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채 칼럼] 전쟁의 양상을 바꾼 '디지털 핵무기'와 'AI'
전쟁의 역사는 무기의 역사이기도 하다. 창과 칼에서 화약으로, 전차와 전투기에서 미사일과 핵무기로 발전하면서 전쟁의 속도와 규모는 끊임없이 변해왔다. 이제 전장의 중심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무기가 등장하고 있다. 바로 AI와 결합한 사이버전∙정보전 기술, 이른바 '디지털 핵무기'이다.
‘디지털 핵무기’라는 표현은 다소 과격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핵무기처럼 도시를 물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의 전력망과 통신망, 금융 시스템, 교통∙물류망, 군 지휘체계를 동시에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특히 인공지능이 여기에 결합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과거 사이버 공격은 상당한 전문지식과 인력이 필요했다. 공격자는 목표를 찾고 취약점을 분석한 뒤 악성코드를 제작하고 침투 경로를 확보해야 했다. 하지만 AI는 이 과정의 상당 부분을 자동화하거나 가속할 가능성이 있다. 방어측 역시 AI를 활용해 수많은 네트워크의 이상 징후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공격을 탐지할 수 있다. 미래의 사이버전은 인간과 인간의 대결을 넘어 AI와 AI의 경쟁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AI가 바꾸는 것은 사이버공간만이 아니다. 전쟁에서 정보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위성사진, 드론 영상, 통신 데이터 등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얼마나 빨리 분석하느냐가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AI는 사람이 며칠 걸려 분석할 데이터를 짧은 시간 안에 분류하고 패턴을 찾아낼 수 있다. 전장에서 AI는 병사의 눈과 귀를 확장하고, 지휘관에게 더 빠른 판단을 제공하는 도구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정보전이다. 생성형 AI를 이용하면 그럴듯한 가짜 사진과 영상, 음성을 대량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적국 지도자가 실제로 하지 않은 발언을 한 것처럼 꾸미거나 전황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것도 과거보다 쉬워졌다. 전쟁의 목표가 적군의 병력만이 아니라 상대 사회의 신뢰와 의사결정 능력까지 포함하게 되는 이유다.
이런 변화는 전쟁의 경계도 흐릿하게 만든다. 미사일이 날아오기 전부터 전쟁은 시작될 수 있다. 전력망을 공격하며, 금융 시스템 교란과 통신을 마비시킨다. 사회적 불신을 확산시키는 방식으로 상대의 전쟁 수행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군복을 입은 병사만 전쟁의 주체가 되는 시대에서 벗어나 코드와 데이터, 알고리즘도 전쟁의 무기가 되고 있다.
AI를 만능 무기로 보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AI가 분석한 정보가 항상 정확한 것은 아니며, 잘못된 데이터와 편향된 알고리즘은 오판을 낳을 수 있다. 군사적 판단에서 AI의 오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자동화된 공격체계가 확대될수록 책임의 주체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가 된다.
앞으로의 안보 경쟁은 더 강력한 AI를 개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사이버 공격에 대한 국제적 규범을 만들고 핵심 인프라를 보호하며, AI가 내린 군사적 판단에 적절한 인간의 통제를 유지하는 일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핵무기의 등장이 전쟁의 본질을 바꿨다면 디지털 기술과 AI의 등장은 전쟁이 일어나는 공간과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제 전쟁의 승패는 더 이상 누가 더 많은 무기를 갖고 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데이터를 더 잘 이해하고 AI를 더 책임 있게 활용하며, 디지털 사회의 취약성을 더 효과적으로 지켜내느냐가 새로운 전장의 승패를 가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