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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밀리터리스토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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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전차상륙함(LST) 문산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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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5-06-17T20:26:54+09:00</published>
		<updated>2025-06-17T20:27:16+09:00</updated>
		<author>
			<name>관리자</name>
		</author>
		<summary type="text">장사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039;장사리, 잊혀진 영웅들&#039;을 보신 분들이라면 &#039;문산호&#039;라는 상륙함을 알고 계실 것이다. 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있는 장사상륙작전 기념관은 당시 상륙함인 문산호를 실물 크기로 재현해 조성되어 있다. ▲장사상륙작전기념관 사진 임영식기자 전차상륙함(Landing Ship Tank) 문산호는 국가보훈부가 매월 선정하는‘2022년 9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문산호는 6‧25전쟁이 발발하...</summary>
	<content type="html">&lt;p&gt;&amp;nbsp;&lt;/p&gt; &lt;p&gt;장사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amp;#39;장사리, 잊혀진 영웅들&amp;#39;을 보신 분들이라면 &amp;#39;문산호&amp;#39;라는 상륙함을 알고 계실 것이다.&amp;nbsp;경북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 있는 장사상륙작전 기념관은 당시 상륙함인 문산호를 실물 크기로 재현해 조성되어 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장사상륙작전_1454.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959/793/f1ea905ff196cc60a828439368e3c5c9.jpg&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장사상륙작전기념관 사진 임영식기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전차상륙함(Landing Ship Tank) 문산호는 국가보훈부가 매월 선정하는&amp;lsquo;2022년 9월의 6‧25전쟁영웅&amp;rsquo;으로 선정되기도 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문산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해군에 동원되어 묵호경비부 대원 철수 및 복귀 작전, 여수철수작전, 장사상륙작전 등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장사상륙작전 당시 태풍의 영향으로 인해 해안에 좌초되어 적의 집중 공격에도 불구하고 작전 임무 수행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선장 황재중과 선원 10명이 전사하였고 황재중 선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 10명의 선원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추서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문산호는 본래 미국 인디애나주의 제퍼슨빌(Jeffersonville) 선박회사가 설계한 전차상륙함으로, 40mm 쌍열포 2문, 40mm 단열포 4문, 20mm 포 12문 등을 탑재한 군함이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43년 9월 22일 함명 &amp;lsquo;엘에스티(LST)-120&amp;rsquo;로 취역 후, 1946년 1월 7일 퇴역시까지 태평양 함대에서 사이판과 티니안 전투 등에 참전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6‧25전쟁 개전 당일 해군 묵호경비부에 징발되어 묵호-포항 간 철수 및 복귀 병력을 수송했다. 1950년 7월 27일에는 여수철수작전에 참가하여 백두산함의 엄호 아래 이응준 소장의 병력 600여 명과 차량 30여 대를 진해로 수송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1950년 9월 14일 문산호는 경북 영덕의 장사동 해안에 상륙할 육군 독립 제1유격대대 수송에 참여했다. 841명을 태운 문산호는 부산항을 떠나 미군 함정의 안내로 15일 새벽 5시 장사동 근해에 도달하여 상륙부대가 태풍에 의한 기상악화로 적의 집중 공격에도 불구하고 상륙을 완료했으나, 문산호는 격심해진 풍랑으로 해안에 좌초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그 후, 문산호는 1997년 3월 6일 장사동 해안에서 해병대 수색대원에 의해 바닷속에 묻힌 채 발견되었고, 2020년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으로 탈바꿈해 6‧25전쟁의 아픈 역사를 알리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문산호 복사.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959/793/889a5131076d10bda8e7c704a6ff0679.jpg&quot;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국가보훈부 2022년 9월의 6.25전쟁영웅 전차상륙함(LST) 문산호 포스터&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content>		<category term="문산호"/><category term="장사상륙작전"/>	</entry><entry>
		<title>미군 제8240부대 유격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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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25-06-17T20:01:45+09:00</published>
		<updated>2025-06-17T20:01:45+09:00</updated>
		<author>
			<name>관리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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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미군 제8240부대 유격대 (1951.7.~1953.8.) 미군 제8240부대 유격대는 국가보훈부 2025년 2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부대로 6‧25전쟁 당시 미군, 국군 장교 그리고 한국인 지원자들로 구성된 비정규부대로서 북한 후방지역에서 정보수집, 포로획득, 보급로 파괴 등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수많은 작전을 수행했다. ㅇ 1950년 10월, 중공군의 개입 이후 전세는 아군에게 불리해졌고 유격부대 편성의 필요성을 인식한 미 제8군 작전참...</summary>
	<content type="html">&lt;p&gt;&amp;nbsp;&lt;/p&gt; &lt;h3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trong&gt;미군 제8240부대 유격대&amp;nbsp;&lt;/strong&gt;(1951.7.~1953.8.)&lt;/h3&gt; &lt;p&gt;미군 제8240부대 유격대는 국가보훈부 2025년 2월의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부대로&amp;nbsp;6‧25전쟁 당시 미군, 국군 장교 그리고 한국인 지원자들로 구성된 비정규부대로서 북한 후방지역에서 정보수집, 포로획득, 보급로 파괴 등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수많은 작전을 수행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미군제8240유격대 복사.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953/793/06d0a85976ad41fc794cf70522b78cfa.jpg&quot; /&gt;&lt;/p&gt; &lt;p&gt;ㅇ 1950년 10월, 중공군의 개입 이후 전세는 아군에게 불리해졌고 유격부대 편성의 필요성을 인식한 미 제8군 작전참모부는 38도선에서 소규모 상륙작전을 통해 북한군과 중공군을 분산시켜 유엔군의 부담을 줄이고자 유격부대 운용계획을 세웠다. 이에 따라 서해안 도서지역으로 철수한 인원들을 중심으로 첩보 수집, 후방교란작전 등에 투입하기 위해 1951년 1월 중순 미 제8군 예하에 서해안 유격군사령부 윌리암 에이블(William Able Base) 기지를 창설했다. 이후 적 전선 후방의 유격대 운용에 대한 관할권이 극동군사령부로 이관되면서 같은 해 7월 26일에 미 극동군사령부 산하 제8240부대를 창설하였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ㅇ 휴전 무렵에는 동‧서 해안 일대의 작전을 담당하는 32개 유격대 2만여 명과 공중 침투를 통해 북한 내륙에서의 유격전을 수행할 목적으로 창설한 제1공수유격연대 등이 활동하였다. 휴전 후 한‧미 협약에 따라 1953년 8월 국방부 산하 제8250부대로 재편 후 육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58년 4월 창설된 육군 제1전투단(현, 제1공수특전여단)의 모체가 되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ㅇ 유격대는 주로 소대급 이하의 소규모 작전을 통해 적 후방을 교란하였다. 총 4천여 회가 넘는 작전을 통해 수많은 적 병력을 사살, 교량 및 북한군 병영시설 파괴, 기관차 및 트럭 등 다수의 적 장비를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일부 유격대원은 북한에 침투하여 첩보 수집임무를 수행하였으며 1953년 1월부터 7월까지 대한민국에서 수집된 첩보 중 약 8%에 해당하는 정보를 수집하였다.&lt;br /&gt; &amp;nbsp;&lt;/p&gt; &lt;p&gt;&amp;nbsp;ㅇ 당시 북한은 유격대의 활동에 많은 부담을 느꼈으며 서부 내륙방어를 위해 약 2만여 명 이상의 병력을 해안경계에 배치하였다. 결과적으로 북한군 병력이 전선에 집중되지 못하도록 분산하는 효과가 있었다. 6‧25전쟁 중 조국을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미군 제8240부대 5천여 명에 달하는 유격대원이 전사하는 등 위대한 헌신이 있었기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대한민국 정부는 6‧25전쟁 중 수많은 작전에서 공적을 세운 65명의 대원들에게 무공훈장(충무무공훈장 25명, 화랑무공훈장 40명)을 수여하였으며 국방부에서는 비정규군(켈로부대, 미군 제8240부대, 6004부대, 영도유격대 등)으로 활동하였으나 공로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을 찾는 사업을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하였다. 2024년 12월 공로금 지급신청 기간을 연장하는「6‧25 비정규군 보상법」이 개정되어 2025년 4월 1일부터 2026년 3월 31일까지 추가로 신청할 수 있다.(6‧25비정규군공로자 보상심의위원회, 02-6424-5502~5)&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category term="8240유격대"/><category term="전쟁영웅"/>	</entry><entry>
		<title>1945년 미 해병대, 이오지마에 성조기 꽂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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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9-02-21T12:48:39+09:00</published>
		<updated>2019-02-21T12:48:39+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author>
		<summary type="text">[국방일보 군사사 2월23일] 1945년 미 해병대, 이오지마에 성조기 꽂다 AP통신 조 로젠탈 기자가 1945년 2월 촬영한 이오지마(硫黃島) 전투 성조기 게양 장면. 일본 도쿄 남쪽 약 1200km 지점에 위치한 오가사와라(小笠原) 열도의 화산섬 이오지마(硫黃島, Iwo Jima). 도쿄와 사이판 가운데쯤 위치한 서울 용산구 정도 되는 20㎢ 넓이를 가졌다. 태평양전쟁 중 미 해군과 해병대는 일본 주요 도시를 공습하기 위한 공군기지로서 활...</summary>
	<content type="html">&lt;h2 id=&quot;ntt_title1&quot;&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line-height: 1;&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국방일보 군사사 2월23일] 1945년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 &lt;/span&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미 해병대, 이오지마에 성조기 꽂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line-height: 1;&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br /&gt;&lt;/span&gt;&lt;/p&gt; &lt;table width=&quot;null&quot; height=&quot;null&quot; align=&quot;center&quot; class=&quot;txc-table&quot; id=&quot;nis-table-tx_entry_68057_&quot;&gt;&lt;tbody&gt;&lt;tr&gt;&lt;td&gt;&lt;div class=&quot;view_img&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size: 14px; font-weight: normal;&quot;&gt;&lt;img src=&quot;http://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855/577/a1b3239f57b298b2c0bf89df5647f01a.png&quot; alt=&quot;아오지마.png&quot; width=&quot;640&quot; height=&quot;497&quot; /&gt; &lt;p&gt;AP통신 조 로젠탈 기자가 1945년 2월 촬영한 이오지마(硫黃島) 전투 성조기 게양 장면.&lt;br /&gt;&lt;/p&gt; &lt;/span&gt;&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일본 도쿄 남쪽 약 1200km 지점에 위치한 오가사와라(小笠原) 열도의 화산섬 이오지마(硫黃島, Iwo Jima). 도쿄와 사이판 가운데쯤 위치한 서울 용산구 정도 되는 20㎢ 넓이를 가졌다. 태평양전쟁 중 미 해군과 해병대는 일본 주요 도시를 공습하기 위한 공군기지로서 활용하기 위해 이오지마를 점령할 필요가 있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1945년 2월 16일 미 함대의 맹렬한 함포 사격으로 시작된 이른바 ‘디태치먼트 작전(Operation Detachment)’ 전투는 당초 수일만에 목표인 이오지마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2월 19일 해병대 4사단과 5사단이 이오지마에 상륙을 시작하고 4일 동안 격전을 치른 후 섬의 스리바치산(摺鉢山)을 점령할 수 있었고, 3월 26일이 되어서야 전투를 다끝낼 수 있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물경 36일 동안의 이 전투에서 2만 933명의 일본군 수비 병력 중 2만 129명이 전사했다. 미군은 전사자가 6821명, 부상자가 2만 1865명으로 집계되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이 전투를 지휘한 ‘현대 상륙전의 아버지’ 스미스 홀랜드(Holland McTyeire Smith)는 &quot;해병대 역사에서 이만큼 처절한 전투는 없었다&quot;고 회고할 정도였다. 일본은 개전 후 처음으로 자신들의 영토를 점령 당했고, 태평양에서의 전쟁에서 최초로 일본 영토에 성조기가 휘날렸다. 그리고 전투를 계기로 연합군 쪽으로 승리의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그런데 이 전투가 유명한 것은 정작 이처럼 엄청난 피해와 격렬한 전투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 장의 사진, 상륙 닷새째인 23일 총탄을 뚫고 스리바치산의 정상에 오른 6명의 미 해병대원들이 성조기를 힘차게 세우는 장면의 사진 덕분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포레스탈(James Forrestal) 미 해군장관은 스리바치 산에 나부끼는 성조기를 보고 &quot;500년이 넘게 존속할 해병대의 상징&quot;이라고까지 극찬했다. 그렇듯 이 사진이 치열한 전투 장면보다 더 영웅적인 이미지로 부각되면서 미국 전역에 승리에 대한 감동과 환희가 파도치듯 번져나갔다. 마침 전쟁에 필요한 경비를 모금하려는 미국 정부에 효과적으로 이용되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은 전쟁 국채 모금 캠페인에 동원됐다. 촬영한 AP통신의 조 로렌탈(Joe Rosenthal) 기자는 퓰리처상의 안기도 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세계 전사(戰史)에 길이 남을 불멸의 이미지! 그러나 사진 자체는 진실 모두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불행히도 6명의 해병이 세우는 그 보도사진은 스리바치산에 최초로 게양된 성조기의 사진이 아니었다. 사실은, 전투 중 6명이 세워 올린 성조기는 기념으로 보관하기 위해 게양 후 내려지고, 보다 큰 성조기로 바꿔 게양한 사진이었던 것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table width=&quot;null&quot; height=&quot;null&quot; align=&quot;center&quot; class=&quot;txc-table&quot; id=&quot;nis-table-tx_entry_10235_&quot;&gt;&lt;tbody&gt;&lt;tr&gt;&lt;td&gt;&lt;div class=&quot;view_img&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img class=&quot;txc-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lt=&quot;이오지마 전투 당시 미 해병대 사진담당이었던 로워리(Louis Lowery) 상사가 찍은 이오지마 최초 게양 성조기 사진. 이 사진에는 &amp;amp;#039;1st Flag Raising, Feb. 23, 1945, Mt. Suribachi, Iwo Jima, With best wishes to Ed Benson, Lou Lowery.&amp;amp;#039;라는 로웨리 상사의 친필이 들어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www.icollector.com. &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90221/thumb1/BBS_201902210956313480.jpg&quot; attach_id=&quot;726955&quot; /&gt;&lt;/span&gt;&lt;p class=&quot;view_photo_desc&quot; style=&quot;width: 41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이오지마 전투 당시 미 해병대 사진담당이었던 로워리(Louis Lowery) 상사가 찍은 이오지마 최초 게양 성조기 사진. 이 사진에는 &#039;1st Flag Raising, Feb. 23, 1945, Mt. Suribachi, Iwo Jima, With best wishes to Ed Benson, Lou Lowery.&#039;라는 로웨리 상사의 친필이 들어있다. 출처 =위키피디아, www.icollector.com. &lt;/span&gt;&lt;/p&gt;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사실이 바뀌는 문제의 시작은 성조기를 바꿔 게양하는 그&amp;nbsp;자리에 첫번째 게양 장면을 놓쳤던 조 로렌탈 기자가 있었고, 그가 이 장면을 촬영한 데서 비롯됐다. 이어 첫 게양 성조기 사진보다 재게양한 이 사진이 미국 본토에 먼저 닿아 신문지상을 장식해버렸다.&amp;nbsp;&lt;/span&gt;&lt;span sans-serif;&quot;=&quot;&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하지만 누구도 이것이 ‘두 번째’ 게양 성조기 사진임을 말하지 않았다.&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ans-serif;&quot;=&quot;&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span sans-serif;&quot;=&quot;&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진실은 약 55년이 지난 뒤에야 밝혀졌다. 그 동안 사진 속 주인공, 캠페인에 동원됐던 그 해병들은 진실과 거짓 속에 영웅 아닌 영웅으로서 힘겨운 삶을 이어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가 감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Flags of Our Fathers, 2006년)은 이 사연을 필름에 담은 것이다.&lt;/span&gt;&lt;span sans-serif;&quot;=&quot;&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ans-serif;&quot;=&quot;&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ans-serif;&quot;=&quot;&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span&gt;&lt;/p&gt; &lt;p&gt;&lt;/p&gt; &lt;table width=&quot;null&quot; height=&quot;null&quot; align=&quot;center&quot; class=&quot;txc-table&quot; id=&quot;nis-table-tx_entry_32424_&quot;&gt;&lt;tbody&gt;&lt;tr&gt;&lt;td&gt;&lt;div class=&quot;view_img&quot;&gt;&lt;span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img class=&quot;txc-image&quot;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alt=&quot;영화 &amp;amp;#039;아버지의 깃발&amp;amp;#039; 포스터.&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90221/thumb1/BBS_201902210910355780.jpg&quot; attach_id=&quot;726953&quot; /&gt;&lt;/span&gt;&lt;p class=&quot;view_photo_desc&quot; style=&quot;width: 260px;&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gt;영화 &#039;아버지의 깃발&#039; 포스터.&lt;/span&gt;&lt;/p&gt; &lt;/div&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p&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ans-serif;&quot;=&quot;&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 style=&quot;font-weight: normal;&quot;&gt;&lt;br /&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ans-serif;&quot;=&quot;&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gt;&lt;span style=&quot;color: rgb(18, 52, 86); font-size: 14px; 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 font-weight: normal;&quot; arial,=&quot;&quot; gothic&quot;,=&quot;&quot; &quot;malgun=&quot;&quot; neo&quot;,=&quot;&quot; gothic=&quot;&quot; sd=&quot;&quot; apple=&quot;&quot; none;&quot;=&quot;&quot; !important;=&quot;&quot; inline=&quot;&quot; initial;=&quot;&quot; 255);=&quot;&quot; 255,=&quot;&quot; rgb(255,=&quot;&quot; none;=&quot;&quot; 0px;=&quot;&quot; justify;=&quot;&quot; 2;=&quot;&quot; 400;=&quot;&quot; normal;=&quot;&quot; 18px;=&quot;&quot; sans-serif;=&quot;&quot;&gt;물론 그렇게 성조기 게양의 진실이 밝혀졌다고 해서 &#039;사진&#039;이 주는 의미는 퇴색되지 않았다. 여전히 미 해병대의 용기와 단결, 전승을 상징하는 깃발로서 유지되고 있다.&amp;lt;국방일보&amp;gt;&lt;/span&gt;&lt;/span&gt;&lt;/p&gt; &lt;/h2&gt;</content>			</entry><entry>
