과 무기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그 많고 흔한 물자라고 하지만 적과 싸우라고 지급되는 보급품이 적에게 넘어 가고 있다니 어찌 된 놈의 전쟁인지 도대체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일반 백성들과 군인들이 이렇게 썩어 빠져 있는데 무엇인들 옳게 되겠는가, 지난번 흘려들은 이야기로 C레이션을 잔뜩 실은 트럭10대중 1대가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헛도는 얘기가 아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최 소위 소대의 철로 방어 임무는 꽤나 오랜 날을 보냈다.
식수 보급차량이 하루만 걸러도 소대원들은 갈증을 견디다 못해 흐르는 물에 소독약을 넣어 여과를 시킨 다음 그 물을 마셔야 했고 비가 개인 날에는 더위를 식히느라 홀딱 벗고 물속에 들어 앉아 있어야만 했다.
 헌데 이런 것들이 커다란 잘못이었다는 것을 최 소위는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병사들은 한명, 두 명씩 말라리아에 걸리기 시작했다. 비록 흐르는 물이었고 소독을 했다 하더라도 들판의 물은 말라리아의 온상인 것이다.
 소대원 45명중 15명이 열병을 앓으면서 고통스러워해야 했으며 드디어 심한 병사 몇 명은 나트랑 후송병원으로 후송되기까지 했다.
많은 병력의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최 소위 소대는 다른 부대와 방어 임무를 교대하고 중대본부가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병사들은 오자마자 또 호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틀 밤을 지내자 이동 명령이 났다. 이번에는 대대급 이동이라고 했다.
 이번 임무는 ‘투이호아’에 상륙하려던 미국 상륙부대 수송선인 LST가 기상관계로 해안 접안을 잘못하여 모래사장에 박혀 버려 이들이 북쪽으로 120km 떨어진 ‘투이호아’를 거점으로 제3대대와 합류하여 그곳을 평정시키라는 임무가 부여됐다. 이로서 ‘투이호아’에는 청룡제2대대와 제3대대가 ‘투이호아’시 남쪽 비행장 옆에 진지를 구축하게 되며 여단본부도 캄란에서 옮기게 되어 ‘캄란’에는 제1대대가 잔류케 된다는 것이다.
소대장들은 이런 움직임으로 보아 이제부터 본격적인 큰 작전이 벌어질 것을 예견했다.
 ‘투이호아’는 월남의 중부 해안에 위치한 곳으로 3대 곡창지대 중에 한 지역이다.
이곳은 월남군 제2군 관할에 있지만 베트콩 제5군사가 장악하고 있어 퓨엔성인 ‘투이호아’의 시 외각지대는 거의가 베트콩들 세상이었다. 캄란 비행장에 정렬한 청룡부대 제2대대와 제3대대는 수송용 비행기 C140의 웅장한 모습이라든가, 요란한 폭음을 내며 착륙하고 또 이륙하는 팬텀기 편대들 하며 여러 가지 각종 거대형 헬리콥터들의 요란한 괭음 등을 들으며 뜨겁게 달아오른 PSP철판에 주저앉아 C140에 탑승할 차례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비행기에 탑승한 병사들은 전선줄이 거미줄같이 얽혀있는 비행기 안의 좌우 양쪽과 중앙에 설치되어 있는 의자에 질서정연하게 앉았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것이라 비행기가 이륙하여 상공을 나르자 창가에 앉아 있는 대원들은 연상 밖을 내려다보느라고 목을 길게 빼어 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비행기가 하늘을 나른 지 2시간이 좀 지나서 비행기는 착륙되면서 뒷문이 열렸다.
잠시 에어컨으로 시원했던 기내는 대지의 열기에서 솟아오르는 더운 공기가 갑자기 불어 들어와 비행기 속은 갑자기 훅훅 찌는 듯 했다.
 인도지나해의 푸르른 물결은 간간히 흰 거품만을 몰고 왔다가는 모래알을 머금고 가버리며 망망대해처럼 펼쳐져 있는 모래벌판이 시야에 끝이 없었다.
이곳이 ‘투이호아’(Tuy Hoa) 라고 했다.
 풀 한포기 없는 광활한 모래벌판에 띄엄띄엄 마을이 산재해 있는 것이 어쩐지 첫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지역은 비록 삭막하긴 하나 아군에게는 참으로 유리한 지역인 것 같았다. 동쪽은 해안으로 해안선만 봉쇄하면 되겠고 밀림지대가 아니어서 적의 노출을 쉽사리 판별할 수가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보아 아군에게 유리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한가지 좋지 못한 것은 평평한 대지인지라 목표점이 없어 야간 행동에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고 모래벌판이라 방카구축에 있어 삽질을 하면 모래벽이 줄줄 무너져 내려 힘이 들었다. 더구나 죽죽 쏟아져 내리는 비는 가뜩이나 힘이 드는 방카구축을 더욱 더 힘들게 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모래벌판이라 지상에다 방카를 구축한다는 것은 적에게 나 여기 있노라 하는 아주 위험천만한 것으로 군사적으로는 가장 기초적인 상식이기에 어느 지역 방카구축도 그랬듯이 두더지 모양 땅속으로 깊이 내려가야만 했다.
 병사들은 땀과 비에 젖은 군복을 아예 벗어 버리고 팬티 바람으로 열심히 모래를 파 냈다. 그러나 한 모퉁이가 무너지면 다른 모퉁이가 주루루 무너지곤 하여 C레이션 상자를 넙적하게 펴서는 벽을 둘러치고 그 위에 우의로 지붕을 씌웠으나 빗물이 고인 우의는 얼마동안 지탱 못하고 내려 앉아 물벼락을 맞는 등 나중에는 짜증까지 났다.
어떻든 이렇게 시작한 방카구축은 2~3일에 걸려서야 겨우 끝이 났다.
 제6중대가 맡은 방어지역은 대대본부를 중심으로 하여 인도지나해 반대편인 철로변을 끼고 총연장 길이 20리가 되었다. 이 지역은 바다쪽이 아니어서 전방에는 띄엄띄엄 민가가 있어 더욱더 신경을 써야 했다.
 낯설은 이국땅, 훅훅 찌는 듯한 무더운 모래 구덩이 속에서 하루의 해는 지고 또다시 뜨며 지루한 나날은 흘러갔다. 비가 쏟아질 때면 소리 없이 무너져버리는 방카를 수선해야 했고 간혹 타는 듯이 뜨거운 햇살이 내려 쬐는 때는 훅훅 찌는 방카를 기어 나와 인도지나해의 해풍에 잠시 더위를 씻곤 했다.
 부대가 주둔한지 10여일이 되자 이곳에도 예외 없이 이동주보들이 생겨났다. 맨발에 팬티만 입은 아이들이며 다 떨어진 샌달을 신은 바싹 마른 아낙네들이 자그마한 바구니에 바나나 몇 개정도, 콜라 서너병 기타 이름 모를 과일들을 담아 가지고는 병사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부대 철조망 가까이 다가와서 팔다가는 쫓기우고 쫓기다가는 또 접근하여 한 개라도 더 팔려고 안간힘을 쓰며 서투른 영어를 했다.
 최우식 소위가 방어를 맡고 있는 지역 바로 앞에는 약 50여호 되는 부락이 있었고 1개소의 피난민 수용소가 있었다. 최 소위는 지역이 눈에 익숙해지자 전령 1명을 대동하고는 자주 마을로 나가 월남어 소책자를 가지고 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보며 발음도 따라하고 단어를 익혔다.
 제2대대 6중대는 마을과 인접한 곳에 위치한 관계로 손쉽게 고추, 마늘, 파 등을 사서 양배추로 김치를 담구어 먹을 수가 있었다. 이제는 한국군의 식성을 알게 된 마을의 가게 주인은 고추나 마늘 등을 사다 놓느라고 멀리까지 가서 구해다 놓고는 했다. 대원들은 가끔 쌀을 구해다 밥을 지어 먹곤 했다. 몇날 며칠을 C레이션만 먹다가 쌀을 구해서 밥을 지어 먹을 때면 최소위의 형이 한국에서 보내온 창란젓에 이종길 소위의 애인이 보내준 속초산 오징어 등을 백성현 소위 등과 함께 먹곤 했다.
이렇게 가끔 먹는 쌀밥 맛이란 어느 고량진미에 비하겠는가?

 6중대가 이곳 ‘투이호아’에 주둔한 지도 어언 보름이나 지났다. 계속되는 비에 밤에는 방향조차 분간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초저녁이었다. 갑자기 총성이 요란하게 나면서 예광탄이 빗발같이 뻗어 나갔다. 최 소위는 방카위로 머리를 올려 주위를 돌아다보았다. 해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제3소대에서 전방을 향하여 사격을 하는 것이었다. 그곳에는 소대진지 바로 앞에 마을 공동묘지가 있어 항상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신경을 곤두세우던 곳이었다. 이제야 적들이 아군의 배치 현황을 파악하고 덤비기 시작하는구나 하고 생각한 최 소위는 각 분대에 유선망으로 전투준비를 하달했다. 칠흙같이 캄캄한 밤에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제1소대와 제2소대에서는 사격자세만 취하고 전방을 응시하고 있는데 제3소대 쪽에서는 계속 불꽃을 튀기며 총알이 전방으로, 계속 나라갔다. 헌데 이게 웬일이냐! 각 소대들이 진을 치고 있는 뒤쪽 중대본부에서도 총알이 나라와 전방 소대원들의 머리를 스치며 나라가는 것이 아닌가, 참으로 다급한 상황이었다. 뒤쪽에서 총알이 나라온다는 것은 필시 적에게 포위됐다는 것이며 한편 뒤쪽에 있는 중대본부는 어찌된 것이란 말인가, 최 소위는 중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어 보았다. 등 뒤에는 분명히 중대본부가 위치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갑자기 총알이 나라오니 중대본부는 무사하냐는 것이었다. 헌데 웃지못할 현상은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라 중대본부에 있는 신병들이 전방 소대에서 사격을 가하자 덩달아 무조건 전방을 향해 사격을 한 것이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 중대본부에서 사격을 한 대원들에게는 무서운 기합이 내려졌었지만 전투에 경험이 없고 나이가 어린 신병들이라 어쩔 수 없이 저지른 일이었다.
 간밤에 소란을 피웠던 3소대 쪽의 상황은 그리 길지 않게 곧 멈추었다. 일단 사격이 중단되자 중대장은 즉각 3개 소대장들에게 집합 명령을 내렸다.
 도대체가 캄캄한 밤중에 동서남북을 분간조차 할 수 없는 망망한 모래벌판에다 한치 앞이 안 보일정도로 퍼부어 대는 빗줄기를 맞으며 집합이라니 막막했지만 명령인지라 안갈 도리가 없었다. 최 소위는 궁리 끝에 전령을 대동하고 중대본부와 연결이 되어있는 전화선을 잡고 바싹 구부리고는 살금살금 중대본부를 향하여 더듬거리며 갔다.
 비에 흠뻑 젖은 3개 소대장들이 집합됐다. 그 자리에서 제3소대장 백소위의 상황보고를 듣던 중대장은 노발대발하며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상황인즉은 웃을 수도 또 대대에 보고하기도 참으로 난처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상황은 이러했다.
제3소대 대원 한명이 용변을 보고 싶어 소대에 설치되어 있는 야전변소를 찾아가려고 하니 도대체가 캄캄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조차 알 길 없어 아쉬운대로 방카에서 가까운 공동묘지 비석 옆에서 실례를 하고 난 다음 방카로 돌아오는 길에 그만 방향을 잃어 더듬거리다가 다른 방카 앞에서 서성거리는 바람에 적으로 오인 받았던 것이다. 암호를 대도 우중이라 잘 들리지 않아 방카에서는 장진된 총의 방아쇠를 당기고 만 것이다. 그러자 옆의 방카에서도 연쇄반응을 일으켜 사격이 점차 확대됐다는 것이다. 이는 전투에 처음 임해보는 무경험 병사들이 저지른 과오였다. 결국 용변을 보고 시원한 기분으로 돌아오던 병사는 혼비백산하여 공동묘지에 납작 업드려 혼이 났던 것으로 상황은 싱겁게 끝이 났던 것이다.
 매일같이 쏟아지던 비는 12월 중순이 지나서야 며칠에 한 번씩 간간히 내렸다. 비가 올 때는 비가 올 때대로의 애로가 있었고 비가 안 오면 또 안 오는대로 뜨거운 햇살을 피해야 하는 애로가 있었다.

