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순채 칼럼] 막으면 또 뚫는다, 보이스피싱과의 끝없는 추격전
2026. 09.14 SDG뉴스

정순채 경희사이버대 객원교수/법무법인 린 전문위원
보이스피싱은 멈추지 않는다. 막으면 또 뚫는다. 전화가 막히면 문자로, 문자가 막히면 SNS로, 국내 경로가 차단되면 해외로 숨어든다. 이제는 인공지능까지 등에 업었다. 목소리를 복제하고 얼굴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범죄를 차단하는 순간에도 범죄자는 다음 우회로를 찾고 있다.
문자 한 통으로 택배를 확인하고, 공공기관 안내를 받는다. 금융거래 내역을 확인하는 것이 일상이 된 시대다. 익숙한 전화번호와 은행·카드사 이름이 찍힌 문자에는 경계심이 쉽게 무너진다. 보이스피싱은 바로 이 신뢰를 공격한다.
검찰과 경찰을 사칭해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라고 겁을 주고, 가족의 목소리를 흉내 내 급전을 요구한다. 법원 등기나 택배를 가장한 문자로 악성 앱을 설치하게 만든다. 문자, 인터넷전화, 피싱 사이트, SNS, 원격제어 앱 등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은 기술과 서비스가 범죄의 도구로 바뀌고 있다.
범죄의 변화는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경찰청의 2016~2025년 분석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은 대출 사기형에서 기관 사칭형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범죄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꿔 살아남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 병법서 '삼십육계'에는 ‘타초경사(打草驚蛇)’라는 말이 있다. 풀을 쳐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이다. 상대가 위험을 알아차리면 몸을 숨기고 다른 길로 도망간다.
보이스피싱이 그렇다. 하나를 막으면 하나를 바꾼다. 전화번호를 차단하면 새로운 번호를 만들고, 피싱 사이트를 폐쇄하면 또 다른 사이트를 연다. 단속을 강화하면 발신 경로를 바꾼다. 풀을 아무리 쳐도 뱀은 사라지지 않는다. 더 깊은 풀숲으로 숨어들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계속 전화번호 하나, 문자 한 건을 쫓는 데 머문다면 결과는 뻔하다. 범죄자의 속도를 이길 수 없다. 이제 대응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범죄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범죄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핵심은 정보의 연결이다. 경찰은 수사·범죄 정보를 갖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은 피싱 신고와 분석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통신사는 번호와 계정을 차단할 수 있고, 제조사는 단말에서 위험을 탐지할 수 있다. 이 정보와 기술이 제때 연결되지 않으면 각 기관의 노력은 각각의 섬에 머물게 된다.
KISA가 추진하는 ‘피싱 ZERO’와 AI 기반 공동대응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한다. 민감한 개인정보는 보호하면서 범죄 수법 분석에 필요한 정보는 활용한다. AI를 통해 수많은 신고 데이터에서 반복되는 수법과 의심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다. 번호도용 문자와 악성 문자를 발송 단계에서 차단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성과도 있다. 2025년 스팸 신고는 전년보다 84%, 발신번호 변작 신고는 44% 감소했다. 2025년 10월 이후에는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와 피해액도 7개월 연속 감소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범죄자는 우리가 성과를 확인하는 사이에도 움직인다. 감소한 숫자가 안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수법이 아직 통계에 잡히지 않았을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보이스피싱과의 싸움은 결국 속도의 싸움이다. 누가 먼저 패턴을 발견하고, 누가 먼저 정보를 공유하고, 누가 먼저 차단하느냐가 피해 규모를 결정한다.
풀을 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뱀이 어디로 움직일지 읽어야 한다. 숨어든 뒤 잡으려 하지 말고, 숨어들 길부터 막아야 한다. 보이스피싱을 따라잡는 대응에서 보이스피싱을 앞지르는 대응으로 우리가 바꿔야 할 방향이다. 국민의 일상을 지키려면 더 빨리 보고, 더 빨리 연결하고, 더 빨리 막아야 한다.
SDG뉴스 = 서울디지털대학교 객원교수/ 법무법인 린 전문위원
출처 : SDG뉴스(http://www.sdg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