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5 11:56

귀국

조회 수 4291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오시는 어느 해병대 선배님의 수기중 귀국부분입니다.

배가 다낭항을 출발하고 몇 시간 후부터 다시 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멀미는 작년 월남에 올 때 보다도 더 심했다. 일년이 넘는 월남 생활에 심신이 많이 망가졌나보다....그래도 우리는 좋았다. 마냥 행복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그랬으리라... 그런 와중에서도 **이의 생각은 늘 머리 속 한편에 남아 있었다.
지금 **이와 같이 가는 거라면.... 며칠 후 갑자기 바깥 공기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살을 에이는 찬 바람이었다. 아~! 지금이 12월,한국에서는 지금 추운 겨울인 것을 잊고 있었다.
너무 추워 갑판에 나가 있을 수가 없었다.

1971년 12월 09일 드디어 배가 부산항에 들어섰다. 높은 갑판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항 제 3부두는 어마어마한 인파로 가득했고 한편에는 환영행사장으로 보이는 곳이 요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의 인기 연예인들은 다 동원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주월한국군중 처음으로 철수해 오는 부대이니 당연했다. 앞으로 계속해서 철수해 오는 부대들은 이런 대대적인 환영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뒤늦게 월남에 갈 때 그러했듯이...

 

포~1.JPG

 

포~2.JPG

 

포~3.JPG

 

행사장에 참석할 병력이 내려가고 우리는 배에 남아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배의 바로 아래 부둣가에 수많은 가족들이 나와 각종 피켓에 이름을 써서 들고 다녔고 또, 풍선에 이름을 써서 긴 실에 매어 갑판까지 올려 보내기도 하였다.
나는 선실로 내려가 잠시 후 내릴 준비와 월남서부터 갖고 온 PRC-25 무전기를 챙기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급히 뛰어 들어와, 야! ***, 네 이름이 씌여진 풍선이 올라왔어! 했다. 갑판으로 달려 올라갔다. 그러나 이런~! 장내 정리 헌병들이 사람들을 배에서 멀리 밀어내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그때 어떤 동기 하나가 내 이름이 씌여진 풍선이 있어 내려다보았는데 부모님 같더라, 그래서 너 이배에 있다고 악을 쓰고 손짓으로 알려 드렸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중에 들은 부모님 말씀이 그때 군인들이 밀어 내면서 모두 포항으로 갈 거니까 면회를 하려면 포항으로 가라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편찮으셔서 그냥 서울로 돌아 오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풍선을 띄웠을 때 갑판위에서 누군가가 내가 배에 있다고 손짓으로 알려 주어서 일단 안심하셨다고 하셨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모든 병력이 배에서 내려 부두에 집결했다. 지시 받은대로 무척이나 정들었던 무전기를 나를 찾아 온 보안요원에게 넘겨주었다. 그 무전기는 그 당시 미군이 사용하고 있는 최신형 무전기여서 특별 취급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6.25 때 쓰던 낡은 미제 무전기인 PRC-8, -9, -10 을 사용하고 있었다.

포항으로 가는 길은 작년에 월남으로 갈 때의 역순이었다. 기차로 포항역까지, 다시 트럭으로 포항 사단까지 가서 배치받은 병사에 여장을 풀었다. 여기서 일주일간 대기 후 전원 보름간의 휴가를 가게 된다고 했다. 아~ 드디어 이제는 그동안 여러번 속아왔던 휴가를 정말 가게 되었구나, 설마 이번에도 거짓말은 아니겠지??

우리는 갑자기 당하는 추운 기후에 적응하며 하는 일 없이 일주일이 가기만 기다렸다. 이틀이 지나자 입술이 트고 갈라지고 부어서 밥을 먹기가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래도 저마다 그리던 고향을 찾아갈 기대에 마음이 한 껏 부풀어 있었다. 그 일주일 대기하는 동안에도 월남에서 포악했던 3소대장은 각종 트집을 잡아 쫄병들 패기에 정신이 없었다.

출발 전날 부대배치 발표가 있었다. 9365xxx 상병 ***, 교육기지~! 내가 앞으로 제대할 때까지 근무할 곳은 진해였다.
해병들은 진해 신병훈련소를 수료하고 떠날 때 "다시는 이쪽을 향해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말을 농담 삼아 흔히 한다. 물론 나도 그랬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인가? 월남으로 가기전에 행사부대에 뽑혀 훈련소로 들어 온적이 있었는데 이젠 또 아예 근무를 진해에서 하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딜 가든지 군대생활은 비슷할 테니까...