 1965년 12월 15일. 소대장 집합명령이 내렸다. 어느 곳으로 부대 이동을 한다거나 작전이 벌어졌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는 것이 지도를 지참하고 집합하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대로 상황이 부여됐다. 이번에는 지난번 11월에 제2대대가 벌렸던 「청룡번개 1호 작전」에 이어 두 번째 대단위 부대작전으로 「제퍼슨 작전」(일명 X마스 작전)이라고 불리워진 작전으로 ‘투이호아’동북방 베트콩들의 지역을 밀고 올라가며 지역확보를 하고난 다음 월남군에게 인계하는 작전으로 월남 최강 부대라고 하는 공수부대와 합동작전을 벌리게 된 것이다.
 한국군이 공격을 하여 적들을 밀어 붙이면 월남군들은 적들의 퇴로를 차단했다가 합동으로 섬멸시키게 되어 있었다.
 다음날 오후 각 중대는 대대본부에 각자의 개인 소지품들을 보관시키고는 완전무장을 꾸리기에 모두들 바빴다.
 하루치 식량으로 C레이션이 보급됐다. 대부분 영어를 해득 못하는 병사들은 C레이션 깡통을 흔들어 보아 깡통속의 내용물을 판별해 냈다. 더운 지방인지라 갈증을 가져오게 하는 비스켓이나 비너츠 종류의 과자류는 깡통에 구멍을 뚫어 그냥 버리고 주로 국물이 들어 있는 「햄 앤드 포테이토」나 「푸릇츠 칵테일」등이 인기가 있는 C레이션 이었다.
 부대가 이동할 때 마다 그랬듯이 버려지는 깡통에는 반드시 구멍을 뚫었던 것은 적들이 이를 못 먹게 부패시키기 위함이었다. 대원들은 각자 자기 입맛에 맞는 깡통을 양말에다 줄줄이 끼어 넣고는 배낭에다 걸어매고 각자 적량의 수류탄과 총탄을 보급 받아 몸에 달고는 방탄조끼를 입고 철모를 쓰고 나니 몸이 몹시 무거웠다. 특히나 소대장들에게는 권총 이외에도 칼빈M2 소총이 더 보급되어 있었다.
 장교들은 모두 계급장을 떼고 사병들과 똑같은 복장을 했다. 이는 장교표시를 안하기 위함이다. 만약에 계급장을 달고 있으면 적의 사격목표가 되어지기 때문이다.
 출전준비가 완료된 장병들은 나열된 GMC트럭에 분승하여 ‘투이호아’시내를 지나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부실부실 내리는 비가 촉촉이 우의를 적시고 있었으나 무더운 날씨는 여전했다. 수천발의 총알과 수통2개 그리고 압박붕대 등이 주렁주렁 달린 무거운 탄띠를 졸라매고 군화끈을 바짝 조이고 나니 이는 마치 한증막에서와 같이 몸에서는 콩죽같은 땀이 온 몸을 적셨고 내리는 빗물이 밖으로부터 스며들어 마치 물에 퐁당 빠졌다 나온 듯싶었다.
 한동안 달리던 차는 멈추었다.
그곳에는 한국군과 합동작전을 할 월남군 최강부대인 공수부대가 한국군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까지가 아군지역이고 이곳으로 북방지역은 적들의 지역인 것이다. 한국군 청룡 제 2대대는 이곳에다 지휘소를 정하고 월남군과 협의를 마치고 나서는 각 중대는 공격개시선인 LD선까지 도보로 진군한 후 개인호를 파고 밤을 꼬박 새웠다.
 축축히 대지를 적시며 내리던 비는 어느 사이에 그치어 잿빛 구름사이로 한두 개 반짝이는 별을 볼 수가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중에 전투란 여러모로 거추장스러운 것이 많다. 총기류를 계속 닦아야 하며 각종 물품을 관리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애로가 있기 때문이다.
 새벽 5시 30분. 요란한 폭음을 내며 작렬하는 야포의 포격과 함께 인도지나 해상에서 미 해군함 2척이 황색연기를 뿜어 대며 함포사격으로 가세가 됐고 하늘에서는 미 공군의 팬덤기 편대의 항공폭격이 개시됐다. 포격은 30분간 간단없이 계속됐다. 155mm의 야포 포탄이 하늘을 나를 때면 마치 머리를 스치기라도 하듯 쐐 쐐 쐐 소리를 내면서 병사들의 머리 위를 나르며 대기의 공기를 갈라놓았다. 전방 시야에 전개되는 전경들이야 말로 장관이라 아니할 수가 없었다. 넓적한 야자 잎새들이 조각 조각을 내며 흩어져 날리고 창공을 휘어저 나른 포탄은 여기저기에서 섬광을 번뜩이며 수 없이 폭발했다. 다행스럽게도 비는 활짝 개어 시야가 뚜렷하게 보였다. 정확히 30분간의 포격이 멈추자 사방은 갑자기 조용해 졌고, 병사들은 각자 참호 속에서 나와 진격을 개시했다.
 검푸른 인도지나 해상에서는 마치 진격하는 병사들의 진로를 밝혀 주는 듯 붉디붉은 해가 그 위용을 자랑하며 바다를 꾀뚫고 솟아오르면서 희뿌연 새벽을 밝게 비추어 주었다.
 진격하는 병사들의 사기는 충전했다. 진격부대는 1소대가 우측방, 2소대가 좌측방, 그리고 제3소대는 예비소대로 중대본부와 함께 움직였고 중대 단위로는 제6중대가 우측방, 제5중대가 좌측방, 제7중대는 예비중대로 대대본부를 방어하며 함께 움직였다.
 최 소위는 자기 소대가 우측으로 바다를 끼고 있어 한편 다행스러우면서도 해상에 고깃배로 위장한 적들의 배가 있을까 보아 신경이 쓰였다.
 일렬횡대로 늘어선 공격 대열을 점점 부락 가까이 접근했다. 부락을 약 100여미터 남짓하게 접근했을 때다. 따다다 딱콩하는 소리와 함께 부락으로부터 총알이 날라 왔다. 공격대열은 잠시 주춤하게 됐고 대원들은 음폐 엄폐를 이용하여 그 자리에 엎드렸다. 적들의 저지사격인 것이다. 그러나 적들의 사격은 불과 50여발 난사하더니 조용했다. 공격대열은 또다시 서서히 대열을 맞춰가며 가까이 가까이 접근해 갔다.
 부락 주변에는 철조망으로 둘러쳐 있고 교통호가 파여져 있었으며 교통호 주위에는 길이가 약 20~30cm되는 대나무 끝을 뾰족하게 깎은 꼬챙이들이 수없이 꽂혀 있었고 그 꼬챙이 끝에는 물소똥을 발라 놓았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바이나 이 대나무 꼬챙이에 찔리면 물소똥 때문에 파상균이 퍼져 몹시 고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월남 민병대들이 타이야로 만든 얇은 슬리퍼를 신고 다니기 때문에 많이들 찔리고 있으나 한국군들의 군화에는 장애물이 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또 하나 베트콩들이 장애물로 이용하는 것은 사람 키보다 더 큰 선인장들을 집집마다 울타리로 치고 있어 이 선인장 가시들이 공격하는 병사들의 진격을 몹시 더디게 했다.
 철조망을 끊고 교통호를 건너 뛴 소대원들은 마을 안쪽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마을은 마치 폭풍전야의 적막 바로 그것인양 너무나도 조용하기만 했다.
 최 소위는 소대원들의 진격대열과 평행으로 하여 나란히 간격을 취하며 전진했다. 일단 부락 안으로 진입하면 소대장의 지휘는 마비가 되다시피 된다. 그저 분대와의 통신망인 PRC-6 무전기로 분대장과 연락을 취하면서 소대원들의 공격대열을 평행으로 맞추어 나가는 역할을 할 뿐이다. 왜냐하면 소대원들은 각자 퍼져 골목과 집안으로 들어가 수색을 하기 때문에 소대장 분대장이 일일이 통솔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대원들은 1개조 4명씩 편대로 짜여져서 조장 책임 하에 행동을 하게 된다.
 소대장 최 소위는 전령 2명과 선임하사 그리고 향도하사관과 소대에 배속되어온 로켓트반원, 기관총반원 또한 월남 통역관 1명 등과 함께 1개조 단위로 되어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최 소위는 마을로 진입하자마자 첫 집을 수색했다. 잔뜩 긴장된 대원들은 총알을 장진하고 안정장치를 풀고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대고 있으면서 여차하는 순간 발사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차근차근 집안을 뒤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앞서가던 전령 김 병장은 자리에 멈추어 서서는 정지 신호를 보냈다.
 최 소위가 살금살금 가까이 가 보자 대문 앞에는 소련제 기관단총 탄피가 10여개 널려 있었고 대문 양쪽 기둥을 가로 질러서 파란색깔의 가느다란 낚시줄로 인계철선이 연결되어 있었다.
 아마 대원들이 공격개시했을 때 사격을 가했던 자들이 소행임이 틀림없었다. 최 소위는 바짝 긴장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시간을 따져보아 그리 멀리는 못 도망갔을 터이고 아마도 그곳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만약 최 소위가 널려있는 탄피만 보고 흥분해서 인계철선을 건드리며 집안으로 들어갔더라면 단번에 폭약이 폭발되었으리라.
 조심스럽게 인계철선을 제거하고 집안으로 들어선 대원들은 집안을 샅샅이 뒤졌다. 천장, 장롱 속, 우물 속 등 집안의 구석구석을 뒤졌으나 이렇다 할 노획물이나 인기척이 없었다.
 최 소위 일행은 일단 첫째집의 수색을 끝내고 다음 집으로 가려는데 골목길 한가운데에 물기에 젖어 있는 곳이 보였다. 최 소위는 총 끝에 꽂혀 있는 대검으로 젖어 있는 땅을 쿡쿡 찔러보았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땅 속 으로 대검이 쑥쑥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최 소위는 군화발로 짓눌러 보았다. 땅은 힘없이 푹 꺼지며 내려앉았다. 함정인 것이다. 사람 키만큼 땅을 파 놓고는 그 안에 쇠창과 대나무 창을 꽂아 놓고는 야자잎사귀로 살짝 덮은 다음 흙으로 위장을 해 놓았던 것이다. 이러한 함정은 그 뒤에도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최 소위 일행은 다음 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헌데 이집은 마당 한구석에 쌀가마니가 수북히 쌓여져 있었다. 이게 웬 일일까? 하고 가까이 가보니 쌀이 아니라 쌀겨를 넣은 가마니를 쌓아 놓은 것이었다. 최 소위 일행은 대검으로 가마니를 푹푹 찔렀다. 그 순간이었다. 쌓여있던 가마니들이 우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그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예감이 이상했다. 최 소위와 대원들은 순간 반사적으로 땅에 납작 엎드리고는 총구를 겨누었다. 그러자 잠시 후 가마니가 밀쳐지고 가마니들로 가리워졌던 땅굴(일명 여우굴)속에서 30대 여인이 4살 정도 되는 애기를 안고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최 소위가 총을 겨누고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자 얼굴이 창백해진 여인은 부들부들 떨면서 최 소위에게로 가까이 와서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무슨 말인가를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땅에 업드렸던 최 소위는 벌떡 일어나 땅굴 입구쪽으로 다가가
“라이 라이.”(이리와)
라고 고함을 질렀으나 굴속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최 소위는 월남군 통역관 휘엉 하사에게 손을 들고 밖으로 나오라 하라고 일렀으나 굴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굴에서 나온 여인에게 물어보아도 굴 안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심쩍은 것은 여인은 굴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안절부절했고 그 많은 쌀가마니를 여인의 혼자 힘으로 쌓기에는 힘든 일인 것으로 판단됐다.
 최 소위는 선임하사 김 중사로 하여금 유탄발사기를 굴에 대고 쏘라고 했다. 그러자 1,600개의 납알은 괭음과 함께 굴속으로 번져 나갔다. 주위는 잠시 조용했다. 굴에서는 희뿌연 연기와 함께 화약냄새가 번져 나왔다. 그러자 애기를 부등켜안고 있던 아낙네는 발을 동동 구르며 야단 법섭이다. 그녀의 행동으로 보아 땅굴 속에는 사람이 들어 있음이 분명했다.
 아니나 다를까 !
전신에 수백발의 납알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면서 굴 밖으로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사나이가 있었다. 얼굴이며 팔, 가슴 등 어디 한 곳 성한 데가 없었다. 최 소위가 보기에도 너무나 비참했다.
 눈만 멀뚱멀뚱 뜨고는 멀건히 쳐다보는 그 모습이야말로 비참하다기 보다 가련했다.
남자의 그런 꼴을 본 아낙네는 가슴에 안고 있던 애기를 내동댕이치고는 그 사나이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부등켜안고는 대성통곡을 했다.
 직감적으로 그 사나이는 남편임에는 틀림없으며 또한 베트콩임에도 틀림없었다. 대원들은 남녀의 행동을 보려고 모여들었다. 그러자 최 소위는 대열이 흐트러짐을 염려하여 대원들에게 각자 자기 위치를 철저히 확보하며 사주방어를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나서는 울며 동동구는 아낙네의 턱을 총 개머리판으로 후려갈겼다. 그러자 그녀는 뒤로 벌렁 나가 동그라지며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애기는 애기데로 엄마품에서 팽개쳐 졌고 남편이 보는 앞에서 부인은 총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아 쓰러지고 부인이 보는 앞에서 남편은 유탄발사기 탄알의 납알로 깨곰보가 되었으니 이렇게도 조용했던 시골의 한 농촌가구가 날벼락을 맞아도 유만부득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냐 하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 태어나 100년도 채 못 되는 삶을 살면서 사상이요, 이념이요, 권세요, 명예요 하면서 전쟁을 일으키고 또 그 전쟁 속에서 승자는 쾌감을 맛보고 패자는 쓰라린 고통을 겪어야 하니 말이다.
 이러한 비참한 광경을 보고 있던 통역관 휘엉 하사는 그래도 동족의 피가 흐르는 탓인지 태도가 딱딱해지며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서는 부상자를 빨리 헬리콥터를 요청해서 후송시켜 달라고 하며 부락주민들에게 너무 심하게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최 소위는 이 자도 믿을 놈이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도대체가 월남전에 참전한 의의조차 알 길이 없는 것 같았다. 선임하사관 김 중사는 최 소위로부터 휘엉  하사의 얘기를 전해 듣고는 베트콩보다 더한 놈이라고 하며 휘엉 하사를 주먹으로 때리려고 했다. 하기야 정신적으로 무장된 정규 군인도 아니고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3개월간의 단기 외국어 교육을 받고 한국군에 배속되어 온 자들이니 그들에게서 어찌 군인정신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최 소위는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자에게 더 이상 가해할 필요성이 없다고 느껴지자 인생이 가엾은 생각이 들어 헬리콥터를 요청했다. 그리고 나서는 배낭에서 초콜릿을 꺼내어 애기에게 쥐어주며 울고 있는 애기를 달래주었다. 그리고는 통역관을 통하여 여인에게 미안하다고 전하라 했다.
 최 소위는 심정이 착잡했다. 지금 최 소위는 어느 전쟁사에도 없었던 특이한 양상의 전쟁을 치루고 있다. 이는 마취 생쥐잡이 라고나 할까? 보이지도 않은, 표식도 없는 전선이 없이 적을 쫓아다니며 찾아내야만 했고 한편 마을 사람들에게는 자선을 베풀어야 했다. 월남 전쟁은 총을 쏘고 시설물을 파괴하고 숨은 자를 잡아내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대민관계다. 아군이 잔인하다는 소문이 퍼지면 이것이 곧 베트콩들의 선전자료가 되어 주민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켜 협조를 전혀 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주민들의 협조 없이는 월남전을 성공리에 끝내기란 극히 어려운 것이다. 월남 전쟁이란 마치 게으른 여인의 긴 머리칼 속에 숨어사는 이를 잡는 작업과도 같은 것이기에 정글 속에 숨어있는 베트콩들을 잡아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수색도 수색이지만 중점적으로 민간인들의 사상 전환에 힘쓰고 있으나 이것이 단시일내에 이룩되기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닌 것이다.
 부대가 부락 안으로 점차 깊숙이 공격해 들어가자 그렇게도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하던 마을에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베트콩들이 야자열매 껍데기 말린 것이라든가 풀덤불로 가려 놓은 집집마다 파 놓은 땅굴을 즉시 발견하고는 그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을 모조리 색출해냈다.
 군사학 교본에서 배운 그대로 땅굴의 구조는 「ㄱ」자, 「ㄷ」자, 「ㄹ」자 모양으로 파여져 있었다. 특히 「ㄷ」자 모양이나 「ㄹ」자 모양의 땅굴을 수색할 때에는 애로가 많았다. 굴 입구에 데고 아무리 수류탄이나 유탄을 쏘아 보았자 굴곡이 되어 있어 굴 입구에서만 폭파되고 깊숙이 숨어 있는 자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가스탄을 쏘아 굴속에 숨어 있는 자들을 밖으로 끌어내는 방법을 쓸 때도 있었다.
 병사들은 이를 잡듯 곳곳을 수색하며 짖어대는 개가 있으면 쏘아 죽여 버리고 반항하는 자들은 후려치고 노인들과 아녀자들은 한데모아 마치 닭 무리를 몰 듯 앞세워 가면서 전진 또 전진했다.
 병사들은 이곳저곳 수상쩍다고 생각되는 곳에다가 총을 쏘아대며 이집 저집을 수색하는 동안 주민들로부터 별의별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어느 집에서는 손수 야자를 따다가 쪼개어 야자열매속의 시원한 물을 주는 집도 있었고 엽차를 끓여 주는 집도 있는 등 가지각색이었다. 소대는 소대장, 분대장의 간접지휘를 받으며 전진을 계속 하였다.
 어느덧 정오를 훨씬 넘어간 태양은 서녘 하늘로 줄달음 치고 있었다. 이때 제2분대 쪽에서 무전연락이 왔다. 악질 영감이 한명 있는데 어떻게 조치할까하고 물어 왔다. 최 소위는 즉시 그 곳으로 가 보았다.
 내용인 즉은 제2분대 제2조가 한집을 수색하던 중에 광속에서 대나무 꼬챙이를 깎고 있는 영감을 잡아서는 당장 그 자리에서 쏴 죽여 버릴까 하다가 70이나 넘게 보이는 영감이기에 대나무 꼬챙이만 뺏어 버리고는 놓아준 것인데 제3조가 그 집을 지날 때 보니 영감이 또 꼬챙이를 깎고 있더라는 것이다. 최 소위는 통역관을 통하여 사연을 물어본 즉 대나무 꼬챙이를 베트콩들이 마을사람들에 할당시켜 놓고는 밤에 산에서 마을로 내려와 거두어 가는데 이를 정량대로 만들어 놓지 못하면 반동분자로 몰려 혼이 난다는 것이다. 이해는 갔다. 그래서 최 소위는
 “이제는 베트콩들도 없어지게 될테니 이런 거 깎지 않아도 된다.”
고 통역관을 통하여 설명해 주라고 했다.
 날은 저물었다. 첫날 공격을 무사히 넘긴 최 소위 소대는 마을 뒤쪽에 있는 동산에 소대본부를 중심으로 원형으로 진을 치고 밤을 새웠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공격은 또 다시 개시되었다. 아침에 보충병들이 왔다. 그들은 정글화에 철모를 쓰고 총대를 걸머졌으나 민병대라 그런지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가 갈량갈량한 몸매에 작은 키, 거기다가 커다란 철모를 쓰고 있으니 마치 한국의 어느 골목의 동리아이들 병정놀이 때의 모습들 같아 보였다. 이들 민병대원들은 전투를 한다기 보다는 빈집에 들어가 옷가지며 가구들을 들치며 골라 가지는 것에 더 열을 올리며 간혹 집주인이 앙탈을 부리는 데도 약탈을 해 갖는 데에 혈안이 되어 설쳤다.
 최 소위는 공포를 쏘면서 민병대 대원들에게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고 해도 그들은 막무가내로 자기들 배낭에다 넝마쪽 같은 약탈한 옷가지들을 쑤셔 넣고는 했다. 참으로 한심한 나라다. 이런 썩어빠진 나라에 와서 고생을 한다는 것은 최 소위나 기타 병사들에게 참으로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자기네들이 더욱 설쳐야 할 판에 그네들은 싸울 의사가 없고 남의 나라 군인들이 더 열심히 싸워주니 도대체 이게 뭐람,
하여간에 계속되는 공격 수색전에 마을에 들어가서는 집집을 뒤지고 높이가 200m~300m되는 정글로 뒤덮힌 산을 넘고 또 넘어 전진하면서 숨은 자를 잡아내고 반항하는 자는 죽이고 생포를 했거나 부상당한 적들을 후송시키면서 아군 지역은 점차 확장되어 나갔다. 다행이도 아군의 피해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대대가 공격하는 동안에는 별의별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으며 병사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대단했다. 우선 며칠째 잠을 못 잤으며 선인장 가시에 찔리고 살갗이 찢기우고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병사들은 첫 대규모 전투라 그런지 열심히 싸웠다. 숲이 우거진 고지를 오를 때면 칡넝쿨들이 엉킨 정글이 앞을 가려 앞서가는 대원이 정글칼로 통로를 뚫으며 가야 했으며 길이가 긴 넝쿨마다 가시가 돋아나 있어 많은 가시가 몸에 박혔다. 부락에는 부락단위로 베트콩들의 훈련장이며 동사무소 등이 있었고 그곳에는 베트콩들의 깃발이 나붙어 있었고 미군과 한국군에 대한 비방 선전벽보가 붙어있었다.
 청룡부대 제2대대가 당초 설정했던 목표지역에 당도한 것은 작전이 개시된 이래 꼭 일주일이 되어서였다. 그런데 매우 중요한 것은 그곳에 있어야 할 월남의 최강부대라고 하는 공수부대가 보이질 않았다.
 “이런 빌어먹을 놈들.”
아니 밀어주면 기다렸다가 잡아야지, 자기네들은 다칠 새라 피해서는 먼 곳에서 구경만 하다니 이럴 수가 ! 참으로 한심한 그네들이다. 제 아무리 미국이라는 나라가 풍부한 물자를 공급하고 있고 7개 우방국에서 전투부대와 지원부대를 파견시켜 돕는다 해도 이런 지경이면 만사는 뻔한 것이다. 공연한 맥빠진 헛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룡부대 장사병들은 이번 작전을 통하여 월남의 최강부대라고 하는 공수부대가 적의 퇴로를 막지 않고 도망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분개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월남군과 또다시 합동작전을 할 수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들을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월남이란 나라는 한심한 나라요, 한국군들은 공연히 맥빠진 헛고생만 하는 것 같았다.
 아군의 희생이 없이 자전을 끝마치고 본대로 돌아온 대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지쳐 있었다. 일주일 동안이네 세수도 못하고 이빨도 못 닦았으며 턱수염은 자랄 대로 자랐고 몸에는 선인장과 넝쿨가시에 찔렸던 자리가 누렇게 화농이 져 있어 이를 짜내면 고름과 함께 살에 박혀있던 가시 끝이 빠져 나오곤 했다. 어떤 병사들은 바지와 팔을 걷어 올리고 누가 많이 가시에 찔렸나를 시합하는 자들도 있었다.
 X마스 선물 치고는 너무도 값비싼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최 소위는 2~3일 전부터 몸에 열이 몹시 오르며 심한 오한이 나더니 결국은 말라리아에 걸려 심한 고생을 했었으나 전투중이라 긴장을 했던 탓인지 괜찮은 듯 하다가 막상 상황을 끝내고 본대로 돌아와 출렁이는 인도지나해를 여유를 갖고 바라보니 있노라니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 닥쳐 몸을 지탱 못하고 모래바닥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4. 청룡작전

 1966년 1월1일 ‘투이호아’서북방 260고지에는 아군이 쏘아 올린 조명탄으로 밤하늘에 수를 놓은 듯 오색이 찬란한 불빛과 155mm의 포성이 끊이지 않은 가운데 제6중대 중대본부 방카에서는 맥주 파티가 열렸다.
 오늘이 설이라 하여 중대장 장 대위의 배려로 맥주를 상자째 쌓아놓고는 중대장 집에서 보내온 오징어를 뜯어가며 맥주를 거나하게들 마셨다. 계속되는 포성을 들어가며 술이 거나하게 된 6중대 장교들은 다음번에 있을 전투와 지난번 12월에 있었던 「제퍼슨 작전」 때의 이야기로 화제의 꽃을 피웠다. 6중대에서 맥주파티가 열리고 있는 중에 제2대대 5중대와 7중대는 다비야산 260고지에서 작전 중에 있었다. 6중대는 예비대로 대기하고 있다가 5,7중대의 공격이 있은 5일 후에 도주하는 베트콩들을 헬리콥터로 추격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섬멸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었던 것이다. 6중대 장교들은 설이라고 해서 맥주 파티는 열고 있지만 마음은 한국에서와 같은 명절기분이 날 수가 없었다. 삭막한 모래벌판 한 가운데 천막으로 가리워져 있고 모래푸대로 겹겹이 쌓여 있는 방카에서 오징어를 씹어가며 맥주를 병째로 마시는 파티가 무슨 병절 기분이 나겠는가, 게다가 밖으로부터 들려오는 포성소리 또한 요란하며 하늘에는 불꽃을 이루며 총알들이 날아다니는 전쟁터에서니 더욱 그랬다. 모두가 빨리 술에 취해서 전쟁의 공포와 앞으로 있을 작전에 대한 불안 등을 잊으려고 하는 모습들이었다.
 5중대와 7중대의 작전상황은 이따금 대대와 통화하는 중대장으로부터 간간히 들을 수가 있었다.
 제5중대는 260고지 좌측방에, 제7중대는 우측방을 공격중인데 전세가 아군에게 그리 좋지 않다고 했다. 아군의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은 달갑지 않은 소식인 것이다.
 지난번 12월에 있었던  「제퍼슨작전」시에는 마을에 산재하고 있는 베트콩들이 도주 하는 대로 추격하며 지역 확보에 작전 목적을 두었으나 이번 「청룡작전」은 베트콩들의 본거지인 산악지대의 요새를 공격하는 것이라 최초 아군의 피해를 예상 안한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산들이 험하고 베트콩들의 반격이 심하여 아군들의 피해가 점차 증가되고 있는 것이다.
 「제퍼슨작전」에서 돌아 온지 며칠이 되지도 않아, 숨도 돌이킬 겨를 없이 이번에는 「청룡 제1호 작전」명령을 하달 받은 제2대대는 밤새 화력지원 계획과 헬리콥터지원 계획 그리고 통신장비 점검 등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는 04시 제5중대와 7중대를 주력으로 하여 출동 시켰던 것이다.
 제5중대가 강인용 대위의 지휘아래 1번 국도를 따라 반탁다리 있는 곳까지 진입한 때가 07시 40분쯤 되었다. 이제 다리를 건너 우회하여 산 하록으로 돌아 붙으려 하는 찰라였다. 길옆 대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있는 숲속에서 적들의 자동화기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제5중대는 갑작스러운 적의 기습에 즉각 산개하여 전투배치 배열을 취하고는 60m 박격포탄을 대나무 숲에 퍼부은 뒤 숲에서 사격하던 적들을 퇴각시켰다.
이로 인하여 제5중대가 당초 계획했던 공격개시선 도달시간은 늦어지게 되었다. 당초에는 아침 해가 뜨기 전에 공격개시선 까지 도달하게 되어 있었으나 적의 진로저지 기습을 받고는 늦어졌기 때문에 날이 밝아져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적들에게 아군의 진로가 노출되었다. 그러나 제5중대는 좌일선 까손산을 예정대로 공격을 하였다.
 적 진지에서는 아무 반응 없이 조용했다. 이에 제 5중대 제1소대는 동측방향으로 돌며 전답과 늪지대를 지나 목표지점인 y고지를 향하여 돌격하여 y고지의 하단부에 접근하려 할 때였다. 조용하기만 하던 적들은 산 하록의 동굴로부터 자동화기를 쏘아 대기 시작했다. 적은 이 때를 노린 것이다.
 대대장 오 중령은 부상병들이 속출하자 예비대로 있던 제6중대를 투입할 것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새벽 2시. 대대장의 호출로 대대본부에 갔다 온 중대장의 얼굴은 약간 상기된 빛이 감돌고 있었다.
 “7중대에서 희생자가 많은가봐.”
장 대위는 중대본부 방카 안으로 들어오면서 한마디 했다.
왁자지껄하던 방카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으며 모두들 장 대위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상황이 좀 불리한 모양이지요?”
부중대장 정 중위가 야전침대에 걸터앉은 중대장에게 말을 건냈다.
 “응, 좀 불리해. 7중대에서 부상자가 난 모양이야. 야간이라 놈들이 기습이 악착같다   는 거야.”
하며 중대장은 상황판을 꺼내들었다.
소대장들을 가까이 오게 한 중대장은 작전명령을 하달했다.
한 4~5일쯤 후에 출동되리라고 하던 예상은 느닷없이 새벽 4시를 기하여 제7중대와 임무교대를 한다는 것이다. 소대장들은 작전명령이 하달되는 바람에 술들이 확 깼다. 잠시 소대장들은 상황판을 드려다 보며 각자의 임무와 진입로를 검토했다.
 “술좀 더 먹읍시데이. 전쟁하러 온 놈이 무슨 편한 생각 할라컵니껴, 죽으면 죽고 요행이 살면 살아 갈끼고 안 그렇습니껴?”
 이종길 소위는 지도를 드려다 보다가는 술병을 입에 갖다 대면서 누구에게도 아닌 혼자서 자문자답 하며 술을 꿀걱꿀걱 마셨다. 다른 장교들은 묵묵히 굵직한 시가담배만 연상 빨아들일 뿐이었다.
 공포도 아니고 침묵도 아닌 방카 안에서는 각자 자기의 임무와 앞으로의 할 일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는 것이다.
 최 소위는 아픈 몸으로 겨우 기대어 앉아 술도 입에 대지 않은 채 지도만 드려다 보고 있었다.
 “ 자--- 이제 각자 방카로 돌아가지, 앞으로 출동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최 소위는 이번작전에는 좀 쉬게. 지난번 작전 때 무리해서 몸이 너무 약해졌어. 그리고 최 소위 대신 화기소대장 김 소위가 임무를 대리하게.”
중대장은 각소대장에게 출동준비를 지시했다. 그러자 최 소위는
 “아닙니다. 제가 나가겠습니다. 몸은 이제 괜찮습니다.”
라고 말을 하면서 화기소대장 김 소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중대장 말에 갑자기 자기 자신이 너무 초라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으며 또한 동기생 소대장들에 뒤떨어지는 것 같았고 비겁함을 나타내는 것 같아 역정섞인 어투로 말을 했지만 중대장의 완강한 명령에 하는 수 없이 최 소위의 고집이 관철되지 않은 채 소대장들은 각자 자기네 소대본부로 돌아가 출동준비를 했다.
 최 소위는 지난번 「제퍼슨작전」때 너무 무리를 하여 몸이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지금의 최 소위로서는 도저히 이번 「청룡작전」에는 참가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결국 최 소위는 본부에 남게 됐고 중대원 전원은 새벽 4시를 기하여 트럭에 분승하고는 7중대가 고전하고 있는 지역으로 출발하여 7중대와 임무교대를 했다.
 6중대가 야포와 팬텀기의 항공지원을 받으며 260고지, 죽음의 계곡으로 진입한 시각이 아침 07시 30분.
 제1소대가 예비대, 제2소대가 좌측방, 제3소대가 우측소대로 하여 공격 중 잡석들로 이룩된 야산인 40고지를 점령 확보하였다. 그러나 앞으로 500미터 정도 되는 들판을 건너야 260고지 하록에 닿게 되어있어 아군의 공격위치는 매우 불리한 곳에 위치하게 되었다.
 삐죽삐죽한 잡석들과 가시넝쿨 그리고 관목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40고지를 넘어 들판 어귀에 닿아 1개 분대가 분산하여 들판을 뛰어 넘으려 할 때였다.
 따다다 딱콩하며 이제까지 조용하기만 했던 260고지 하록 적진에서 총탄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뛰어가던 대원들은 논두렁에 각자 음폐와 엄폐를 이용하여 납작 엎드렸다. 그러나 들판 한 가운데에게 위치하고 있는지라 완전히 노출이 되어 적의 몸표점으로는 아주 용이하게 되었고 적들은 숲속 동굴 속에서 쏘아대기 때문에 총알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참으로 진퇴양난의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됐다. 사정없이 계속 날아오는 총알은 2소대 소대본부 쪽으로도 나라들었다. 2소대장 이종길 소위는 PRC-6무전기로 분대장에게 뒤로 후퇴하라고 송신을 했으나 교신이 잘 되지 않았다.
 이 소위는 낮추고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키고는 손을 번쩍들면서 “뒤로 빼라.”고 고함을 쳤으나 논두렁에 바싹 엎드린 대원들은 날아오는 총알 떄문에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야 연막탄을 터뜨려라.”
하며 자기 어깨에 달고 있던 연막탄 한 개를 손으로 쳐들어 흔들어 보여 주면서 목이 터져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이리뛰고 저리뛰면서 소대를 지휘했다.
 그러나 대원들은 적들의 총탄에 부상을 당하기 시작했다.
부상자가 속출하자 이 소위는 이성을 잃은 듯
 “야 엄호 사격 하라 ! ”
하며 들판을 뛰었다.
몇 발자국 뛰었을까 핑----하는 소리와 함께 총탄이 이 소위의 철모를 뚫고 머리를 비껴가자 이소위의 머리에서는 시뻘건 선지피가 온 얼굴을 뒤덮었다. 벌렁 자빠졌던 이 소위는 재차 이를 악물고 일어서서 다시 뛰고 또 뛰며 산 하록까지 가 닿았다. 그리고는 양손에 수류탄을 꺼내어 동굴을 향하여 있는 힘을 다하여 던져놓고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이로서 제1진 소총소대장으로 참전했던 해병학교33기 31명 중 첫 희생자였으며 청룡부대 첫 장교 희생자였다.