		<title>세계 국방비 5년 연속 상승세… 냉전 이후 최고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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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8-03-27T00:48:35+09:00</published>
		<updated>2021-01-31T06:38:58+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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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이 지난해부터 네 차례에 걸쳐 대만해협 인근을 항해하면서 태평양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중국의 꾸준한 군비 증강에 자극받은 미국 트럼프 정부는 강력한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랴오닝함이 대만해협 통과에 앞서 홍콩에 기항하는 모습. 사진=중국 국방부 홈페이지 세계적으로 국방비가 증가 추세인 가운데 특히 동북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summary>
	<content type="html">&lt;p class=&quot;Explain&quot; style=&quot;line-height: 18px; 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랴오닝함.jpg&quot; height=&quot;427&quot; src=&quot;http://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190/569/66b97b052e26846b594d6967b7fcadb0.jpg&quot; width=&quot;640&quot; /&gt;&lt;/p&gt; &lt;p&gt;중국의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이 지난해부터 네 차례에 걸쳐 대만해협 인근을 항해하면서 태평양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가운데, 중국의 꾸준한 군비 증강에 자극받은 미국 트럼프 정부는 강력한 국방비 증액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랴오닝함이 대만해협 통과에 앞서 홍콩에 기항하는 모습. 사진=중국 국방부 홈페이지&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세계적으로 국방비가 증가 추세인 가운데 특히 동북아시아와 동유럽 지역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을 갖고 있지만 국가 간 안보분쟁이 격화되는 등 지역 안보정세가 복잡해지면서 군사력 증강을 서두르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금융위기 해소&amp;middot;안보 위협 증가 등 영향&lt;br /&gt; &lt;br /&gt; 세계 각국의 국방비 지출 총액은 5년 연속 상승세다. 영국의 국제 군사정보 전문업체인 IHS 제인스의 통계에 따르면 세계 국방비는 2014년 1조5260억 달러였지만,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18년 1조6700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2018년 국방비는 2017년에 비해 증가율 3.3%로 급속한 증가를 보인 것이며, 냉전 이후 최고액을 기록했던 2010년 1조6300억 달러를 넘어선 것이다.&lt;br /&gt; &lt;br /&gt; 세계의 기록적인 국방비 증가 요인으로는 우선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꼽을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지난 10년간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국방비 비율은 2.7%에서 2.2%로 하락했지만, 경제 규모 증가에 따라 국방비 액수도 함께 증가한 것이다. 2008년에 발생한 세계 금융위기가 점차 해소되면서, 세계 각국은 착실한 경제성장에 따라 더욱 많은 액수의 국방비를 책정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안보적 위협도 국방비 증가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방비 증가율이 높은 국가로 중국,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한국, 독일, 아랍에미리트, 미국이 꼽힌다. 이들 국가 대부분은 계속 가열되는 미&amp;middot;중 대결의 영향을 받고 있거나, 지역적 안보 불안의 와중에 있다.&lt;br /&gt; &lt;br /&gt; 또 세계 국방비 증가에 빼놓을 수 없는 배경은 세계 군사비 중 40% 가까이를 차지하는 미국의 국방비 증액이다. 미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미 국방부 예산은 2015 회계연도(2014년 10월~2015년 9월) 5600억 달러에서 2018년도 6120억 달러로 이 기간에 약 9.2%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국방비 증액에 역점을 두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도 국방부 예산안으로 6860억 달러를 요구해 2018년도보다 무려 11% 가까이 증액하고 있다.&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img alt=&quot;세계국방예산.jpg&quot; height=&quot;688&quot; src=&quot;http://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190/569/a9ae7beaae80993ed2c817b0b6a1f749.jpg&quot; width=&quot;423&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中 해양 진출&amp;middot;北 미사일 등이 아시아 압박&lt;/strong&gt;&lt;br /&gt; &lt;br /&gt; 아시아는 냉전 이후 국방비 증가율이 높은 지역이었다. 그러나 낮은 산유가격 영향 등으로 중동 지역의 국방비 증가세가 주춤하면서, 아시아 전체의 국방비 증가가 둔화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에서 발행하는 &amp;lsquo;밀리터리 밸런스&amp;rsquo; 2019년판을 보면, 2016~2017년 세계 군사비 증액 가운데 42.1%가 아시아 지역 국가에 의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중국 24.8%, 인도네시아 5.8%, 일본 3.6%, 인도 2.4%, 기타 5.5%였다. 결국 아시아 국가 가운데에서도 중국, 일본, 한국이 포진한 동북아시아 지역의 군사비 증가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아시아의 군사비 증가는 전략적 요인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IHS 제인스는 분석하고 있다. 중국의 해양 진출, 북한 미사일 위협, 동남아 무장반군 활동 등이 이 지역 군사비 증가를 압박하고 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strong&gt;크림반도 합병으로 동유럽 안보 위기의식&lt;/strong&gt;&lt;br /&gt; &lt;br /&gt; 유럽 국가들은 최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따라 국방비를 증가시키고 있다. 러시아가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해 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하자 동유럽 국가들은 안보 위기의식으로 군사비 증액을 서두르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는 과거 소연방에 속했던 발트해 연안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루마니아다.&lt;br /&gt; &lt;br /&gt; 유럽 국가는 2009~2015년 국방비 규모가 침체된 상태였다. 유럽에 별다른 안보 위협이 없었으며, 경기 부진으로 국방비 배정에 소극적이었다. 그에 따라 미국은 다른 나토 28개 국가에 대해 GDP의 2% 규모로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을 목표를 설정하도록 했다. 그렇지만 2017년을 기준으로 영국, 그리스, 에스토니아 3개국만 목표를 달성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는 의욕적으로 국방비를 증액해 &amp;lsquo;2% 목표&amp;rsquo;의 달성이 예상됐지만, 경제가 강한 회복속도를 보이면서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방위비를 충분히 분담하지 않고 있다는 미국의 항의를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반면 유럽 국방비 증가의 원인을 제공한 러시아는 낮은 석유가격으로 국방비를 축소하고 있다. 러시아의 2018년 국방비는 431억 달러이며 전년도보다 8% 하락했다. 러시아는 2015년을 정점으로 3년 연속 하락을 기록하고 있다. 그에 따라 세계 군사비 순위에서 러시아는 2017년 4위에서 6위로 하락했다.&lt;br /&gt; &lt;br /&gt; 세계의 국방비는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에,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의 지적대로, 중국과 러시아가 도전하면서 점차 혼돈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strong&gt;미국의 의욕적인 증액&amp;hellip; 세계 국방비 40% 차지할까&lt;/strong&gt;&lt;br /&gt; &lt;br /&gt; 미국 국방비가 세계 국방비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다시 40%대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인가. 미 국방비가 세계의 다른 나라 국방비를 압도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현재 2010년대 세계 국방비에서 미 국방비 비율은 30%대이며, 2000년대의 비율 인 40%대보다 뒤떨어진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의욕적인 국방비 증액 추진은 2000년대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과 같은 강력한 힘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lt;br /&gt; &lt;br /&gt; 구체적으로 &amp;lsquo;밀리터리 밸런스&amp;rsquo; 2019년판에 따르면 미 국방비 비율은 2007년에 48.3%를 기록하는 등 미 국방비 액수는 세계 여타 국가 국방비의 합계와 맞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금융위기를 겪고 나서 2013년 37.3%를 나타낸 뒤 줄곧 30%대에 머무르고 있다. 미국이 내년(2019년)도 예산안에서 국방비를 대폭 증액해 국방비 비율이 40%에 올라설 수 있다. 미국은 늘어난 예산으로 미사일 방어, 함정 건조, 우주기반 체계 등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lt;br /&gt; &lt;br /&gt; 미국의 국방비 증액은 중국의 국방비 증액에 자극받은 것이다. 2017년 중국 국방비는 미 국방비의 4분의 1 수준까지 올라왔다. 중국의 국방예산은 2011~2015년 10.1~12.2%, 2016~2018년 7.0~8.1% 비율로 급격히 성장했다. 중국의 국방비는 이제 미국에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단계로 올라서 있다.&amp;lt;김 성 걸 정치학 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am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Coronado Focuses on Flight Ops, Crew Training at Se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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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7-03-12T15:10:29+09:00</published>
		<updated>2017-03-12T15:10:29+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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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SOUTH CHINA SEA (Feb. 12, 2017) - The littoral combat ship USS Coronado (LCS 4) transits the South China Sea during training. Currently on a rotational deployment in support of the Asia-Pacific rebalance, Coronado is a fast and agile warship tailor-made to patrol the region&#039;s littorals and work hull-to-hull with partner navies, providing 7th Fleet with the flexible capabilities it needs now and in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SOUTH CHINA SEA (Feb. 12, 2017) - The littoral combat ship USS Coronado (LCS 4) transits the South China Sea during training. Currently on a rotational deployment in support of the Asia-Pacific rebalance, Coronado is a fast and agile warship tailor-made to patrol the region&#039;s littorals and work hull-to-hull with partner navies, providing 7th Fleet with the flexible capabilities it needs now and in the future. (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2nd Class Amy M. Ressler/Released) 170212-N-WV703-923&lt;/p&gt; &lt;p&gt;&lt;br /&gt;&lt;/p&gt; &lt;p&gt;&lt;img width=&quot;800&quot; height=&quot;481&quot; alt=&quot;32041581934_b3f5404125_o.jpg&quot; src=&quot;http://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54/554/42a95537ee73dba839867b4e6db85612.jpg&quot; /&gt; &lt;p&gt;&lt;br /&gt;&lt;/p&gt; &lt;br /&gt;&lt;p&gt;&lt;/p&gt; &lt;/p&gt;</content>			</entry><entry>
		<title>USS Carl Vinson continues deployment as part of 3rd Fleet&#039;s expanded Ops in Pacific</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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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7-03-12T15:08:58+09:00</published>
		<updated>2017-03-12T15:08:58+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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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PACIFIC OCEAN (Feb. 09, 2017) - Two E-2C Hawkeyes from the &quot;Black Eagles&quot; of Carrier Airborne Early Warning Squadron (VAW) 113 fly by the aircraft carrier USS Carl Vinson (CVN 70), during a change-of-command ceremony for VAW-113. The Carl Vinson Carrier Strike Group is on a regularly scheduled Western Pacific deployment as part of the U.S. Pacific Fleet-led initiative to extend the command and cont...</summary>
	<content type="html">&lt;p&gt;PACIFIC OCEAN (Feb. 09, 2017) - Two E-2C Hawkeyes from the &quot;Black Eagles&quot; of Carrier Airborne Early Warning Squadron (VAW) 113 fly by the aircraft carrier USS Carl Vinson (CVN 70), during a change-of-command ceremony for VAW-113. The Carl Vinson Carrier Strike Group is on a regularly scheduled Western Pacific deployment as part of the U.S. Pacific Fleet-led initiative to extend the command and control functions of U.S. 3rd Fleet. U.S. Navy aircraft carrier strike groups have patrolled the Indo-Asia-Pacific regularly and routinely for more than 70 years. (U.S. Navy photo by Mass Communication Specialist 2nd Class Zackary Alan Landers/Released) 170209-N-GD109-083&lt;/p&gt; &lt;p&gt;&lt;br /&gt;&lt;/p&gt; &lt;p&gt;&lt;img width=&quot;800&quot; height=&quot;571&quot; alt=&quot;32778193981_560e71922e_o.jpg&quot; src=&quot;http://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51/554/21fe7ebca63375304cac143096fc3db5.jpg&quot; /&gt; &lt;p&gt;&lt;br /&gt;&lt;/p&gt; &lt;br /&gt;&lt;p&gt;&lt;/p&gt; &lt;/p&gt;</content>			</entry><entry>
		<title>가장 잔인했던 겨울’ 장진호 전투가 남긴 교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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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5-12-15T15:05:40+09:00</published>
		<updated>2015-12-15T15:05:40+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author>
		<summary type="text">예로부터 추위는 전쟁터에서 군인이 겪어야 할 가장 큰 고통이었으며, 때로는 적 이상의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1812년 러시아를 향해 진군한 나폴레옹군은 적이 아닌 영하 38도의 혹독한 추위에 무릎을 꿇어야했고, 1942년 소련을 침공한 히틀러는 영하 35도의 혹한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퇴각해야만 했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살을 에는 엄동설한 속에서 10배가 넘는 적에게 포위됐음에도, 오히려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width=&quot;640&quot; height=&quot;444&quot; alt=&quot;장진호.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179/523/385c841742ef92c9e87798c154b0c01d.jpg&quot; /&gt;&lt;/div&gt;&lt;p&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 예로부터 추위는 전쟁터에서 군인이 겪어야 할 가장 큰 고통이었으며, 때로는 적 이상의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1812년 러시아를 향해 진군한 나폴레옹군은 적이 아닌 영하 38도의 혹독한 추위에 무릎을 꿇어야했고, 1942년 소련을 침공한 히틀러는 영하 35도의 혹한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퇴각해야만 했다.&lt;br /&gt;&lt;br /&gt;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살을 에는 엄동설한 속에서 10배가 넘는 적에게 포위됐음에도, 오히려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고 탈출에 성공한 전투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함께 ‘세계 2대 동계전투’로 꼽히는 ‘장진호 전투’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 ■ 중공군의 포위와 공세, 악몽으로 변한 戰場&lt;/strong&gt;&lt;br /&gt;&lt;br /&gt;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국군과 유엔군은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참전은 전쟁의 새로운 변수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1950년 11월 25일 서부전선에서 북진하던 미 8군을 저지하려는 중공군의 2차 공세가 시작됐지만, 동부전선의 미 10군단은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정면에 배치된 중공군의 전력을 낮게 평가하면서, 미 8군 예하의 1군단과 9군단을 지원하기 위한 공세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국 11월 27일 오전 8시, 함경남도 장진군의 인공호수인 장진호의 남쪽에서부터 미 10군단의 주축 미 해병 1사단이 먼저 북진하기 시작했다.&lt;br /&gt;&lt;br /&gt;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북진을 시작한 그날 밤, 중공군이 요란한 나팔 소리와 함께 미 해병 1사단을 포위한 채 거센 공세를 시작했고, 모든 상황이 악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장진호 지역에 투입된 중공군 제9병단은 미 해병 1사단의 10배가 넘는 13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미 해병 1사단은 적의 병력이 얼마나 많은지, 포위망이 어디까지 뻗쳐 있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결국 공격 개시 3일 만에 철수명령이 떨어졌고, 이때부터 미 해병대는 역사상 최악의 조건 속에서 처절한 전투를 치러야 했다.&lt;br /&gt;&lt;br /&gt; &lt;br /&gt;&lt;br /&gt;&lt;strong&gt; ■ 적보다 혹독했던 戰場 환경&lt;/strong&gt;&lt;br /&gt;&lt;br /&gt; 장진호 지역은 1000m 이상의 고지대로 ‘한국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개마고원 일대의 산악지역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깊은 계곡의 지형에 도로는 단 하나만 나 있어 교량이 파괴되면 차량통행마저 불가능했으며, 임시로 가설된 비행장을 통한 철수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엄동설한의 날씨는 낮 기온이 영하 20도, 야간에는 영하 45도까지 급강하했다. 곳에 따라 60cm 이상 눈이 쌓여 있었고, 눈보라가 몰아칠 때는 10여ｍ 앞도 보이지 않았다. 태평양전쟁에서 용맹을 떨친 미 해병대였지만, 동계 산악전에 대비한 훈련은 전무했으며, 동계에 대비한 탄약·연료·전투식량은 물론 기본적인 방한복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미 해병 1사단의 고전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lt;br /&gt;&lt;br /&gt;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미 해병 1사단은 적과 맞서 용감히 싸웠고, 마침내 12월 11일 탈출에 성공했다. 14일간의 전투에서 3637명의 전사상자와 3659명의 비전투사상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90% 이상이 동상 환자였다. 동계전투에 대한 충분한 준비 없이 인해전술로 밀어붙인 중공군의 피해는 더 심각했으며, 6만여 명의 전사상자가 발생해 전쟁의 흐름에 불리한 영향을 끼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엄호하는 병력을 버려둔 채 수송기로 철수할 수 없다”며 “후퇴가 아닌 다른 방향으로 공격하는 것”이라고 부하를 독려한 사단장 스미스(Oliver P. Smith) 소장의 리더십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장병들의 불굴의 군인정신이 있었기에 적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lt;br /&gt;&lt;br /&gt;&lt;strong&gt; ■ 준비한 만큼 戰果가 나타나는 동계전투&lt;/strong&gt;&lt;br /&gt;&lt;br /&gt; 만약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이 현재의 전장 상황과 적의 능력, 그리고 적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이에 대해 철저히 준비했다면, 많은 인명 손실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공군과 포병을 이용한 화력과 기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면, 전투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사전에 준비한 만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 동계전투이기 때문이다.&lt;br /&gt;&lt;br /&gt; 만약 우리가 장진호 전투처럼 동계에 부적합한 상태에서 전투를 한다면, 결국 아군의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동상·폐렴 등 동절기 주요 관심 질환에 대한 장병 예방활동을 강화하고, 장비 동파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등 작전에 필요한 소요를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를 바탕으로 어떠한 전장 환경도 극복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배양해야 할 것이다.&lt;/p&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해병대·공군 CCT도 푸른 하늘 ‘고공점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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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5-11-06T01:58:55+09:00</published>
