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월) 오전, 명동성당 앞 ‘이재명 의사 의거 터’에서 개최
- 보훈부, 이 의사 직계후손 없어 의거 함께 준비했던 독립유공자 후손들과 추모식 개최
- 후손 없는 독립유공자 훈장, 의거지와 도서관, 기념관 등 전시하겠다는 대통령 업무보고 이후 첫 후속조치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은 1909년 12월 22일,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려했던 독립유공자 이재명 의사(건국훈장 대통령장)의 의거 116주년을 기억·계승하기 위한 추모식을 22일(월) 오전, 서울 명동성당 앞 의거 터에서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번 추모식에는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과 당시 자금조달 등 의거를 함께 준비했던 오복원(건국훈장 독립장), 김용문(건국훈장 애국장) 지사의 후손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이재명 의사는 직계후손이 없어, 그동안 이 의사와 의거를 도모했던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이 모여 추모식을 개최해 왔다. 특히, 올해는 광복 80년을 맞아 당시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매국노 이완용을 처단하려 했던 이재명 의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해 처음으로 국가보훈부와 후손들이 함께 행사를 준비했다.
이재명 의사는 1909년 12월 22일, 이완용이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의 추도식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길에 칼로 저격하여 중상을 입혔으며, 이로 인해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고 다음 해인 1910년 9월 30일 순국하였다.
재판 과정에서 이재명 의사는 “나의 생명은 빼앗더라도 나의 충혼은 빼앗지 못할 것이다. 지금 나를 교수형에 처한다면 나는 죽어 수십만 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너희 일본을 망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하여 불의에 굴복하지 않는 기개를 보여주였다.
정부는 이재명 의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은 “엄혹한 시대, 오로지 구국의 일념으로 의거를 단행하셨던 이재명 의사님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정신이 오늘 추모식을 계기로 많은 국민의 가슴에 새겨지기를 바란다”라며 “국가보훈부는 의사님을 비롯한 독립유공자 한분 한분의 생애와 뜻이 우리의 역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계승될 수 있도록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가보훈부는 후손이 없어 찾아가지 못한 7,700여 개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의거지와 도서관, 기념관 등 공공장소에 전시하여 그 공적을 많은 국민에게 알리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며, 이재명 의사의 훈장도 의미 있는 장소 등에 전시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