 중대본부 천막에 전령 한명과 남아있는 최 소위는 작전상황이 몹시도 궁금했다. 무료하게 야전침대에 드러누워 한방울 한방울 떨어지는 닝겔병 속 떨어지는 물방울만 쳐다보고 있던 최 소위는 전령인 강 상병에게
 “강 상병 대대에 좀 갔다 와 바. 상황이 어떤가?”
잠시 후 전령은 숨을 헐떡이며 천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왜이래? 먼지피우면서.”
 “소대장님--- 2소대장님께서 전사하셨답니다. 그리고 사상자도 좀 났고요.”
 “뭐야?”
 “대대 작전병들이 그러는데 조금전전에 2소대장 이 소위님께서 전사 하셨답니다.”
전령은 믿기 어렵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는 최 소위에게 다시 한 번 안타깝게 강조했다.
 “뭐라구? 그럴 리가 있나.”
최 소위는 그럴 리가 없다고 전령이 한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령은 똑똑히 들었노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 하는 것으로 보아 귀 밖으로 넘길 말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전령이 굳이 자기 말이 옳다고 하는 것이 얄밉게 여겨졌지만 어제 중대장 말에도 7중대가 고전했다는 것과 작전지역으로 보아 전사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 든 최 소위는 갑자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최 소위는 “강 상병, 이 닝겔병 걸어 놓은 데를 잡아.”
하며 일어나 앉은 최 소위는 왼팔뚝에 꽂혀있는 닝겔바늘을 빼 버렸다. 그리고는 삐죽이 스며 나오는 핏방울을 손바닥으로 쓰러버리고 나서 군화를 신었다.
 최 소위는 신경질적인 발작이 일어난 것이다.
 “소대장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 몸으로 어딜 가시려합니까?”
하며 전령은 최 소위를 끌어안으며 도로 침대에 누이려고 했다.
 “비켜 !”
 “안됩니다.”
 “비키라니깐---안비켜! 이 새끼 비키라면 비켜!”
신경질을 부리며 전령을 밀어재친 최 소위는 몸이 비틀거리며 현기증이 났지만 이를 악물면서 몸을 가누며 대대본부 쪽으로 걸어갔다.
 몇 발자욱 내딛다가는 쉬면서 대대본부 상황실 입구까지 도착했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흥건이 베인 최 소위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참아가며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최 소위는 어느정도 숨을 고르고는 상황실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칫했다. 상황실 안에 있는 전 장병들이 모두 자기를 보고 비웃을 것만 같고 멸시와 경멸을 할 것만 같았다.
 (“네 동기생들은 전투를 하다가 죽었는데 네 놈만 아프다고 편안히 침대에 누워 있느냐?”)하고 모두 한마디씩 할 것만 같았다.
 최 소위는 자기의 몸이 아픈 것을 원망하며 작전상황실 안으로 그대로 들어서려고 했으나 차마 용기가 나질 않았다. 몸이 병들으니 마음까지도 나약해진 것이다.
 최 소위는 상황실 입구에서 서성거리다가 누군가가 볼 것 같아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입구를 비켜서서는 천막을 한 바퀴 돌아 입구 반대쪽 천막에 귀를 바싹 갖다 댔다.
 “소대장입니다. 제2대장입니다. 네 , 네 , 전사입니다.……그리고 부상자는 …….”
여단본부에 보고하는 대대장 오 중령의 눈물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최 소위는 더 이상 들을 수도 들을 필요도 없었다. 모든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옆 천막인 보급반 천막으로 갔다. 천막 안에 들어서니 보급관 윤 대위와 병사3명이 이소위의 전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니! 어쩌려고 돌아다녀? 한명 잃은 것도 억울한데 최 소위 마저 갈려고 그래?”
창백한 최 소위를 쳐다보며 윤 대위는 최 소위를 나무랬다.
 “정말 이 소위가 전사했습니까?”
 “응, 그렇데 . 머리쪽에 맞았데.”
후끈거리는 천막안의 공기는 최 소위를 더욱 숨막히게 했다.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가누며 방카로 돌아와 야전침대에 벌렁 들어누운 최 소위의 얼굴에는 비지땀이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
 최 소위는 이 소위와의 지난날들이 생각났다. 포항 상륙사단 근무 시 부대 옆 마을 오천리에 나가 술을 너무 마신 탓으로 상급자에게 주먹질을 하다가 늘씬하게 얻어맞고 이빨이 부러졌던 일 하며, 대낮부터 부산 국제시장 뒷골목 빈대떡 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취해 화장실에 빠졌던 일, 소대장실에서 늦은 밤에 라면을 끓여 먹던 일, 라디오에서 오후 1시 「김삿갓 북한 방랑기」가 방송되면
 “야 ! 과업 시작이다.”
라고하면서 연병장으로 뛰쳐나가던 일 등이 주마등같이 눈앞에 아롱거렸다.
파월 승선번호를 가슴에 달고 월남으로 떠나기 며칠 전에 숭실대학 영문과 동문인 애인 황진숙 양을 만나러 부산 영도 그녀의 집에 같이 가서 만났던 일 하며 그 후 황양으로부터의 편지나 선물이 오면 최 소위에게 보여주던 그의 웃음 띤 얼굴 모습이 떠올랐다.
 (“정말일까? 믿을 수 없는 일이야. 불과 몇 시간 전에 C레이션 깡통을 따며 나에게 국물이라도 마셔야 힘을 낼 수 있다면서 C레이션의 「콘 앤드 베이컨」국물을 따라 주   며 몸조리 잘하고 있으라고 했던 그였는데.”)
최 소위는 끝내 믿어지지가 않았다. 누워있는 최 소위의 안색은 창백해질데로 창백해져 전령이 보기에도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식사 가져 왔습니다.”
멍 하니 허공만 바라보고 있는 최 소위에게 전령은 하얀 쌀밥과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구어 된장을 풀어 끓인 찌개를 들고 왔다. 그때였다. 확 풍기는 밥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가 최 소위의 비위를 건드려 놓았다.
윽! 하며 최 소위는 누런 물을 토해냈다.
 “소대장님 ! 왜 이러십니까?”
전령 강 상병은 양 어깨를 들썩이며 몸을 비비 꼬는 최 소위를 부축했다. 창자까지 내 뱉어 버릴 듯한 구토의 고통을 느끼며 최 소위는 먹은 것도 없는 배 속에서 누런 물만 뱉어져 나왔다. 최 소위는 창백해진 안색과 점점 높아지는 체온에 견디질 못하고 몸을 비비 꼬다가는 팔과 다리가 축 늘어져 버렸으며 의식조차 잃고 말았다.

 최 소위가 후송되어져 눈을 뜨고 사방을 살펴보니 주위에 있는 침대마다 환자들이 누워있는 야전병원 병실이었다. 이소위의 전사 소식으로 쇼크를 받은 최 소위가 실신을 하자 전령 강 상병은 의무중대에 보고를 했고, 최 소위는 엠브란스에 실려 여단본부 의무실로 갔었으나 충격이 심하여 곧 회복하기가 어렵다 하여 헬리콥터편으로 동바틴 후송병원으로 후송된 것이다.
 (“여길 내가 어떻게 왔을까?”)하며 최 소위는 멍멍한 머릿속을 정리해보며 정신을 가다듬어 보았다. 이 소위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카로 돌아 온 기억까지는 생각이 났으나 그 후로는 통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최 소위는 그동안 대소 작전을 서너차례 치루었다. 직접 부하들을 지휘하며 위험했던 고비도 넘겼고 처절하게 죽어가는 월남인들의 모습도 눈앞에서 목격했고 형제같이 지내던 전우들과 죽음으로 인하여 헤어져야 했으며 또한 부하들의 부상을 치료하며 헬리콥터에 실어 후송도 시켜야 하는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최 소위는 전쟁이 가져다  주는 비애 속에서 삶에 버둥대는 뭇 인간들의 발버둥이 못내 허무하다는 것을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아름답게, 멋있게, 행복하게 살아 보겠노라고 꾸며놓은 집들이 눈 깜짝하는 사이에 포탄에 어이없이 잿더미로 날아가 버린다. 또한 사랑을 속삭이며 영원으로서의 삶을 꿈꾸며 약속했었던 남편이 베트콩들에게 끌려가거나 아니면 적색분자들은 아군에게 붙들려 온다. 잘 길러 잘 살아 보겠노라고 기르던 돼지, 닭들이 주인을 잃은 채 뿔뿔이 흩어져 본래의 임자 이외의 자들에게 먹히우고 만다.
 내일도 모르고 어제를 돌이켜 볼 겨를이 없는 생활의 연속에서 아군에게 쫓기우면서 그렇게도 조용히 간직하고 싶던 재산과 가족을 잃어야만 하는 것이 전쟁속의 월남인들의 생활이다. 이러한 생활상들을 직접 목격하며 나날을 지내는 동안 최우식 소위는 점차로 자기 자신만을 생각해 오며 살아 왔던 자기의 좁은 영역의 문을 자기도 모르게 열고서는 점차 외부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자신을 넓혀 가는 것이다. 한 가지에 집착되면 고집을 부리던 성격도 점차 풀려지는 듯 했고 어떠한 불만족 상태에 처하게 될 때나 반대로 즐거운 상태에 처할 때도 그전과는 달리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성격의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5. 추수보호작전

 해병 청룡부대가 월남 중부지방인 ‘캄란’만에 상륙하여 첫 대작전인 「제퍼슨작전」과 「청룡 제1호작전」에 이어서 「청룡 제2호작전」인 「추수보호 작전」이 전개 됐다.
 「청룡 제1호작전」은 1966년 정월 초하룻날 시작해서 16일간에 걸쳐 일진일퇴 공격 끝에 끝내는 항공기로부터 포탄과 네이팜탄을 3천여 발 투하하여 정글을 모두 태워 버린 후 부대를 재정비하여 농다농강 일대를 장악하는 성공을 거두는 전과를 올렸지만 몇 명의 유능한 젊은 장교들과 유수의 병사들을 잃었다는 것으로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었다. 이렇듯 커다란 작전이 계속되는 속에 세계의 관심거리는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 월남에 쏠리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한국군 파월 이래 각 전투의 기사가 신문의 톱뉴스로 게재되고 있었다.
 한국정부의 관심사도 물론 파월 장병들의 활약상이었으며 온 국민들의 관심사도 파월 장병들의 전투 상황이었다.
 이러한 국내외의 관심이 총 집중된 가운데 파월 이래 청룡부대는 승승장구 월남 중부지역을 아군지역으로 확대하여 나가는 작전이 계속되었다.
 당초 「청룡 제1호작전」을 마친 청룡부대 제2대대와 제3대대는 캄란지역으로 복귀하고자 하였으나 월남 정부측과 특히나 ‘투이호아’지역 주민들이 한사코 청룡부대가 ‘투이호아’에 계속 머물러 있어 달라고 탄원서까지 내는 등, 간절히 바라고 있어 청룡부대는 그대로 머물기로 했다.
 월남 중부지역인 ‘투이호아’일대의 추수는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2월에 들판의 곡식을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박달나무로 만든 종을 목에 메어단 물소들이 둔탁한 나무 종소리를 내며 볏단을 싣고 그 위에 넓적한 삼각모자(삿갓)을 쓴 아이들이 맨발에 팬티만 입고서는 긴 회초리로 소의 등을 내리치며 거두어들인 곡식들을 집으로 나르기에 바쁘다. 낮 동안 농부들이 부지런히 땀방울을 흘리며 거둬들인 곡식들을 저녁만 되면 베트콩들은 그네들의 조직을 통하여 소위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곡식들을 산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군들은 이들의 타작 작업을 보호해 주어야 했고 밤에 베트콩들에게 곡식이 흘러 나가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임무였다. 밤이 새고 다음날 아침 간밤에 어느 마을에서 곡식이 흘러나갔다고 하는 정보가 입수되면 곧 소탕전이 전개되는 것이다. 베트콩들의 게릴라 전법을 아군들이 모르는바가 아니나 베트콩들은 자신들의 퇴로에다 반드시 부비트랩을 설치하여 쫓아가는 아군들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주곤했다. ‘투이호아’지역 중에서도 곡창지대인 휴승평야는 베트콩 제5군사가 지배하고 있는 지역으로 월남정부의 행정기능이 미치지 못하는 관계로 월맹군과 베트콩이 전체마을 86개 중에서 57개 마을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고 이들은 또한 중부 해안 도시인 ‘나트랑’으로부터 ‘퀴논’에 이르는 제1번 국도의 차단과 수확되어지는 식량을 강제로 징수하여 가기 때문에 이곳 주민들은 식량난에 봉착하여 항공기로 식량을 공수해야만 하는 입장에 있었다. 그리하여 청룡부대는 월남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을 탈환시켜 주고 수확한 식량을 보호해 주기 위해서 「청룡 제1호작전」이 끝난 제3일째 되는 1월 19일 또 다시 작전을 개시한 것이다.
그리하여 제2대대 제5중대는 헬리콥터 목표 124고지를 점령했고 제6중대는 지상 행군으로 대대본부가 위치하고 있는 츄링마을에서 약 2km떨어진 260고지에 중대본부를 설치하고는 작전을 전개했다. 작전이 개시된 제2일째인 1월 20일 베트콩은 미군을 비롯한 전 연합군과 구정 정전을 협정했다. 이로써 이날 자정에서부터 23일 오후 6시 까지는 정전으로 들어갔다. 이 지시는 곧 예하부대로 신속히 전달되어 이 기간 동안에는 총 한방 쏠 수 없으며 월남인들은 총성이 멈춘 이 기간에 축제를 벌이는 것이다.
 제6중대는 지난번 청룡작전시 제2소대장 이종길 소위의 잃음의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1소대장 최우식 소위의 후송으로 화기소대장 김봉국 소위가 제1소대를 지휘했고 제3소대는 백성현 소위, 그리고 제2소대는 지난번 구정 때 어처구니없게도 당했던 제5중대 정우식 소위가 잠시 대대본부에 대기해 있다가 다시 맡아 지휘하게 됐다.
 그렇게도 활기에 넘쳐있던 중대가 소대장들을 잃게 되자 병사들의 사기는 많이 위축되어 있었다.
 「추수보호작전」은 적들과 대치하여 공방전을 벌리는 것이 아니여서 피아간 공방의 대진은 없지만 새벽이면 부락민들을 인솔하여 들판까지 호송했다가 해질무렵이면 그들을 안전하게 부락까지 다시 데려다 주는 것이다.
 부락으로 돌아올 때 간간히 어느 틈에 끼어들었는지 베트콩들이 간혹 부락민들 틈에 끼어 숨어 들어오다가는 적발이 되곤 했다. 그리고 한밤중에 260고지에서 산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마을과 베트콩들의 본거지인 산과 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것이 보이곤 했다.
 지루하리만치 전개되는 추수보호작전이 시작 된지 약1개여 월이 흘러 대부분의 곡식들이 거두어졌다. 일정한 코스를 매일 다니고 똑같은 일을 매일 반복한다는 것은 병사들에게도 매우 지루한 감을 주게 했다. 위험이 따르고 생명이 삽시간에 끊기는 피아간 공방전이라고 해도 그 당시의 고통만 이겨내면 한낱 추억담이 되고 극한의 시한점에서 살아났다는 안도와 희열이 따르며 쾌감마져 가져다주는 것이 지난날들의 전투였고 그 맛을 본 것이 이들 해병 병사들인 것이다. 쓰러져 피를 흘리는 전우를 격려하며 비겁하게 구는 전우를 멸시하며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더라도 총탄이 퍼부어 대는 그러한 전투가 즐거워진 이내들이 되어 버렸다.
 1966년 2월 15일 오전. 예나 다름없이 제3소대장 백성현 소위는 제2분대를 인솔하고 정찰을 나섰다. 다른 중대가 농민들의 추수작업을 보호하는 동안 타 중대는 그 주변을 정찰하여 베트콩들의 동태나 흔적을 찾아내고 소탕하는 것이 임무인 것이다.
한번 정찰을 나서면 총 연장 거리가 3~4십리는 족히 됐다. 정찰을 나서 제3소대 정찰부대는 260고지를 하산하여 베트콩 28연대가 있다는 ‘투이호아’ 서북쪽, 보기에도 을씨년스럽게 정글이 덮혀있는 칸다오미산 하록을 돌아오도록 되어 있었다.
 어제도 그제도 약간의 코스 변경을 해가며 산을 돌아 이상유무를 살펴보고 오곤 했다. C레이션 1식분에 단독무장을 한 이들 정찰대원들은 언제라도 적과 대치 시 응사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태세가 되어 있다. 행군 중에는 지형에 따라서 일령종대형도 취했다가 V자형 , 제비형 등의 전술대형을 갖추면서 베트콩들의 루트를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다.
 “자! 이제 그만 철수.”
백 소위의 명령에 따라 최종 목표지점까지 갔던 제3소대 정찰대는 잠시 쉰 다음 본대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병사들의 잔등이며 얼굴에 온통 땀방울을 흘리게 하던 태양도 벌써 머리위에서 서녘하늘을 향하여 서서히 빗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행군을 하던 정찰대는
 “십분 간 쉬어.”라는 소대장의 명령에 따라 가던 길을 멈추었다.
병사들은 흘러내리는 땀을 닦고 그늘을 찾아 쉬며 경계병들은 사주방어에 임하며 바이솔, 팔말 등 양담배를 피워 물며 쉬었다.
 어느정도 휴식을 취한 정찰대는 역시 소대장의 “출발” 신호에 따라 대열을 정열 해야 했다. 병사들은 각자 흩어졌던 자세를 곧추세우고 철모 끈을 조이며 제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이때였다. 제2분대 선임조장 고흥식 병장은 자기가 쉬었던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자국 발을 옮기자 「꽝」 하는 괭음과 함께 폭연이 솟아올랐다. 병사들은 순간 폭연이 솟아오른 쪽으로 달려갔다. 그 순간이었다. 또 한곳에서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폭연은 가시고 시야가 분별되면서 대원들은 비로서 부비트랩을 건드렸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야자나무 밑등 옆에 벌렁 누워 있는 고 병장은 눈만 멀똥멀똥 뜨고는 멍청하게 누워 있었다. 그에게 달려 있어야 할 두 다리 중 한쪽 다리의 군화가 보이질 안않았다.
 “해병대 세무군화는 털을 잘 살려야 멋있는 거야.”
하며 그렇게도 아끼던 그 군화 한쪽이 마치 넉마조각처럼 갈기갈기 찢기워져 있는 작업복 쪼가리에 피범벅이 된 채 머리쪽에 보기도 흉하게 덩그러니 떨어져 있었다.
 처음 폭연에 “뭐냐”하며 달려오던 백성현 소위는 몇 발자국 띠어 놓기도 전에 폭연과 함께 힘없이 쓰러졌다. 소대장도 부비트랩을 밟은 것이다. 대원들은 한편 고 병장 쪽으로 달려갔고 또 한편은 소대장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몰렸다. 백성현 소위는 오른쪽 군화 뒤축이 떨어져 나가고는 뻥 뚤어진 군화뒤축 안쪽에는 피가 뒤섞인 노란 살기름이 베어져 나왔다. 뒷꿈치가 떨어져 나간 것이다.
 “모두들 모이지 말고 산개하라!”
백성현 소위는 “소대장님!”하며 울부짖는 전령에게
 “임마 사내새끼가 울긴! 압박붕대로 묶어. 그리고 분대장! 분대원들을 각자 위치에 산개시키도록, 그리고 고 병장은 어떤가?”
 상처난 곳을 응급치료하면서 백 소위는 병사들을 지취하며 고병장의 부상을 염려하였다.
 응급조치를 대충 끝낸 부상자들은 무전병의 연락으로 날아온 헬리콥터에 실려 후송됐다. 그리고 찰과상 등 가벼운 파편 상을 당한 병사들은 다른 대원들과 함께 분대장의 인솔로 부대로 귀대했다.
 제3소대 정찰대원들이 당한 곳은 날마다 다니던 지역으로 손바닥처럼 훤한 지역인 곳이다. 어제도 괜찮았던 그 곳에서 변을 당하다니 그야말로 월남전선의 전투란 밀고 밀리는 전쟁도 아닌 총성 없는 조용함 속에서 전투는 계속되면서 부비트랩 등에 아군의 피해는 늘어만 갔다. 피아간에 공방전이 치열한 것도 아닌,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피해는 속속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제2대대 6중대는 한국을 떠나올 때 함께 왔던 동기생들인 3개 소대장 모두를 잃었다. 제1소대장 최 소위는 후송병원에 가있고, 제2소대장 이 소위는 전사했고 제3소대장 백 소위는 오른발 뒷꿈치가 없어진 채 귀국, 후송되고 말았다.
 중대장 장승규 대위는 백 소위 마저 부상을 당하자 양주인 「죠니워카」  술병을 비워가며 통곡을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내가 운이 없지, 내가 운이 없지.” 마치 실신한 사람처럼 야전용 책상을 주먹으로 쾅 쾅 치며 원통해 했다.
 그동안 후송병원에 있던 최소위의 병세는 많이 회복되었다. 병원 뜨락에 세워놓은 수평틀에 매달려도 보고 아령 등으로 체력단련을 했다. 간신히 전선으로부터 후송되어 오는 장별들로부터 부대사정을 물어보곤 했다. 너무나도 부대사정이 궁금했던 것이다. 전선으로부터 환자들을 싣고 오는 헬리콥터 소리가 나면 병실에 있던 한국군 병사들은 우르르 몰려 나와 실려오는 환자들이 혹 자기 소속부대 대원인가 하고 살펴보다가는 아는 대원이 있으면 응급처치실 밖에서 치료가 끝나길 기다렸다가 병실로 옮겨질 때 같이 쫓아가서는 위로와 격려를 해주며 그동안의 부대소식을 묻곤 했다.
 전선으로부터 후송되어 오는 병사들 중에는 말라리아에 걸려 오는 병사들도 있었고 부비트랩에 걸려들어 팔, 다리 ,눈을 잃고 후송되어 오기도 했고 오발사고로 다친 병사 또한 차량사고 등 갖가지 형태로 후송되어졌다. 그런데 묘한 심리가 후송병원 병사들 사이에 오고 갔다. 즉 속병으로 후송되어 온 병사들은 정형외과나 일반외과 병동에 후송되어 있는 총알이나 부비트랩 등 작전 중에 부상당한 병사들에게 오금을 피지 못했다. 일반외과나 정형외과에는 주로 작전 중에 부상당한 병사들이 치료받고 있는 곳으로 이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최 소위는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젠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한 「추수보호작전」 기간 동안 백 소위가 부상당하여 귀국 후송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이제 더 이상 이렇게 병원 침대에서 뒹굴 이유가 없다. 나가야 한다. 나가서 싸워야 한다. 동기생들, 전우들이 쓰러질 때 나는 무엇을 했나? 이 좋은 침대에서 시원한 에어컨 속에서 양식을 먹어가며 편히 있지 않은가? 몸은 그동안 많이 쇠약해졌지만 요즘 같으면 충분히 전투에 임할 수 있다.”) 이런 생각에 잠겼던 최 소위는 퇴원할 것을 결심했다.
 최 소위는 회진이 끝난 후 과장실에 찾아가 퇴원 수속을 해 달라고 졸라댔으나 군의관은 책임상 안 된다고 하면서 치료가 완전히 끝나야지 이대로 퇴원하게 되면 얼마 안 있어 또 후송되어 온다고 했다.
 최 소위는 퇴원할 수 없다는 과장의 말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과장실을 나와 자기 침실로 돌아와서는 환자복을 벗어 버리고 오랫동안 침대 밑에 놓아두었던 의낭에서 군복이며 군화를 꺼내 침대위에 널어놓고 주섬주섬 입기 시작했다.
 “부대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동기생들과 전우들이 죽고 부상당하고 있는 동안 나는 이곳에서 다소 불편한 몸이긴 했었지만 그들에 비하면 편하게 지냈소, 동기생들 보기에도 미안하고 부하들이 보고 싶어 안 되겠소, 이젠 몸도 많이 회복됐다고 생각하오 ,과장이 퇴원 명령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못 나갈 내가 아니오. 수속은 다음에 해 주시오. 부탁이오, 그리고 그동안 보살펴 주어 감사하오.”
 최 소위는 일방적으로 얘기를 끝마치고는 작업복에 군화끈을 조여매니 새로운 힘이 솟아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최 소위는 군화를 다 신은 후 그동안이나마 친숙하게 지냈던 병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는 의낭을 걸머지고 헬리콥터장으로 갔다. 뜨거운 태양은 헬리콥터장 시멘트 바닥을 뜨겁게 달구어 군화를 신은 발에도 뜨거운 기운이 전해 와서 인지 최 소위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하나 둘 맺히기 시작했다.