		<updated>2015-11-06T01:58:55+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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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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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특전사는 의무적으로 공수기본과정 이수 3000m 이상 고공강하는 산소호흡기 착용 육사·3사 생도 3주간의 기본공수과정 경호실·정보사 요원들도 특전사서 훈련 강하임무는 목숨을 담보하는 위험성으로 인해 3주간의 기본공수교육 과정을 이수한 장병들에 한해 엄격히 그 자격을 제한한다. 사진은 육군특수전사령부 귀성부대원이 고공강하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 육군 제공 육군3사관학교 생도들이 기본공수과정 중 실제 강하를 하고 ...</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quot;&gt;&lt;strong&gt;특전사는 의무적으로 공수기본과정 이수&lt;/strong&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quot;&gt;&lt;strong&gt;3000m 이상 고공강하는 산소호흡기 착용&lt;/strong&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quot;&gt;&lt;strong&gt;육사·3사 생도 3주간의 기본공수과정&lt;/strong&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quot;&gt;&lt;strong&gt;경호실·정보사 요원들도 특전사서 훈련&lt;/strong&gt;&lt;/p&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br /&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br /&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width=&quot;640&quot; height=&quot;426&quot; alt=&quot;강하.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105/516/5a5b40baf470a0ece93ed1acc6163e37.jpg&quot; /&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 class=&quot;Explain&quot;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gt;강하임무는 목숨을 담보하는 위험성으로 인해 3주간의 기본공수교육 과정을 이수한 장병들에 한해 엄격히 그 자격을 제한한다. 사진은 육군특수전사령부 귀성부대원이 고공강하를 시도하고 있는 모습. 육군 제공&lt;/p&gt;&lt;p class=&quot;Explain&quot;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gt;&lt;br /&gt;&lt;/p&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width=&quot;403&quot; height=&quot;650&quot; alt=&quot;강하1.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105/516/1a838f45f5d89d8445e00374b380b708.jpg&quot; /&gt;&lt;/div&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p class=&quot;Explain&quot;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gt;&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 육군3사관학교 생도들이 기본공수과정 중 실제 강하를 하고 있다. 국방일보 DB&lt;/p&gt;&lt;p class=&quot;Explain&quot;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gt;&lt;br /&gt;&lt;/p&gt;&lt;/div&gt;&lt;p&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 푸른 하늘을 가르며 내려오는 낙하산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해집니다. 하늘을 뒤덮는 낙하산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을 연출하죠. 이러한 고공강하는 가슴을 졸이게 하는 긴장감과 화려함으로 많은 행사에서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곤 합니다. 하지만 고공강하는 아무나 할 수 없고 또한 해서도 안 되는 고난도의 임무 중 하나입니다. 강도 높고 엄격한 훈련을 이수한 요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자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 강하부대는 육군특전사가 모체&lt;br /&gt;&lt;br /&gt; 강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닙니다. 엄격한 훈련을 거친 요원들에게만 낙하산을 메고 뛰어내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현재 육군특전사는 임무에 있어 강하 부대를 대표합니다. 임무 자체가 적 후방에 대한 고공침투가 주를 이루는 만큼 강하 자체가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요소인 셈이죠. &lt;br /&gt;&lt;br /&gt; 강하는 기본적으로 고도에 따라 기본강하(300~1000ｍ)와 고공강하(약 1200~7600ｍ)로 구분됩니다. 특전사 관계자는 “고공강하 중 3000ｍ 이상의 경우는 산소호흡기를 착용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또한 강하는 기본공수훈련 과정 중 무장 여부에 따라 무장강하와 비무장강화로 나누기도 합니다. 여기서 무장강하는 실제작전에 필요한 장비를 착용하고 뛰어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강하에는 텐덤강하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 강하는 400회 이상의 고공강하를 경험한 ‘자격 소지 요원’이 강하 능력이 없는 특수목적 인원을 책임지고 함께 강하하는 것을 말합니다.&lt;br /&gt;&lt;br /&gt; 강하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임무입니다. 당연히 아무나 뛰어내릴 수는 없는 것이죠. 많은 행사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고공강하팀 역시 최고의 베테랑들로 구성되는 이유입니다. 그럼 고공침투를 주요 임무로 하는 육군특전사 부대원이면 모두 강하를 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강하 자격을 위해선 기본적으로 3주간의 공수기본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공수기본교육은 신분에 상관없이 동일한 조건에서 이뤄집니다. 생명의 위험이 수반되는 강하에 계급이 필요 없기 때문이겠죠. 공수기본과정은 그만큼 강도가 세고 힘듭니다. 교육생들은 교육 마지막 3주차엔 4번의 실제 항공기나 헬기 등을 이용해 강하를 시행하며 임무수행 능력을 체득하게 됩니다. &lt;br /&gt;&lt;br /&gt; 그런데 특전사의 경우 전입 장교나 부사관, 병사 등 모두가 의무적으로 이러한 공수기본과정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거의 모든 장병이 강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재 특전사에서는 전명순·강명숙 준위가 유이무일하게 4000회 이상의 강하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lt;br /&gt;&lt;br /&gt; 한편 특전장병들 이외에 육군사관학교와 3사관학교 생도들도 3주간의 기본공수과정을 이수합니다. 이들은 장교들의 기본작전수행능력 체득을 위한 과정으로 이수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경호실과 정보사 요원들 역시 특전사에서 강하훈련을 받습니다. 또한 자격화 과정이라는 것이 있는데 특공수색 장병이나 헌병 간부와 병사 등이 공수기본과정을 이수하면 강하 자격을 부여받게 됩니다.&lt;br /&gt;&lt;br /&gt;&lt;br /&gt;&lt;br /&gt;● 해병대 매년 11개 차수 교육 &lt;br /&gt;&lt;br /&gt; 강하임무는 특전사로 대표되지만 타군에도 이러한 임무를 수행하는 부대가 있습니다. 해병대와 공군 공정통제사(CCT·Combat Control Team)가 강하를 수행합니다. 해병대는 상륙장갑차와 소형고무보트(IBS) 이외에 강하를 통한 입체적 상륙작전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실전적 강하훈련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1972년 해병공수 1기를 배출한 해병대는 2001년에는 국방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고 공수기본과 강하조장, 낙하산 포장 등 매년 11개 차수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lt;br /&gt;&lt;br /&gt; 공군 CCT 역시 강하임무를 수행합니다. CCT는 공정작전을 위해 적진 깊숙이 침투, 투하지점을 확보하고 통신 및 항법장비를 활용해 수송기가 안전하고 정확하게 물자와 병력을 투하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공군 유일의 특수부대죠. 공정통제사는 총 19주, 610시간에 달하는 양성과정을 거치는데, 15주 동안 자대 교육훈련과 체력·수영 훈련을 받고, 4주에 걸친 낙하산 강하, 생환, 항공생리 등 위탁 교육훈련까지 모두 이수해야 합니다. 이후로도 UDT, 스쿠버, 응급구조 등 다양한 보수교육을 받게 됩니다.&lt;br /&gt;&lt;br /&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lt;p&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width=&quot;650&quot; height=&quot;412&quot; alt=&quot;공수휘장.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105/516/04ecb25ba36f166b0f6a6f50eb8c5d78.jpg&quot; /&gt;&lt;/div&gt;&lt;p&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rong&gt;1000회 이상 강하 요원엔 황금색 공수휘장&lt;/strong&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rong&gt;&lt;/strong&gt;&amp;nbsp;&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육군특전사 요원과 뗄 수 없는 마크가 바로 ‘공수휘장’이다. 공수휘장은 기본공수훈련 이수 여부와 강하 횟수를 기준으로 모양과 색상이 구분된다.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독수리에 낙하산을 기본으로 하는 공수휘장이다. 3주간의 기본공수교육을 이수하면 군별 및 소속과 상관없이 모두 부착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는다. 여기에 강하조장교육과 고공강하교육 이수 여부, 또는 강하 횟수 20회와 40회, 100회에서 400회의 횟수에 따라 별이 추가되며 휘장의 모양도 달라진다. 이중 강하 횟수 1000회 이상의 요원들에게는 황금색의 공수휘장(사진)을 부여함으로써 예우와 존중을 표한다. &lt;/p&gt;&lt;/p&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美 ‘더 가까이 접근’ 蘇 ‘더 깊숙이 잠수’ ‘수중관측’ 작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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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4-01-12T22:34:52+09:00</published>
		<updated>2014-01-12T22:34:52+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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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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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문근식의 SubmarineWorld&lt;65&gt;미·소 냉전 시 첩보 잠수함들의 물밑 전쟁 미국 원자력 잠수함의 소련 양키급 원잠 추격전 (3) 장기간 추적·충돌 위험 동반하는 어려운 임무 美 함장들 경쟁…蘇 원잠 수중정보 획득 한몫 1960∼70년대 소련 잠수함은 소음이 커서 미국 잠수함이 근접해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림은 미국 잠수함이 소련 잠수함의 후방에서 밑으로 접근해 소음을 녹취하고 선체 및 추진기의 사진을 촬영하는 ‘수중관측(Under...</summary>
	<content type="html">&lt;h3&gt;문근식의 SubmarineWorld&amp;lt;65&amp;gt;미·소 냉전 시 첩보 잠수함들의 물밑 전쟁 미국 원자력 잠수함의 소련 양키급 원잠 추격전 (3) &lt;/h3&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id=&quot;ntt_content&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strong&gt;장기간 추적·충돌 위험 동반하는 어려운 임무 美 함장들 경쟁…蘇 원잠 수중정보 획득 한몫&lt;/strong&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div class=&quot;imgExplain&quot; style=&quot;DISPLAY: block&quot;&gt; &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650&quot; align=&quot;center&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border=&quot;0&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lt;/caption&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650&quot;&gt;&amp;nbsp;&lt;img alt=&quot;BBS_201401120244205590.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30/469/2e754f92b032e4884241206bb0ffe4e8.jpg&quot; width=&quot;650&quot; height=&quot;392&quot; /&gt; &lt;p class=&quot;Explain&quot;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gt;1960∼70년대 소련 잠수함은 소음이 커서 미국 잠수함이 근접해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림은 미국 잠수함이 소련 잠수함의 후방에서 밑으로 접근해 소음을 녹취하고 선체 및 추진기의 사진을 촬영하는 ‘수중관측(Underwater Look)’ 작전을 그래픽한 장면. 필자제공&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br /&gt;&amp;nbsp;&lt;/p&gt; &lt;p&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div class=&quot;imgExplain&quot; style=&quot;DISPLAY: block&quot;&gt; &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650&quot; align=&quot;center&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border=&quot;0&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lt;/caption&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650&quot;&gt;&amp;nbsp; &lt;p class=&quot;Explain&quot;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BBS_201401120244324050.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30/469/6670a67879dc5a14ac1b0c7b5c08cf23.jpg&quot; width=&quot;650&quot; height=&quot;332&quot; /&gt;&lt;/div&gt;잠수함은 설계 때부터 적용되는 용적률(장비 배치 대 공간 비율)이 60% 정도이기 때문에 배가 커도 승조원의 취침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사진은 장기간 작전시 승조원 취침 공간으로 활용되는 미 오하이오 급 잠수함의 어뢰 저장실. 필자제공&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br /&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 ▶고급첩보 획득을 위한 미 잠수함 함장들의 경쟁도 볼만&lt;br /&gt;&lt;br /&gt; ● 데이스함장은 우수정보 수집 당직자에게 위스키를 상품으로 내걸기도&lt;br /&gt;&lt;br /&gt; 라폰함장 맥과 데이스함장 맥키의 차이점은 무엇보다 매너에 있었다. 모든 사람이 맥키를 더 영웅으로 생각했다. 맥이 해군 조직과 제도권 내에서 무난하게 성장한 반면, 맥키는 초급장교 시절부터 적극적으로 행동해 정상에 우뚝 선 장교 중의 한 명이었다. &lt;br /&gt;&lt;br /&gt;그는 어느 한겨울 밤에 재규어 컨버터블 안에서 현재의 아내인 앤(Betty Ann)을 만나 13일 후에 프러포즈해 결혼했다. 데이스함에서도 그는 초급장교들에게 적극적인 동기부여를 위해 상품으로 Dewar’s 스카치와 Jack Daniels 위스키를 제시함으로써 최대한 경계심을 갖고 당직근무에 임하도록 했으며, 이러한 상품은 신형 소련 잠수함 정보를 수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또 그는 달변의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제독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즉, 그가 수행했던 놀라운 이야기에 매료돼 잠수함 부대를 지휘하고 있는 제독들은 그가 감수했던 각종 위험에 대해 어떠한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lt;br /&gt;&lt;br /&gt; ● 소련 잠수함 선저 아래로 들어가 소음 녹취는 물론 선체·추진기 사진 촬영도&lt;br /&gt;&lt;br /&gt; 맥키 외에도 맥에게는 대서양 함대 내에 또 다른 경쟁자가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켈른(Alfred L. Kelln)과 쉐퍼(H. B. Shaffer)였다. 레이(USS Ray, SSN -653)함의 켈른은 양키급 잠수함을 촬영한 최초의 함장이었으며, 쉐퍼는 맥이 촬영하기 몇 달 전에 찰리 및 양키급 잠수함 바로 밑으로 항해를 했던 그린링(USS Greenling, SSN-614)함의 함장이었다. &lt;br /&gt;&lt;br /&gt;쉐퍼는 이들 잠수함이 수중에서 발생시키는 소음 준위와 고유 소음 특성을 녹음했을 뿐만 아니라 잠망경에 내장된 신형 광증폭 광학카메라를 이용해 선체와 추진기를 촬영했다. 당시 그린링함은 양키급 잠수함 선저 밑에 매우 근접해 기동했기 때문에 만약 그때 양키급 잠수함 승조원들이 측심기를 작동해 하부 수심을 측정했더라면, 그곳의 하부 수심이 7ｍ도 안 되는 해저로 착각해 긴급 부상을 시도했을지도 모른다.&lt;br /&gt;&lt;br /&gt; ● 선체 직 하방으로 접근해 동조 기동하는 ‘수중관측(Underwater Look)’ 작전은 위험도가 가장 높아 함장은 등에 식은땀이 솔솔&lt;br /&gt;&lt;br /&gt; 적 잠수함의 직 하방에 접근해 상대 함의 추진기와 선저를 사진 촬영하고 소음을 녹취하는 ‘수중관측(Underwater Look)’이라는 임무는 대단히 큰 위험을 동반하고 있었다. 언제라도 소련 잠수함은 그린링함의 상부에서 심도를 변경해 깊이 내려갈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충돌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임무수행 후 매우 큰 표창을 받았다. 이런 작전을 하려면 통상 표적함보다 2~3배의 속력을 낼 수 있어야 하므로 원자력 추진 잠수함에 적합하다. 미국은 최초로 양키급 잠수함의 음향 특성을 획득했고, 그린링함의 테이프에 기록된 수중 소음 정보들은 곧바로 미국이 세계 곳곳 주요 잠수함 길목에 설치한 수중음향감시(SOSUS) 장비의 컴퓨터에 입력됐다.&lt;br /&gt;&lt;br /&gt; 그러나 그린링함이 수집해 온 수중소음 정보가 어선, 해양생물 및 조류의 소음들로 가득 찬 대양에서 항해하고 있는 양키급 잠수함의 소음을 구별해낼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것인가에 대한 검증이 필요했다. 결국, 양키급 소음은 장기간 여러 번에 걸쳐 획득해야만 했다.&lt;br /&gt;&lt;br /&gt; ▶수개월간의 정보수집 임무, 함장은 승조원들의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많은 이벤트를 만들어야&lt;br /&gt;&lt;br /&gt; 맥과 다른 함장들은 번갈아 가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미국 영해를 벗어나 바렌츠 해와 양키급 잠수함의 모항을 향해 북위 50도 이상의 해역으로 장거리 항해를 했다. 1969년 9월에 접어들면서 드디어 맥에게 기회가 왔다. 