다음날 드디어 입대후 첫 휴가를 출발하였다. 서울 쪽으로 갈 몇 명, 그러니까 월남에서 귀국박스를 같이 사용한 동료들끼리 생전 처음으로 고속버스로 경부고속로를 달려 보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때는 고속버스에 예쁜 안내양이 있었고 신문도 나누어 주고 사탕도 주고, 안내 방송도 했었다. 또 지금의 비행기 여행처럼 스위치만 눌러 안내양이 오면 물 한컵을 시키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또 그레이하운드라는 회사의 고속버스는 차안에 화장실도 있었다.

우리들은 서울역 뒤에 있는 서부역으로 가서 월남에서 부쳤던 귀국박스를 찾아 뚜껑을 열고 각자의 물건을 꺼내 갖은 후 다음날 동작동 국립묘지 **이의 묘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동작동 국립묘지....
다음날 나는 **이가 있을 동작동 국립묘지로 갔다. 안내소에서 위치와 묘비번호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곳에는 월남 전사자 묘역으로 수없이 많은 월남 전사자의 묘비가 있었다. 드디어 해병상병 김**의 묘 라고 새겨진 **이의 묘비를 보는 순간 가슴이 찡~ 하고 아려 왔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분노도 치밀었다.

곧 이어 월남 전우들이 모였다. 우리는 다함께 **이의 명복을 빌었다.
그날 우리는 매년 현충일에 이곳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그 약속은 제대 후 두 번 정도 지켜 지는 듯 하더니 그 후에는 지금까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나 혼자만 삼십년이 넘도록 매년 **이의 가족이 다녀간 흔적을 보아 왔을 뿐이다. 태진이의 가족이 다녀간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매번 나라에서 기본으로 해주는 꽃이 아닌 아름다운 꽃이 듬뿍 꽃혀있기 때문이다.

나는 삼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걸러 본 일이 없이 매년 현충일이면 **이를 찾는다. 나에게는 신기하게도 그때마다 하늘이 **이에게 갈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제대하기 전에도 그 때 특별 포상휴가를 받아서 **이한테 갈 수 있었으니까.... 처음 몇 년간은 묘비앞에 메모를 써 놓기도 하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ㅠ.ㅠ
그러던 중 삼십년이 지난 11월 26일(2000.11.26) 정말 극적으로 월남전우 230기 ***를 재회했다. 그래서 지난 현충일에는 신** 부부와 우리 부부 넷이서 **이 한테 갈 수 있었다.
우리는 오리지날 진로 소주(두꺼비)를 푸짐히 따라 주었다. **이가 매우 반가워 했을 것이다....!


TAG •

  1. No Image

    내인생의 스승 해병대

    어릴적 나의 꿈은 의사였다.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의사. 그러다 시간이 흘러「형사 25시」를 보며 정의를 수호하는 형사가 되고 싶었고, 형사는 곧 변호사로 바뀌었다가 다시 판사가 되기도 하였다. 그 이후로도 나의‘꿈’은 몇 번의 변화를 되풀이하다 결국엔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만한 감동을...
    Date2010.05.20 By운영자 Views2867
    Read More
  2. 어머니에게 간 이식한 해병

    해병대 청룡부대 윤보현 일병(병 1063기) “입대하기 전에는 철이 없어 부모님의 고마움을 몰랐는데 해병대에 입대해서 어머니 사랑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 간질환으로 투병 중인 모친에게 자신의 간을 이식해 효를 실천한 해병의 사연이 눈길을 끌고 있다. 해병대 청룡부대에 근무하는 윤보현 일병(병 1063기, 21세·극동대 ...
    Date2010.05.20 By운영자 Views3861
    Read More
  3. 해병의 역사 고대에서 근대까지

    ■ 특별기고 군사전문가 계동혁 해병대의 역사는 인류의 해양진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비록 현대적 의미의 해병대는 1600년대가 되어서야 등장했지만 해병 정신과 해병대의 개념은 이미 고대부터 존재해 왔다. 해병대의 등장은 다음의 2가지를 의미한다. 첫 번째는 해군이 등장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장거리 해상 ...
    Date2010.05.20 By운영자 Views3710
    Read More
  4. 선배 해병의 후배 사랑

    - 해병대 출신 김웅배 목사 현역시절 위문결심, 본격적 부대위문실천 - 백령도, 우도 방문 등 격오지 위문활동으로 해병대식 강행군 해병대 출신 목사가 해병대 사령부를 비롯한 해병대 격오지 부대를 방문하며 위문활동을 펼치고 있어 해병대 장병들의 사기를 복돋우고 있다. 선행의 주인공은 바로 해병대 병 348기로 전역...
    Date2010.05.20 By운영자 Views5495
    Read More
  5. 해병대관련 그림 몇장

    인터넷에서 찾아 저장해 두었던 그림 가운데 몇장 올려드립니다. 모두 작자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첫번째 그림은 월남전의 해병을 스케치한 그림으로 보이고 두번째 그림은 기습특공마크를 그린 부대기가 좀 아쉽기는 하지만...해병부대마크였으면 더욱 좋았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기습특공부대원이 추억록 제작시에 그린...
    Date2010.05.20 By슈퍼맨 Views4853
    Read More
  6. 한국인이라는 것 그리고 해병대라는 것