6. 전선복귀

 그동안 나날을 보내면서 제6중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중대장 장승규 대위는 대대 군수장교로 전보 발령이 났고 이찬규 대위가 새로이 중대장으로 부임해 왔으며 제3소대장으로는 화기소대장 김봉국 소위가 겸직했고 제2소대장으로는 임시로 배속 와 있었던 정우식 소위가 그대로 발령을 받아 인솔했으며 제1소대는 소대선임하사가 이끌어 가고 있었다.
 청룡부대 본부로 향하는 헬리콥터는 프로펠러 바람을 일으키며 최 소위를 태우고 나트랑 해변을 따라 북으로 북으로 ‘투이호아’를 향하여 날아갔다.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모래알을 머금다가 내어 뿜는 푸르른 인도지나해의 파도는 휙휙 지나치는 야자수 늘어진 해변의 아름다운 전경들과 한데 어우러져 관광지 풍경을 자아냈다.
 최 소위는 자기가 후송병원 생활을 한지 두달 열흘 동안 제1소대 대원들은 소대장 없는 서러움을 많이도 받았겠으며 소대장 없는 중대장의 어려움도 매우 컸으리라 생각하며 한시가 급하게 빨리 도착되기를 바랐다.
 헬리콥터가 ‘투이호아’ 상공에 접어들면서 청룡부대 본부의 천막들이 성냥곽만하게 내려다보이자 최 소위의 가슴은 뻐근해지며 약간씩 두근거리기 까지 했다. 한동안 멀리했던 부대로 돌아오고 있다. 이제 잠시 후면 군의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병원을 뛰쳐나와 그렇게도 오고 싶어 했던 6중대에 도착될 것이다.
 소대원들은 어떻게 변모됐으며 자기를 어떻게 맞아줄 것인가, 새로운 중대장은 나를 어떻게 대해줄 것이며 또 동료 장교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해줄 것인가 등등의 착잡한 심정으로 헬리콥터에서 내려 선 최 소위는 한발 한발 본부쪽으로 다가갔다. 청룡여단본부는 여전히 예나 다름없이 최일선 전방부대와는 달리 그렇게 분주한 감을 주지 않았다. 보급품 수령 차 온 각 예하부대 대원들이 트럭에다 보급품을 싣고 있었고, 여단본부 참모들은 아스테일지에 낀 지도와 상황판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 이외에는 긴장감이 감도는 전쟁분위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최 소위는 제6중대에서 온 보급수령 차에 몸을 싣고 6중대를 향하여 떠났다. 차가 지나치는 길 가에는 눈에 선하게 낯익은 마을들이 평화를 되찾은 듯 어린아이들은 자기네 집 마당과 골목길에서 뛰어 놀고 있고 대로변 간이 시장에서는 아낙네들이 물건을 사고팔며 모두들 생기가 넘치는 듯 보였다.
 제2대대 수송반원인 운전병은 옆 좌석에 탄 최 소위에게 몸이 많이 야위었다고 하며 안색도 핼쓱하다면서 그동안의 부대사정에 대하여 띄엄띄엄 예기를 해 주었다.
 6중대 1소대가 소대장이 없었던 관계로 고생을 많이 했다고 했으며, 제3소대장 백 소위가 후송되었을 때 운이 없는 6중대라고 소문이 났다는 등의 얘기와 지금 6중대는 대대의 예비중대로 260고지에서 철수했다고 하는 등의 얘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어느새 차는 6중대 본부 가까이 왔다. 멀리 철조망이 둘러쳐진 부대가 보이자 최소위의 가슴은 또 다시 울렁거리며 가벼운 흥분마저 일으켰다.
 차가 부대입구에 닿자 보초병이 최 소위를 아는 듯 반색을 하며 경례를 했다. 최 소위는 한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경례를 받고는 답례를 하던 손을 내리며 부대원들이 쌀쌀하게만 대해줄 것 같았던 자신의 우려가, 반색을 하며 맞아주는 보초병의 모습을 보고는 안도의 빛이 얼굴에 감돌았다.
 차가 중대본부 보급창고 앞에 정차하자 중대본주 보급반 요원들은 우르르 몰려들다가 운전석 옆 좌석에서 내리는 최 소위를 보고는 모두들 아는체를 하며 경례를 붙였다. 그중 보급반장 강 중사는
 “몸은 완쾌되셨습니까?”
하며 최 소위를 반겼다.
 “응, 이젠 괜찮아 고생들 많았겠소?”
최 소위는 강 중사와 얘기를 나누며 자기 주위에 모여든 대원들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중대장 천막으로 갔다.
 천막 안에 들어서자 천막 안에는 중대장을 비롯하여 부중대장, 중대 선임하사관, 그리고 포병 연락장교 등이 모여앉아 담소를 하고 있다가 최 소위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동안 고생들이 많았습니다. 병원에서 중대소식은 들어 대충 알고 있습니다.”
최 소위가 경례를 하고 말을 하자 중대장은
 “자네 얼굴이 아직 창백한게 몸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닌 모양이야. 그렇지 않아도 여단본부 의무중대에서 연락이 왔던데 병원을 뛰쳐나왔다고?”
 “네, 더 이상 못 배겨 있을 것 같아서 나와 버렸습니다. 대원들은 고생하고 있는데 저만 편히 있는 것 같아서 송구스럽기도 하구요 해서….”
 “최 소위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자네가 또 쓰러져 봐. 대원들은 또 어찌되겠는가, 완전히 회복되거든 나올 것을 그랬나봐. 고생이야 너 나 할 것 없이 다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에 일단 나왔으니 전에 같이 또 무리하지 말고 서서히 건강을 회복하도록 하게.”
 “예, 잘 알겠습니다.”
중대 장교들과 최 소위는 서로들 안부를 물으며 인사를 나눈 뒤 중대 선임하사관이 잘라 놓은 파인애플을 먹어가며 그동안의 지난 얘기들을 나누었다.
 최 소위가 부대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제1소대 선임하사관은 중대장 천막으로 단숨에 달려왔다.
얼싸안은 최 소위와 소대 선임하사관 김 중사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소대장님.”
 “선임하사, 고생이 많았소.”
목이 메인 채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잠시 후 최 소위는 선임하사관을 따라 제1소대가 진을 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소대원들은 각자 자기 참호 속에서 뛰쳐나와 최 소위를 반기는 자도 있었고 참호 밖으로 머리만 삐죽 내민 채 웃음으로만 반기는 자들도 있었다.
 최 소위는 자기를 반겨 맞아주는 대원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며 그들과 대화 없는 환희를 주고받았으나 머리만 쭉 내밀었던 자들에게서는 어떻게 보아 그들이 자기를 적대시하며 원망의 눈초리로 바라본다는 자격지심 같은 것을 느끼자 최 소위는 가슴이 뭉클해지며 부끄러움이 앞서는 듯 했다. 마치 자신은 전투하기가 싫어 꾀병이라도 부려 후성병원에서 지냈다고 대원들이 생각하고 있지나 않은가 싶어서였다.
 최 소위는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소대진지를 한 바퀴 휘 돌아 보며 (“오냐 너희들이 아무렇게나 생각해도 좋다. 하기야 내가 없는 동안 많은 전투를 치루며 소대원들도 부상을 많이 입었다고 들었다. 그러니 나에 대한 원망이 더 했으리라. 앞으로 두고 봐라. 그동안 너희들에게 베풀지 못했던 것을 내 힘자라는 대로 꼭 해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최 소위는 소대방어 구역을 돌아보고는 소대본부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걸음을 많이 옮겼던 탓인지 식은땀이 콧등 위로 삐져나왔다.
 최 소위는 전령들이 마련해준 의자에 앉아 야자수 잎새 사이로 몸을 감추며 서서히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마치 객지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온 기분으로 선임하사관과 각 분대장들을 모이게 하고는 지난날들의 이야기와 앞으로의 할 일들에 관해서 얘기를 주고받았다.
 날이 어두워지며 밤을 재촉하는 상하의 월남의 밤은 언제나 다름없이 모기와 진딧물에 괴로움을 당해야 했다. 오래간만에 한자리를 한 소대장과 분대장들의 대화는 밤바람의 서늘함으로 더위를 식히며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 갔다.
 1966년 4월 15일. 여단본부 방어 임무를 맡고 있떤 제1소대에 작전 명령이 하달 됐다. 다비야산 하록에 베트콩들이 본거지가 있으니 최전방 단독 독립소대로서 10일간 본부로부터 떨어져 그 지역에 주둔하면서 베트콩들의 동태를 파악하여 보고하라는 것이다.
 최 소위는 한동안 멀리했던 지도현황판을 펴 보았다.
다비야산 앞에는 쇼강이 흐르고 강 건너 산은 그리 높지는 않으나 정글이 덮혀있어 임무 수행에 많은 지장을 가져올 것 같았다.
 최 소위는 지도현황판을 펴 들고 행군로와 부대가 배치될 위치를 선정하는 등 도상 작전을 세운 후 소대 출동명령을 내렸다.
 전 소대원 45명과 대대에서 배속 온 81mm박격포 2문과 화기소대 LMG기관총 1개조 등 도합 78명의 총 병력을 인솔하고 목적지를 향하여 출발했다.
 최 소위는 후송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대원들과 떨어져 생황을 하다가 이제 증강된 부대를 지휘하며 전진을 함에 있어 소단위 부대의 지휘자로서 흐뭇한 감정을 느꼈다.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핼쓱했던 얼굴도 이젠 며칠 사이에 검게 탄 듯도 싶어 그 모습은 건강해 보였다. 부대는 행렬을 지어 목표지점을 향하여 계속 전진했다. 부대가 통과하는 폐허가 된 마을의 정막은 희뿌연 아침 안개와 더불어 소대원들에게 초조함마저 가져다주었다.
 소대가 중대본부를 떠난지 불과 2km밖에 안 되는데 대원들의 온 몸은 벌써부터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앞으로 목표지점 까지 8km는 더 가야 했으나 행군 속도는 더디었다.
 지뢰 탐지기로 일일이 베트콩들이 매설해 놓은 부비트랩이나 지뢰 등을 탐지하면서 전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부대는 이제 본부로부터 6km 지점인 토람이라는 마을을 통과하게 됐다. 지도상으로는 제법 커다란 부락으로 표시가 되어 있으나 마을은 폐허가 된지 꽤나 오래 된 듯  싶었다. 폭격에 부러진 야자수들, 깨어진 기왓장, 뻥 뚫어진 벽과 곳곳에 탄흔자국, 흩어져 잇는 가구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대원들에게 전쟁 중이라는 실감을 더욱 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최 소위는 이 광경이 초등학교시절 보았던 한국전쟁 때의 그 잿더미 폐허와 조금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폐허가 된지 오래된 마을임에도 간간이 쾡하게 눈이 움푹 패인 윤기 없는 삶의 가치조차 무시되어버린 듯한 노파가 잡초만이 무성한 뜨락에서 지나가는 한국군 부대의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참으로 가련한 이네들의 생애다. 다 기른 자식들은 베트콩에게 끌려갔거나 죽음을 당해야 했고 애써 거두어 들은 곡식은 역시 베트콩에게 공출로 바쳐야만 했다.
 최 소위는 우리 민족도 일찍이 이와 똑같은 시련을 겪었을 때에 외국의 군인들에 비취운 우리들의 참상은 어떻게 보였을까?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과 어떻게 달랐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기며 최 소위는 마을을 지나치는 동안 여러 생각에 잠겼다.
 지금의 이 처참한 폐허 이전에는 아름다운 정원 그늘에서 귀여운 자식들을 어루만지며 고요한 삶의 꿈을 꾸었으리라, 이제는 전쟁과 함께 다 사라져 버린 채 폭음과 화약 냄새만이 노파의 코와 귓가에 맴돌며 이국 병사들의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이다.
 소대는 49고지를 오르면서 정글을 헤치며 통로를 만드는데 힘이 좀 들었으나 무사히 고지 정상까지 완전히 올라갔다. 최 소위는 대원들에게 교통호와 개인호구축 작업을 지시하여 놓고 고지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49고지는 그리 높지는 않으나 고지 정상의 면적이 넓었고 가시넝쿨과 바위로 덮혀있어 아군 진지로는 안성맞춤 이었으나 주위에 대소 산들이 산재하여 있어 소대 위치가 노출될 우려가 있는 것이 최 소위에게는 그리 마음 내키지 않는 지역이었다.
 소대가 위치한 산 앞에는 폭이 약 1.5km 되는 쇼강이 중부 내륙지방에서부터 인도지나해로 서서히 굽이쳐 흐르고 있었고 강 가운데에 3개의 바위로 된 섬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었다.
 소대는 본부와 완전히 동떨어져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모든 보급품은 헬리콥터로 보급되어 왔고 완전히 독립부대가 됨에 따라 최 소위로서는 더욱 그 책임이 무거워졌다.
 우선 첫날밤을 잘 치러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최 소위는 저녁 늦게까지 참호 작업을 하는 대원들을 격려하며 시간을 보냈다.
 달조차 뜨지 않는 적막만이 감싸여 있는 정글 산속은 밤이 되자 썰렁한 감마저 느끼게 했으며 별빛만이 멀리 밤하늘을 수놓으며 독립부대의 야영의 밤을 지켜보는 듯 했다.
 또한 사방에서 울부짓는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는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생각에 더욱더 젖어들게 했다.
 고요한 첫 밤을 지낸 소대는 다음날부터 헬리콥터로 수송되어오는 보급품을 수령하는 외에 본격적인 정찰과 수색작전을 벌였다.
 소대가 주둔한지 3일 째부터는 상황이 점차 달라졌다. 그것은 제1분대의 정찰보고에 의하면 진지 좌측방 1.5km 지점에 있는 10고지 부근에 적들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고, 소대가 설치한 관망대 관측보고에 의하면 저녁이 되면 베트콩 3~4명이 강을 건너 아군 측 가까이에 있는 섬까지 들어왔다가는 새벽이면 다시 산 속으로 돌아간다는 보고가 속속 들어오자 최 소위는 상황판단을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정리하여 나갔다.
 저녁식사를 마친 최 소위는 선임하사 이하 각 분대장들을 집합시켰다.
 “이제 적들이 우리 부대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접근하려고 하는데 각 분대장들은 각자 자기 분대원들에게 낮에는 가급적 낮잠을 푹 재우고 야간 근무에 각별히 신경을 쓰도록 하라.”고 지시를 내린 최 소위는 앞으로 소대 단독작전을 펼 것을 대충 이야기해 주고는 그날 밤 자신의 참호 속에서 밤새 동굴섬 기습 작전계획을 세웠다.
 첫째: 베트콩들이 강에 있는 섬에 들어가 중간 거점을 확보해 놓고 활동한다는 것.
 둘째: 섬과 그들이 본거지가 아군쪽보다 멀다는 것.
 셋째: 그들은 퇴로 시 배를 이용한다는 것.
 넷째: 적들의 병력이 적다는 것 등으로 일단 상황파악을 한 후 기습작전이 제일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최 소위는 막상 단독 작전, 그것도 상부에서 하달된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 해 볼 것을 결심하고 나니 책임감이 더욱 더 커지는 듯 했다.
 다음 날 아침 최 소위는 무전기로 중대장에게 소대 단독작전을 펼 것을 건의했다,
보고를 마친 최 소위는 전 대원을 집합시켜 놓고 이번 작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하여 준 후 각자 전투준비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하자 대원들은 그동안 뜨거운 햇볓아래서 지루하고 답답한 수색 정찰보다는 한바탕 하는 것이 좋다고들 하였다.
 최 소위는 이번 작전을 전개함으로써 그동안 소외되었던 대원들과 함께 작전을 한다는 데서 큰 의의를 찾을 것 같았고, 또 먼저 죽고 부상당한 동기생 소대장이였던
이 소위, 백 소위를 대신하여 적에게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오후 늦게야 중대장은 대대를 통하여 여단까지 보고를 하여 재가를 얻어 작전을 실행할 것을 허락해 주었다.

