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겸임교수. 경희사이버·서울디지털대학교 객원교수. 법무법인 린 자문위원
인공지능(AI)은 이제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다. 우리의 검색 기록을 분석하고, 금융 거래를 AI가 감시하며, 기업들은 AI로 고객 데이터를 관리한다. 같은 기술은 해커들의 손에서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최근 사이버 보안 업계에서는 ‘AI 대 AI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낯설지 않다. 공격자도 AI를 사용하고, 방어자도 AI를 사용한다. 문제는 이 싸움에서 완전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의 사이버 공격은 사람이 직접 코드를 짜고 취약점을 찾는 방식이었다.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공격의 속도와 규모가 완전히 달라졌다. 피싱 메일은 더 정교해졌고, 사람의 말투를 흉내 낸 가짜 음성은 실제 가족 등 상대방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AI는 짧은 시간 안에 수천 개의 공격 패턴을 시험할 수 있으며, 사용자 반응까지 학습한다. 공격은 더 빠르고 더 인간적으로 변했다.
방어도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기업 보안 시스템은 비정상적인 로그인 패턴을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악성코드의 움직임을 예측한다. 전에는 보안 담당자가 로그를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면 이제는 AI가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 신호를 먼저 알려준다. 금융권과 클라우드 기업들은 AI 기반 보안 없이는 운영이 어려운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여기서 역설이 발생한다. 공격 AI가 발전하면 방어 AI도 발전하고, 방어 기술이 강화되면 공격 기술 역시 더 교묘해진다. 이는 마치 창과 방패의 경쟁과 같다. 완벽한 방패가 나오면 더 강한 창이 등장하고, 더 강한 창이 나오면 다시 새로운 방패가 만들어진다. AI 시대의 보안 경쟁도 같은 구조다.
문제는 속도다. AI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학습한다. 새로운 취약점이 발견되면 공격 AI는 이를 즉시 활용하려 하고, 방어 AI는 동시에 차단 규칙을 만든다. 이 과정은 거의 실시간으로 반복된다. 기업이나 개인이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보안은 목적지가 아니라 끝없는 유지 과정이 된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비용과 격차다. 대기업은 고성능 AI 보안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은 그렇지 못하다. 공격자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AI 도구를 사용할 수 있지만 방어에는 훨씬 많은 자원과 인력이 필요하다. 이 불균형은 앞으로 더 큰 사회적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는 AI 전쟁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AI 보안은 강력한 도구이지만 만능은 아니다. 마지막 판단은 인간의 몫이다. 의심스러운 링크를 클릭하지 않는 습관, 개인정보를 쉽게 공유하지 않는 태도, 조직 내부의 지속적인 보안 교육이 핵심이다.
AI 공격과 AI 방어의 경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어느 한쪽이 완전히 승리하는 순간은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사실이 절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빠르게 적응하느냐’다. AI 시대의 보안은 승패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신뢰의 문제다. 미래 사회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가장 뛰어난 AI를 가진 쪽이 아니라 AI를 가장 현명하게 사용하는 쪽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