라폰함은 장기 임무수행을 위해 산더미같이 많은 양의 달걀과 고기, 버그주스(bug juice)로 알려진 시럽과 같은 음료수를 적재하고 대서양에 위치한 노폭항을 출항했다. 이번에는 맥의 식성을 고려해 다른 때와 달리 3개월분의 얼린 블루베리를 적재했다. 그는 블루베리와 블루베리 머핀에 대한 물릴 줄 모르는 식욕을 갖고 있었다.&lt;br /&gt;&lt;br /&gt; 그는 수시로 블루베리 피자 파티와 슬롯머신 등으로 장기간 항해로 인한 승조원들의 권태를 날려 보내려 노력했다.&lt;br /&gt;&lt;br /&gt; ● 당시 원자력 잠수함 승조원은 공동침대가 아닌 개인침대를 배정&lt;br /&gt;&lt;br /&gt; 라폰함에는 원래 슬롯머신을 설치할 만한 공간이 없었으나, 어렵게 만들어 슬롯머신을 설치하고 출항했다. &lt;br /&gt;&lt;br /&gt;라폰함이 비좁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모든 승조원에게 공동으로 사용하는 hot-bunker가 아닌 자신만의 침대가 주어져 있었다. 이러한 침대들은 선반을 겹쳐 놓은 형태로 설치됐기 때문에 위아래 침대 사이의 공간은 한 사람이 들어가 누웠을 때 거의 닿을 정도였다. &lt;br /&gt;&lt;br /&gt;그리고 이러한 개인별 침대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어뢰실의 빈 공간에도 매트리스를 깔아 침대를 마련해야 했다. 이러한 좁고 불편한 잠자리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승조원들은 커튼으로 침대를 가려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된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데 만족해야 했다. &lt;br /&gt;&lt;br /&gt;그리고 각 침대에는 서랍이 하나씩 달렸었는데 승조원들은 이 서랍 속에 3개월간 임무수행에 필요한 내의와 잠수함복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넣어 뒀다.&lt;br /&gt;&lt;br /&gt; ● 승조원들은 장기작전 중 한 번 정도 받아 보는 서너 줄의 가족 전보에 위안&lt;br /&gt;&lt;br /&gt; 디젤 잠수함에서는 디젤 기름으로부터 나오는 악취와 혼탁한 함 내 공기의 축적으로 인해 폐결핵에 걸리기도 했는데 라폰함은 디젤 기름의 악취와 원자에서 나오는 방사능을 제거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lt;br /&gt;&lt;br /&gt;이처럼 라폰함은 최신형 공기정화 장치가 설치돼 함 내 공기를 정화하므로 누구나가 안락하다고 명백히 말할 수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담배연기가 함 내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하수구와 같은 곳에서의 생활이 더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승조원들은 잠망경 영상과 가족의 소식을 전해 주는 전보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이것들만이 바깥의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가족 소식란은 전보의 주요 내용이 아니었다. 따라서 부수적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포함될 수 있는 양도 상당히 제한됐다. 즉, 모든 승조원이 사랑하는 아내 또는 부모로부터 소식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보통 임무수행 기간에 한 번 정도, 그것도 약 서너 줄 정도의 소식만을 전할 수 있었다.&lt;br /&gt;&lt;br /&gt; ● 당직근무 시간 이외의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승조원의 지혜&lt;br /&gt;&lt;br /&gt; 다음으로 승조원들의 일상생활을 살펴보면 승조원들은 6시간 동안 당직근무를 했다. 당직 이후에는 주로 정비와 끝없는 행정업무, 그리고 승조 자격부여 평가 등으로 약 12시간 동안 일과를 진행해야 했다.이러한 생활이 주기적으로 반복됐다. &lt;br /&gt;&lt;br /&gt;여기에서 승조 자격부여 평가는 새로 잠수함 승조원으로 부임한 대원들에게 해당됐다. 이들은 잠수함에 설치된 모든 장비 및 계통에 대해 이해해야 했으며, 또한 운용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평가받아야 했다. &lt;br /&gt;&lt;br /&gt;이러한 평가에서 합격하지 못하면 그 어느 누구도 공식적인 잠수함 승조원이 될 수 없었으며, 정식 잠수함 승조원 표시인 돌핀 마크를 부착할 수 없었다. &lt;br /&gt;&lt;br /&gt;&amp;lt;다음 회에 계속&amp;gt;&lt;br /&gt;&lt;br /&gt;&lt;strong&gt;잠수함 퀴즈&lt;/strong&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호주 해군이 6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1982년부터 20년에 걸쳐 독자 개발한 잠수함은 무슨 급인가?&lt;br /&gt;※ 지난주 정답 : 킬로급 잠수함&lt;br /&gt;&lt;br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div class=&quot;imgExplain&quot; style=&quot;DISPLAY: block&quot;&gt; &lt;table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75&quot; align=&quot;center&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border=&quot;0&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기사사진과 설명&lt;/caption&gt;&lt;/p&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175&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img class=&quot;txc-image&quot;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alt=&quot;문근식 (주)솔트웍스 부사장&amp;#10;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 &amp;#10;mksnavy@naver.com&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40112/thumb1/BBS_201401120246372280.jpg&quot; /&gt; &lt;/p&gt; &lt;p class=&quot;Explain&quot;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quot;&gt;문근식 (주)솔트웍스 부사장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 mksnavy@naver.com&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p&gt; &lt;p&gt;&lt;/p&gt; &lt;p&gt;&lt;/p&gt; &lt;p&gt;&lt;/p&gt;&lt;/p&gt;&lt;/p&gt;&lt;/p&gt;&lt;/span&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독일 티거Ⅱ·야크트티거 전차 -  2차대전 당시 최강·최대 ‘괴물 전차’로 탄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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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12-23T16:06:09+09:00</published>
		<updated>2013-12-23T16:06:09+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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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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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장갑은 그 어떤 연합군 전차도 따라올 수 없어 야크트티거는 세계 최강 128㎜ 대전차포 장착 주포와 장갑은 최강이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문제였던 야크트티거 전차.필자제공 거의 70t에 달하는 무게의 티거 II 전차. 독일은 1943년부터 티거와 판터, 즉 호랑이와 표범이라는 양대 ‘맹수’를 전장에 내보냈다. 당시의 거의 모든 연합군 전차들보다 압도적인 장갑과 화력을 자랑하던 이 두 전차는 연합군, 특히 소련군에게 큰 충격을...</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text-align: left;&quot;&gt;&lt;strong&gt;장갑은 그 어떤 연합군 전차도 따라올 수 없어 야크트티거는 세계 최강 128㎜ 대전차포 장착&lt;/strong&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div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quot;imgExplain&quot;&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407&quot; align=&quot;center&quot;&gt;&lt;caption class=&quot;skip&quot;&gt;&lt;/caption&gt;&lt;tbody&gt;&lt;tr&gt;&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407&quot;&gt;&lt;img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class=&quot;txc-image&quot; alt=&quot;주포와 장갑은 최강이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문제였던 야크트티거 전차.&amp;#10;필자제공&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1224/thumb1/YA_NP_20131224_00798961.jpg&quot;/&gt;&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 class=&quot;Explain&quot;&gt;주포와 장갑은 최강이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이 문제였던 야크트티거 전차.필자제공&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p&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div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quot;imgExplain&quot;&gt;&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232&quot; align=&quot;center&quot;&gt;&lt;caption class=&quot;skip&quot;&gt;&lt;/caption&gt;&lt;tbody&gt;&lt;tr&gt;&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232&quot;&gt;&lt;img style=&quot;clear: none; float: none;&quot; class=&quot;txc-image&quot; alt=&quot;거의 70t에 달하는 무게의 티거 II 전차.&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1224/thumb1/YA_NP_20131224_00798962.jpg&quot;/&gt;&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 class=&quot;Explain&quot;&gt;거의 70t에 달하는 무게의 티거 II 전차.&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p&gt;&lt;/p&gt;&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 독일은 1943년부터 티거와 판터, 즉 호랑이와 표범이라는 양대 ‘맹수’를 전장에 내보냈다. 당시의 거의 모든 연합군 전차들보다 압도적인 장갑과 화력을 자랑하던 이 두 전차는 연합군, 특히 소련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만 정작 독일군은 이보다 더 강한 전차가 필요했다. 모든 전선에서, 특히 동부전선에서 엄청난 수적 열세에 직면한 독일군은 이 수적 열세를 질적 우세로 메우려 했다. 최대한 많은 적 전차를 최대한 먼 거리에서 격파할 수 있으면서 적 전차의 공격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 ‘무적 전차’를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낀 것이다.&lt;br /&gt;&lt;br /&gt; 사실 독일군은 이미 기존의 전차들과는 비교도 안 될 강력한 전차의 개발을 1937년부터 따로 시작하기는 했다. 그러나 전쟁의 상황이 바뀌면서 여기에 대한 요구조건도 빠르게 바뀌었고, 결국 1943년에 처음 생산이 시작된 신형 전차 ‘티거 II’ , 일명 ‘쾨니히스티거’(왕 호랑이)는 문자 그대로 2차 세계대전에서 실전에 투입된 차량으로는 최강, 최대의 괴물 전차로 탄생하게 된다.&lt;br /&gt;&lt;br /&gt; 티거 II는 당장 장갑 방어력부터 엄청났다. 최대 185㎜에 달하는 장갑은 당시 그 어떤 연합군 전차도 따라올 수 없었다. 사실상 정면에서 이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적 전차나 대전차포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또 주 무장인 71구경장 88㎜ 포는 맞히기만 하면 3㎞ 밖에서도 연합군의 셔먼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괴물이었다. &lt;br /&gt;&lt;br /&gt;적 전차와 정면에서 상대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전차도 파괴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적 전차의 공격도 막아낼 수 있는 천하무적인 셈이었다.&lt;br /&gt;&lt;br /&gt; 하지만, 이런 엄청난 성능을 위해 엄청난 무게가 필요했다. 티거 II의 무게는 거의 70t에 달했다. 그렇잖아도 엄청난 주포와 장갑 때문에 무거울 수밖에 없었지만, 무려 86발에 달하는 포탄까지 실어야 하다 보니 덩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엄청난 덩치를 굴리는데 690마력의 엔진으로 최대 시속 41㎞/h를 발휘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속도가 아니었다.&lt;br /&gt;&lt;br /&gt; 티거 II는 워낙 무겁다 보니 지나갈 수 있는 다리나 지형도 꽤 제약이 많았다. 게다가 신뢰성의 문제가 만만치 않았다. 변속기 등이 고장 날 일이 많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 전차 45대를 지급받아 동부전선에 출전한 제501 중(重)전차 대대는 오래지 않아 운용 가능한 전차의 수가 8대로 떨어졌다. 대부분이 적의 공격 때문이 아니라 고장 때문에 쓸 수 없었다. 물론 독일군도 이 문제를 고치기 위해 노력한 끝에 1944년 12월에 이르면 티거 II의 80%가 가동 상태를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lt;br /&gt;&lt;br /&gt; 하지만,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워낙 무거워 연료 소모가 극심한 데다 독일군의 연료 재고는 바닥이 나 있었다. 이 때문에 종종 전투 중이나 이동 중에 연료가 떨어졌고 이런 차들 중 상당수는 연료를 다시 구하지 못해 폭파처분해야 했다. 옮길 수는 없고 연합군에게 노획되게 놔둘 수도 없었던 것이다.&lt;br /&gt;&lt;br /&gt; 가장 큰 문제는 적은 수였다. 주문된 수효는 1500대였으나 실제 생산된 수는 492대에 불과했다. 워낙 생산도 쉽지 않은 데다 연합군의 폭격까지 더해져 최소 657대가 완성되지 못하고 파괴된 것이다. 이 정도 수효로는 아무리 강력해도 전쟁에 큰 영향을 끼칠 수는 없었다.&lt;br /&gt;&lt;br /&gt; 하지만, 독일군은 이보다 더 강력한 괴물을 만들어 실전에 투입했다. 바로 ‘야크트티거’였다. 야크트티거는 티거II에서 포탑을 떼어내고 차체에 고정식 전투실을 설치한 뒤 당시 세계 최강의 대전차포인 128㎜ 대전차포를 장착했다. 이 포는 2km 밖에서도 148㎜의 장갑판을 관통하는 괴력을 발휘했으며 사실상 어떤 거리에서도 연합군 전차를 제거할 수 있었다. 게다가 최대 장갑 두께는 250㎜에 달했다.&lt;br /&gt;&lt;br /&gt; 하지만, 야크트티거는 무려 71t이나 되는 괴물이었고 기계적 신뢰성은 티거 II보다도 떨어졌다. 생산된 수효도 채 90대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고 그나마도 전쟁 말기에 나와 대부분이 제대로 싸울 연료도 확보하지 못했다. 실전에 영향을 끼치기에는 너무 늦게, 너무 적게 나온 셈이다. &lt;br /&gt;&lt;br /&gt;&amp;lt;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amp;gt; &lt;/p&gt;&lt;/p&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숨죽인 蘇 미사일 시험 美 감청 숨막힐 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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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12-01T19:04:52+09:00</published>
		<updated>2013-12-01T19:04:52+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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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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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문근식의 SubmarineWorld&lt;59&gt;미·소 냉전 시 첩보 잠수함들의 물밑 전쟁-첩보수집 작전 중 화재로 침몰 미 해군의 디젤잠수함(2) / 국방일보 사흘이 지나도 음성통신 외엔 ‘별무소득’ 임무 수행 불가능 구역 벗어나기로 가닥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은 일부 디젤 잠수함에 스노클을 장착해 첩보잠수함으로 활용했고 대다수는 해체했다.사진은 1946년 해체 대기 중인 미해군의 잠수함 52척 과잠수함 지원함들의 모습이며, 이 잠수함들...</summary>
	<content type="html">&lt;dt id=&quot;ntt_title2&quot;&gt;문근식의 SubmarineWorld&amp;lt;59&amp;gt;미·소 냉전 시 첩보 잠수함들의 물밑 전쟁-첩보수집 작전 중 화재로 침몰 미 해군의 디젤잠수함(2) / 국방일보&lt;/dt&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id=&quot;ntt_content&quot;&gt; &lt;p&gt;&lt;strong&gt;사흘이 지나도 음성통신 외엔 ‘별무소득’ &amp;nbsp;임무 수행 불가능 구역 벗어나기로 가닥&lt;/strong&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div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quot;imgExplain&quot;&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53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lt;/caption&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530&quot;&gt;&lt;img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class=&quot;txc-image&quot; onclick=&quot;imgView(&#039;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1201/thumb1/BBS_201312010332457640.jpg&#039;);&quot; alt=&quot;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은 일부 디젤 잠수함에 스노클을 장착해 첩보잠수함으로 활용했고 대다수는 해체했다.사진은 1946년 해체 대기 중인 미해군의 잠수함 52척 과잠수함 지원함들의 모습이며, 이 잠수함들은 선령이 4년밖에 안 된 아까운 것들이다. 필자제공&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1201/thumb1/BBS_201312010332457640.jpg&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 class=&quot;Explain&quot;&gt;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군은 일부 디젤 잠수함에 스노클을 장착해 첩보잠수함으로 활용했고 대다수는 해체했다.사진은 1946년 해체 대기 중인 미해군의 잠수함 52척 과잠수함 지원함들의 모습이며, 이 잠수함들은 선령이 4년밖에 안 된 아까운 것들이다. 필자제공&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br /&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div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quot;imgExplain&quot;&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65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lt;/caption&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650&quot;&gt;&lt;img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class=&quot;txc-image&quot; onclick=&quot;imgView(&#039;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1201/thumb1/BBS_201312010332579800.jpg&#039;);&quot; alt=&quot;잠수함의 침대 수는 승조원 수보다 부족하다.그래서 침대에서 자던 승조원이 당직임무 교대차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다 재빨리 그 자리에 들어가야 했다. 이것을 잠수함에서는 핫 벙커(Hot Bunker)라 부른다. 사진은 가끔 승조원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한 잠수함의 어뢰실.&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1201/thumb1/BBS_201312010332579800.jpg&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 class=&quot;Explain&quot;&gt;잠수함의 침대 수는 승조원 수보다 부족하다.그래서 침대에서 자던 승조원이 당직임무 교대차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다 재빨리 그 자리에 들어가야 했다. 이것을 잠수함에서는 핫 벙커(Hot Bunker)라 부른다. 사진은 가끔 승조원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기도 한 잠수함의 어뢰실.&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br /&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p&gt; &lt;p&gt; ▶통신 감청에 이어 군함과 상선의 추진기 특성도 녹취&lt;br /&gt;&lt;br /&gt; 1948년 미 해군은 소련의 통신을 감청하고 또 소련 군함과 상선 추진기의 회전수를 측정하기 위해 씨도그( Seadog, SS-401)함과 블랙핀(Blackfin, SS-322)함을 베링 해로 보냈다. 이것은 수동 음파탐지기로 소련 선박의 음향특성을 식별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코치노함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마지막으로 취역한 잠수함으로서 B-29 항공기가 첫 원자탄을 투하한 지 2주 후에 다른 전투에 투입될 운명이었으나, 전쟁이 끝나자 코치노함과 터스크(Tusk, SS-426)함은 스노클 시스템과 최신 장비를 탑재한 후 다른 임무에 사용토록 개조됐다. 