    2사단 본부대대 상병 김성철 (2007) 저는1985년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운이 좋게도 미국 국적이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외가 친척들이 어려서부터 미국에 이민을 가서 저 또한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10년 정도 살다가 부모님을 따라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귀국한 후 한국...
    Date2010.05.20 By운영자 Views3406
    Read More
  7. 스무살 새로운 도전

    1사단 포병연대 일병 황인성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싱그러운 풀 냄새가 나는 5월이 되어 어느덧 일병으로 진급을 하고 내 나이도 만 20살이 넘어 드디어 성년이 되었다. 성년의 날... 장미, 향수, 그리고 달콤한 키스를 연인에게 주는 날. 이제 진정으로 성인이 되는 사람에게 축하와 격려를 해주는 날이다. 하지만, ...
    Date2010.05.20 By운영자 Views3036
    Read More
  8. 천자봉구보

    춥고 배 고프고 졸립던 시절을 회상하며......... 보병은 3보이상 구보입니다. 훈련소에서는 행군하는 것 이외에는 걸어다니지를 않았고, 쉴 때도 앉아서 쉬지 못하고 서서 쉬었는데 그래도 진해훈련소 구보의 하이라이트는 천자봉 구보입니다. 천자봉을 진해훈련소에서 보면, 정상에 하얀 글씨로 "해병혼"이라고 표시되어 ...
    Date2010.05.24 By운영자 Views4547
    Read More
  9. 이사진을 기억하나요?

    그때 그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그 사진을 들고 노무현대통령을 조문한 해병중위입니다.
    Date2010.05.24 By운영자 Views4528
    Read More
  10.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 이영주 해병준장

    이영주 해병준장 우리는 평소 드라마나 스포츠를 즐겨본다. 여기에 극적인 변화나 반전이 없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세상사 역시 반전의 묘미가 있어 더욱 살맛 나는지 모른다. 70년대 고교야구는 프로 스포츠 못지않은 큰 인기를 누렸다. 그 인기의 요소 중 하나가 역전승이었다. 그것도 9회 말 투 아웃에 펼쳐지는 역전...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3368
    Read More
  11. No Image

    해병대의 여전사들!

    해병대 4기 해병공수 123차 첫 자격강하를 마치고 공수교육동기들과 철모에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 해병대 여군장교 1호 한경아대위 1사단 71대대 소대장 한진영 소위(2중대 2소대장)가 소대원과 함께 암벽 레펠을 하고 있다. 해병대 최초의 해외파병 여군 허정은(28세, 사후98기)대위 헌병대 여군장교 이수연 소위(해군사관...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6442
    Read More
  12. No Image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 대대장님

    다시 보고싶은 22대대장 박호철 대대장님 - 해병대CD中에서 하교214기 이동원 긴 훈련소 생활 6개월을 마치고 실무부대에 처음 왔을때우리 부대는 난리가 났었다. 1992년 0월, 000지역으로 상륙기습훈련을 위해 해상이동을 하던 0중대가 소용돌이를 만나 보트가 뒤집히는 바람에 소용돌이에 휩쓸린 해병대원 2명이 파도에 휩...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17776
    Read More
  13. 쏟아지는 총탄에 멈춘 기관차… 장단역 시간도 거기서 멈췄다

    밀려드는 중공군 목숨바쳐 막아낸 해병대 776명 젊음도 함께 흘러 1000여 개의 총탄 자국, 무참히 일그러진 바퀴… 22일 오전 경기 파주시 임진강 통일대교 앞. 육군 제1사단의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 검문소를 지나며 임진강 왼쪽 자유의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 옆에 장단역 증기기관차가 전시돼 있었다. 1950년 12월 31...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3780
    Read More
  14. 귀국

    ★ 월남전에 참전하고 돌아오시는 어느 해병대 선배님의 수기중 귀국부분입니다. 배가 다낭항을 출발하고 몇 시간 후부터 다시 멀미에 시달려야 했다. 이번 멀미는 작년 월남에 올 때 보다도 더 심했다. 일년이 넘는 월남 생활에 심신이 많이 망가졌나보다....그래도 우리는 좋았다. 마냥 행복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4291
    Read More
  15.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 펌

    In memory of my fallen comrade of 2nd ROK Marines Brigade (Blue Dragon), Whom my unit served with was part of. Park--Kim--Lee, and many others whose names I'll never know. But, I'll never forget. Sub Unit One, 1st ANGLICO, USMC." "나와 같이 소속되어서 싸웠던 대한민국 해병대 청룡부대의 내 전우들을 추...
    Date2010.05.25 By운영자 Views3369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22 Next
/ 22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