 1966년 4월 18일. 인도지나해를 온통 붉게 물들이며 막 떠오르려는 동녘의 태양은 어두움을 서서히 거두고 있었다.
 단독무장으로 전투태세를 갖춘 대원들이 각자 출발준비가 거의 완료되었을 때었다. 건쉽헬리콥터(무장헬리콥터) 두 대가 본부로부터 날아 와서는 소대진지 헬리콥터장에 착륙하여 최 소위를 태우고 창공을 나르며 섬의 주의를 한 바퀴 돌면서 미처 본거지로 못 도망간 적들의 배에다가 사격을 가하여 벌집 같은 구멍을 뚫어 물이 스며들게 했다. 헬리콥터에는 대대장 오 중령과 대대 작전장교가 동승하였다.
 최 소위는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대대장께서 직접 전방 진지까지 나와 격려를 해 주는 바람에 한편 송구스러우면서도 반드시 이번 작전은 기필코 이겨야 한다는 신념이 더욱 굳어지는 것이다.
 한 동안 떠다니며 위협사격을 가한 헬리콥터는 최 소위를 내려놓고 소대 진지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다.
 최 소위가 헬리콥터에서 내리자 소대는 완전 출동태세를 갖추고 있었고 선임하사관으로부터 출동준비 완료 보고가 있었다. 최 소위는 1개 분대를 소대본부에 남겨 놓고 증강된 2개 분대를 인솔하고 출동했다.
 소대는 지원사격 없이 또한 지원부대도 없이 로켓트 2문과 60mm박격포 2문 둥의 장비를 갖추고 출발했다.
 대대장이 탑승한 헬리콥터가 행군하는 대원들의 상공을 계속 배회하면서 소대가 진지를 완전히 떠날 때까지 계속 관망해 주었다. 그럼으로써 대원들의 사기는 더욱 더 기세 등등 한 것 같았다. 소대의 작전계획대로 대원들은 LD선(공격개시선)에 배치가 되고 로켓트포와 60mm박격포탄이 섬을 향하여 폭격을 가했다. 요란한 폭음은 아침의 정막을 깨뜨렸고 섬에 삐죽삐죽 나와 있는 바위돌들은 섬광을 번쩍이며 쪼개져 나갔다.
 “공격개시 !” 
최 소위의 신호에 따라 대원들은 강물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 들었다.
깊은 곳은 허리까지 채이는 곳이 있어 최 소위 소대에게는 아주 불리한 위치인 것이며 배수진을 치고 있는 지라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천만 다행으로 적으로부터는 아무런 반격이 없었다. 아마 갑작스러운 기습공격에 그들은 반격할 틈이 없었던 게다.
 제1분대는 우회전을 하여 바위돌들이 많은 곳으로 접근하여 동굴의 입구까지 접근했고, 2분대는 좌측방으로 돌아 사람 키만큼이나 큰 선인장들이 빽빽이 서 있는 들판을 지나 섬 반대편으로 돌아 흩어져 적의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다.
 지금 이 순간 적으로부터 반격이 있다면 많은 손실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도 총 한방 없은 무반응 상태였다. 전투 시에는 이러한 순간이 제일 위험한 순간인 것이다. 적과 너무 바싹 가까이 있는 위치라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리하여 대원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서서히 섬 중앙 쪽으로 좁혀 들어 가며 제1분대는 연막탄을 터뜨리고는 동굴 입구에 바짝 다가섰다.
 동굴 수색은 계속 됐다. 바위와 바위가 얽혀진 굴 입구가 좁은 천연동굴이 여러 갈래로 뚫려져 있는 속을 병장 조행규는 연막탄을 터뜨리고는 굴속으로 들어가 한참 후에 30세 전후되는 젊은 베트콩 한명을 앞세우고 나왔다.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을 무난히 잡았다고 한다. 사시나무 떨 듯 발발 떠는 베트콩 포로에게 대원들은 달려들어 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기려 했다. 최 소위가 재빨리 제지 하지 않았더라면 그 자는 벌써 온 몸에 벌집 같은 총 구멍이 뚫리어 죽어 갔을 것이다.
 대원들은 이제 사람을 죽이는 것에 일종의 쾌감 같은 것을 맛보려는 인간들로 변모해 버린 이다.
 최 소위 앞에 끌려 온 베트콩은 부들부들 온 몸을 떨면서 두 손을 모으고는 싹싹 빌면서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아마 살려달라는 애원일 것이다. 지금 그 자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최 소위는 그 자가 가련하다기보다는 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식, 비굴하기는. 목숨이 그리도 아까웠으면 베트콩이 되지나 말지.”
최 소위는 그 자의 비겁한 행동에 비위가 틀리자 들고 있던 칼빈총 개머리판으로 아래턱을 후려 쳤다.
베트콩은 나가동그라지며 입술에서 피가 터져 턱으로 흘러 내렸다.
 “부키 어다우?”(무기 어디에 있냐?)
 “콩 비억.”(모릅니다.)
이라고 몇 번이고 되풀이 하며 두 무릎을 꿇고는 두 손을 모으고 빌었다. 선임하사관도 죽여 버리자고 했고 대원들도 죽여 버렸으면 하는 눈치들이었다. 어떤 대원은 대검으로 목을 찌르려고도 했다.
 최 소위는 속으로(“이렇게도 잔인한 자들로 변모됐을까? 이젠 사람을 죽이는 것이 취미로 되어 버렸나?”)라고 생각하며 소대에 부여된 임무로 보아서도 적정을 파악하기 위해서 포로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약하고 어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자가 반항을 했었더라면 최소위도 방아쇠를 당겼을 런지도 모른다. 허나 이제 그 자는 생명은 붙어 있으나 한낱 가련한 보잘 것 없는 생물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지기도 했지만 최 소위로서는 국제협정에 의한 포로취급을 해야하는 「제네바협정」 정신과 또한 이번 작전이 소규모이지만 이 포로 한명으로 인하여 더 많은 적정을 알아내는데 보다 더한 효과를 얻고자 하는 지휘관으로서의 판단을 내려 죽이지는 않기로 했다.
 소대원들이 수색하고 있는 동굴 속에는 널따란 광장도 있고 적들이 사용했던 취사도구와 유류 곡식 및 부비트랩 도구들이 있었다.
 상황은 일단 끝을 맺었다. 승리로 끝난 것이다. 아군의 피해는 전혀 없이 끝난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보고가 중대본부에 보고되자 중대에서 대대로, 대대에서 여단본부의 이봉출 장군에게까지 보고가 되었으며 각 부대에서는 최 소위 소대의 전과에 대하여 칭송이 자자했다.
 최 소위의 철수 명령에 의하여 각 분대는 점호를 마치고 철수를 막 하려고 할 때였다. 본부로부터 헬리콥터 한 대가 날아왔다.
 중대장 이 대위와 여단본부의 정보참모, 정훈참모 그리고 마침 한국에서 나와 있는 공보부 소속의 대한뉴스 취재반원들이 헬리콥터에서 내리며 무비카메라를 들이대며 촬영을 해 댔고 중대장 이 대위는 최 소위에게로 달려 와서 악수를 청하며 최 소위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등, 한동안 모두가 흥분해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는 관계로 최 소위는 노획물과 포로를 헬리콥터 편으로 여단본부로 보낸 뒤 진지로 돌아왔다. 동이 틀 무렵 출발했던 소대가 작전을 마치고 진지에 돌아와 장구정비와 병기손질을 하고 나니 어느 덧 날은 캄캄하게 어두워졌다.
 오늘은 모두가 참으로 분주했고 감격스러웠고 기쁘고 승리자로서의 희열을 맛본 그런 날이었다.
 중대본부로부터 승리를 축하하는 특별 C레이션과 맥주 두 상자가 보내어 졌다.
 최 소위는 더부룩한 턱 수염 사이로 흘러내리는 맥주 거품을 손바닥으로 쓸어 닦아내며 캄캄한 한밤에 소리 없이 조용히 흐르고 있는 쇼강을 굽어보면서 명상에 잠겨 있을 때 통신병이 중대본부로부터 연락이라면서 PRC-10 무전기 수화기를 건네주었다.
 “네, 전방소대장입니다.”
 “나 중대장인데 오늘 최 소위의 전투는 참으로 훌륭했다. 중대장으로서 이런 소대를 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네. 참으로 수고 많았네. 그리고 피곤하겠지만 오늘 밤 같은 날에는 특별히 경계를 철저히 해야 되니깐 각별히 주의하게.”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수화가 끝나자 이번에는 대대본부로부터 무전이 왔다.
 “아, 나 대대장인데, 오늘 최 소위의 능동적인 전투에 대해서는 여단장님께서도 칭찬이 자자하시고 나 자신도 여간 기쁜 것이 아닐세, 여단장님 명령으로 훈장 상신을 올리기로 했네. 오늘 참 잘했어. 그럼 계속 수고해 주기 바라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 위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하늘에는 별조차 보이지 않고 먹장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있었다. 달려드는 모기떼들을 쫓으며 바위 위에 올라앉은 최 소위는 오늘의 승리를 되새겨 보았다.
 오늘 한명을 생포하였다. 그리고 많은 노획물을 획득했다. 역사 이래의 온갖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의 쾌감이란 이렇게 전쟁이라는 비애에 감싸여진 채 오늘 나에게 맛을 보게 한 것과 같은 것 일거다. 참으로 전쟁이란 이렇게 부조리한 것일까?
 한줄기 쏟아지려는지 잔뜩 찌푸린 하늘에는 간간이 번쩍번쩍 빛을 내는 섬강과 함께 위협사격을 하는 155mm포의 포성의 스산한 밤을 더욱 더 을씨년스럽게 했다.
 격했던 승리의 흥분도 가라앉은 지 이틀이 지났다. 소대는 예나 다름없이 매복, 탐색, 정찰, 수색 등으로 나날을 보내던 3일째 되는 날, 날씨는 청명한데 최 소위는 왠지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최 소위는 매복대를 요소요소 배치시켜 놓고는 자기 참호에 들어가 양손으로 담뱃불을 가리고 담배를 피우면서 천막 사이로 멀리 ‘투이호아’ 시내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전등불 아래는 한국군들이 상륙한 이래 평온을 되찾은 ‘투이호아’ 시민들이 모기장을 쳐 놓고 선풍기를 돌리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귀여운 자식들과 함께 포근히 잠에 취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면 나는 총알이 뚫지 못하도록 이 더운 기후에도 두툼한 방탄조끼를 입고 끈을 꼭꼭 묶은 군화를 신고는 눅눅한 땅 속에서 극성을 부리는 모기떼들에게 시달림을 받아 가며 전방도 후방도 없는 이 외딴 고지에서 담뱃불이 새어나갈 새라 손으로 담뱃불을 가리우고는 적의 도전에 대비해야 하며 대원들을 걱정하면서 참호 속에 쪼그리고 앉아 긴장이 되어 있지 않은가? 이게 무슨 놈의 짓이람! 조국과 민족의 안녕을 지키기 위한 국군이라고들 하는데 과연 이곳에 와서 전쟁을 치루고 있는 것이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길인가? 그렇다. 6.25 전쟁 때에 우리 국군들은 형편없는 무기로, 때로는 맨주먹으로 육탄으로 싸우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싸웠다.
그 후 세월이 흘러 6.25 당시의 코흘리개들이 성장하여 이제는 성장조국의 명예를 세계에 떨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것 또한 조국을 위한 일이요, 이 월남전을 계기로 경제적 도약의 발판이 되질 않았는가? 지금 수개의 민간 기업체들이 우리 국군의 힘에 의지하여 많이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이랴 매월 수입되는 달러의 양도 굉장하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 전쟁도 자랑스러운 전쟁으로 역사들은 기록할 것이다. 그 역사의 기록에 한몫 끼어 든다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일 것이며 이 전쟁 역시 의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혹자는 이 전쟁을 용병 전쟁이니, 대리전쟁이니, 구걸전쟁이라고 말한다고 하지만 그는 먼 미래를 내다 볼 줄 모르는 형편없는 바보들의 얘기 일 것이다.“)
 최 소위는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담배를 연속 피워댔다.
밤이 제법 깊었다. 자정이 지나 얼마 안됐을 무렵 갑자기 사방에서 총성이 나며 총알이 머리 위를 씽 소리를 내면서 나르고 유탄이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소름을 끼치게 했다. 적의 보복기습인 것이다.
 최 소위는 각 분대에 PRC-6 무전기로 일체 응사하지 말고 적의 접근을 기다리게 했다. 적이 어느 정도 접근하면 매복대에 걸려들게 할 심산이었다.
 적들은 아군의 응사 사격이 없자 아군의 위치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어 더 이상 접근을 하지 않았다. 야간사격이란 자기 위치를 적에게 알리는 결과라는 것을 그네들도 알고 있겠거늘 계속 어림잡아 사격을 가했다. 총구에서 튀기는 불꽃 수로 보아 불과 4~5명이 사방에 산재하여 왔다 갔다 하면서 총을 쏘기 때문에 마치 많은 병력이 사방을 애워 싼듯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었다. 잠시 분탕을 지르던 적들이 물러나자 이름 모를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만이 요란할 뿐 지루하고 후덥지근한 밤은 조용히 흘러갔다. 최 소위는 다음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아침 식사를 한 때문인지 식사를 마치자 엊저녁에 신경을 쓴 탓도 있고 해서 잠이 스르르 왔다. 잠이나 좀 자볼까 하고 자기 참호에 들어가려는데 관망대에서 보고가 들어 왔다.
  소대가 위치한 우측 전방 1.5km 지점 폐허가 된 마을에 산으로부터 내려온 베트콩 2명이 잠입하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강의 지류를 건너와야 그 마을까지 들어오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군이 공격하면 쉽사리 도망을 못갈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 최 소위는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들을 잡아 버리자.”
 최 소위는 일단 보고를 받은 이상 한명이라도 놔둘 수는 없었다. 놈들을 잡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드디어 최 소위는 특공대를 조직했다. 최 소위 소대에는 해병대 신병 156기생 4명이 있는데 그들은 매사에 날쌔고 또 고참병들이기 때문에 소대내의 어려운 일들은 이들이 거의 해치우고는 했었다.
  전령인 병장 김정웅을 비롯하여 이한웅 병장 등 이들 4명은 공격준비가 완료됐다. 적을 공격하려면 아군 쪽에서 강의 지류를 건너야 하기 때문에 중무장은 피하고 얼룩무늬 철모 덮개로 머리를 동여매고 각자 침대용 고무 침대를 한 개씩 휴대하고 연락용으로 PRC-6 한 대를 휴대했다.
  그들이 출발한 후 최 소위는 관망대에 올라가 계속 상황을 관측했다.
 총과 무전기를 고무침대에 올려놓고 대원 2명이 강을 건너는 동안 나머지 2명이 엄호를 하면서 4명은 무사히 강을 건너 고무침대를 강기슭에 올려놓고 난 뒤 베트콩이 잠입했다는 마을로 서서히 접근했다.
  이들은 2명씩 짝을 지어 갈라져 한명이 마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마을 좌측 편 쪽에서 베트콩 한명이 마을을 벗어나 도주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김정웅 병장은 그 자위 뒤를 쫓으며 총을 쏘아댔으나 뛰면서 쏘는 총이라 그런지 맞지가 않았다.
  베트콩은 자기네 본부가 있는 산 쪽을 향하여 죽을힘을 다해 뛰어가다가는 강가에 다다르자 잠시 머뭇거렸다. 그 순간 김정웅 병장은 사로잡을 수도 있는 자를 향하여 용서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베트콩은 휘청하면서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적을 쫓아가다 보니 김 병장이 너무 깊숙이 적의 본거지 쪽으로 접근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 소위는 무전기를 통하여 시체는 그냥 버려둔 채 빨리 마을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한편 마을 쪽에서는 중년남자 한명과 젊은 여자 한명을 땅굴 속에서 생포하였는데 남자의 몸에서 깡통으로 만든 수류탄 2개가 나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일단 호송해 오라고 하고는 그들이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최 소위는 또 한 번의 승리와 전사하고 부상당한 전우들에 대한 복수의 쾌감을 맛보았다는 듯이 회심의 미소를 머금었다.
 특공대원들은 마을에 있는 갈잎으로 만든 배에다 그들을 싣고 그들로 하여금 노를 젓게 하여 강을 건너 돌아왔다. 배가 아군 쪽 어귀에 닿자 최 소위는 관망대에서 내려와 강가로 내려가서 특공대원들에게 치하를 해 주고는 남자 포로를 야자나무에 묶어 놓고
  “부커 어다우?”(무기 어디에 있냐?)
  “옹라 부이씨(V.C)컴?”(너 베트콩이지?)
 라고 물어 보았으나 묵묵부답이었다. 포로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마치 도살장에 끌려 온 소처럼 맥없이 목을 축 늘어뜨리고는 다른 포로들과 달리 살려달라는 애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죽음을 각오한 듯 했다.
  야자나무 기둥에 꽁꽁 묶여 있는 베트콩 남자는 구더기가 고름 속에서 꿈틀대고 있는 썩어가는 자기의 오른쪽 허벅다리를 야자잎사귀로 감싸고는 지푸라기로 동여매어 놓았다.
  (“이렇게도 빈약한 자들일까? 썩어가는 자기 다리를 방관해야 할 정도이니, 하기야 산속에서 의료시설이 있다고 해도 잘 되어 있을 리가 없으리라.”)
 최 소위는 적을 앞에 두고 불쌍한 생각이 드는 것은 전쟁이라는 현실 속에서 자기모순 이라고 생각했다.
 잡혀온 여자는 30이 채 안 되어 보였다.
  “꼬 바오뉴 또이?”(아가씨 몇 살이오?)
  “하이머이 람 또이.”(25살입니다.)
  “따이싸오 라이 다이?”(왜 이쪽으로 왔느냐?)
  “….”
 여인이 대답이 없자 최 소위는 재차 다그쳐 물었다. 그러자 여인은 바들바들 떨면서
  “또이 뭔 칸 풋.”(남편을 만나려고 그랬다.)
  “부키 어다우?”(무기가 어디에 있느냐?)
  “콩비억. 콩비억.”(모릅니다. 모릅니다.)
 여인은 겁먹은 얼굴로 계속 모른다고만 했다. 병장 김정웅이 여인의 머리에 쓰고 있는 갈대로 만든 삼각형 모자를 벗기자 뚤뚤 말려있던 검정색깔의 머리칼이 땀이 흥건이 밴 때가 낀 윗도리에 곡선을 그린 어깨 위를 감싸면서 허리까지 흘러 내렸다.
  최 소위나 병사들은 산속, 그것도 땅속에서 생활하는 동안 잊혀졌던 여인의 모습에 관심들을 쏟았다. 마치 여자를 처음이라도 보는 양 주위를 에워싸고는 호기심 있게 여인을 쳐다보는 것이다.
  솔직히 최 소위도 이 여자의 속살이라도 보고 싶은 충동이 강렬하게 일어났다. 인간본능의 성욕이 꿈틀대는 것이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여인의 체취를 맡아보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나날을 불끈 솟아 오른 자신의 남근을 움켜지고 엎치락뒤치락 했던가. 이는 장교인 최 소위 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전쟁터에 온 모든 병사들이 그랬다.
  그러나 소대장이라는 직책에 있는 최 소위로서는 자제를 해야 했다.
 대원들이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무슨 허튼 수작을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아무리 적이라고 하더라도 바로 앞에 한 동리의 남자가 묶여 있는 자리가 아닌가. 이성을 찾자. 이성을 잃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7. 최소위의 부상