정보관계자들은 코치노함과 같이 스노클을 할 수 있는 잠수함이 이런 임무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이런 잠수함을 이용하면 소련 연안에서 들키지 않고 소련의 핵미사일 시험을 은밀하게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필요 시 잠망경, 통신 안테나, 그리고 스노클 마스트 등만 수면상에 노출시키면 되기 때문에 항공기에 발각되지 않고 과감한 첩보수집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으로 떠올랐다. &lt;br /&gt;&lt;br /&gt; ▶첩보수집 잠수함은 일단 출항하면 육지와는 통신단절 후 작전&lt;br /&gt;&lt;br /&gt; 코치노함에 파견된 오스틴은 그가 가져왔던 블랙박스에 동축케이블 커넥터를 연결해 통신 감청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그 블랙박스는 검은색이 아니라 해군의 전통적이고 대표적인 회색이었다. &lt;br /&gt;&lt;br /&gt; 모든 것은 8월 중순에 완료됐으며 터스크함과 함께 포츠머스 조선소를 출항했다. 다른 잠수함 편대인 토로(Toro,SS-422)함과 코르세이어(Corsair, SS-435)함 또한 동일한 시기에 같은 임무에 투입됐다. 해군에서는 이를 ‘가상 통신 경비훈련’이라고 칭했다. 잠수함은 일단 출항하면 육상본부와 어떠한 교신도 할 수 없도록 지시받았다. 이들 잠수함은 포츠머스 조선소를 벗어나자마자 잠항해 육상에 있는 어느 누구도 이 4척의 잠수함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lt;br /&gt;&lt;br /&gt; 코치노함은 잠항 몇 시간 후 압력선체를 관통해 설치한 케이블 수밀부분이 높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바람에 오스틴은 뜻밖의 해수목욕을 해야만 했다. 그는 즉시 그 틈새를 막고 장비 작동이 가능하게 손을 봤다. &lt;br /&gt;&lt;br /&gt; 코치노함 승조원 중 삼분의 일은 실전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역전의 용사답게 많은 무용담을 가지고 있었다. 좁은 함내 어디에서든 그들이 이야기꽃을 피울 땐 다른 승조원들은 자기 일인 양 귀를 기울였다. 오스틴 역시 지난날 순양함에서 체험한 실전 상황을 이야기하곤 하며 승조원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는 출동 중에 주로 즐기는 주사위 놀이를 하며 다른 승조원들과 어울렸다. &lt;br /&gt;&lt;br /&gt; ▶침대 부족해 승조원들은 침대를 교대로 사용해야&lt;br /&gt;&lt;br /&gt; 잠수함에 설치된 침대 수는 승조원 수보다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침대에서 자던 승조원이 당직임무 교대차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다 재빨리 그 자리에 들어가야 했다. 이것을 잠수함에서는 핫 벙커(Hot Bunker)라 부른다. 함장, 부장, 라이트 소령, 오스틴과 그의 보좌요원 총 5명을 제외한 나머지 승조원 모두는 3직제 당직임무가 부여됐다. 오스틴은 자기가 3직제 당직임무에 투입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그는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었고, 음식을 서로 먹겠다고 동료와 다투지 않아도 되었으며, 스팸을 포함한 모든 음식을 포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즐거움도 얼마 가지 못했다. 베니테즈 함장은 오스틴을 함교 탑으로 불러 당직근무에 임하도록 지시했다.&lt;br /&gt;&lt;br /&gt; 그것은 오스틴이 무엇엔가 몰두하고 바쁘게 일함으로써 무료함과 나태해지는 걸 막고 그의 행동을 예의주시하기 위해서였다.&lt;br /&gt;&lt;br /&gt; 얼마 지나지 않아 코치노함과 터스크함은 각각의 임무구역인 그린란드 북방 북극의 빙하 속으로 항해를 했으며 소련 연방 해역 가까이로 침로를 수정해 항해를 계속했다. 그들은 북극권에 있는 노르웨이 해역을 지날 때까지 속력을 낮추지 않았다.&lt;br /&gt;&lt;br /&gt; ▶바렌츠 해에 진입해 전파 감청 시작 &lt;br /&gt;&lt;br /&gt; 1949년 8월 20일 토요일 두 잠수함은 바렌츠 해에 진입했다. 코치노함은 오스틴의 첩보수집 임무를 위해 노르웨이 끝자락으로부터 12마일 떨어져 있는 해역으로 항해를 계속했다. 여기서부터 베니테즈 함장은 첩보 수집을 위해 오스틴의 요구대로 침로를 잡아주기로 했다. 안테나를 수면상으로 높이 올리기 위해 함교 탑을 반쯤 부상시키자 함이 노출될 위험이 매우 높았다. 야간임에도 대낮같이 밝은 백야였기 때문에 수상함이나 트롤어선 등 물 위에 떠 있는 어떤 함정으로부터도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했다. 특히 주간에는 햇빛에 함교 탑이 반사돼 원거리에서 발각될 위험성이 많았다. &lt;br /&gt;&lt;br /&gt; 오스틴은 코치노함이 노르웨이 북동해역을 통과할 때부터 소련의 전자파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코치노함은 무르만스크에서 약 150마일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소련의 미사일시험 신호를 탐지하기에는 좋은 위치였다. 베니테즈 함장이 최적의 위치라고 판단한 곳이었다. &lt;br /&gt;&lt;br /&gt; 오스틴의 블랙박스는 발사단계에 있는 고주파수대를 탐지하게끔 고안돼 있었는데 이 스파이 임무는 다른 도박과는 상이한 추측게임과도 같았다. 소련의 미사일 시험발사계획을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오스틴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의 블랙박스가 있는 조그마한 공간에서 탐지장비의 다이얼을 돌리면서 신호를 잡는 것뿐이었다. &lt;br /&gt;&lt;br /&gt; 임무구역에 도착한 지 3일이 지났다. 오스틴은 아직도 소련의 음성통신 몇 가지만 탐지했을 뿐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베니테즈 함장은 오스틴에게 하루만 더 기회를 주고자 했으나, 오스틴은 몇 주 더 있기를 건의했다. 오스틴은 소련 시험미사일 신호를 탐지함으로써 공적을 한 건 올리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날 저녁 무엇인가 탐지되기 시작했으나 미사일 발사신호는 아니었다. 함장은 오스틴에게 시험 장비를 주의 깊게 살피라고 지시했으며, 오스틴은 함장에게 보다 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는 위치로 접근하자고 권고했다. &lt;br /&gt;&lt;br /&gt; 사실, 그 주변 어디에서도 미사일 시험 징후를 알 수 있는 흔적을 잡을 수는 없었다. 코치노함은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원기 왕성한 육식동물이 사냥술을 익히는 것과 같이 코치노함과 터스크함은 상호탐색과 회피전술을 익히고자 했으나 통신 감청소득이 없자 더 이상의 임무수행은 불가능했고 임무구역을 이탈해야 했다.&lt;br /&gt;&lt;br /&gt; 베니테즈 함장은 처음부터 이번 임무를 달갑지 않게 생각해 왔지만 그래도 아무런 성과 없이 임무구역에서 이탈하게 된 것에 대해 아쉬워하고 있었다. 비록 오스틴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함장은 임무수행 결과보고서에 ‘그래도 이 정도 탐지했다는 것은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고 기록하며 돌아가게 된 것을 내심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 &lt;br /&gt;&lt;br /&gt;&lt;strong&gt;잠수함 퀴즈&lt;/strong&gt;&lt;/p&gt; &lt;p&gt;미·소 냉전 시 소련 연방 고위급 인사들의 특급 비밀을 감청하거나 도청하는 일을 주로 하는 미국 스파이의 익명은 무엇인가?&lt;br /&gt;지난 주 정답 : 1954년&lt;br /&gt;&lt;/p&gt; &lt;div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quot;imgExplain&quot;&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75&quot; align=&quot;center&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lt;/caption&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175&quot;&gt;&lt;img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class=&quot;txc-image&quot; onclick=&quot;imgView(&#039;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1201/thumb1/BBS_201312010320201260.jpg&#039;);&quot; alt=&quot;문근식 &amp;#10;(주)솔트웍스 부사장&amp;#10;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 &amp;#10;mksnavy@naver.com&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1201/thumb1/BBS_201312010320201260.jpg&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 class=&quot;Explain&quot;&gt;문근식 (주)솔트웍스 부사장 한국국방안보포럼 대외협력국장 mksnavy@naver.com&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br /&gt;&amp;nbsp;&lt;/p&gt; &lt;p&gt;&lt;/p&gt; &lt;p&gt;&lt;br /&gt;&lt;br /&gt;&lt;/p&gt;&lt;/p&gt;&lt;/span&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해병대 상륙훈련에 첫 참가한 오스프리는?</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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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4-28T21:33:56+09:00</published>
		<updated>2021-01-31T06:40:12+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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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미군의 신형 수송수단인 오스프리 수직이착륙 수송기가 지난 26일 한·미 연합 독수리연습(FE)의 일환으로 포항에서 진행된 한·미 해병대 상륙훈련(쌍용훈련)에 최초로 참가했다. 이날 미군은 미 해병대는 MV-22 3대를 후텐마 기지에서 전개해 병력전개 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해안상륙훈련에는 비행모습만 비춰졌다. 군관계자는 &quot;이날 MV-22 오스프리 3대가 내륙지역에 병력전개 훈련을 진행했다&quot;고 밝혔다. MV-22는 2개의 엔진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img alt=&quot;LYS_3887.jpg&quot; height=&quot;681&quot; src=&quot;http://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337/419/2db76363d00b064eee145fc766afa4c5.jpg&quot; width=&quot;1024&quot; /&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미군의 신형 수송수단인 &lt;/span&gt;&lt;a class=&quot;dklink&quot; href=&quot;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428001858&amp;amp;subctg1=&amp;amp;subctg2=&amp;amp;OutUrl=daum&quot; style=&quot;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 cursor: defaul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오스프리&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 수직이착륙 수송기가 지난 26일 한&amp;middot;미 연합 독수리연습(FE)의 일환으로 &lt;/span&gt;&lt;a class=&quot;dklink&quot; href=&quot;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428001858&amp;amp;subctg1=&amp;amp;subctg2=&amp;amp;OutUrl=daum&quot; style=&quot;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 cursor: defaul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포항&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에서 진행된 한&amp;middot;미 &lt;/span&gt;&lt;a class=&quot;dklink&quot; href=&quot;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428001858&amp;amp;subctg1=&amp;amp;subctg2=&amp;amp;OutUrl=daum&quot; style=&quot;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 cursor: defaul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해병대&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 상륙훈련(쌍용훈련)에 최초로 참가했다.&lt;/span&gt;&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이날 미군은 미 해병대는 MV-22 3대를 후텐마 기지에서 전개해 병력전개 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해안상륙훈련에는 비행모습만 비춰졌다. 군관계자는 &amp;quot;이날 MV-22 오스프리 3대가 내륙지역에 병력전개 훈련을 진행했다&amp;quot;고 밝혔다.&lt;/span&gt;&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amp;nbsp;MV-22는 2개의 엔진 &lt;/span&gt;&lt;a class=&quot;dklink&quot; href=&quot;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428001858&amp;amp;subctg1=&amp;amp;subctg2=&amp;amp;OutUrl=daum&quot; style=&quot;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 cursor: defaul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방향&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을 바꿔 수직이륙과 착륙이 가능하다. 기존 &lt;/span&gt;&lt;a class=&quot;dklink&quot; href=&quot;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428001858&amp;amp;subctg1=&amp;amp;subctg2=&amp;amp;OutUrl=daum&quot; style=&quot;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 cursor: defaul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헬기&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에 비해 항속거리가 2.5배 이상 길며 속도도 2배 빠르게 비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lt;/span&gt;&lt;br /&gt; &lt;br /&gt; &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그러나 잇따른 추락사고로 &amp;lsquo;과부 제조기&amp;rsquo;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비행 안전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일본 미군기지 주변 주민들과 &lt;/span&gt;&lt;a class=&quot;dklink&quot; href=&quot;http://www.segye.com/Articles/News/Politics/Article.asp?aid=20130428001858&amp;amp;subctg1=&amp;amp;subctg2=&amp;amp;OutUrl=daum&quot; style=&quot;color: rgb(0, 0, 0); font-weight: bold; text-decoration: underline; cursor: default;&quot; target=&quot;_blank&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시민단체&lt;/span&gt;&lt;/a&gt;&lt;span style=&quot;font-family: Arial, Helvetica, sans-serif;&quot;&gt;, 야당은 &amp;ldquo;MV-22의 추락 위험성이 크다&amp;rdquo;며 강하게 반발했었다.&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잠수함 함장, 왜 중요하며 어떻게 탄생하나 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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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3-02-21T16:36:25+09:00</published>
		<updated>2013-02-21T16:36:25+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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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잠수함 함장, 왜 중요하며 어떻게 탄생하나 ② / 국방일보 5개월 동안 모든 훈련 직접 경험 구축함-잠수함 해상 실제 기동도 기사사진과 설명 함장과정 훈련에 표적함으로 참가한 네덜란드 프리깃 트롬프. 기사사진과 설명 프리깃을 공격하기 위해 잠망경으로 최종 확인 하고 있는 필자. ▶한국의 IMF 상황이 네덜란드 잠수함 함장과정 유학 길 터주다 네덜란드 잠수함 함장과정을 향한 도전은 여전히 쉽지가 않았다. 우선, 함장과정...</summary>
	<content type="html">&lt;p&gt;잠수함 함장, 왜 중요하며 어떻게 탄생하나 ② / 국방일보&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5개월 동안 모든 훈련 직접 경험 구축함-잠수함 해상 실제 기동도 &lt;/strong&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div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quot;imgExplain&quot;&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30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기사사진과 설명&lt;/caption&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300&quot;&gt;&lt;img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class=&quot;txc-image&quot; onclick=&quot;imgView(&#039;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0217/thumb1/BBS_201302170544460500.jpg&#039;);&quot; alt=&quot;함장과정 훈련에 표적함으로 참가한 네덜란드 프리깃 트롬프.&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0217/thumb1/BBS_201302170544460500.jpg&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 class=&quot;Explain&quot;&gt;함장과정 훈련에 표적함으로 참가한 네덜란드 프리깃 트롬프.&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div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quot;imgExplain&quot;&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355&quot; align=&quot;center&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기사사진과 설명&lt;/caption&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355&quot;&gt;&lt;img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class=&quot;txc-image&quot; onclick=&quot;imgView(&#039;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0217/thumb1/BBS_201302170540176960.jpg&#039;);&quot; alt=&quot;프리깃을 공격하기 위해 잠망경으로 최종 확인 하고 있는&amp;#10;필자.&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0217/thumb1/BBS_201302170540176960.jpg&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 class=&quot;Explain&quot;&gt;프리깃을 공격하기 위해 잠망경으로 최종 확인 하고 있는 필자.&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br /&gt;&amp;nbsp;&lt;/p&gt; &lt;p&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 ▶한국의 IMF 상황이 네덜란드 잠수함 함장과정 유학 길 터주다&lt;br /&gt;&lt;br /&gt; 네덜란드 잠수함 함장과정을 향한 도전은 여전히 쉽지가 않았다. 우선, 함장과정에 입교해서야 알았던 실제 교육과정 비용이 참으로 비쌌다. 5개월 과정에 당시 미국 달러로 13만 달러(그 당시 환율로 약 1억7000만 원)이었으니 세계의 모든 군사 유학과정 중 가장 비싼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국에 IMF 상황이 터지자 국방부에서는 1998년에 계획된 전군의 해외 군사유학과정을 대폭 취소하는 조치를 했다. 통상 해군에서는 연중 해외 군사유학과정이 60~70개 과정이었으나 해당연도 출국대상 유학과정을 5개 과정으로 축소했다.&lt;br /&gt;&lt;br /&gt; 그런데 운이 좋아 네덜란드 유학과정도 이 5개 과정에 포함됐다.&lt;br /&gt;&lt;br /&gt; 필자는 네덜란드로부터 교육 과정 공석허가 통보를 받은 이후 줄곧 네덜란드 해군 측과 집에 사비를 들여 설치한 팩스를 이용해 정보교환을 했다. 과정기간, 과정에 드는 비용, 숙식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의 국방부에서 해당연도 해외유학과정 축소 결정을 하면서 최종 승인된 네덜란드 잠수함 함장과정 유학비는 1만3000달러(25만 길더)였다. 네덜란드 화폐 25만 길더는 사실 미화 13만 달러였으나 네덜란드에서 한국에 보내려고 타이핑하면서 타자수의 실수로 0자를 하나 빼먹은 것이다. 해군 본부에서도 국방부에 승인요청 시 1만3000달러만 보았지 길더는 보지 않고 국방부 최종 승인을 받았던 것이며, 타자수의 본의 아닌 실수는 곧 행운으로 이어졌다.&lt;br /&gt;&lt;br /&gt; 현지 무관은 자신이 노력해서 어렵게 따낸 입교 허가였지만 타자수의 실수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최고의 지혜를 발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한국의 IMF 사정을 부각시키며 어려울 때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강력한 외교적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그들이 요청한 소요비용의 10분의 1인 1만3000달러에 입교를 허락받았다. 이러한 무관의 노력과 한국의 IMF 상황이 아니었다면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을까? &lt;br /&gt;&lt;br /&gt; &lt;br /&gt; ▶세계에서 가장 비싼 군사 유학 과정(?)&lt;br /&gt;&lt;br /&gt; 잠수함에서 함장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함을 이미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유학과정은 함장이 모든 훈련을 직접 경험하도록 교육과정이 디자인돼 있다. 모든 훈련은 수상함·항공기·잠수함이 해상에서 실제로 기동하면서 훈련을 한다. 교관은 수상함·항공기에 잠수함을 공격하도록 제반 전투상황을 부여하고 가능한 한 최고로 어려운 상황에서 잠수함 함장이 전투 목표를 달성하고 살아남게 하는 극기 훈련 상황을 부여한다.&lt;br /&gt;&lt;br /&gt; ●구축함과 잠수함의 해상 실제 기동으로 훈련 경비 많이 들어&lt;br /&gt;&lt;br /&gt; 5개월간 동원된 전력이 구축함 18척, 지원함 3척, 잠수함 3척 그리고 항공기 수십 대가 됐기 때문에 엄청난 예산이 소요됐다. 