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채 칼럼] 계정이 거래되는 사회, 우리의 ‘디지털 신분’은 안전한가?
아시아타임즈 2026.03.06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사회는 큰 충격에 빠진다. 기업의 관리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커지고 이용자들은 자신의 정보가 어디까지 노출됐는지 불안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긴장감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사건이 지나가면 사람들의 기억도 빠르게 희미해진다. 일상은 다시 익숙한 편리함 속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더 구조적인 변화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확산되고 있는 온라인 플랫폼 계정의 불법 거래는 그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최근 보안 커뮤니티와 여러 온라인 공간에서는 국내 주요 플랫폼 계정이 음성적으로 거래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대형 플랫폼 계정이 비공개 메신저 채널이나 해외 거래 공간을 통해 유통된다는 정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일부 해커가 계정을 탈취해 판매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계정이 하나의 상품처럼 분류되고 조건에 따라 가격이 매겨지는 일종의 지하 시장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장에서 계정의 가치는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된다. 실명 인증 여부, 사용 기간, 활동 이력 등이 가격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실명 기반 계정은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이나 마케팅, 심지어 여론 형성에도 활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경우가 있다. 계정이 더 이상 개인의 서비스 이용 수단이 아니라 타인의 신뢰를 빌려 사용하는 도구로 변질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랜 기간 반복된 해킹 시도와 누적된 보안 취약성, 그리고 이를 통해 수익을 얻는 범죄 구조가 맞물리면서 계정 거래 시장이 점차 확장된 결과에 가깝다. 탈취된 계정은 단순한 개인정보 노출에서 끝나지 않는다. 피싱 사기나 금융 범죄, 허위 정보 유포 등 다양한 2차 범죄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나의 계정이 여러 범죄를 연결하는 통로로 활용되는 셈이다.
포털 계정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그 연결성 때문이다. 하나의 계정에는 이메일, 클라우드 저 장소, 사진, 결제 정보, 그리고 외부 서비스 접근 권한까지 함께 묶여 있다. 계정 하나가 무너 지는 순간 개인의 디지털 생활 전반이 동시에 노출될 수 있다. 불법 거래 시장에서 “실사용이 가능한 계정”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구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실을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로만 설명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공격 기술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으며, 일반 이용자가 모든 위험을 스스로 관리하기에는 구조적인 제약이 존재한다. 물론 2단계 인증 설정이나 비밀번호 관리 같은 기본적인 보안 습관은 중요하다. 그 러나 그것만으로는 조직화된 사이버 범죄를 막기 어렵다.
이제는 기업과 사회 차원의 책임을 함께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기업이 보안 투자와 계정 보호 체계를 강화하도록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동시에 일정 수준 이상의 보안 조치를 성실히 이행한 기업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책임 구조를 마련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디지털 서비스가 사회 전반의 기반이 된 오늘날에 정보보호는 선택적인 비용이 아니라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 인프라로 인식되어야 한다.
불법 계정 거래가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 지금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편리함을 이유로 플랫폼에 맡겨 둔 우리의 ‘디지털 신분’은 과연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다음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단지 유출 시간이 남아 있을 뿐인 또 하나의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아시아타임즈 정순채칼럼 https://m.asiatime.co.kr/article/20260309500335#_mobwcv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