 최 소위 소대는 분주했던 15일간의 전방소대 임무를 제2소대와 교대한 후 개선의 영광을 안고 본대로 귀대하자 대대장 이하 전 참모들과 중대장은 치하의 말을 아낌없이 해 주었다.
  짐을 풀고 난 최 소위는 한동안 멋대로 자라난 턱수염을 깎고 샤워를 하고 나니 그동안의 피로가 한꺼번에 덮치는 듯 졸음이 왔다.
  다음날 아침부터 제1소대는 근거리 정찰과 휴식이 계속됐다. 제2대대 본부는 인도지나해 해변 가 어촌인 약50여 호 남짓한 부락 토람 제2마을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제1소대의 임무는 대대본부 방어 임무인지라 최 소위는 낮에는 바다에 나가 대원들과 함께 수영을 즐기며 때로는 바다에 수류탄을 터뜨려 고기잡이도 하며 휴식을 취했다.
  바다에는 고기가 많았다. 밤에는 어부들이 일체 고기잡이를 못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고기들이 많은 것이다.
  수류탄을 서너 개 쯤 던지면 하얀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다가는 내려앉는 장관도 장관이려니와 잠시 후 흰 배를 뒤집고는 둥둥 떠 있는 고기를 수영하며 줍기에 바쁠 정도였다. 이렇게 건진 고기를 C레이션에 들어있는 소금을 뿌려 말린 다음 구워 먹으면 그 맛 또한 좋았다.
  신경을 덜 쓰게 되고 생활이 편해지자 최 소위는 시내에 나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허나 시내 출입은 일체 금지되어 있었다. 종종 일어나는 시내에서의 사고도 사고지만 언제 무슨 상황이 벌어질지 모를 전쟁판에 시내에 나가 유람을 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하는 것이다. 가끔 단체로 시내에 나가 외출을 할 때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나간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 장병들은 일체 시내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터라 정글 속에만 처박혀있는 장병들은 욕구불만이 꽉 차 있었다. 대원중에는 욕구가 일어날 때면 자위행위로 해소하고는 하지만 그도 한 두 번이지 이제는 별로 흥미 없는 짓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 소위가 이곳 토람마을 부근에 주둔한지도 꽤나 날이 지나갔다. 이제 부대 근처 마을사람 몇몇은 월남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최 소위와 인사를 나눌 정도로 친숙해져 있었다.
  하루는 전령이 최 소위에게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하기에 최 소위는 전령이 인도 하는 대로 마을로 나갔다. 앞서가는 전령은 마을 맨 끝 쪽에 있는 흙벽으로 지은 자그마한 초가집 앞에 머무르고는 그집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신을로이.”(실례합니다.)하며 집 안으로 들어서자 한 아가씨가 방문에서 빼끔이 얼굴을 내밀어 밖을 내다보았다. 새까만 긴 머리채가 허리까지 내려오고 쌍커풀이진 반짝거리는 검정 눈망울은 최 소위를 황홀케 했다.
  “어떻습니까? 소대장님.”
  “음~ 미인인데.”
 하며 최 소위는 아가씨 앞으로 다가가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아가씨는 최 소위의 계급장을 보더니 안심이라도 한 듯 그저 웃음만 지어 보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방 안에서 어머니인 듯한 여인과 동생인 듯한 남자아이가 밖으로 나오며 최 소위를 쳐다보았다.
  “쨔오 바.”(아주머니 안녕하십니까?)
 라고 최 소위가 인사를 하자 최 소위의 월남어에 그 여인은 한편 놀랍다는 시늉을 하며 매우 친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또이 라 따이한 튜위 최.”(나는 한국군 최소위입니다.)
 자기소개를 하자 그 여인은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흙담으로 벽이 둘려진 자그마한 방에는 한국 시골에서 쓰는 평상(월남인들이 쓰고 있는 침상역할을 한다.)이 땅바닥 위에 한 개 놓여있고 색깔이 낡은 장롱이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조상의 위폐를 모신 함이 있고 그곳에다 향불을 피워 놓았다. 방에는 문이 달려있지 않았으며 방과 방은 벽으로 칸만 질러 놓았고 방에는 평상 외에 망으로 짠 침상 그네가 걸려 있었다.
  최 소위는 집안을 한 바퀴 휘 돌아보고는 평상 위에 걸터앉았다.
 속살이 비칠 듯한 흰 바지에 블라우스를 입은 아가씨는 조금도 경계하는 빛이 없이 평상위에 덜렁 올라가 벽을 기대고 최 소위와 마주보고 앉았다.
  “꼬 텦브람.”(아가씨 참 예쁩니다.)
 아가씨는 그저 생글생글 웃을 뿐이다. 최 소위는 아주머니를 가르키며
  “매, 컴?”(엄마요?)
  “꼬.”(그렇습니다.)
 최 소위는 오래간만에 따듯하고 평온한 기분을 맛보았다. 이제껏 초조와 신경을 곤두세우며 전쟁터를 전전하면서 살생과 고통과 정글 속에서 야수와 같은 생활을 해 오다가 오늘 이렇게 집안에서 조용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예쁜 여인과 이야기를 주고  받으니 마치 어린 시절 집 안에서 아무런 고통 없이 행복했던 기억이 났다. 마치 지루하고 고생스러웠던 기나긴 여행 끝에 자기 집으로 돌아온 기분처럼 아늑하고 평온했다. 아가씨의 어머니는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면서 밥상을 차렸다.
  최 소위는 부엌 쪽으로 가 보았다. 부엌이라고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처마 끝을 이용하여 갈대로 울타리를 쳐 놓은 곳이다. 냄비 서너 개와 사기그릇 몇 개가 선반위에 놓여 있었고 풍로 한 개가 놓여진 옆에 숯 덩어리가 흩어져 널려 있었다.
  최 소위가 부엌 쪽으로 가자 아가씨의 어머니는 벽에 총탄 구멍이 두군데 난 곳을 손으로 가르키며 “V.C 빵 빵.”이라고 하면서 베트콩이 자기 남편을 이곳에 세워놓고 쏘아 죽였다는 것이다.
  참으로 베트콩들의 잔인성이 감히 짐작이 갔으며 한국군이 주둔함으로써 이제 이네들이 마음 놓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그동안 전전하며 고생도 됐고 짜증도 났었지만 마을 주민들의 평화스러운 생활상을 보았을 때 그 보람을 느낄 수가 있었다.
  평상 위에 차려놓은 음식 주위를 최 소위와 전령은 그 집 식구들과 함께 앉아서 밥을 먹었다. 사기그릇에 담은 부시시 흩어지는 안남미를 기다란 젓가락으로 먹기에는 퍽이나 어렵고 불편하여 최 소위는 냉수에다 말아서 홀홀 마셨다. 밥과 반찬에서는 월남 특유의 이상야릇한 냄새가 풍겨 최 소위는 식사도중 몇 번이나 구토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밥 한 공기를 간신히 비우고는 배불리 잘 먹었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아가씨의 나이는 17살이고 이름은 ‘랭’이라고 하며 남동생과 여동생 그리고 어머니 이렇게 네 식구가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가난하여 고기배도 없어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팔든가 고기배가 들어오면 일을 거들어 주고 품삯으로 받은 고기를 시장에 나가 팔아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고 했다.
  최 소위는 참으로 가엾은 생각이 들었다.(“이렇게도 예쁜 아가씨가 야간학교 등록금 월 5불이 없어서 학교도 못 다니고 문맹자로 자기 이름을 겨우 쓸 정도라니!”)
  다음날부터 최 소위는 시간이 나는대로 레이션과 내의 등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 가곤 하여, 며칠 사이에 한 가족같이 지내게 된 이들은 최 소위가 못나오는 날이면 몹시 궁금해졌고 최 소위 역시 그 집 식구들이 걱정스러웠다.
  최 소위가 그 집에 들어서면, “오빠”하고 랭이 뛰쳐나오며 최 소위를 반겼다.
  최 소위에게는 더 없이 즐겁고 행복스러운 나날이 흘러갔다. 그녀로부터 월남노래를 배우고 그녀에게 아리랑도 가르치며 티 없는 오누이로서의 사랑을 주고받으며 행복스런 나날을 보냈다. 최 소위는 오늘도 점심식사를 마치고 전령 1명을 대동하고는 랭의 집을 향해 철조망의 개구멍을 빠져나가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에는 간이 제봉소를 차려놓고 좌판에 과자, 사탕 등과 맥주를 팔고 있는 곳이 있다. 이곳은 한국 군인들이 마을에 나오면 자주 들러 쉬어 가는 곳으로 최 소위는 목도 칼칼하고 하여 맥주를 한 병 마실 겸 그 가게에 들러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마을 민병대 7명이 가게를 지나치다가는 그 중 한명이 히죽거리며 최 소위에게 제봉소 아가씨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붐 붐.”이라고 놀려댔다. 최 소위는 불쾌했다. 화가 발끈 났다. 하찮은 민병대들한테 놀림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장교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최 소위는 월남에 오기 전부터 월남어 회화책을 항상 휴대하고 다니면서 공부를 하였으며 월남군 통역관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 익히고 있는 터라 「붐 붐」(성교) 정도의 뜻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월남에서는 정규군 장교면 깍듯한 예우를 받고 있다. 장교의 대우는 한국군보다 더 우대했다.
 최 소위는 놀려대는 민병대원을 불러서는
  “또이 라 튜위.”(나는 소위이다.)
 라고 하며 장교를 놀리는 놈이 어디 있느냐고 큰 소리로 나무라자 민병대원들은 최 소위의 위엄과 월남어에 놀란 듯 잠시 자세를 꼿꼿하게 취하더니 또 다시 히죽히죽 거린다. 역시 정규군이 아니고 마을 젊은이들을 끌어 모아 총을 쥐어 준 민병대라 군기를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최 소위는 특유의 아집이 발산되었다. 형편없게 행동하는 이들에게 기합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최소위의 오른쪽 주먹이 놀려대던 민병대원의 왼쪽 턱을 강타했다. 그 순간 민병대원은 큰 대자로 힘없이 나가 떨어졌다.
 그야말로 순간적인 일이었다. 그러자 동료가 맞는 것을 본 다른 대원들이 최 소위에게 우르르 달려들 자세였다. 그 순간 옆에 있던 전령이 2단 옆차기로 또 한명을 쓰러 뜨렸다.
  사건은 벌어진 것이다. 아무리 볼품없이 바싹 마른 나약한 체격의 월남 민병대원이라고 할지라도 동료 2명이나 외국군에게 얻어맞고 힘없이 쓰러졌으니 보고만 있을 리 없다. 또한 이들은 같은 마을의 선후배요 친구들인 관계이다.
  민병대원 중 통신기를 든 자는 열심히 이웃마을 민병대원들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고 이러한 장면을 본 동리 사람들은 삽시간에 우르르 몰려와 평소에는 서로 인사를 나누며 친숙하게 지내던 그네들이었건만 살기등등하게 최 소위와 전령을 흘겨보았다.
  사태는 심각했다. 마을사람들은 약 50명가량이고 최 소위는 전령과 단 둘뿐이다. 최 소위는 이 위기를 일단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권총을 빼어 들고는 자기를 뺑 둘러싸고 있는 마을사람들을 향해 길을 트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러나 살기등등한 마을 사람들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최 소위는 두 방의 공포를 쏘았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과 민병대원들은 우르르 흩어졌다. 최 소위는 등 뒤로 마을 사람들의 흘기는 눈초리를 의식하며 부대로 돌아왔다.
  부대로 돌아온 최 소위는 마음이 편하질 못했다.
  “왜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소위 한국군 장교라는 자가 그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민병대원을 때려 눕혀 어쩌겠다는 건가? 그 엉터리 같은 민병대들, 군기를 잡아 보겠다고? 꺼림칙한 생각으로 며칠을 보낸 후 최 소위는 이번에는 전령 2명을 대동하고 마을로 나가 보았다. 마을 사람들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전에는 최 소위가 마을에 나가면 누구나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고, 최 소위는 나갈 때마다 런닝셔츠, 팬티 등 내의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등 서로 친숙한 사이로 지냈었다.
  랭도 그랬다.
 랭은 최 소위가 자기 집에 들어오자 피하려고 했다. 랭은 최 소위가 자기네 집으로 오는 것에 대하여 마을사람들을 의식하는 것 같았다.
  최 소위는 랭에게 떠듬거리며 사건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랭은 그때 맞아 쓰러진 민병대원이 아직도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찾아가서 위로해 주라고 하며 집을 가르쳐 주었다.
  최 소위는 그러겠노라고 하고는 랭의 남동생을 앞세우고 그 민병대원의 집을 찾아갔다.
  마당에 들어선 최 소위는 민병대원 노모의 차디찬 눈초리를 피하면서 누워있는 민병대원에게 사과를 하며 위로를 해 주었다. 그러자 누워있던 민병대원은 자기도 미안했었다고 하면서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도중에 민병대원의 노모와 아버지가 최 소위에게
  “까오리 삼, 까오리 삼”이라고 반복하며 인삼을 달라고 한다. 인삼을 먹으면 누워있는 자식 놈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한국의 인삼 위력은 대단했다. 이들 월남인들은 한국의 인삼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최 소위는 인삼을 가져다주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돌아와 P.X에서 인삼주를 사다가는 병속의 인삼을 꺼내 말린 후 전령을 시켜 갖다 준 뒤에 마음 편히 마을을 계속하여 드나들 수가 있었으며 랭과도 전과 다름없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그러나 행복스러운 나날도 길어질 수는 없는 일, 전쟁터의 군인인 최 소위에게는 작전이 부여됐다.

