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순채 서울과기대 겸임교수/법무법인 린 전문위원
보이스피싱이 줄어들면 서민들의 삶도 조금은 안전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수사기관은 최근 국제 공조를 강화하고 조직 검거에 집중하면서 전화금융사기 범죄를 강하게 압박해 왔다. 금융권 역시 이상거래 탐지 시스템을 고도화하며 피해 예방에 나섰다.
그 결과 전통적인 보이스피싱은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범죄는 단속의 빈틈을 찾아 끊임없이 진화한다. 보이스피싱이 위축되자 투자리딩방 사기와 로맨스 스캠, 노쇼 사기 등 새로운 형태의 피싱 범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리딩방 사기 등 피싱 피해액은 2517억 원으로 보이스피싱 피해액 1701억 원을 넘어섰다. 이는 피싱 범죄의 중심이 전화에서 온라인과 일상생활 전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낯선 전화 한 통만 경계해서는 피해를 막기 어렵다. SNS와 메신저, 투자 플랫폼, 온라인 거래 등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공간이 범죄의 무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피해를 낳고 있는 범죄는 투자리딩방 사기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 속에서 자산을 늘리고 싶은 심리를 악용해 “고수익을 보장한다”라는 말로 투자자를 유인한다. 범죄자들은 유명 전문가를 사칭하거나 가짜 수익 인증 자료를 내세워 신뢰를 얻는다. 소액 수익을 안겨주며 안심시킨 뒤 거액 투자를 유도하고 투자금을 가로챈다. 경제적 불안이 커질수록 이러한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로맨스 스캠도 심각한 문제다. 범죄자들은 SNS를 통해 접근해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뒤 투자나 송금을 요구한다. 피해자들은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돈을 보내지만 결국 사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이 범죄는 금전적 피해뿐 아니라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깊은 정신적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노쇼 사기 역시 자영업자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군부대나 공공기관을 사칭해 대량 주문을 한 뒤 특정 물품의 대리 구매나 선결제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큰 주문을 놓치고 싶지 않은 자영업자의 심리를 이용하는 수법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경제적 타격이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범죄가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며 갈수록 추적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범죄 조직은 가상자산을 이용해 범죄 수익을 세탁하고 해외 거래소를 통해 자금을 이동시켜 수사망을 피해 간다. 기존 금융 시스템 중심의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제는 대응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가상자산 거래에 대한 관리와 자금세탁 방지 체계를 강화하고 국제 공조를 확대해야 한다. 금융기관과 통신사, 플랫폼 기업, 수사기관 간 정보 공유와 협력을 통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 스스로 지나친 고수익 제안이나 온라인상의 금전 요구를 경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범죄는 시대 변화에 맞춰 끊임없이 모습을 바꾼다. 보이스피싱을 줄였다고 해서 피싱 범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교묘하고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일상에 침투하고 있다. 신종 피싱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대응과 시민의 경각심이 함께 강화돼야 한다. 이제는 변화한 범죄 환경에 맞는 새로운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할 때다.
정순채 서울과기대 겸임교수/법무법인 린 전문위원
출처 : SDG뉴스 http://www.sdg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