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정순채 칼럼] 2026년, 더 교묘해진 보이스피싱의 얼굴

정순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겸임교수. 경희사이버·서울디지털대학교 객원교수. 법무법인 린 자문위원
2025년 11월까지 연간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약 1조 1,330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4년 7,257억 원보다 56% 증가한 수치다. 2025년에는 기관 사칭이 13,323건으로 전년 대비 크게 반등하며 전체 범죄를 주도했다. 이는 단순 대출 유도보다 공신력 있는 기관을 사칭한 정교한 수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보이스피싱은 비교적 단순했다. 검찰이나 경찰을 사칭하면서 “당신 명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라고 겁을 주거나 자녀를 사칭해 급히 돈을 요구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범죄 조직은 완전히 달라졌다. AI 음성합성 기술을 이용해 실제 가족 목소리를 흉내 내고, 금융회사 대표번호를 그대로 휴대폰 화면에 띄운다. 심지어 피해자의 이름, 주소, 거래은행, 최근 소비 정보까지 알고 접근하기도 한다. 피해자는 낯선 사람에게 속는 것이 아니라 ‘의심하기 어려운 환경’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범죄 조직은 더 이상 단순한 사기꾼 집단이 아니다. 역할이 세분화된 기업형 조직에 가깝다.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팀, 시나리오를 만드는 팀, 송금 계좌를 관리하는 팀, 해외에서 콜센터를 운영하는 팀이 체계적으로 움직인다. 특히 해외 메신저와 가상자산을 이용하면서 자금 추적도 어려워졌다. 국내 수사기관이 대응을 강화하고 있지만 범죄 속도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문제는 피해가 단순히 돈을 잃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해자 상당수는 극심한 자책감과 우울증을 겪는다. 노후 자금을 잃은 고령층은 생활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청년층은 대출까지 떠안는다. 그런데도 사회 반응은 냉담하다. “왜 그런 걸 믿었느냐”라는 비난이 뒤따른다. 보이스피싱은 개인의 부주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범죄다. 범죄 조직은 인간 심리를 연구하고, 공포와 압박 속에서 판단력을 무너뜨리는 데 특화돼 있다. 누구든 예외가 될 수 없다.
보이스피싱 대응의 핵심은 ‘지연’과 ‘확인’이다. 송금을 재촉할수록 일단 전화를 끊고, 가족이나 금융기관에 직접 다시 확인해야 한다. 실제 금융회사나 수사기관은 전화로 계좌 비밀번호나 송금을 요구하지 않는다. 가족 간에 특정 암호나 확인 절차를 정해두는 것도 예방 방법이다. 기술적 대응도 필요하다. AI 기반 이상 거래 탐지 시스템, 실시간 계좌 차단, 통신사 연계 경고 서비스 등을 더욱 정교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의 변화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를 조롱하거나 무능하다고 보는 시선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 사실을 숨기게 만들고, 추가 피해를 키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나는 안 당한다”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아니라 누구나 속을 수 있다는 경계심이다. 피해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금융과 인간관계가 연결된 시대다. 범죄는 그 연결을 파고든다. 모르는 번호 전화 한 통, 다급한 문자 한 줄, 익숙한 목소리가 순식간에 삶을 흔들 수 있다. 보이스피싱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범죄 역시 진화한다. 가장 현실적인 방어 수단은 의심하여 전화 끊고, 확인하는 습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