  1966년 5월 13일. 초저녁. 제3소대의 도로잠복 근무조에 걸려든 베트콩 분대장 한 명이 중대본부로 압송되어 왔다.
  최 소위는 중대장과 함께 월남인 통역관과 중대에 파견되어 있는 이 지역 형사등과 함께 포로 심문을 한 결과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정보를 얻게 됐던 것이다.
  첫째: 부대 병사들이 매일 놀러가다시피 하는 토람 제2마을에 여성 게릴라가 잠입되어 있으며,
  둘째: 제2대대 자매부락인 퓨햅 마을에는 무장 베트콩이 잠입하여 있고,
  셋째: 토람 제2마을에는 베트콩들의 식량창고와 무기고가 지하 땅굴에 설치되어 있다는 등의 정보가 입수됐다.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아니 매일 놀러 나가 얼굴을 마주 대하며 친절하게 굴던 그 동리사람들 중에 베트콩이 섞여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런 동리사람들한테 위문품이라 하여 각종 음식과 의류를 주지 않았던가. 어떻게 보면 베트콩들과 함께 지낸 결과가 된 것이다.
  대대에서는 우선 최 소위 소대로 하여금 무장베트콩이 잠입하고 있다는 퓨햅 마을에 새벽 4시를 기하여 출동하여 체포하라는 작전명령이 하달됐다. 최 소위는 즉각 분대장들에게 출동준비를 지시하고는 단신으로 토람 제2마을로 달려갔다.
  출동하기 전에 랭을 한번 만나봐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에 나가면 며칠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동안 못 보게 되는 랭을 가기 전에 보고 싶었던 것이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 하늘에는 마른번개가 요란하게 치고 있으며 번개불과 천둥소리가 공포를 자아내게 했다. 캄캄한 밤의 인도지나해의 파도소리는 더욱 더 요란하게 쏴-쏴- 소리를 내며 거칠어지고 있었다.
  지금 최 소위는 참으로 위험한 짓을 하고 있다. 야간에 움직이다가는 적으로 오인되는 수가 있건만 최 소위는 지금 모든 것을 잊고 오직 랭을 만나봐야 한다는 일념뿐으로 부대를 벗어나 랭의 집으로 달려갔다.
  최 소위가 마당에 들어서니 랭의 가족들은 희미한 석유등잔을 켜 놓고 마당 한가운데에 멍석을 깔아 그 위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최 소위가 들어서는 것을 본 랭은 “오빠”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밤늦게 웬일이냐는 듯이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최 소위는 랭 옆에 앉아 숨을 고르고는 내일부터 며칠 못오게 된다는 것과 이번에 출동하면 전투를 하기 때문에 위험할런지도 모른다고 떠듬거리며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자 랭은
  “오빠 꼭 돌아와야 해요. 꼭 돌아와서 나 아오자이 입고 오빠하고 같이 ‘투이호아’ 시내 구경 갈래요. 빨리 오셔야 해요.”
 라고 하면서 최 소위를 쳐다보는 눈에는 눈물이 고여 방울방울 흘러 내렸다. 이젠 하루도 못 보면 서로 걱정이 되고 궁금하게 된 이들 식구들과 최 소위 사이가 되어 버렸다.
  인간의 정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인종과 국경을 초월한 이들의 참 사랑은 삭막한 전쟁터에서 최 소위에게 아늑한 감정을 심어 주었으며 최 소위로서는 랭으로부터 비로소 아름다운 여인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최 소위는 눈물을 흘리는 랭의 손을 꼭 쥐고는
  “그래 오빠는 꼭 돌아온다. 와서 랭하고 같이 구경가야지.”
 하며 랭을 달래주고 식구들과 작별인사를 한 후 부대로 돌아 왔다.
  밤을 꼬박 샌 채 최 소위는 새벽 4시를 기하여 증강된 2개 분대와 월남인 경찰관과 통역관을 배속 받아 총 인원 32명을 인솔하고 본부로부터 8km 떨어진 퓨햅 마을을 향하여 출동했다. 어둠속에서의 행군이라 조심스럽고 적과의 조우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행군속도는 참으로 더디었다. 논의 벼들은 이미 거두어 들여져 확 트인 광활한 새벽 들판에는 안개마저 자욱하게 가라앉아 있어 행군하는 병사들의 시야를 가렸다. 병사들은 행군대열로 목표를 향하여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본대를 떠나 약 1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갑자기 전방에서 사람이 뛰는 것을 희뿌연 안개 속에서 발견했다고 최 소위에게 보고가 들어왔다.
  대원들은 소대장의 결심을 기다리며 뛰는 자를 추격했다.
 최 소위는 생포할 것을 명령했다. 그러자 제일 앞장서서 행군하던 제1분대 제1조 대원 4명은 논두렁에서 뛰는 2명을 쫓았다. 그러나 도망치는 자들은 맨 몸이고 병사들은 수통 2개와 실탄 등을 달아맨 탄띠와 철모 그리고 묵직한 방탄조끼를 입고 있기 때문에 몸이 무거워 맨몸으로 달아나는 그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게 되자 사격할 것을 요청했다.
  최 소위는 다리를 쏴 맞추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AR자동화기는 불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한명이 쓰러졌다. 함께 뛰던 자는 우뚝 그 자리에 멈추더니 납작 엎드렸다.
  최 소위는 쓰러져 있는 자에게 가까이 가 보았다. 쓰러진 자는 여인이었다.
 땀이 흠뻑 베인 헐렁한 바지를 입고 있는 여인은 총상의 아픔에 고통을 참느라고 얼굴이 창백해 있었다. 그리고는 그 옆에 15~6세가량의 남자 아이가 웅크리고 앉아서는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최 소위는 쓰러져 있는 여인이 가엾다는 생각보다는 왜 이른 새벽에 허허벌판인 논에 나와 무얼 했으며 왜 우리들을 보고 도망쳤는지가 궁금하여 통역관을 통하여 그 사유를 묻게 했다. 여인의 나이는 40대 후반으로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데 양식이 없어 아들과 함께 들판에 떨어져 있는 이삭을 줍기 위해 낮에는 뜨겁고 해서 이른 새벽에 나왔다가 군인들을 보고 무의식중에 도망치게 되었다는 것이며 남편은 베트콩에 의하여 몇 년 전 살해됐다고 했다.
  불쌍했다. 가엾고 처절했다. 먹고 살기 위해 들판에 버려진 이삭이나마 주워다 생계를 꾸리려고 하다가 어이없게도 외국 군인들이 쏘아대는 총을 맞고 쓰러진 것이다. 총알이 관통한 여인의 허벅지에는 유혈이 낭자했다.
  최 소위는 위생병을 불러 압박붕대로 응급치료를 해 주라고 했다. 팬티도 입지 않은 여인의 헐렁한 바지는 위생병에 의하여 벗겨졌고 아들이 보는 앞에서 국부 바로 밑 오른쪽 허벅지의 상처를 위생병은 간단히 치료를 해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뼈는 상하지 않아 심한 부상은 아니라는 생각에 최 소위는 다소 안심은 되었다.
  최 소위는 아들에게 빨리 마을에 연락해서 여인을 데려 가라고 일러주고는 전진 명령을 내렸다.
  먼 훗날 아들이 자라서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아마 평생 자기 어머니의 처절한 모습은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전진을 계속하는 최 소위는 왠지 기분이 썩 좋지가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여인을 쏘아 쓰러뜨렸고 피에 엉킨 발가벗은 여인의 하체를 보는 등, 무슨 좋지 못한 징조가 최 소위를 기다리고 있는 듯싶었다.
  예기치 않았던 공연한 장해물이 생겨나 병사들의 행군은 예정시간보다 훨씬 늦어졌다. 새벽 6시경이 되자 시야가 조금씩 희미하게나마 분별이 되면서 수색 소대는 퓨햅 마을 가까이 접근 할 수가 있었다.
  최 소위는 즉각 1개 분대를 분산시켜 30여호 되는 마을 밖을 완전 포위케 하고 나머지 1개 분대를 인솔하여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 부락을 수색했다.
  수색대원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서 무표정하고 냉담하기만 한 마을 주민들을 넓은 마당에 약 50여명 집결시켜 놓고 계속 집과 공회당 등을 수색했다.
  베트콩 색출에 노련하며 이 지역 담당 월남인 경찰관은 집결해 있는 부락민들 중에서 애기를 안고 있는 중년부인을 가리키며 베트콩의 부인이라고 지적해 주었다. 최 소위는 그녀를 따로 앉혀놓고 남편의 행방을 말하라고 우격다짐으로 캐물었으나 그녀는 이빨을 바드득바드득 갈면서 살기어린 눈초리로 최 소위와 경찰관을 노려보면서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발로 엉덩이를 걷어차고 개머리판으로 어깨를 내려찍어도 그저 이빨만 바드득바드득 갈아댔다. 참으로 독한 여인네다. 하는 수 없이 최 소위는 그녀를 주민들과 격리시켜 잘 감시케 하고는 계속 부락을 뒤져 나갔다. 마을의 집에는 부엌에서 방으로, 옆집에서 옆집으로 통하는 지하 땅굴들이 많았다. 한 시간 이상을 마을 구석구석까지 수색을 해도 이렇다 할 단서가 나오질 않았다.
  계속하여 수색을 하는 동안 병장 김정웅이 타작을 한 볏단들이 쌓여있는 그 밑바닥에서 땅굴을 발견했다. 볏단을 치우고 나니 굴 입구가 보였으나 굴 입구가 좁고 어두워서 굴속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그러자 최 소위는 손수 굴속에다 얼굴을 들이밀고 굴속을 살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시커먼 굴속에서 인기척이 나며 무엇인가 던지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재빨리 목을 뺀 최 소위는 “업드려! 적이다!.”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아차! 한발이 늦었다. 적들은 굴속에서 밖으로 수류탄 2개를 던진 것이다. 댕그르 구르는 수류탄을 보는 순간 최 소위는 발로 수류탄을 걷어찼다. 수류탄 한 개가 또르르 굴렀다. 그리고 또 한 개를 걷어차려는 찰나였다.
  고막을 울리는 폭음소리와 함께 섬광이 번쩍하며 화약 냄새가 최 소위 코를 물신케 했다. 순간 최 소위의 몸은 허공중에 번쩍 떴다가는 쿵 하고 떨어졌다. 정신이 아찔하며 의식을 잃었다. 얼마동안이나 흘렀을까? 희미한 의식이 되살아 난 최 소위는 “살았구나.”라고 생각을 하면서 눈을 살며시 떠보자 먼지와 화염이 서서히 걷히우는 속에 굴에서 베트콩 두 명이 굴 밖으로 나와 선인장이 둘러 쳐진 마을 울타리를 넘어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저 놈 도망간다.” 고함을 치며 총을 쏘려는 최 소위 손에는 총이 없다. 손에 쥐고 있던 칼빈 M₂소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질 않고 자신은 땅바닥에 벌렁 자빠져 누운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조차 없이 몸이 나른해지면서 힘이 쭉 빠졌다.
  선인장 울타리 밖에서 총성이 들렸다. 굴속에서 나온 베트콩 2명이 마을을 에워싸고 있던 대원들에 의하여 사살된 것이다.
  최 소위는 총성을 듣고는 또 한 번 힘을 써 보았으나 역시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최 소위는 벌렁 누운 채로 고개를 들어 보았다.
  “맞았구나 !” 붉디붉은 선지피가 숨을 쉴 때마다 몸 어느 곳에선가 모르게 흙과 뒤범벅이 되어 새어 나오면서 군복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삽시간에 당한 일이요, 어처구니없이 당한 일이고 보니 대원들은 어떻게 손을 써야 될지 그저 서성거리며 왔다 갔다만 했다.
  전령은 “소대장님!”하며 목메인 소리로 부르짖으며 최 소위를 부등켜안았다.
  “야 , 난 괜찮아. 우선 다리에 맞은 모양인데 양 허벅지를 묶고 지혈대로 피 나오는 곳을 막아라. 그리고 다른 대원들은 빨리 원위치로 돌아가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하고는 전령이 응급치료 하는 대로 몸을 맡겼다.
  전령이 최 소위의 군화를 벗기려고 하였으나 피에 엉킨 군화는 잘 벗겨지지가 않았다. 그래서는 대검으로 군화 끈을 자른 후 겨우 벗기기는 하였으나 아뿔사! 최 소위의 양쪽 다리 발목이 모두 180⁰ 좌우로 건드렁 건드렁 휙휙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양쪽 발목 부근의 뼈들이 으스러져 나간 것이다. 그뿐만 도 아니었다. 방탄조끼를 벗기고 허리에 찼던 권총대를 벗기고 옷을 갈기갈기 찢어가며 알몸둥이로 벗겨진 최 소위의 복부와 옆구리에서도 피가 삐져나오고 있었다. 참으로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심한 부상을 당했다.
  대원들은 각자 가지고 있던 압박붕대를 다 풀었으나 그것도 모자라 입고 있던 런닝셔츠를 찢어 피가 흐르는 곳을 막았다.
  최 소위는 목이 몹시 말랐다. 목이 막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갈증이 나기 시작한 그는 물이 몹시 먹고 싶었으나 물을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얼굴에다 뿌리라고 했다.
  대원들은 수통의 물을 최 소위의 얼굴에 뿌려댔지만 타는 목은 참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는 점차 숨결이 가빠지면서 정신이 희미해졌다. 그러면서 온몸이 나른한 것이 죽음 직전, 아니 죽음으로 한발 한발 다가가는 것이었다. 유언을 남기고 싶었다.
  최 소위는 있는 힘들 다하여 이를 악물고는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죽다니….생각을 하자, 무엇인가 생각을 하자.”고 혼자 중얼대다가는 손가락으로 땅을 빡빡 긁어대며 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다가는 정신이 좀 드는 사이에 전령에게 담배를 달라고 하여 한 모금 빨아 당기자 좀 나아지는 듯도 하였다. 그러면서 본대에 무전 연락할 것이 생각났다. 그리하여 무전병으로 하여금 상황을 연락케 하였으나 통신병 역시 양 볼에 파편이 관통하는 바람에 쓰러지면서 무전기가 부서졌다. 이젠 본대와도 연락이 끊겼다.  
  제1분대장 양 하사의 보고에 의하면 사상자가 모두 6명이라고 했으며 월남인 경찰관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월남인 통역관은 하복부가 터져 창자가 밖으로 나왔으며, 향도하사관인 한태호 하사는 소대장 뒤쪽에 있다가 파편이 머리에 박혀 의식불명이 되었다. 그야말로 삽시간에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진 것이다. 본대와 연락할 길이 없자 전령 김 병장은 파편이 관통한 오른손에다 붕대를 감고는 중대본부를 향하여 단신으로 뛰어갔다.
  최 소위는 자신의 고통을 이를 악물면서 참아가며 가급적 태연한 태도를 취하면서 우선 약세가 된 아군 부상자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 놓을 것을 명령하여 대원들은 문짝을 떼어다 들것을 만들어 마을 울타리 밖에 논두렁을 경계로 하여 대원들을 배치하고는 부상자들을 보호케 했다. 그리고나서 마을 안에 집결해 있는 주민들이 달아나거나 꿈쩍하면 사정없이 사살할 것도 명령하고, 지원대가 올 때까지 무기고와 식량창고를 계속 수색케 했다.
  참으로 정신력이 대단했다. 양다리는 으깨어졌고 복부와 옆구리가 찢기우는 심한 부상을 입고 껌뻑껌뻑 넘어가는 생명력을 부지하면서 차분히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10분, 20분, 30분 그래도 본부쪽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최 소위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부상부위가 40분 이상 넘기면 봉합이 안 된다고 알고 있었다. 상처가 큰 부상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큰일이다.
  최 소위는 이미 싸늘하게 된 자신의 체온을 의식하면서 하늘 높이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헬리콥터를 원망스럽게 쳐다만 볼 수 밖에 없었다.
  마치 바람 앞에 촛불인양, 최 소위는 희미해졌다가는 되돌아오고 되돌아오다가는 희미해지는 가운데 아내의 모습도 보였고 자기 애기의 재롱떠는 모습과 어머니의 인자하신 모습도 보였다가는 사라지곤 했다.
  이러한 때 아내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보았다. 최 소위는 분대장 양 하사가 따귀를 때리자 깜짝 놀라 정신이 들었다.
  “찾았습니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무기고하고 식량창고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저쪽을 보십시오. 저기를….” 양 하사는 흥분이 고조되어 억양이 높았다.
  그때였다. 본부쪽으로부터 제3소대와 중대본부 요원 등 지원병들이 들판을 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이젠 살았구나!”) 최 소위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그들이 어서 빨리 오기를 바랬다. 
  “야, 최 소위 어떻게 된거야?!”
 처절하게 쓰러져 있는 최 소위의 모습을 보며 새로 배속되어 온 3소대장 김 소위가 말하자
  “김 소위 저기다 저기, 저 마을에서 당한거야. 부탁한다. 잿더미를 만들어 다오.”
 그러는 최 소위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원한과 복수심에 이글거림은 마음뿐, 이제는 한낱 죽음 직전의 산송장이나 다를 바 없이 된 최 소위이다.
  아군 지원병의 뒤를 이어 날아온 적십자 표시를 한 미군 헬리콥터 3대가 프로펠러 소리를 요란하게 내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부상병들이나 소대원들은 날듯이 기뻐하며 어서 속히 후송되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가! 헬리콥터는 착륙을 하지 않고 공중에서 계속 선회만 하고 있었다.
  안타깝기 그지없는 1초, 1초의 순간이었다.
 병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빨리 내려오라고 고함을 쳤고, 지원부대인 제3소대 통신병은 무전을 쳤다. 그러자 헬리콥터에서는 안전표시 신호탄인 청록색 신호탄을 터뜨리라는 것이다. “겁쟁이 놈들.” 급히 출동한 제3소대 대원들은 신호탄을 휴대하지 않았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순간순간 부상병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원들은 반미치광이가 되다시피 되어 양손을 흔들어 대며 내려오라고 손짓을 했다. 어떤 대원들은 런닝셔츠를 벗어서 흔들어 댔다. 그러자 한동안 선회하던 미군 헬리콥터는 공중을 한 바퀴 더 길게 선회하면서 지상의 상황을 살피더니 안전하다고 판단했는지 쏜살같이 내려 꽂듯이 착륙하고는 최 소위를 비롯한 중상을 입은 부상병 4명을 들것에 싣고는 여단본부 의무대대로 나라갔다.  여단본부 의무대대에서는 부상자가 오기를 대기하고 있다가 부상자들이 도착하자 응급치료를 하느라 분주했다.
  찌는 듯한 후덥지근한 의무대대 천막 안은 부상자들의 신음소리와 상처를 건드릴 때마다 지르는 비명소리로 그야말로 아비규환의 생지옥 같았다.
  군의관은 최 소위에게
  “다리뼈가 약간 상했으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며 위로를 해 주었다. 향도하사관 한 하사는 후송되어 와서도 계속 의식불명 상태였다. 군의관들은 한 하사의 목줄기를 따고 인공호습기 고무호스를 집어넣고는 인공호흡을 시키며 우선 중상을 입은 최 소위, 한 하사, 통신병 그리고 월남인 통역관을 헬리콥터에 실어 퀴논 맹호부대 후송병원을 향해 날아갔다. 이로써 해병 청룡부대는 또 하나의 젊은 장교의 손실을 보게 된 것이다. 남지나해의 푸르른 물결은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도에 밀린 흰 물거품은 해변에 하얀 여운을 남기며 철썩거리고 있었다.
  헬리콥터는 시각을 다투는 이들 부상병들을 싣고는 북으로 북으로 해변을 따라 날아갔다.
  한동안 나르던 헬리콥터 들것에 묶여 누워있는 부상병중 한태호 하사의 생명이 거의 꺼져 갔다. 그러자 함께 동승했던 군의관은 미군 조종사에게 생명이 위급하니 아무 곳이고 병원이 보이는 대로 하강하라고 했다. 빨리 손을 써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생명이 위태롭다는 것이다. 헬리콥터는 계속 날다가 퀴논 맹호부대 후송병원에 채 가기 전에 적십자 표시가 되어 있는 병원이 보이자 쏜살같이 하강하여 착륙했다. 이곳은 퀴논 미 육군 102후송병원인 것이다.
  헬리콥터가 착륙하자 들것에 옮겨진 부상병들은 응급처치실로 옮겨졌으나 그 중 한 하사는 이미 시체가 되어 시체실로 옮겨지고 말았다.
  분대장도 아닌 소대의 재물을 맡아 관리하는 향도하사관으로 항상 소대본부에만 근무하다보니 따분하고 또한 귀국을 얼마 안 남겨놓고 있어 작전에 참가하고 싶다고 자진하는 바람에 출전을 하더니만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 버리고 만 것이다.
  응급실에 옮겨진 최 소위는 냉기를 느꼈다. 차가운 바람의 에어컨이 팬티조차 입지 않은 알몸을 차갑게 했다. 잠시 후 수술실로 옮겨졌고 가슴과 다리의 털을 깎느라 면도칼이 상처에 닿을 때 마다 그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견디다 못해 최 소위는 고함을 지르며 아프다고 하자 산소마스크로 코를 덮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수술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진지 이틀째가 되어서야 최 소위는 점차로 의식을 회복했다. 혼미한 의식 속에서 숨이 답답하고 온 전신이 욱신욱신 쑤셔대는 통증을 느꼇다.
  최 소위는 양쪽 다리가 부러졌으며 복부에 파편이 많이 들어가 배를 가르고 파편을 일일이 꺼내고는 꿰메었다. 발끝에서 허리까지 회붕대가 감겨져 있었고, 감겨져 있는 회붕대에는 벌겋게 피가 베어져 있었고 오른쪽 팔에도 붕대가 감겨져 있었으며 복부에도 온통 붕대가 감겨져 있는가 하면 창자를 씻어내기 위하여 코를 통하여 뱃속까지 호수가 꽂혀 있었고 팔에는 혈관과 닝겔호스를 연결시켜 놓았다.
  지옥인들 이렇게 고통스럽겠는가! 최 소위는 그야말로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 했다. 목마르기가 불타는 듯 했고 숨이 답답하기란 목졸려 죽기 적전의 답답함이었다. 최 소위는 자신의 모습에 눈에서는 서글픈, 아니 자신을 저주하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타는 갈증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물을 달라고 하면 상냥한 미군 여자 간호장교는 콩알만한 얼음 덩어리를 입에 넣어 주는가 하면 헝겊조각에 물을 적셔 입에 물려주곤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갈증을 더욱 재촉하는 결과 밖에 되지 않았다.
  숨이 콱콱 막힐 정도로 답답해진 최 소위는 왼손을 간신히 움직여 코에 꽂혀 있는 고무호수를 뽑았다. 약 50여 센티나 되는 고무호스가 빠지자 콧구멍과 목구멍이 확 뚫리는 것 같아 그 시원함이란 예전에 미처 맛보지 못했던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이를 본 간호장교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쫓아 와서는 빼어낸 고무호스를 다시 코를 통해 뱃속 깊이 틀어넣었다. 시원함도 잠시뿐, 그 고통이야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웠다.
  간호장교는 파란색깔의 동공을 굴리며 하루만 더 참고 있으라고 어린아이 달래듯 최 소위를 달랬다.
  최 소위가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들어온 후 3일째 되는 동안 두 번씩이나 고무호스를 빼버리는 소란을 피우는 등 괴로웠던 나날이 흘러 이제는 혼미했던 의식도 완전히 되찾았고 말도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빨랐다.
  회복실에 옮겨진지 5일째가 되어서야 코에서 고무호스가 빼어지고 정형외과 병동인 제1병동으로 옮겨졌다.
  들것에 실려 회복실 콘셋트 밖으로 나오자 강열한 태양빛은 사정없이 최 소위의 얼굴에 내리쬐었다.
  최 소위는 눈이 부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어 눈을 딱 감은 채 병원 뜨락을 지나 제 1병동으로 옮겨졌다.
  제1병동에는 빈 침대에 최 소위를 기다리고 있었고 병동 책임간호장교 애디 중위가 최 소위를 반가이 맞아주며 인계를 받았다.
  병실 안에는 약 40여명의 미군 병사들이 있었다. 팔과 다리 등이 절단된 병사도 있었고 최 소위처럼 골절을 당한 병사도 있었다.
  조심조심 들것에서 침대에 눕혀진 최 소위는 좌우를 둘러보았다.
 모두가 미군병사들로서 책을 보고 있는 자, 멍하니 천정을 응시하고 있는 자,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자 등,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부상당한 미군병사들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잠시 후 검둥이 상사가 최 소위에게 와서는 자기가 이 병동의 책임 위생병이라고 하면서 애로사항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하며 담배를 한 대 권했다.
  최 소위는 며칠 만에 대해보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아 마셨다. 그러자 정신이 아찔해지며 온 천지가 노랗게 변해가는 듯 어지러웠다.
  최 소위는 며칠사이에 이렇게 허약해질 수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며 담배를 비벼 꺼버렸다. 병동으로 옮겨진 이틀째가 되던 날 오후, 대대 작전장교와 대대 선임하사관 그리고 부중대장과 전령이 면회를 와 주었다. 참으로 힘든 면회길이다.
 「투이호아」로부터 퀴논까지 꽤나 먼 길이었으며 특별히 헬리콥터를 동원해야 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대장의 특별 배려로 최 소위를 보러 온 것이다.
 최 소위가 부상당한 후에 대대장 오 중령은 잠도 제대로 못자면서 원통해하시다가 가보라고 해서 왔다고 전했다.
  최 소위는 너무나도 황송하고 너무나도 감격스러웠다.
 부중대장 정 중위는 최 소위를 덮어놓은 하얀 시트를 벗기고는 상처를 더듬어 보았다. 복부의 명치에서부터 국부 바로 위에까지 쨌던 배를 꿰매었고 오른팔 두 곳에 관통을 입었던 상처도 꿰매져 있었으며 양 다리는 발목에서부터 허벅지까지 쨌다가 꿰메고는 그 위에 회붕대를 감아 놓았다.  
  또한 국부는 파편 타박상으로 마치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 같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야말로 너덜너덜 찢기운 넝마조각을 연이어 기워놓은 듯한 형상이었다.
  최 소위는 와락 눈물이 솟구쳤다. 분하고 원통함이요, 뜨거운 전우들의 전우애, 그리고 상관들의 특별한 배려에 감격어린 눈물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면회를 온 대대장교들 그리고 전령도 한데 어우러져 눈물을 흘렸다. 모두들 목이 매여 서로 말도 주고받지 못한 채 눈물만을 흘렸다.
  병실 안은 조용해졌다. 이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 미군병사들은 숙연히 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대대에서 온 면회객들은 오래 지체할 수가 없는 몸인지라 그저 울음 섞인 몇 마디 주고받고는 발길을 재촉하여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자 한동안 멍하니 누워있던 최 소위는 전령이 가져온 본인이 관품을 끌러 보았다. 관품이라고 해 봐야 옷가지 몇 벌과 그동안 전투에서 찍어댄 사진들 이었다. 카메라가 손에 잡혔다. 「케논 대미S」로 반장씩 찍히는 카메라다. 최 소위는 전투 시 항상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녔다. 그래서는 장면 장면을 필름에 담았던 것이다.
 참으로 아끼던 카메라다. 마지막에 부상을 당하던 날에도 방탄조끼 왼쪽 호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그러던 그 카마라에 콩알만 한 파편이 뚫고 들어가 감겨있는 필름 한가운데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카메라가 없었으면 어찌 됐었을까? 그 파편은 여지없이 최소위의 왼편 가슴을 뚫고 들어가 심장을 꿰뚫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최 소위는 사랑스럽고 고마운 카메라를 어루만지며 소대원들의 생생한 모습들을 그려보면서 그동안 지옥 같았던 며칠 동안을 돌이켜 보았다.
  (“의지와 끈기로 내가 이렇게 숨을 쉬면서 살아있구나, 인간의 힘이란 때로는 어쩔 수 없는 경지에서 힘없이 쓰러질 때가 있는가 하면 때로는 강하게 그 역경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구나. 바로 이러한 힘이 내게도 있다는 것이 입증이 된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신이 내려주신 강인한 자신의 의지력에 감사드리며 하루속히 일어나 전지로 돌아가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최 소위가 정형외과 병동으로 옮겨진지 15일이 지나자 팔과 복부를 꿰매었던 실이 뽑혀졌다. 군의관이 실을 뽑으며 이제 장거리 여행도 가능하니 언제라도 귀국할 생각이 있으면 말하라고 하자 최 소위는 문득 집 생각이 났다.
  “하우 롱 타임 겟웰 어게인?”(언제쯤 회복이 될까요?)
  “어바웃 트리 몬스.”(약 3개월쯤 걸리지.)
 (“석달 정도란다. 석달만 참으면 다시 원대복귀해서 멋있게 또 한번 전쟁에 휘말려 봐야지.”)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어서 속히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렸다.
  변화 없는 최 소위의 퀴논 미군 후송병원 병동 생활은 연일 계속됐다. 걱정스러웠던 국부도 이제 정상화 됐음을 확인했다.
  최 소위가 부상을 당할 때 다행스럽게도 파편이 국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 영향으로 타박을 입은 국부는 마치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처럼 팅팅 부풀어 올랐던 것이다.
  약 보름정도가 지났을까? 부기가 가라앉아서 정상으로 되어가는 것 같았으나 생식능력이 매우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과연 이것이 제 기능을 할 것인지, 아니면 영영 성 불구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몹시 걱정됐다.
  그래서 어느 날 새벽 꺼져내린 자신의 국부를 손으로 자극해 보았다. 한동안 아무반응이 없던 그것은 서서히 고개를 들면서 힘이 들어갔다. 그리 실망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최 소위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 쉬었다.
  퀴논 미군 이동외과병동의 아침이면 군의관의 일일 검진이 있고 애교있는 간호장교 애디 중위가 가끔 곁에 와서는 아쉬운 것을 권했고 병동책임 하사관인 검둥이상사가 자주 찾아주며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면서 벗이 되어 주는 등으로 소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일같이 한가롭게 지내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생땀을 흘리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이겨내야 하는 때도 있었다. 그것은 으스러졌던 양쪽 다리의 뼈를 간신히 맞추어 회붕대로 고정을 시켜 놓았지만 움직일 수가 없는 다리인지라 회붕대 안에서 살이 점차 말라들어가 회붕대를 감을 때는 빽빽하게 감아 놓았지만 며칠이 지나 살이 빠져 헐렁하게 되자 다리의 뼈는 또 다시 휘어져버리는 것이다.
  X레이 촬영결과 이 휘어진 다리의 뼈를 곧게 하려면 마취도 하지 않고 미군 군의관들이 달려들어 양팔과 머리 그리고 허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움켜쥐고는 휘어진 뼈를 곧게 펴는 것이다. 이때마다 최 소위는 젖 먹던 힘까지 내면서 이 아픔을 참으며 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여유 있는 미군 군의관들은
 “엄마 아파 —엄마 아파” 라고 하면서 놀려대고 했다.
 이들 미군들은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제2사단에 근무한바 있는 자들로 한국말을 조금씩은 했다. 병상에서의 시간은 지루한 나날을 보내면서 자꾸만 흘러가 어느새 26일이 지났다.
  그러자 이제는 혈관과 직접 연결되어 있는 닝겔 호스를 빼며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왼쪽 팔을 움직여 보자 팔굽이 저려왔다.
  최 소위는 이제 전투에서 악전고투하는 것이 아니라 투병을 하며 자기 자신을 이겨내느라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거추장스러웠던 닝겔 호스를 빼고는 스프 등을 입에 대보았지만 입맛이 전혀 나질 않아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본 군의관은 매우 걱정을 하면서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했다. 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자 군의관은 펄쩍 뛰면서 복부를 수술한 후라 앞으로 몇 개월간은 자극성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주의를 시켰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먹지 못하자 하루저녁에는 병원 주계병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하와이 교포2세가 손수 요리한 것이라고 하면서 쌀밥에 고기찌게를 갖다 주면서 먹으라고 했다.
  최 소위로서는 참으로 고마웠고 또한 민족의 핏줄이란 어쩔 수 없이 통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면서 오랜만에 배불리 맛있게 저녁밥을 먹었다. 최 소위의 상처는 시간을 요하는 것이다. 회붕대를 감아 놓은 양 다리의 뼈가 하루속히 굳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제는 상처가 곰기지 않도록 페니실린과 마이신 등, 항생제 주사와 약을 복용하는 것만이 치료방법이다.
  날이 갈수록 식사도 때를 맞추어 조금씩 양을 늘려가며 먹을 수 있게 됐고 간호장교의 부측을 받으며 휠체어에 간신히 옮겨 타고는 병실 바깥 공기도 마시곤 했으나 무료한 나날이 흐르며 낮과 밤의 구분 없이 주로 침대에만 누워 있으려니 엉덩이에 진물이 나고 흠집이 생겨났지만 회붕대를 감아 놓은 몸이라 옆으로 돌아누울 수도 없고 엎드릴 수도 없는 고통 속에 지루한 나날이 더욱 지겹도록 최 소위를 괴롭혔다.

  1966년 6월 10일. 최 소위에게는 참으로 보람되고 영광된 날이었다. 해군 참모총장의 월남 방문을 계기로 최 소위에게 무공훈장이 수여됐다.
  많은 미군병사들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뼈만 남아 앙상한 최 소위가 입고 있는 푸른색깔의 환자복 가슴팍에 충무무공훈장이 달려졌다. 병원 침대위에서 받는 훈장이라 브라스밴드가 쿵쾅거리는 요란한 수여식일 수는 없으나 엄숙한 분위기는 최소위로서는 영원히 잊혀 질 것 같지가 않았다. 훈장수여가 끝나자 간호장교 중위는 최 소위에게로 와서 “콩그레츄레이션”하며 축하해 주자 사방에서 미군 병사들은 축하의 찬사를 보내 주었다. 잠시 영광된 순간(?)이 지나고 또 다시 무료하고 지루한 이틀이 지났다.
  처음 후송당시 군의관의 말에 의할 것 같으면 약 3개월 정도면 원대 복귀할 것이라고 했었으나 뼈가 잘 굳어지질 않아 부스러진 다리뼈를 제거하는 등 재수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약 1년 이상은 치료를 요한다고 했다. 참으로 예상 밖의 일이었다. 이 얘기를 들은 최 소위는 더 이상 월남에 있다는 것이 지겹게 싫어졌다. 귀국을 하면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고, 전우들도 있으며 새로운 기분으로 상면하게 될 아내도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더욱 더 귀국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곳 퀴논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양일간에 걸쳐 필리핀과 오키나와 미국기지로 운항하는 환자 수송용 비행기 편이 있어 최 소위는 귀국수속을 해 달라고 군의관에게 요청하고는 귀국준비를 서둘렀다.
  귀국준비라고 해야 별 것이 없었다. 그간의 임상기록카드와 X레이사진 그리고 세면도구를 챙기는 일뿐인 것이다.
  남들은 귀국할 때 TV, 냉장고, 다리미 등을 가져가려고 준비한다고 들었지만 지금의 최 소위로서는 빈 몸에 뼈가 으스러진 양 다리에 회붕대를 감고 꿈틀거리는 변신이 되어 귀국하는 것이다.
  전생에 무슨 인연을 맺었기에 이 월남 땅에서 살과 뼈를 떼내어 놓고 피를 쏟고 죽어간 전우들과 부하들을 남겨 놓고 한 많은 원한을 간직한 채 출국 시에 그렇게도 감격에 벅찼었던 청년 장교로서의 꿈을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이제 월남 땅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떠나올 때 요란하고 화려했던 것과는 달리 귀국할 때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귀국길에 오른 것이다. 환자 수송용으로 꾸며진 C-140 수송비행기의 프로펠러 소리도 요란한 가운데 최 소위는 들것에 실린 채 월남 퀴논 비행장을 이륙했다.
  미우면서도 정이 들었던 산하, 사나이 기개를 마음껏 부려보았던 이곳, 이제 그 정글과 들판과 늪지대, 동굴과 야자수 밑 그늘, 그리고 다시는 보지 못할 월남의 꽁가이인 예쁘고 정들었던 랭과도 영원히 작별을 하고 떠나가는 것이다.
  비행기 안에는 모두가 들것에 실려 몸을 동여매고 있는 미군 부상병들로 꽉 차 있었다. 중환자는 기내 간호장교가 곁을 떠나지 않고 닝겔과 수혈병을 조절하면서 간호를 했다.
  비행기가 인도지나 해상을 날고 있는 동안 최 소위의 계속되는 흥분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았으며 눈에서는 서글픔의 눈물이 하염없이 두 뺨을 적시며 흘러내렸다.
  지루하게도 오랜 시간 나는 비행기 창 박으로 푸른 초원의 대지가 시야에 들어오면서 비행기는 필리핀 상공에 접어들더니 크라크 미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크라크 비행장에는 들것에 들려 내려지는 부상병들에게 일일이 손을 흔들어 주며 위로해 주는 미 공군부인회 회원들이 환영 차 나와 있었고 미 공군 브라스 밴드가 「승자의 행진」 이라는 팝송을 연주했다.
  과연 승자일까 ? 아니다. 패자 중에 패자인 것이다. 목발을 짚고 기우뚱거리며 걷는 자, 최 소위처럼 들것에 실려 옮겨지는 자, 양쪽 눈을 붕대로 감은 자, 이 모두가 승자일 수가 없는 것이다.
  「…센스코 마티니…」 밴드소리를 멀리 하며 깨끗하다는 느낌이 드는 필리핀 크라크 기지에서 환자 수송용 대형버스에 옮겨진 환자들은 후송병원으로 갔다.
  최 소위 등, 한국군 부상자들이 탄 버스에는 비둘기부대에서 파견 나온 군의관이 동승하여 부상병들을 격려하며 위로해 주었다.
  널따란 대지를 파란 잔디로 꾸며 말끔하게 단장된 병원 뜨락에 버스가 멈추자 경환자, 중환자, 내과, 외과 등으로 분리가 되어 각각 해당병동으로 옮겨졌다.
  월남 야전병원의 콘셋트에서 생활하다가 대형빌딩으로 지은 병실로 옮겨지니 마치 판잣집에서 양옥집으로 옮겨진 기분이었다.


