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총격사건 공모혐의 이병 체포… “초소폭파 지시받아”
[동아일보] 해병대 총기사건을 수사 중인 군 당국은 가해자인 김모 상병(19)과 범행을 공모한 혐의로 정모 이병(20)을 6일 긴급 체포했다.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김 상병이 K-2 소총에 실탄을 장전할 때 정 이병에게 수류탄을 건네주면서 고가 초소를 폭파하도록 지시했다고 진술했고, 정 이병도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정 이병은 이를 실행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 정 이병, 수류탄으로 초소 폭파 모의
군 당국은 사건 당일 김 상병이 범행 직전 간이탄약고에서 훔친 탄약통에서 수류탄 1발을 꺼내 정 이병에게 건네주며 범행을 공모했다고 밝혔다. 김 상병이 상황실과 생활관을 오가며 소총을 쏘는 동안 정 이병은 수류탄으로 고가 초소를 폭파하도록 사전에 각본을 짰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정 이병은 당초 "김 상병이 총격을 하는 동안 생활관 입구 공중전화 부스 앞에 숨어 있었다"고 부인하다 뒤늦게 "김 상병 진술이 맞다"고 시인했다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군 관계자는 "김 상병이 총기와 탄약 탈취 전후에 정 이병과 계속 동행했고 정 이병이 수류탄으로 초소를 폭파하라는 지시를 받고 부근에서 서성거린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이병은 김 상병이 동료 해병들에게 총격을 가한 뒤 권혁 이병(20)에게 밀려 복도로 나오자 겁을 먹고 "못하겠다"고 말하며 김 상병에게 수류탄을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군 당국은 최근 두 사람이 "우리가 구타를 없애버리자. 함께 사고를 치고 탈영하자"는 대화를 나눴고, 정 이병도 이를 시인했다고 밝혔다. 사건 당일엔 김 상병이 "○○○을 죽이겠다"고 하자 정 이병은 처음엔 "그러면 안 된다"고 제지하다가 나중엔 "함께 죽이고 탈영하자"고 하는 등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 정 이병 아버지 "휴가직전… 이해안돼"
군 수사 관계자는 "정 이병이 부대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김 상병과 가까이 지냈다"고 말했다. 이런 정황으로 볼 때 가장 후임병인 정 이병과 '기수열외'라는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던 김 상병이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군 당국은 보고 있다.
정 이병은 올해 4월 자대에 배치됐다. 모든 신병은 적응 때까지 '관심병사'로 분류돼 특별관리를 받는다. 다른 관계자는 "정 이병도 김 상병처럼 부대 생활에서 갈등과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이병은 일부 혐의는 인정하면서도 실제 범행에 가담한 혐의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다. 정 이병의 아버지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들이 며칠 전 전화를 걸어와 8일 첫 위로휴가를 나간다며 좋아했는데 범행과 탈영을 공모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자대 배치 후 '훈련이 좀 빡세지만 견딜 만하다. 부대 생활에 별 어려움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며 "목사가 되려고 신학대까지 진학한 신앙심 깊은 애가 그런 엄청난 범죄를 공모했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총기 함께 훔쳤다" vs "사실 아니다"
군 당국은 김 상병이 사건 당일 정 이병과 함께 소초 상황실의 간이탄약고와 인근 복도의 총기보관함에서 각각 탄약과 총기를 훔쳤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정 이병은 김 상병의 총기 절취 행위를 도와줬거나 최소한 방조했을 것으로 군 당국은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정 이병이 군 조사에서 매우 불안해하며 자꾸 진술을 바꾸고 있다"면서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두 사람이 함께 총기와 탄약을 훔쳤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이병은 이 같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수류탄을 터뜨려 자살을 시도한 김 상병의 진술도 오락가락해 추가 조사 중이라고 군 수사 관계자는 전했다.
○ 상근예비역 옷에서 탄약통 열쇠 훔쳐
김 상병은 상근예비역인 김모 일병이 규정을 어기고 자신의 옷에 넣어둔 간이탄약고의 열쇠를 훔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송영선 의원(미래희망연대)이 입수한 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김 일병이 자신의 조끼 윗주머니에 간이탄약고 열쇠를 넣어둔 채 4일 오전 퇴근하자 김 상병이 이를 훔쳐 탄약고에서 실탄 75발과 수류탄 1발이 든 탄통을 절취했다.
김 상병은 사건 전날인 3일 오후 8시 반부터 10시까지, 김 일병은 4일 0시부터 오전 2시까지 각각 근무를 섰다. 김 일병은 관련 규정에 따라 근무를 끝낸 뒤 탄약고 열쇠를 상황실에 반납해야 하지만 이를 어기고 관행적으로 자신의 호주머니에 보관해왔고, 이를 눈여겨본 김 상병에게 범행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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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김 상병이 자신이 K-2 실탄을 장전할 때 정 이병에게 수류탄을 건네며 생활관 옆 고가초소를 폭파하도록 지시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정 이병이 고가초소 부근에 서 있었으나 김 상병이 쏜 총소리를 듣고는 두려움에 던지지는 못하고 돌려줬다"고 덧붙였다.
국방부 조사에 따르면 김 상병은 사고 당일 오전 10시∼10시20분께 상황실에서 총기와 탄약을 꺼냈고 김 상병은 11시40∼50분께 대원들을 향해 총을 쐈다.
총격 후 김 상병은 정 이병으로부터 수류탄을 건네받아 창고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또 "김 상병이 총기와 실탄을 탈취하기 전후에 정 이병이 동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다만 총기를 같이 훔쳤는지 여부는 서로 주장이 엇갈려 계속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