물론 동원되는 선박·항공기의 경비는 NATO 훈련 협약에 따라 각국에서 균등하게 지불하고, 종합한 경비는 교육과정에 참가하는 참가국에서 교육과정비용을 지급해 일괄 계산하게 돼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학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lt;br /&gt; 필자가 교육을 마치던 1998년 당시 네덜란드 측에 매년 한국에 공석을 할당해 주라고 요청했으나 이미 2년 후인 2000년도까지 다른 나라와 예약돼 있었으며 차후 공석이 생길 때 고려하겠다는 답을 들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과정비를 10분의 1로 깎아줘 수료할 수 있었다는 보고를 하자 너무 비싸서 다음부터는 보낼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필자의 경험을 토대로 한국 해군에 독자적인 잠수함 함장과정을 개설하라는 명령을 내렸다.&lt;br /&gt;&lt;br /&gt;&lt;br /&gt; ▶육상에서 도상 훈련 숙달 후 해상서 실제 적용훈련&lt;br /&gt;&lt;br /&gt; 잠수함 보유국에 따라 약간 다르기는 하지만 세계 각국의 잠수함 함장과정은 통상 2~4개월이며, 미국은 약 6개월로 가장 길다. 네덜란드 잠수함 함장과정은 당시 준비기간 1개월을 포함해 약 5개월이었다. 준비기간 중에는 주로 잠수함 관련 자국 및 인접국의 시설 견학, 네덜란드 잠수함 항해 승조 체험, 자체학습 기간으로 활용된다.&lt;br /&gt;&lt;br /&gt; 필자의 경우, 입교한 학생들과 함께 네덜란드 잠수함 작전 지휘소, 영국의 잠수함 함대사령부, 스코틀랜드 어업 전진기지 등을 방문해 잠수함이 어떻게 지휘되고 운영되는가를 파악했다. 그리고 이 기간 중 약 1주는 네덜란드 잠수함에 편승해 영어로 잠수함을 지휘하는 절차를 숙달했다.&lt;br /&gt;&lt;br /&gt; 약 1개월의 준비기간이 종료되면 본 과정이 시작된다. 본 과정은 1단계 6주, 2단계 9주로 나누어 훈련강도를 높여 가는데, 1단계는 주로 잠수함 잠망경 운용술 훈련을 하며 2단계는 전술훈련을 한다. 1, 2단계 모두 육상훈련장에서 숙달을 한 후 해상 적응훈련을 한다.&lt;br /&gt;&lt;br /&gt; 1단계는 육상에서 4주 잠망경 운용술 훈련을 하고 2주는 해상에서 적용훈련을 한다. 1단계 훈련 목표는 복잡하고 위험한 해역에서 잠수함을 안전하게 조함하는 생존훈련이다.&lt;br /&gt;&lt;br /&gt; ●구축함과 잠수함 간 피 말리는 해상 공방전 훈련&lt;br /&gt;&lt;br /&gt;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잠수함 함장은 일정해역에서 잠망경 심도로 대기하며 잠망경을 이용해 모든 표적정보를 획득하게 된다. 이때 구축함 3척이 잠수함의 위치를 파악해 동시에 공격해 들어오면, 잠수함은 구축함을 먼저 공격하고, 또한 구축함이 탐지하는 것을 회피하는 훈련을 한다. 학생장교들은 순서에 따라 함장 임무를 수행하며, 목에는 초시계를 3개까지 걸고 잠수함을 노리는 각 함정의 방위, 거리, 침로, 관측주기를 신속하게 암산해 공격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lt;br /&gt;&lt;br /&gt; 구축함은 잠수함 위치로 최대속도로 기동해 어뢰 및 폭뢰로 공격 임무를 수행하는데, 실로 숨 막히는 교전(交戰)이 순식간에 이뤄진다. 필자는 독일에서 잠수함 인수 후 이렇게 어려운 훈련을 한 적이 없었기에 참으로 숨 막히는 훈련이었다. 비록 미국, 독일에서의 유학경험으로 생활영어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초 단위로 함정을 식별하고 방위, 거리, 관측주기를 암산해 영어로 조함을 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가 않았다.&lt;br /&gt;&lt;br /&gt;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한국식 특별 과외 불가피&lt;br /&gt;&lt;br /&gt; 어쩔 수 없이 교관에게 일과 후 특별교육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교관이 말하기를 나같이 잠수함 승조경험이 풍부하지 않은 초급 운용술 정도에 익숙한 장교는 애초부터 교육과정에 입교시키지 않았어야 한다고 말했다.&lt;br /&gt;&lt;br /&gt; 내가 질문할 때마다 교관의 대답은 “Ask to other students”로 “다른 학생들에게 물어봐라”였다. 나에게 설명하는 것은 너무 기초적이고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같이 입교한 네덜란드 장교와 호주 장교에게 저녁을 사주면서 한국식 특별과외 수업을 받았다. 매일 16:00시부터 18:00시까지 두 시간씩 특별 과외수업을 받으면서 그들 수준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다. 다음 회에 계속.&lt;br /&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 &lt;div style=&quot;DISPLAY: block&quot; class=&quot;imgExplain&quot;&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summary=&quot;기사사진과 설명입니다.&quot; cellpadding=&quot;0&quot; width=&quot;164&quot; align=&quot;center&quot;&gt; &lt;caption class=&quot;skip&quot;&gt;기사사진과 설명&lt;/caption&gt; &lt;tbody&gt; &lt;tr&gt; &lt;td bgcolor=&quot;#e9e9e9&quot; width=&quot;164&quot;&gt;&lt;img style=&quot;FLOAT: none; CLEAR: none&quot; class=&quot;txc-image&quot; onclick=&quot;imgView(&#039;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0217/thumb1/BBS_201302170540432530.jpg&#039;);&quot; alt=&quot;문근식 한남대학교 교수·(주)솔트웍스 고문mksnavy@naver.com&quot; src=&quot;http://kookbang.dema.mil.kr/newspaper/tmplat/upload/20130217/thumb1/BBS_201302170540432530.jpg&quot;/&gt; &lt;p style=&quot;TEXT-ALIGN: left; LINE-HEIGHT: 18px&quot; class=&quot;Explain&quot;&gt;문근식 한남대학교 교수·(주)솔트웍스 고문mksnavy@naver.com&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lt;br /&gt;&lt;br /&gt;&amp;nbsp;&lt;/p&gt; &lt;p&gt;&lt;strong&gt;잠수함 퀴즈&lt;/strong&gt;&lt;/p&gt; &lt;p&gt;214급 잠수함은 AIP 추진체계를 탑재하고 있으며, 209급 잠수함에 비해 소음준위가 훨씬 낮을 뿐만 아니라 음파 탐지 성능도 현저히 개선됐다. 한국 해군의 214급 잠수함 중 첫 번째 함정의 이름은 무엇인가?&lt;br /&gt;&lt;br /&gt; 지난주 정답 : 미국·영국·중국·러시아·프랑스·인도 총 6개국&lt;/p&gt;&lt;/p&gt;&lt;/p&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밀리터리 스토리-대통령과 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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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2-12-20T19:31:28+09:00</published>
		<updated>2021-01-31T06:40:44+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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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밀리터리 스토리-대통령과 군 / 국방일보 2012.12.21 군의 최고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군은 창설 이래 지금까지 철통 같은 안보태세를 유지함으로써 대통령이 원활하게 국정을 수행하는 데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뒷받침을 해 왔다. 그 와중에 대통령과 군에 얽힌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 일부분을 살펴봤다. 최전선 방문 ‘안보’ 점검하고 해외파병부대 찾아 장병 격려 군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부대이름도 하사 애칭으로 굳어 ...</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tabindex=&quot;0&quot;&gt;밀리터리 스토리-대통령과 군&amp;nbsp; / 국방일보 2012.12.21&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tabindex=&quot;0&quot;&gt;군의 최고통수권자는 대통령이다. 군은 창설 이래 지금까지 철통 같은 안보태세를 유지함으로써 대통령이 원활하게 국정을 수행하는 데 든든하고 믿음직스럽게 뒷받침을 해 왔다. 그 와중에 대통령과 군에 얽힌 이야기도 적지 않다. 그 일부분을 살펴봤다.&lt;br /&gt; &lt;br /&gt; 최전선 방문 &amp;lsquo;안보&amp;rsquo; 점검하고 해외파병부대 찾아 장병 격려 군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amp;hellip; 부대이름도 하사 애칭으로 굳어&lt;/span&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table align=&quot;center&quot; border=&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tabindex=&quot;0&quot;&gt;&lt;img alt=&quot;50780.jpg&quot; height=&quot;432&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426/336/e592d848df75318a0c9e13a683ad572c.jpg&quot; width=&quot;650&quot; /&gt;&lt;/span&gt;&lt;/span&gt;&lt;/div&gt; &lt;/td&gt; &lt;/tr&gt; &lt;tr&gt; &lt;td align=&quot;middle&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gt; &lt;p align=&quot;left&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lt;span tabindex=&quot;0&quot;&gt;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월 18일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연평도를 방문해 K-9 자주포를 운용하는 해병대 장병들을&lt;br /&gt; 격려하고 있다. 자료사진&lt;/span&gt;&lt;/span&gt;&lt;/p&gt; &lt;/td&gt; &lt;/tr&gt; &lt;/tbody&gt; &lt;/table&gt; &lt;p&gt;&amp;nbsp;&lt;/p&gt; &lt;p&gt;&lt;br /&gt; &lt;span style=&quot;font-size:16px;&quot;&gt;▶현직 대통령으로 연평도 첫 방문&lt;br /&gt; &lt;br /&gt;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18일 연평도를 방문했다. 현직 대통령으로 연평도를 방문한 것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방문에서 연평부대, 포진지 등을 둘러보고 장병 및 주민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오찬 후에는 연평포격 당시 민가 포격 현장, 동사무소 등도 살펴봤다. 연평포격 2주년을 앞두고 최전방 경계태세를 점검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아울러 NLL 강력 수호 의지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연평도는 NLL에서 불과 1.5㎞ 떨어져 있다.&lt;br /&gt; &lt;br /&gt; 특히 이 대통령은 연평부대를 전격 방문해 관측초소(OP)를 둘러본 뒤 &amp;ldquo;여기 와서 보니 (북한과) 대치한 현장을 실감할 수 있다. 연평도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amp;rdquo;며 &amp;ldquo;통일이 될 때까지는 우리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amp;rdquo;고 말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비행기가 서울로 바로 못 간다 - 동방계획&lt;br /&gt; &lt;br /&gt; 2004년 12월 8일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 부대 방문은 그야말로 &amp;lsquo;007작전&amp;rsquo;을 방불케 했다. 부대 방문계획 추진 자체가 극비리에 진행됐고, 발표도 전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 &lt;br /&gt; &lt;br /&gt; 유럽 순방을 마치고 대한항공 특별기로 귀국길에 오른 노 대통령은 비행기가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을 이륙한 지 30분쯤 지난 8일 오전 4시 30분쯤(한국시간), 동행한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앉아 있던 이코노미석으로 갑자기 찾아와 &amp;ldquo;비행기가 서울로 바로 못 간다&amp;rdquo;는 깜짝 발언과 함께 아르빌 방문 사실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lt;br /&gt; &lt;br /&gt; 파리&amp;sim;쿠웨이트&amp;sim;아르빌&amp;sim;쿠웨이트&amp;sim;서울로 이어지는 이 작전의 이름은 &amp;lsquo;동방계획&amp;rsquo;. 노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amp;ldquo;그동안 비공개리에 한 부대배치가 완전히 끝나서 장병들이 안착했기 때문에 연말을 기해 아무래도 제가 한번 가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다. 또 기왕에 파병해서 우리 장병들이 수고하는데 그렇게 하는 게 효과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다녀오기로 했다&amp;rdquo;고 말했다.&lt;br /&gt; &lt;br /&gt; 이어 노 대통령은 쿠웨이트 알 무바라크 공항에서 군용기 편으로 아르빌까지 왕복 4시간 40분가량을 비행해서 2시간가량 자이툰 부대에 머무르며 장병들을 격려했다. 극도의 비밀을 지키며 진행됐던 동방계획은 당시 해외에서 세계평화 유지와 재건을 위해 힘쓰던 파병 장병들에 대한 그야말로 깜짝 선물이자 따뜻한 사랑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하사한 부대 명칭 애칭으로 굳어져&lt;br /&gt; &lt;br /&gt; 육군1사단 장병들은 6ㆍ25전쟁 당시 평양 선봉 입성으로 전 부대원이 일계급 특진했고, 이에 크게 만족했던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amp;lsquo;前進&amp;rsquo;이라고 친필로 부대칭호를 하사받았다. 이후 전진은 1사단의 애칭이 됐다. 이처럼 군부대나 기관에는 대통령과 인연이 깊은 명칭들이 많다. 노도, 승리, 백마, 을지, 청룡부대들이 대표적이다. 육군훈련소를 말하는 &amp;lsquo;연무대(鍊武臺)&amp;rsquo;도 마찬가지다. 1951년 11월 1일 부대 창설 당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친필 휘호로 &amp;lsquo;무예를 단련하는 곳&amp;rsquo;이라는 의미에서 연무대라고 명명했다. 육군의 보병ㆍ포병ㆍ기갑ㆍ화학ㆍ공병 등 5개의 병과 학교를 총칭하는 상무대(尙武臺: 무(武)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란 명칭도 이 대통령이 하사한 이름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하사한 명칭도 적지 않다. 육군종합행정학교에 &amp;lsquo;남성대(南城臺)&amp;rsquo;, 육군3사관학교에 &amp;lsquo;충성대(忠誠臺)&amp;rsquo;, 육군3군사령부에 &amp;lsquo;선봉대(先鋒臺)&amp;rsquo;, 육군학생군사학교에 문무대(文武臺), 공군사관학교에 &amp;lsquo;성무대(星武臺)&amp;rsquo;라는 휘호를 내렸다. 이후 이 명칭은 각각 그 부대나 기관을 뜻하는 애칭이 됐다.&lt;br /&gt; &lt;br /&gt; 특히 을지부대는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부대 애칭은 이승만 대통령이 선사했고, 박정희 대통령은 부대 지휘관을 역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책임지역인 인제에서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고,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관할지역에서 복무했기 때문이다. &amp;lt;이주형기자&amp;gt;&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3)  - 국방일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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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2-12-17T10:07:52+09:00</published>
		<updated>2012-12-17T10:07:52+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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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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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3) / 국방일보 2012.12.17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잠수함이 전쟁에 공헌한 가장 큰 전과로 영국으로 향하는 전쟁 물자 수송선박에 대한 무제한 통상파괴전으로 영국을 항복 직전까지 몰고 간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순양함을 격침한 U-21, U-9 등 잠수함의 활약을 최고의 전투로 꼽는다. 이유는 군함을 공격할 때 모든 것을 걸기 때문이다. 상선 공격은 처음 실패할 경우, 제2ㆍ제3의 재...</summary>
	<content type="html">&lt;p&gt;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3)&amp;nbsp; / 국방일보 2012.12.17&lt;/p&gt; &lt;p&gt;&amp;nbsp;&lt;/p&gt; &lt;p&gt;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 잠수함이 전쟁에 공헌한 가장 큰 전과로 영국으로 향하는 전쟁 물자 수송선박에 대한 무제한 통상파괴전으로 영국을 항복 직전까지 몰고 간 것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순양함을 격침한 U-21, U-9 등 잠수함의 활약을 최고의 전투로 꼽는다. 이유는 군함을 공격할 때 모든 것을 걸기 때문이다. 상선 공격은 처음 실패할 경우, 제2ㆍ제3의 재공격을 시도할 수 있지만 군함은 공격에 성공하면 살아남고 실패하면 오히려 공격을 받아 모두 죽을 수 있다는 데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역사상 위대한 전투는 모두 사활을 걸고 치른 것으로 기록된다. 이 목숨을 건 전투들이 대부분 해상에서 이뤄졌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는 적 항구까지 침투해 영국의 전함을 격침한,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장 빛나는 잠수함 전투사례 중 하나를 소개한다.&lt;/p&gt; &lt;p&gt;&amp;nbsp;&lt;/p&gt; &lt;div&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50609.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824/334/d425eabde107e2420ce4ca0b78d5097b.jpg&quot; width=&quot;629&quot; height=&quot;435&quot; /&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 &lt;p&gt;스카파 플로기습작전에성공한제2차세계대전 대표잠수함 유형, U-995. 총 693척건조됨.&lt;/p&gt; &lt;p&gt;&amp;nbsp;&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gt;국민 성원 힘 얻은 獨 ‘되니츠 제독’ 잠수함 건조 계획 수립·추진 ‘속도’&lt;br /&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50610.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824/334/2524d87070186e0befd11c77d4a3b67b.jpg&quot; width=&quot;633&quot; height=&quot;426&quot; /&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U-995의 어뢰 및 어뢰발사관.&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gt;&lt;br /&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left&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lt;img alt=&quot;50611.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824/334/f6c343b9ba11b00265d7f7162c9ce92b.jpg&quot; width=&quot;164&quot; height=&quot;250&quot; /&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문근식 해군대령&lt;br /&gt;&lt;a tabindex=&quot;0&quot; href=&quot;mailto:mksnavy@naver.com&quot;&gt;mksnavy@naver.com&lt;/a&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lt;/div&gt; &lt;p&gt;&lt;strong&gt;▶U-47, 영국 국민을 우롱하고 독일 국민의 사기를 드높이다&lt;br /&gt;&lt;/strong&gt;&lt;br /&gt; ● U-47의 스카파 플로 기습작전은 은밀 작전의 대성공 &lt;br /&gt;&lt;br /&gt; 제2차 세계대전 중 되니츠 제독은 해군 지휘부에 300척의 잠수함이 있으면 영국을 굴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되니츠 제독은 어쩔 수 없이 큰 쇼(show)를 기획하게 됐다. 히틀러가 거대한 쇼를 좋아한다는 특성을 알고 그를 만족하게 할 만한 큰 쇼를 성공해 잠수함 함대에 대한 지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었다. &lt;br /&gt;&lt;br /&gt; 되니츠는 쇼를 성공하고 자신이 의도한 대로 그 효과를 충분히 얻기 위해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의 전과에 버금가는 전과를 내야 했다. 그가 선택한 것은 독일 잠수함이 영국 해군의 스카파 플로 해군기지에 침투해 정박 중인 전함을 격침하는 작전 계획이었다. 스카파 플로 해군기지는 영국 함대의 주력(主力) 기지임은 물론이고 제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잠수함을 비롯해 79척의 독일 군함이 무장해제를 당한 채 7개월이나 억류돼 있다가 항복을 거부하고 스스로 침몰을 선택한 독일인의 한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했다. &lt;br /&gt;&lt;br /&gt;쇼의 주인공은 U-47의 귄터 프린 함장이었다. U-47은 1939년 10월 8일 킬(Kiel) 항을 출발해 10월 13일 새벽에 스카파 플로 외항에 도착했다. 물론 영국 해군도 제1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교훈을 살려 항구 입구에 폐선을 침몰시켜 수로를 좁게 만들어 놓은 것은 물론이고 수많은 그물망을 설치하고 구축함 등으로 경비하면서 기지를 보호하고 있었다. 하지만 U-47 함장은 절묘하게 잠수함을 몰고 항구에 침입하는 데 성공했고 드디어 어뢰를 발사할 수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마침내 U-47은 표적을 발견하고 한 발에 이를 명중해 침몰시킬 수도 있었지만 총 3발의 어뢰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단 한 발의 어뢰 폭발음만 들렸을 뿐이고, 여전히 자신들이 표적으로 삼았던 로열 오크함은 손상 없이 건재했던 것이다. 