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흥을 기본에 둔 AI 기본법이 지난달 22부터 시행되어 시험대에 올랐다. 인공지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축으로 떠오른 시대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공지능을 포괄적으로 다루는 기본법을 실제로 시행하는 나라가 됐다.
인공지능 기본법의 출범은 단순한 법률 제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술을 어떻게 관리 할 것인가를 넘어 국가가 인공지능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정책적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다. 이름 그 대로 발전과 신뢰가 함께 담겨있지만 순서를 보면 방향성은 분명하다. 신뢰는 발전을 가로막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기반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 취지가 실제 집행 과정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될 수 있느냐는 데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예방적 규제'라는 이름으로 과도한 제도적 틀을 먼저 씌워온 경험이 적지 않다. 규제 하나가 만들어지면 그 취지와 무관하게 산업 현장에서는 위축이 먼저 나타나곤 했다. 인공지능처럼 발전 속도가 빠른 기술 영역에서는 이런 방식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의료, 금융, 교통 등 이른바 고영향 분야로 분류된 영역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 분야들은 국민의 생명과 권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관리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혁신이 가장 활발히 일어나는 영역이기도 하다. 수많은 스타트업과 신생 기업이 이 영역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나치게 경직된 기준은 도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제 환경도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 규범 논의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럽조차 실제 적용에는 속도 조절을 택했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법의 정교함을 앞지르는 상황에서 규제의 시점과 강도를 조율하지 않으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세계 최초라는 상징성이 자칫 '세계 최초의 부담'으로 전환되 지 않도록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물론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위험을 외면할 수는 없다. 생성형 AI가 만든 콘텐츠가 현실과 구분되지 않는 문제나 알고리즘 판단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대응이 필요한 영역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모든 기술을 동일한 잣대로 관리 하려는 접근이 아니라 위험의 정도와 맥락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하는 방식이다.
결국 인공지능 기본법의 성패는 법 조항 자체가 아니라 운영의 방식에서 판가름 날 것이다. 현장에서 혼란이 발생한다면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즉각 보완하고, 산업 위축 신호가 감지된다면 과감하게 조정하는 민첩성이 필수적이다. 법은 고정된 규칙이 아니라 기술과 함께 진화해야 하는 살아 있는 체계다.
세계 최초라는 출발선은 이미 통과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법이 인공지능 산업에 족쇄가 아닌 토양으로 작동하느냐다. 인공지능 기본법이 진정한 의미의 '기본법'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규제보다 진흥이, 통제보다 방향 제시가 앞서야 한다. AI 강국으로 가는 길은 선언이 아니라 운용의 선택에서 결정된다.
정순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겸임교수. 경희사이버·서울디지털대학교 객원교수. 법무법인 린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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