  병실에는 적십자 배지를 단 군인 부인회 봉사반원들이 침대 시트를 깔아주며 먹을 것을 날라다 주는 등 분주하게 열심히들 부상자들을 간호해 주었다. 저녁에는 영화를 상영해 주었고 저녁식사 후에는 청년 적십자 단원들이 기타를 연주해 주면서 흥겨운 노래 등을 불러 환자들을 위로해 주곤 했다. 삭막했던 월남의 야전병원에서 이곳 필리핀 병원으로 옮겨지니 최 소위로서는 비록 몸은 쑤시고 아프지만 마치 별천지에라도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월남으로부터 이곳에 도착하던 날 비행기 여행에 시달렸던 탓인지 상처가 욱신거리며 몹시 아프고 식욕마저 없었으며 열이 매우 높더니 하루가 지나자 곧 정상적으로 되돌아 왔다. 이곳에 오는 한국군 부상병들은 중환자들로서 이제는 월남에서 더 이상 값어치가 없어져 한국으로 보내지는 부상병들 만이었다.


  부상병들은 한국행 비행기에 인원이 채워질 때까지 먼저 온 부상병들과 함께 대기하여 있다가 한데 모아 후송시키고는 했었으나 미군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르르 몰려 왔다가는 떠나곤 하여 어느 때는 텅빈 병동에 최 소위 혼자 누워 있을 때도 있었다. 최 소위가 필리핀으로 후송되어 온지 일주일이 되는 날 한국군 부상병들이 많이 후송되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최 소위가 있는 병동에는 아무도 배치가 되질 않아 최 소위는 어느 부대 소속대원들이 후송되어 왔나 하고 몹시 궁금했다.
  그리하여 최 소위는 적십자 부녀봉사 대원에게 혹시 후송된 부상자들 중에 청룡부대 대원이 있나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자 그는 나갔다 오더니 한국군 9명이 후송되어 왔는데 청룡부대 대원 1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 주었다.
  최 소위는 그 말만 들어도 흥분할 정도로 반가웠다. 그동안 부대소식이 너무나도 궁금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다시 가서 청룡부대 대원 소속을 좀 알아봐 주시오.”
 라고 간청하자 40대쯤 되어 보이는 부녀회 봉사 대원은 “예스”하면서 갔다가 잠시 후 종이쪽지에 적혀진 것을 가져다주었다. 「청룡부대 제2대대 6중대 제3소대 이정일 병장」 이라는 쪽지를 들여다보던 최 소위는 무의식적으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려고 했다. 달려가야만 했다. 달려가서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동안의 소식을 물어봐야했다. 그동안의 소식이 몹시도 궁금했고 너무나도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러나 마음뿐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니 이를 어쩐담. 그야말로 환장할 노릇이다. 그는 비록 3소대원이었지만 최 소위는 무척 좋아했다.
  내 중대원이 부상을 당해 바로 옆 병동에 와 있는데도 가볼 수 없는 몸이라니!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침대에 나란히 누워 끙끙대기만 하다니! 최 소위는 안절부절 상기된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그러자 안타까운 모습을 보던 봉사대원은
  “지금 환자가 몹시 아프니 내일 만나볼 수 있도록 주선을 해 주겠다.”
 고 하며 파란색의 눈동자를 굴리며 자기도 몹시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위로해 주었다.
  엎치락뒤치락 지루한 밤을 지새운 최 소위는 아침 군의관의 회진 시 간호장교에게 옆 병동에 있는 한국군 해병대 대원을 좀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지금은 치료중이라 안된다고 했다.
  정오가 되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얼마 안 되어 병실 문이 열리면서 머리에 온통 붕대를 감고 목발에 몸을 겨우 의지하고는 기다시피하면서 이정일 병장이 병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야 ! 정일아!”
 최 소위는 몸을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서 고개만 쳐들고 병실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들어오고 있는 이 병장을 향해 소리쳤다.
  이 소리에 병동안의 미군 병사들이 시선이 모두 최 소위에게 쏠렷다.
  “정일아 임마 너 어떻게 된거냐?”
  “소대장님.”
 이 병장은 최 소위가 누워있는 침대에 쓰러질 듯 기대고는 엉엉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했다. 최소위도 이병장의 손을 꼭 붙들고는 같이 흐느껴 울었다.
  한동안 부등켜안고 흐느껴 우는 모습을 미군 병사들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야말로 최 소위와 이 병장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뜨거운 전우애의 눈물이여 해후의 정에 폭발된 눈물이다.
  어느 형제 못지않은 이들의 뜨거운 상봉이었다.
 이역만리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이 필리핀 땅에서 한사람은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는 신세요, 또 한사람은 머리에 온통 붕대를 감고 잘 걷지도 못하며 목발에 몸을 겨우 지탱하는 신세가 된 가련하고도 처량한 이들이다.
  “야 ! 정일아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말이다.”
 최 소위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되물었다.
  “소대장님은 어떻습니까? 다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니지요? 좀 보여 주십시오.”
  “응? 다리, 내 다리? 이봐 이렇게 붙어 있잖아.”
 최 소위는 자신의 몸을 덮고 있는 하얀 시트를 재껴 보여주며 말을 했다.
  “아! 정말 다행입니다. 붙어있군요. 우리들은 모두가 소대장님 양 다리가 잘렸다고 들었습니다.”
 라고 하며 이 병장은 눈물을 흘렸다.
  “있다 있어. 이렇게 붙어있다구. 그런데 넌 어디서 당했냐?”
  “소대장님이 작전을 벌렸던 쇼강의 40고지에서 당했습니다. 부비트랩을 건드렸습니다.”
  “그곳이라면 우리 1소대가 한 달이나 주둔했던 곳이 아니냐?”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곳에서 당했습니다.”
  “딴 대원들은 어떻게 됐지?”
  “일개 분대가 아침에 정찰을 출발해서 산 하록에 내려왔을 때 앞 사람이 건드린 부비트랩에 저하고 이명기 상병하고 다쳤는데 전 머리하고 다리를 다쳤고 명기는 팔에 부상을 입었는데 경상이라서 여단 후송병원으로 갔습니다.”
  “음 그랬구나, 다행이다.”
  “하여간에 잘 왔다. 그동안 부대소식 좀 들려다오.”
  “소대장님께서 다치신 다음 여단장님과 대대장님께서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서는 여단장님께서 직접 헬리콥터로 현장까지 가 보셨고 대대장님께서도 권총을 빼들고는 진두지휘하시면서 모조리 쑥밭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래 죽은 사람도 많았겠구나.”
  “말씀 마십시오. 퓨햅 마을은 작살났습니다. 어찌나 악이 돋치던지 개새끼까지 모조리 없애버렸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소대장님께서 이만하길 참으로 다행입니다.”
  “음 그랬구나, 나 말고도 다친 사람이 꽤 될터인데.”
  “네 , 향도하사관님은 함께 후송되셔서 잘 아실태고 파견됐던 형사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대원들은 그리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통신병은 볼에 파편 관통상을 입었지요. 그리고 그 마을 뒷산에서 수류탄 2박스하고 쌀 한 트럭이 나왔습니다. 꽤 큰 전과지요. 왜 그놈들 수류탄을 던지고 도망하던 베트콩들 말입니다. 죽어 자빠진 것을 난사해서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만들었습니다.”
  “그건 좀 너무 했구나. 이미 죽은 사람에게.”
 최 소위는 이 병장의 자세한 상황 설명에 한동안 흥분했다가는 잠시 허공을 바라보며 그 악몽 같았던 당시를 회상하는 듯 했다.
  “그래 그동안 얼마나 고통이 심했습니까?”
  “날마다 지옥이다 지옥. 이렇게 꼼짝 못하고 누워만 있으려니깐 미치겠구나 미치겠   어.”
  “그러실 거예요.”
  “우리 소대원들은 그 후 다 무사하냐?”
  “예, 그동안 별다른 작전도 없었고 그저 정찰 등으로 보냈기 때문에 다친 대원들은    없었습니다. 그동안 소대장들이 좀 바뀌었고 지금쯤은 캄란만으로 이동이 끝나서    편히 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지금쯤 이동이 완전히 끝났겠지. 내가 부대이동 7일전에 당했으니까, 참   나도 어지간히 재수 없는 놈이야. 남들은 전 후방 교대를 해가며 근무하는데 우리   만 계속 전방 근무하다가 마지막으로 후방으로 빠지려는데 이 모양 당했으니 말이   야. 캄란으로 빠졌더라면 동바틴 마을에 나가서 꽁가이들하고 재미있게 지내다가    귀국선탈 것인데 말이야….”
  “좋지요. 거기만 갔었더라면 소대장님께서는 월남어도 잘 하시겠다 재미 좀 봤을    거예요.”
  “재미야 뭐 별다른게 있겠냐마는 예비대로 한번 쉬지도 못해보고 직사하게 고생만   하다가 이렇게 당하고 나니 정말 억울하고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하는 이야기지.    남들은 다리미다 냉장고다 해서 돈도 벌어간다는데 말이야.”
 최 소위와 이 병장은 지난날 전투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질 줄 몰랐다.


 그날로부터 둘이는 하루에 한 번씩 하는 검진과 식사시간 이외에는 서로 함께 지냈다. 가끔 답답하면 휠체어에 간신히 옮겨 태운 최 소위를 이 병장은 쩔룩거리는 다리로 휠체어를 밀면서 잔디가 깔려있는 정원 숲속을 거닐기도 하고 언덕 밑으로 멀리 보이는 크라크 시가지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시내에 내려가 보지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다. 그것도 지루하면 군 부인회 봉사대원에게 부탁하여 기타를 얻어다가 서투른 솜씨로나마 최 소위는 「아리랑」등 민요를 퉁기면서 미군 병사들의 시선을 모으기도 했으며 미군 간호장교들과 대화도 나누며 필리핀에서의 병동생활을 보름 남짓 보냈다.


  대형 버스에서 환자수송용 비행기에 옮겨진 한국군 부상병들은 맹호부대 등 육군 병사가 9명, 해병대가 이병장과 최 소위 2명으로 모두 11명 뿐이고 나머지는 미군 병사들로서 비행기 안에는 중환자들로 이젠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하지 못할 병사들인 것이다. 혹자는 눈이 먼 사람 또는 팔 다리가 끊겨져 나간 사람 등, 그야말로 전쟁 폐기물들 인양 싶은 사람들로 비행기 안은 꽉 찼다. 비교적 경환자들은 의자에 앉았으며 중환자들은 비행기 내부에 부착되어 있는 들것에 누워 있었다.


  비행기는 전송해주는 필리핀 크라크 공군기지 공군들의 브라스 밴드 소리가 희미해지며 4개의 프로펠러의 요란한 괭음을 내면서 서서히 활주로를 벗어나 일로 동북방향으로 날랐다.
  비행기 안에는 환자들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하여 미공군 간호장교가 탑승하고 있었다.
  참으로 최 소위는 별별 경험을 다 하는 것 같았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간다는데 더군다나 월남에서 고국으로 돌아간다는데 회붕대로 양 다리를 감싸고 파란 색깔의 환자복을 걸친 채 세면도구 주머니 한 개가 덩그러니 들것 머리맡에 걸려있을 뿐 양다리 부분과 가슴에는 흔들리지 말라고 안전벨트가 꽉 조여 있는 것이다.
  월남에 가면 돈을 벌어 온다는 이야기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비참하리만치 초라한 최 소위의 귀국 모습이다. 아니 최 소위뿐만 아니라 비행기 안에 있는 부상병들의 모습이 모두 다 그러했다.


  월남에 가서 돈은 못 벌어 올망정 몸이나 성해서 돌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절뚝거리더라도 걸어서 갈 수 있다면 좀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최 소위는 침대에 반듯이 누워 안전벨트로 꼭꼭 묶여서 한국으로 가고 있다. 오직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오른쪽 팔뿐이다. 그리고 바싹 마른 입술의 입과….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대만의 대북비행장에 기착한 비행기는 약 한 시간가량 급유를 받고는 또 다시 날아 이번에는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 비행장에 기착했다. 비행기가 도착하자 뒷문이 활짝 열리고 앰브란스가 달려와 미국 본토로 갈 미군 병사들을 나르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미군병사들은 다 빠져 나갔다. 비행기 안은 썰렁해졌고 한국군 병사 11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 한국군 병사들만 태운 비행기는 오키나와 상공을 선회하면서 방향을 틀어 한국을 향하여 또 날기 시작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져 창밖은 캄캄한 암흑 세계였다. 얼마동안을 날았는지 미군 위생병은 이제 한국 영공에 들어왔으며 곧 대구 동천비행장에 도착할 것이라고 한다. 대구라? 대구면 서울과 거리가 꽤나 먼 곳이 아닌가, 그러면 이 부상병들은 어디로 가게 된단 말인가. 해병대들은 진해병원이나 서울병원으로 간다던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흥분되기 시작한 최 소위는 목이 더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비행기는 상공을 선회만 하면서 착륙을 하지 않았다.
  비행기가 대구에 착륙하려고 했으나 기상상태가 좋지 못하여 대구 시내를 한 바퀴 돌고는 서울 김포공항으로 기수를 돌려 북상했다.
  부상병들 중에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는 병사들은 그렇게도 그리워했던 고국의 산하를 보려고 양쪽 창가로 다가가 창밖으로 시선을 모았다. 어둠이 깔린 조국의 산하! 그 얼마 만에 보는 것인가. 간간히 반딧불 같은 전등불빛이 시야에 들어 올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지 얼굴을 창에 바싹 갖다 됐다.


  지금 장병들은 그래도 파월당시에는 희망에 부풀었고 귀국 시에는 무엇인가 자랑스러운 일도 있을 것 같았으나 고작 병신이 되어 돌아 올 줄이야 그 누구인들 예칙이나 했으랴, 전쟁도 전쟁 같지 않은 소용돌이 속에서 지루하리만치 고생에 지친 그 값어치가 이렇게 불구가 되어 들것에 드러누워 귀국하고 있으니 그 억울하고 분함을 어디에 비할 것이며 그 울분을 어디에다 터뜨릴 것인가.
특히나 제1진들은 경험자들의 노하우도 전수받지 못했고 모든 것을 체험해 가면서 전투를 하다 보니 실수도 있었고 무모한 짓도 했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비행기 안에 있는 부상병들의 심정은 다 같이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 역사 이래 온갖 전쟁에서 희생된 수만 수백만의 부상병들의 심정이 다 이러 했으리라. 최 소위는 어렸을 때 6.25전란으로 인하여 목발을 짚고 아니면 양다리가 잘려나가 동료의 등에 업혀 이집 저집, 이거리 저거리를 다니며 구걸을 하다가는 울화통이 터져 울분을 터뜨리는 소위 땡깡을 피우는 상이군인들을 보아왔었다. 그러던 그 상이군인이, 오늘날 최 소위가 그렇게 된 것이다. 상이군인과 일반인이 구분되는 순간이란 아주 짧은 순간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빠른 총탄이 와 박히는 순간부터 상이군인이 되는 것이다. 누가 상이군인을 만들었는가. 전쟁, 그 더러운 전쟁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죽어갔으며 살아남은 상이군인이 되어 울분에 못이겨 땡깡을 부려야 했다. 최 소위 역시 마찬가지다. 부상을 입지 않았으면 상이군인이 될 리가 없다. 외국의 상이군인들은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우대를 받는다. 헌데 우리나라에서는 경원시되고 있다.


  그것은 6.25전란 이후 수많은 상이군인들의 생계대책이 미약했던 탓으로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거리로 뛰쳐나와 몸부림을 쳤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반사회인들이 볼 때 왠지 무섭고 겁을 내곤 한 것이 우리나라 실정이었던 것이다.
  최 소위는 비행기가 점차 서울쪽으로 가까이 오자 자신도 사회로부터 그러한 대접을 받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밤 9시30분. 비행기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며 김포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한동안 귀를 멍멍하게 했던 프로펠러 소리도 멈추고 뒷문이 열리며 수도육군병원 소속 군의관들이 비행기 안으로 들어와서는 침대 사이를 다니며 “수고했습니다.”라고하며 부상자들을 격려해 주며 미군들로부터 부상병들을 인계받았다.


  최 소위와 이 병장은 해군 위생병들에 의하여 들것에 옮겨져 해군 표시판이 붙어 있는 앰브란스에 실려져 김포공항 전용 옆문을 빠져 나와서 쏜살같이 달리며 싸이렌 소리를 요란하게 울렸다. “허! 이게 뭐람!” 아무리 쓸모가 없이 부상을 입고 돌아온 몸이기로서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피를 흘리고 몸까지 다쳐서 온 이들 용사들에게 필리핀에서처럼 브라스밴드에 꽃다발 환영은 못해 줄망정 따스한 말 한마디 없이 마치 귀찮은 짐짝을 구리듯 하니 이것이 그리던 고국의 인사인가 말이다. 위생병 1명과 앰브란스 운전병만이 이들 두명을 태우고 마치 밀수품 궤짝이라도 다루듯 남들이 볼 새라 몰래 공항 옆문을 통하여 빠져 나오다니. 그래도 공항에는 마중나온 장교 한명쯤은 있을 줄 알았다. 차가 그대로 달리자 섭섭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너무나 상상 밖의 일들이었다. 최 소위는 김포가도를 달리며 온갖 감회에 젖었으며 서글픈 자신에 대하여, 또한 이 땅의 차가움에 대하여 울컥 눈물이 솟아올랐다.


  (“이럴 수가 있을까?”)하기야 한참 파병이 계속되고 있는 이때에 부상병들이 귀국하는 모습을 일반국민들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파병가족들 뿐 아니라 파월이 될 병사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정부 측의 조치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보안을 해야 한다지만 막상 이렇게 서러움을 당한 부상병들은 이역만리 월남 땅에서 악전고투를 하면서도 우리네 따뜻한 조국이 있다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인데 막상 고국의 냉대에 부풀었던 흥분이 싸늘하게 식어지며 흘러내리는 눈물로 뺨을 적셨다. 앰브란스가 김포 가도를 달려 서울 시내로 접어들어 광화문 네거리를 통과할 때 번뜩 창밖으로 국제극장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본 최 소위는 더욱더 환멸을 느꼈다. 예전에는 광화문 거리를 버젓이 걸어서 다니곤 했는데 지금은 앰브란스 들것에 묶여 서울시내 한복판을 지나고 있지 않은가. 최 소위를 태운 앰브란스가 종로거리를 달리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네온싸인 번쩍거리는 거리를 쏘다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참으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과연 세계 한구석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인 젊은이들에게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알고 있는 자가 몇 명이나 있겠는가? 아마 아무도 생각조차 안하고 있으리라.


  최 소위는 자기 자신에게 참으로 전쟁이 가져다준 결과치고는 너무나 가혹한 처사라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를 내려다보며 하염없이 설움에 복받치는 눈물을 계속 흘렸다.
  이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귀신도 잡는다는 해병대 장교가 뭘 그리 울꼬, 마치 어린애 같이.”
 라고 말할지도 몰라도 서러움에 복받쳐 흘러내리는 눈물은 하염없었다.
요란하게 싸이렌을 울리며 달리던 앰브란스는 청량리 밖 답십리 해군병원에 도착 했다. 답십리 해군병원은 전매청 담배 창고였던 것을 병원으로 개조하여 쓰고 있기 때문에 모든 시설이 병원답지 못하고 불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곳은 병원이라고는 하나 창고에 침대를 놓아둔 상태였다.
병원 응급실에는 병원장 이하 군의관 그리고 군목이 대기하고 있었다. 대령인 병원장은 직접 지시를 하며 최 소위와 이 병장을 응급실 침실로 조심스럽게 옮겨 놓았다.
이들 최 소위와 이 병장은 참으로 기나긴 여행에서 돌아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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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국방일보 인터뷰] 해병대사령부 복지·전직지원실장 권영배 대령

    “전역 간부들 최고의 복지혜택은 취업” 복지·전직지원실장 권영배 대령 “전역 간부들에게 최고의 복지혜택은 취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단기 계약직, 기간제 근무가 아닌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정년...
    Date2014.07.22 Views2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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