어뢰 불량이었다. U-47의 함장 귄터 프린 소령은 순간적으로 작전을 포기할까 망설였으나 다시 이를 악물고 3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식은땀을 흘리며 기다리던 순간, 이윽고 연속적인 대폭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영국의 전함 ‘로열 오크(Royal Oak)’가 천천히 침몰하는 모습이 관측됐다. 그리고 또 한 발의 어뢰가 수상항공기 모함을 대파한 전과를 확인하고 U-47은 신속하게 항구를 탈출했다. 되니츠가 계획한 쇼는 대성공을 거뒀다. &lt;br /&gt;&lt;br /&gt;이렇게 해서 독일 잠수함 함대는 과거 자신들이 경험한 스카파 플로의 비극(悲劇)을 영국에 되갚은 것은 물론이고 히틀러와 독일 국민의 큰 관심을 받는 데도 성공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되니츠 제독은 잠수함 건조 계획을 수립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lt;br /&gt;&lt;br /&gt; ● 전쟁영웅을 향한 국민적 열광, 또 다른 영웅을 만든다&lt;br /&gt;&lt;br /&gt; 물론 작전 성공 후 U-47이 모항인 킬에 돌아왔을 때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음은 물론이다. 입항할 때 부두에는 해군 참모총장 라에더 제독이 환영 나왔으며 함장 프린 소령은 즉시 베를린으로 가서 꽃 종이를 뿌리며 환호하는 베를린 시민의 환영을 받은 후 히틀러로부터 직접 기사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이 작전은 역사상 잠수함의 은밀성을 가장 잘 활용한 성공적인 작전의 한 예로 기록되고 있다.&lt;br /&gt;&lt;br /&gt; ‘국민의 사기를 드높여 준 성공한 작전! 국가원수의 직접 격려!’ 그것은 수많은 U-보트 함장들의 충성심을 유발했으며, 바다에서 전투하다 죽는 것을 가장 명예롭게 여겼던 U-보트 전사들에게 무한한 에너지를 줬음이 틀림없었다.&lt;br /&gt;&lt;br /&gt; &lt;strong&gt;▶이리떼 전술의 성공, 잠수함 강국 위치 확고히 하다&lt;br /&gt;&lt;/strong&gt;&lt;br /&gt; 영국 함대의 강력한 해상봉쇄 때문에 독일 해군 수상전투함이 항구에 묶여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독일의 잠수함 함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들이 거뒀던 영광을 되살리고 있었다. 당시 독일 해군 잠수함 부대가 사용한 전술은 이리떼(wolf pack) 전술이었다. 칼 되니츠 제독이 포로수용소에 있던 시절에 창안한 이 전술(戰術)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진행됐다. &lt;br /&gt;&lt;br /&gt;먼저, 잠수함을 넓은 대서양에 분산시켜 초계라인을 형성하며, 먼저 적 수송선단을 탐색하도록 계획한다. 다음으로 초계 중인 잠수함 중 한 척이 적의 수송선단을 발견하고 이를 잠수함 사령부에 보고하면 사령부는 주변에 있는 독일 잠수함을 최대한 동원(動員)해 집결시킨다. 어느 정도의 척수가 확보되면 잠수함 여러 척이 적의 대잠 방어망을 뚫고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해서 수송선단을 파괴함으로써 전과를 확대한다. &lt;br /&gt;&lt;br /&gt;이리떼 전술은 큰 효과를 발휘해 한 번에 20척이 넘는 수송선을 격침한 사례가 있을 정도였고, 1942년까지 영국을 다시 한번 거의 파산 상태까지 몰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에 대해 영국의 처칠 수상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자신의 전쟁 회고록에서 독일 U-보트와의 전투를 ‘대서양 전투 (Atlantic Battle)’로 이름 짓고 “전쟁 기간에 나를 두렵게 한 것은 오직 U-보트에 대한 공포였다”고 술회(述懷)하기도 했다. 연합국의 대잠 능력의 현저한 발전과 미국의 참전으로 U-보트 작전이 쇠퇴하기는 했지만 독일 잠수함 부대는 제1, 2차 세계대전 기간에 연합국 군함 148척을 격침하고 45척을 대파했으며 상선 2759척을 격침해 총 1411만9413톤에 달하는 손실과 20만 명의 인명 손실을 입혔다.&lt;br /&gt;&lt;br /&gt; 실로 해전사에 기념비적인 전과를 기록함으로써 오늘날에도 세계 각국이 잠수함을 보유하려는 열망을 낳게 한 불멸의 무기체계가 된 것이다. 다음 회에 계속.&lt;br /&gt;&lt;br /&gt; &lt;br /&gt;&lt;strong&gt;잠수함 퀴즈&lt;br /&gt;&lt;/strong&gt;2007년 호주에서 시행된 서태평양 잠수함 탈출 및 구조훈련(The Pacific Reach)에 참가해 한국 잠수함의 장거리 단독작전 능력을 보여 줬을 뿐만 아니라 잠수함 탈출과 구조훈련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줌으로써 호주에 ‘Korea Best’ 열풍을 일으킨 잠수함의 이름은 무엇인가?&lt;br /&gt;&lt;br /&gt; 지난주 정답 : 나대용함&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미해병대용 수직착륙 전투기 F-35B, 폭탄투하시험 성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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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2-12-09T22:42:48+09:00</published>
		<updated>2012-12-09T22:42:48+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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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미해병대용 수직착륙 전투기 F-35B, 폭탄투하시험 성공 / 헤럴드경제 2012.12.7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우리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입찰한 3개사 중 하나인 록히드마틴이 자사가 개발 중인 최신형전투기 F-35가 공중 무장 분리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7일 밝혔다. 미국 메릴랜드주 파투센트리버 미해군 항공시스템 사령부 F-35 라이트닝II 합동시험부대는 최근 F-35 중 단거리이륙ㆍ수직착륙기인 BF-3호를 타고 약 50...</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미해병대용 수직착륙 전투기 F-35B, 폭탄투하시험 성공 / 헤럴드경제 2012.12.7&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gt;&lt;img alt=&quot;20121207000407_1.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943/331/30ba22e946a325203fd536304ba0080a.jpg&quot; width=&quot;600&quot; height=&quot;400&quot; /&gt; &lt;/span&gt;&lt;/p&gt; &lt;p&gt;&lt;span&gt;&lt;/span&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우리 공군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입찰한 3개사 중 하나인 록히드마틴이 자사가 개발 중인 최신형전투기 F-35가 공중 무장 분리시험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7일 밝혔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미국 메릴랜드주 파투센트리버 미해군 항공시스템 사령부 F-35 라이트닝II 합동시험부대는 최근 F-35 중 단거리이륙ㆍ수직착륙기인 BF-3호를 타고 약 5000피트 상공에서 음속 0.8마하로 비행하며 500파운드급 GBU-12(페이브웨이II 레이저유도폭탄)을 대서양에 투하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해군용 F-35기 시험비행팀장인 에릭에츠 미해군 대령은 “이번 무장투하시험은 지난 여름 우리팀이 실시한 최초의 무장투하시험 성공에 기반한 것으로 정비사와 조종사 등 팀의 모든 인원이 힘을 합해 노력한 결과”라고 말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이번 시험은 F-35B호에서 2번째 수행된 것으로, F-35 프로그램 전체로는 4번째 시험이다. 현재까지 F-35 기종은 500파운드급, 1000파운드급, 1t급 폭탄 및 미사일 분리시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고 록히드마틴 측은 덧붙였다.&lt;br /&gt;&amp;nbsp;&amp;nbsp; &lt;br /&gt;F-35B가 비행 도중 무장 분리시험에 성공하고 있다. &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조종사인 마이클 벅스 해군 소령은 “우리는 전투기의 전투성능 범위를 확대해 나아가고 있는 단계”라며 “GBU-12는 F-35의 핵심무기”라고 강조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공중 무장 분리시험은 무장 탑재체계의 안전한 무장 분리 여부와 기체로부터의 궤적을 점검하는 시험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록히드마틴에 따르면, 이 시험의 성공은 시험 영역을 공중으로 확대하기에 앞서 시스템의 올바른 작동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시험을 완성했다는 의미에서 중대한 이정표로 기록된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이번 시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는 파투센트리버 해군 항공기지의 F-35 합동시험부대가 검토 중이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단거리이륙ㆍ수직착륙기인 F-35B는 미해병대 등을 위해 설계된 F-35 라이트닝II의 한 기종이다. 수륙강습함, 스키점프식 항공포함, 원정 비행장에서 공군력 활용이 가능하도록 단거리 이륙 및 수직 착륙 능력을 갖추고 있다.&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gt;현재 F-35B는 편대에 인도되기 전 파투센트리버 해군 항공기지에서 비행시험 및 평가 중이다.&lt;br /&gt;&lt;/span&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2) - 국방일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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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2-12-09T16:17:16+09:00</published>
		<updated>2012-12-09T16:17:16+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author>
		<summary type="text">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2) / 국방일보 2012.12.10 美 막대한 물량공세에 獨 패배 끌려가던 U보트 스스로 침몰 독일의 잠수함들이 영국의 순양함 공격에 사용한 직주어뢰. 문근식 해군대령 mksnavy@naver.com ▶독일 잠수함 U-9, 한 시간 동안에 영국 순양함 3척을 격침하다 U-21 잠수함이 최초로 어뢰공격으로 영국 순양함을 격침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1914년 바로 그해 9월 22일, 오토 베디겐(Otto Weddigen) 대위가 ...</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2)&amp;nbsp; / 국방일보 2012.12.10&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美 막대한 물량공세에 獨 패배 끌려가던 U보트 스스로 침몰&lt;/span&gt;&lt;br /&gt;&lt;/p&gt; &lt;div&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50319.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82/331/f95b438c5783c1a682bc91cf72332ece.jpg&quot; width=&quot;484&quot; height=&quot;501&quot; /&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독일의 잠수함들이 영국의 순양함 공격에 사용한 직주어뢰.&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left&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lt;img alt=&quot;50320.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82/331/098eefd531d7a9a7ad67fbe0ff797c34.jpg&quot; width=&quot;164&quot; height=&quot;250&quot; /&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문근식 해군대령&lt;/span&gt;&lt;br /&gt;&lt;a tabindex=&quot;0&quot; href=&quot;mailto:mksnavy@naver.com&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mksnavy@naver.com&lt;/span&gt;&lt;/a&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독일 잠수함 U-9, 한 시간 동안에 영국 순양함 3척을 격침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U-21 잠수함이 최초로 어뢰공격으로 영국 순양함을 격침함으로써 세계를 놀라게 한 1914년 바로 그해 9월 22일, 오토 베디겐(Otto Weddigen) 대위가 지휘하는 U-9 잠수함이 1시간 동안에 영국 순양함 3척(Aboukir, Hougue, Cressy)을 침몰시키고 승조원 2200명 중 1459명을 수장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잠수함에 대한 공포가 시작된 것이다. 이것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침한 이후 거의 30여 년 동안 전 세계의 해양을 지배해온 영국함대에 최고 치욕으로 기록됐다. 당시 영국 해군 참모총장이던 피셔 제독(提督)은 “넬슨 제독이 그의 전 생애 동안 수행한 전투에서 희생시킨 병사보다 더 많은 병사를 잃었다”며 분개하기도 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같은 해 10월 15일 오토 베디겐 대위는 또 한번 영국 순양함(Hawk)을 격침함으로써 최초로 ‘잠수함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으면서 함장들의 전투 경쟁도 시작됐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독일 U-보트 드디어 바다의 종결자로 군림하기 시작!&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영국으로 향하는 모든 군함, 상선, 민간선박까지 무제한 공격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제1차 세계대전 초창기만 해도 독일 잠수함은 영국 국기를 달고 있는 전투함이나 물자수송선만을 공격했다. 그리고 헤이그 평화회의에서 만들어진 전투수행규칙을 준수해 민간선박들에 대해서는 공격을 하지 않거나, 격침할 일이 있으면 승조원에게 미리 경고해 구명보트에 탑승할 시간을 줬다. 이러한 원칙을 지키고 있는 독일 잠수함의 공격을 회피하고자 영국의 민간선박들은 중립국 국기를 게양하고 항해하기 시작했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헤이그 협의에 의해 만들어진 전투수행규칙은 잠수함에는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 실제로 독일 잠수함이 전투수행규칙을 지키다가 무장한 상선으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적의 수상전투함에 쫓겨 다니는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연합국 측에서 독일 잠수함을 격침하고자 민간선박으로 위장한 전투함까지 동원하자 1917년 독일해군은 영국으로 접근하는 모든 선박을 무제한 공격한다는 이른바 ‘무제한잠수함 작전’을 선포하기에 이른다.&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무제한잠수함 작전으로 영국을 항복 직전으로 몰고 가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미국의 참전으로 영국은 기사회생&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독일의 무제한잠수함 작전은 엄청난 결과와 파장을 불러왔다. 복잡하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전투수행규칙에서 해방된 독일해군의 잠수함들은 1917년 8월 한 달 동안에만 444척, 총 90만 톤의 선박을 침몰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결과에 고무된 독일 해군지휘부는 자신들이 동원할 수 있는 U-보트 수를 150척 이상으로 늘려 군수물자 수송선박을 지속적으로 격침함(통상파괴전)으로써 전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독일 잠수함에 의해 해상교통로가 차단된 영국은 대외무역은 물론이고 영연방(英聯邦)에서 오는 증원 병력의 수송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특히 전쟁을 수행하는 데 핵심적 요소인 연료의 재고가 8주분 이하로 떨어지면서 영국의 전쟁지도부는 항복 또는 평화협상 돌파구를 찾는 분위기가 흘렀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브레이크 고장 난 차(車)가 내리막길을 타듯 패전(敗戰)의 길로 치닫던 영국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희망을 찾게 됐다. 영국은 자국의 강력한 첩보조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중에 뜻밖의 수확을 얻었다. 독일이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만약 미국이 참전한다면 독일이 라틴 아메리카 정부를 지원하려고 한다는 주미 독일대사의 서한을 찾아낸 것이다. 이 서한은 미국에 전달됐다. 이 서한의 내용은 사실 주미 독일대사가 미국의 참전을 걱정해서 이를 견제하는 방안에 대해 타당성을 개인적으로 검토한 것에 불과했지만 당시 고립주의를 지키고 있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을 격분시키기에 충분했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윌슨 대통령의 격분은 미국이 전쟁에 참전한다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독일의 무제한잠수함 작전으로 미국 국적의 선박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참전의 명분은 더욱 명확해졌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전쟁에 참전한 원인과 배경은 훗날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됐다. 현재 미국의 참전 원인과 배경을 분석하고 있는 대부분의 자료는 독일의 무제한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미국이 참전을 결정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지금은 문서 공개를 통해 확실하게 그 원인과 배경이 밝혀진 만큼 독일의 무제한잠수함 작전으로 인해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는 역사적 평가는 수정돼야 할 것이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한편 1918년 미국은 참전을 결정하면서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많은 수의 수송선과 이를 호위하는 호위함대를 전쟁에 투입했다. 이러한 미국의 도움에 힘입어 영국은 아사(餓死)직전에서 극적으로 기사회생(起死回生)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영국 선박 90%가 U-보트에 의해 침몰&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전투에선 이겼어도 전쟁에 진 U-보트들, 적 항구로 끌려가다 스스로 침몰&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미국의 참전으로 불리해진 상황 속에서도 독일의 U-보트들은 1915년부터 1918년 사이에 2500차례의 전투를 치르면서 1218만 톤의 선박을 격침하는 전과를 달성했다. 당시 격침된 영국 선박의 90%는 독일 잠수함에 의한 것이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잠수함이 이러한 성과를 보이고 있었지만, 미국이 막대한 물량을 전쟁에 투입하는 것에 비해 독일해군은 잠수함 척수를 크게 증가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 사용될지도 모르는 수상함 건조에 더 많은 지원과 투자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해군의 정책은 역사적 아이러니이자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결국 독일은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독일해군, 특히 독일 잠수함들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장해제 및 전쟁 배상금으로 영국의 스카파 플로 항구로 끌려가던 해상에서 독일 잠수함들은 마지막으로 독일 해군기를 올렸다. 이 신호를 시작으로 독일해군의 모든 잠수함은 선체바닥에 있는 충수구(물을 채우는 장치)를 열어 막대한 해수를 함 내부로 끌어들였다. 이것은 스스로 침몰하는 것을 의미한다. 차례로 스스로 침몰하는 독일 잠수함의 행동에 놀란 영국해군은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총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이 엄포에 굴복한 독일 잠수함은 단 한 척도 없었다. 이렇게 독일의 잠수함은 한 척, 한 척 화려한 과거를 뒤로하고 검푸른 바다 밑으로 사라져 갔다. 위대한 잠수함 강국의 역사를 기록한 채 말이다. 다음 회에 계속. &lt;/span&gt;&lt;br /&gt;&lt;/p&gt;</content>			</entry><entry>
		<title>밀리터리 스토리-소나(SONAR)</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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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2-12-07T01:15:12+09:00</published>
		<updated>2012-12-07T01:15:12+09:00</updated>
		<author>
			<name>운영자</name>
		</author>
		<summary type="text">밀리터리 스토리-소나(SONAR) / 국방일보 2012.12.7 국방과학연구소(ADD)는 지난달 29일 적 잠수함을 탐지, 추적, 식별하고 적 공격 어뢰에 대해 자동경보 기능까지 갖춘 소나(SONAR) 체계를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광학 장비나 레이더가 소용 없는, 물속에서 잠수함을 찾을 수 있는 장비, 소나에 대해 알아본다. 주로 잠수함 찾는데 활용 거리에서 위치까지 알아 ‘자동경보 소나’ 국내개발 국방과학연구소...</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tabindex=&quot;0&quot;&gt;밀리터리 스토리-소나(SONAR)&amp;nbsp; / 국방일보 2012.12.7&lt;/span&gt;&lt;/p&gt; &lt;p&gt;&lt;span tabindex=&quot;0&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tabindex=&quot;0&quot;&gt;국방과학연구소(ADD)는 지난달 29일 적 잠수함을 탐지, 추적, 식별하고 적 공격 어뢰에 대해 자동경보 기능까지 갖춘 소나(SONAR) 체계를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광학 장비나 레이더가 소용 없는, 물속에서 잠수함을 찾을 수 있는 장비, 소나에 대해 알아본다.&lt;br /&gt;&lt;br /&gt; 주로 잠수함 찾는데 활용 거리에서 위치까지 알아&amp;nbsp; ‘자동경보 소나’ 국내개발&lt;br /&gt; &lt;div&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50264.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890/330/10b4695620e9bda3a23ffeb813eab30e.jpg&quot; width=&quot;650&quot; height=&quot;435&quot; /&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국방과학연구소가 국내기술로 개발한 소나 체계도.&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p&gt; 소나는 음파에 의해 수중 목표의 방위 및 거리를 알아내는 장비다. Sound navigation and ranging(음 항해와 측거)의 머리글자를 따낸 데서 생겨난 명칭. 레이더(RADER)가 RAdio DEtecting And Ranging(무선탐지와 거리측정)에서 유래된 것처럼.&lt;br /&gt;&lt;br /&gt; 공기 중에서 전자파를 이용해 공중과 지상 및 해상의 물체를 탐지할 수 있는 것이 레이더다. 하지만 수중에서는 일반 광학 장치나 레이더에 의한 통신과 탐지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음파는 수중에서의 유일한 탐지 수단이다. 그러고 보니 레이더나 소나는 명칭의 유래에서도， 탐지라는 본래의 역할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lt;br /&gt;&lt;br /&gt; 여러 가지 첨단 탐지 수단이 새롭게 개발된 오늘날에도 수중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활용되는 탐지 장비는 소나다. 특히 물속에서 주로 활동하는 잠수함은 소나가 없으면 시각장애인 신세를 면치 못한다.&lt;br /&gt;&lt;br /&gt; 소나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처음 실전에서 활용됐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는 현재 사용하는 소나의 형태를 갖췄다. 소나의 역사는 15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빈치는 ‘튜브 막대기를 물에 꽂고 귀로 들으면 먼 곳의 배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을 발견, 소나 원리를 처음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실제 소나가 하나의 무기 체계로 정착된 것은 1960년대 무렵부터다.&lt;br /&gt;&lt;br /&gt; 소나는 함선에 직접 장착돼 있는 소나와 바다에 띄워 놓는 소나인 소노부이, 헬리콥터 등에 와이어로 매달아 필요한 곳에서 사용하는 디핑소나 등이 있다.&lt;br /&gt;&lt;br /&gt; 탐지방법에 따라서는 액티브소나(능동소나)와 패시브소나(수동소나)로 분류한다. 액티브소나는 함정에서 발사한 음파가 표적에서 반사돼 되돌아오는 신호로서 적 잠수함이나 기뢰 등을 탐지하는 방식이다. 패시브소나는 수상함ㆍ잠수함 등이 항해할 때 엔진이나 프로펠러에서 내는 소음을 먼 거리에서 수신해 찾아내는 것이다.&lt;br /&gt;&lt;br /&gt; 액티브소나 방식은 수상함과 디핑소나에서 주로 쓰이며 패시브소나 방식은 소노부이나 잠수함에서 주로 사용된다. 액티브소나의 탐지 정확도가 높지만 초음파를 발사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적에게 노출, 역추적되는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패시브소나는 탐지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자신의 존재를 노출하지 않고 적을 탐지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lt;br /&gt;&lt;br /&gt; 소나의 탐지 대상은 주로 잠수함이 된다. 아무래도 수중을 항행하다 보니 탐지할 수 있는 방법이 더 적기 때문이다. 먼저 보고, 먼저 타격해야 하는 현대전의 특성상 이는 매우 유리할 수밖에 없는 사실. 따라서 항공기에서 소나를 수중으로 투하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소나를 사용해 표적을 신속ㆍ정확하게 탐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lt;br /&gt;&lt;br /&gt; 이에 맞서 최근의 잠수함은 다양한 종류의 소나를 선체의 모든 부분에 부착해 몸 전체로 외부 위험을 감지하는 물고기를 연상케 한다. 함수부에 광대역의 함수수동소나를, 선체 양 측면에는 선체부착배열 소나를, 선체 밖에 예인형 선 배열 소나와 같은 수동소나를 주파수 대역별로 운용해 음원의 크기, 방위, 속도, 특성 등을 파악하는 것이다.&lt;br /&gt;&lt;br /&gt; 우리 해군도 이와 같은 상황을 감안, 매년 음탐사 전투기량 경연대회를 개최, 적 잠수함을 잡는 최고의 ‘소리 사냥꾼’을 선발, 격려하며 함대 전투력 향상과 전투형 부대 확립을 앞당기고 있다.&lt;br /&gt;&lt;br /&gt; 한편 소나로부터의 탐지를 회피하기 위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추진소음을 줄이거나 선체표면에 음파를 흡수하는 특수코팅을 해 탐지거리를 현격히 줄이는 등의 방식도 나오고 있다. 소나의 탐지능력 강화와 이를 회피하기 위한 ‘무엇이든 뚫는, 어떤 것도 막을 수 있는’ 창과 방패의 경쟁은 앞으로도 끝없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amp;nbsp;&amp;nbsp; &amp;lt;이주형기자&amp;gt;&lt;br /&gt;&lt;/p&gt;&lt;/span&gt;&lt;/p&gt;</content>		<category term="소나"/>	</entry><entry>
		<title>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1) - 국방일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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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2-12-02T19:30:29+09:00</published>
		<updated>2012-12-02T19:30:29+09:00</updated>
		<author>
			<name>배나온슈퍼맨</name>
		</author>
		<summary type="text">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1) - 국방일보 2012.12.3 어뢰 4발로 英 순양함 격침 영국은 ‘기뢰로 침몰’ 오판 영국에서 발행되며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군사전문지 ‘Jane&#039;s Fighting Ship’을 보면 조금은 의아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각 국가의 해군 무기체계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첫 장(章)을 장식하는 것이 강렬한 위압감을 자랑하는 10만 톤짜리 항공모함도, 강력한 무장을 자랑하는 일만 톤급의...</summary>
	<content type="html">&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독일은 진정 잠수함 강국인가? (1) - 국방일보 2012.12.3&lt;/span&gt;&lt;/strong&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lt;/span&gt;&lt;/strong&gt;&amp;nbsp;&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어뢰 4발로 英 순양함 격침 영국은 ‘기뢰로 침몰’ 오판&lt;/span&gt;&lt;br /&gt;&lt;br /&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amp;nbsp; 영국에서 발행되며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군사전문지 ‘Jane&#039;s Fighting Ship’을 보면 조금은 의아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각 국가의 해군 무기체계를 소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첫 장(章)을 장식하는 것이 강렬한 위압감을 자랑하는 10만 톤짜리 항공모함도, 강력한 무장을 자랑하는 일만 톤급의 순양함도 아니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이 책의 첫 페이지는 예외 없이 보일 듯 말 듯 물 위에 드러난 거무칙칙한 둥근 선체, 바로 잠수함이 등장한다. 이는 무기체계로서 잠수함의 위상을 말해주며, 이렇게 잠수함의 위상을 끌어올린 사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 1, 2차 세계대전에서 보인 독일 U-보트의 맹활약 때문일 것이다.&lt;/span&gt;&lt;br /&gt;&lt;/p&gt; &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최초’와 ‘최신’…&amp;nbsp; 獨 잠수함&lt;/span&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lt;/span&gt;&lt;/p&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50007.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855/323/fa4e772140d9bd013ecf5391eb8de940.jpg&quot; width=&quot;587&quot; height=&quot;151&quot; /&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 &lt;div&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center&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 &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mg alt=&quot;50008.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855/323/bb170aa619f0342c757422b6660cf28b.jpg&quot; width=&quot;543&quot; height=&quot;410&quot; /&gt;&lt;/div&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lef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1914년 최초로 어뢰로 순양함을 격침한 독일의 U-21 잠수함(위 사진)과 2005년 취역한 독일해군 최신&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예 212급 잠수함.&lt;/span&gt;&lt;/p&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 align=&quot;left&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 &lt;div&gt; &lt;table border=&quot;0&quot; cellspacing=&quot;0&quot; cellpadding=&quot;0&quot; align=&quot;left&quot;&gt; &lt;tbody&gt; &lt;tr&gt; &lt;td class=&quot;photo_box&quot;&gt;&lt;img alt=&quot;50009.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855/323/42da59d18ab6a7195a628ac7b0147d15.jpg&quot; width=&quot;164&quot; height=&quot;250&quot; /&gt;&lt;/td&gt;&lt;/tr&gt; &lt;tr&gt; &lt;td style=&quot;PADDING-BOTTOM: 3px; FONT-SIZE: 9pt&quot; class=&quot;comm_box&quot; height=&quot;23&quot; align=&quot;middle&quot;&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문근식 해군대령&lt;/span&gt;&lt;/p&gt;&lt;/td&gt;&lt;/tr&gt;&lt;/tbody&gt;&lt;/table&gt;&lt;/div&gt;&lt;/div&gt; &lt;p style=&quot;LINE-HEIGHT: 1.8&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현대 디젤 잠수함의 원조는 독일이 아닌 미국?&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당시 잠수함이 가솔린엔진에서 디젤엔진으로 발전한 것은 디젤잠수함에 원자로를 탑재한 것과 같은 기술적 혁명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사실 디젤 잠수함은 1912년에 미국에서 잠수함에 디젤엔진을 탑재하면서 건조가 시작됐다. 이전 잠수함에 사용되던 가솔린 기관은 사용연료가 가솔린이어서 발화점이 높아 화재위험이 컸고, 연비도 낮아 장거리나 대양 항해에는 부적합했다. 이와 비교해 발화점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유(디젤유)를 사용하는 디젤기관은 안전성과 신뢰성이 높은 데다 연비도 좋아 잠수함의 항속거리를 크게 향상시켰다. 독일의 루돌프 디젤연구소에서 연구한 디젤엔진을 미국 잠수함에 적용했다는 점도 역사적 아이러니다. 미국에서 잠수함에 디젤엔진을 장착하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 해군의 전쟁 영웅으로 부상한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었다. 잠수함에 디젤엔진이 탑재된 사실은 잠수함 역사에서 보면 디젤잠수함에 원자로를 탑재한 것과 견줄 수 있는 정도의 기술적 진보였지만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던 당시만 해도 잠수함은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체계라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독일은 영국의 막강한 함대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으로 잠수함을 선택&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당시 해전의 중심은 중무장한 대형 전함이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각국은 국가 총생산의 0.1%에 해당하는 고가(高價)를 지불하면서 2~3만 톤에 이르는 대형 전함(戰艦)들을 건조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 시기 최강의 전함 보유국은 경쟁국인 독일에 비해 2배의 전함 총톤수를 갖고 있던 영국이었다. 영국의 상대국이던 독일은 이러한 영국의 지배권에 도전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의 노력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프랑스와 러시아를 상대하기 위해 막강한 육군을 유지해야 하는 독일이 막대한 경제력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는 건함(建艦)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독일은 영국의 막강한 함대에 대응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고민하게 됐는데 그 하나로 잠수함을 선택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영국은 잠수함을 비열한 무기체계로 폄훼해 재앙 초래&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독일이 잠수함 전력을 증가하는 데 많은 관심을 기울이자 당시 세계의 해양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잠수함을 부정적이고 비열한 무기로 간주하면서 잠수함에 의한 공격을 야만적인 행위로 비난하는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이것은 영국이 잠수함에 대응할 수 있는 뚜렷한 무기체계가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으며 이러한 현실을 토대로 1907년 헤이그 평화회담에서 잠수함을 포함한 모든 전투함의 교전 규칙을 ‘군함이 적국의 상선을 격침하고자 할 때는 정선(停船)시킨 뒤 경고를 하고 승무원을 안전하게 대피시킨 후 격침한다’는 합의사항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합의는 나포한 인원을 태울 공간도 없고, 이 사람들을 자국(自國)의 항구까지 호송할 수도 없는 잠수함은 공격하지 말라는 것과 같았다. 그러나 합의를 할 경우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되는 독일해군의 지휘부도 이것에 대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 당시 잠수함이 각광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실험적으로 실전에 투입한 잠수함, 세계를 놀라게 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이런 상황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해군은 이왕 잠수함을 만들었으니 한번 투입해 보자는 심정으로 잠수함을 실전에 투입한다. 이때까지도 이들은 아직 자신들이 역사를 바꿀 보물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최초의 어뢰공격에 의한 U-21의 영국 순양함 격침&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 1914년 9월 5일, 훗날 독일과 유틀란트 해전을 치르게 될 대영 함대사령관 제리코 제독은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의 스카파 플로(Scapa Flow)에 제2전투전대만을 입항시키고, 나머지 함대를 스코틀랜드 서해안에 있는 로취유(Loche Ewe)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영국의 움직임은 독일해군의 잠수함 U-21 함장 오토 헤르싱(Otto Hersing) 소령에게 관측되고 있었다. 당시 20대 후반에 불과했던 오토 헤르싱 소령은 거대한 함대의 모습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으나 그의 젊은 피는 계속해서 공격 욕구를 분출시키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잠수함은 필요에 따라 잠시 수중에 머물 수 있는 가잠함(可潛艦) 수준에 불과했고, 어뢰 속도도 20노트(시속 36㎞) 정도에 불과해 공격의 결과에 대해 그리 신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수준의 잠수함으로도 수상함을 공격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오토 헤르싱 소령이 지휘하는 독일 잠수함 U-21은 영국 함대에 접근하기 시작했고, 곧 거대한 함대의 측면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한 척의 영국 순양함을 향해 4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공격을 감행한 후 이어지는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었다. 당시 잠수함에는 음파탐지기(소나)가 없었으므로 어뢰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이윽고 오토 헤르싱 소령의 초시계 바늘이 ‘0’을 가리킬 때, 영국 순양함 패스파인더(Pathfinder) 함은 대폭발에 휩싸였고, 침몰과 동시에 승조원 296명 중 259명을 수중으로 끌고 가 버렸다. 곧바로 U-21의 승조원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오토 헤르싱 소령도 잠망경을 통해 불타오르는 영국의 대형 순양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수함이 드디어 실전에서 전과를 남긴 것이다. 당시 해상 상태가 좋지 않아 영국함대는 이것이 어뢰에 의한 공격이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고, 순양함의 침몰 원인이 떠내려 온 기뢰(機雷)에 의한 것으로 판단할 정도였다. &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다음 회에 계속 mksnavy@naver.com&amp;nbsp;&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strong&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잠수함 퀴즈&lt;/span&gt;&lt;/strong&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209급 잠수함 중 2008년 림팩훈련에 참가해 한국해군 두 번째로 81㎞ 이격된 표적에 대해 잠대함 미사일을 명중시킨 잠수함의 이름은 무엇인가?&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FAMILY: Dotum; FONT-SIZE: 13px&quot;&gt;지난주 정답: 정운함&lt;/span&gt;&lt;/p&gt;</content>		<category term="잠수함"/>	</entry><entry>
		<title>AH64D 아파치 공격헬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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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12-11-12T15:39:56+09:00</published>
		<updated>2012-11-12T15:39:56+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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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배나온슈퍼맨</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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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text">AH64D 아파치 공격헬기</summary>
	<content type="html">&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AH64D 아파치 공격헬기&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img alt=&quot;file77151.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24/306/e2d0bcd80ee11c1fb62c5f7cc0e8be8f.jpg&quot; width=&quot;1024&quot; height=&quot;681&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img alt=&quot;file77152.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24/306/fee44ef812846591fbcabd31de189dc2.jpg&quot; width=&quot;1024&quot; height=&quot;681&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img alt=&quot;file77153.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24/306/1443108eebf380d0e9e4c4a738c3924a.jpg&quot; width=&quot;1024&quot; height=&quot;681&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img alt=&quot;file77154.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24/306/b1a878f79d770f3f70d060220182e128.jpg&quot; width=&quot;1024&quot; height=&quot;681&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img alt=&quot;file77155.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24/306/eb9d19d7dc095cdbbf60b52f74a2e84c.jpg&quot; width=&quot;1024&quot; height=&quot;676&quot; /&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span&gt;&amp;nbsp;&lt;/p&gt; &lt;p&gt;&lt;span style=&quot;FONT-SIZE: 13px&quot;&gt;&lt;img alt=&quot;file78150.jpg&quot; src=&quot;https://www.haebyeong.com/files/attach/images/547533/724/306/4c97e1a43d29b023591f22bc0b8b9c3b.jpg&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682&quot; /&gt; &amp;nbsp;&amp;nbsp;&amp;nbsp;&amp;nbsp;&amp;nbsp;&lt;/span&gt;&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content>		<category term="아파치"/>	</entry></fe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