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과 해병대2여단 - 한강도하

by 운영자 posted May 16, 201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인쇄

 

- 한강도하 -

 

20100316111411_1.jpg

 

(1) 혁명거사 목전에서 30사단의 배신, 그로 인한 혁명계획의 탄로, 혁명의 시간은 이미 접어들었건만 지금까지 출동한 혁명군은 어디에도 없다. 어쩐지 꼬여가는 듯한 상황에 박정희 소장의 가슴에는 불현듯 외로움과 착잡함이 한순간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 그러나 한밤중의 김포가도, 저기 저곳에 수백개의 헤드라이트가 줄을 긋고 있었다. 10여 리에 걸친 길고 긴 트럭의 행렬이었다. 혁명군 해병대가 서울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오는 것이었다. 박정희 장군의 지프가 멈추어 섰다.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느낌, 싸늘한 밤공기 속에 박정희 장군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해병대는 육군참모총장의 지휘를 받는 군대가 아니라, 오로지 해병대사령관의 지휘를 받는 군대였던 것이다. 또한 육군의 장도영 장군이 직접 해병대와의 통신연락을 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미 해병대가 혁명군으로 출동함은 숙명적이었던 것이다.

해병 여단장, 김윤근 준장은 15일 밤 11시를 기하여 다음과 같은 명령을 발한다.

“명일 아침에 적 공수부대에 대한 역습훈련이 있으니 참가부대인 제2연대 1대대에 탄약을 보급하라”

이윽고 해병대는 계획대로 밤12시에 부대를 집합시켰다. 여단장 김윤근 준장은 군목인 김광덕 대위로부터 혁명성공의 기원을 받는다. 16일 새벽 1시, 해병대는 선두에 제2중대를, 그리고 후미에는 제5중대를 세운 채 대대장 오정근 중령의 지휘 하에 구국의 일념으로 장도에 올랐다. 여단장 김윤근 준장은 탱크부대에 지시하여 새벽4시에 출동토록 명령하고 즉시 차를 달려 부대후미에 따라붙었다.부대선두가 공격개시선으로 약속된 염창교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시간보다 15분이 늦었다. 염창교에는 혁명지도자 박정희 소장이 감격스런 표정으로 해병대를 맞이해 주었다. 육군측의 배신으로 혁명군이 불리한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된 김윤근 준장은 박정희 소장과 함께 정면대결로 나아가기를 검토한다. 아울러 공수단을 선봉군으로 삼으려 했던 작전계획을 변경하여 해병대를 제1진의 선봉군으로 삼고 공수단은 제2진으로 삼았다.

역사에 찬란히 기록될 1961년 5월 16일 새벽3시, 혁명군 전초부대 해병대가 한강 인도교에 도달했다. 칠흙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한강물소리만이 밤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인도교 너머 저쪽 서울시내는 밤의 전등불들이 조는 듯 아늑히 깜박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한강 인도교 돌파작전을 감행한다. 혁명군 전초부대인 해병여단 제2중대가 인도교를 들어서다 잠시 전진을 멈추었다. 선두차의 승차원이 모두 하차하는가 싶더니, 해병 제2중대장 이준섭 대위가 뚜벅뚜벅 인도교로 나아간다. 옆구리의 권총이 차갑게 마찰되었다. 이준섭 해병 대위는 그곳을 지키고 있던 헌병 제7중대장인 김석율 대위와 악수를 교환하였다. 해병 대위는 헌병 대위에게 혁명군임을 알리고 인도교에 무겁게 내리워진 바리케이드의 철거를 정중히 요청했다. 헌병 대위는 간단히 거절했다.

“나는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으로 이곳을 경비하고 있으며 혁명군을 저지시키기 위해 출동했습니다. 불응이면 사격하겠으니 철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말에 해병 대위는 발끈했다. 그리고는 소리쳤다.

“우리는 육군참모총장의 지시를 받는 군대가 아니다. 우리는 해병이다. 우리는 해병대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부대다. 빨리 장애물을 제거하라.”

한치의 양보도 허용치 않는 두 대위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2) 제1선 바리케이드가 인도교 남단에 GMC 2대를 八자형으로 해서 다리를 메우고 헌병 20여명 가량이 진을 치고 있었으며, 제2선 바리케이드는 GMC 3대로 역시 八자형을 이루어 인도교 중간을 막고 있었으며 마지막 보루인 제3선 바리케이드 역시 GMC 2대로 八자형을 이루고 있었다.

한강도하가 저지된 것을 확인한 해병 제1대대장, 오정근 중령은 전 해병에게 하차명령을 발했다. 헌병들이 길을 받는다면 그들과 총격전을 벌리는 한이 있어도 혁명은 기필코 완수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진 것이라고 오정근 중령은 판단했다. 병력들이 GMC에서 하차한 것과 한강에 주둔했던 헌병들의 사격과 어느 것이 앞서 일어난 행동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헌병들의 위협사격이 시작되었고 하차한 해병들은 한강 인도교 저편에 빠른 동작으로 산개했다. 선두차에 탔던 해병 제2중대 병사들의 포복이 시작되었다. 탄우를 뚫고 포복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생과 사를 초월한 것이었다. 제1선의 바리케이드가 그들의 손으로 제거되었다. 총탄은 밤하늘에 빨간 여운을 길게 그리며 빗발처럼 옆을 스쳐갔다. 해병들은 이제 제2선 바리케이드 제거를 위해 인도교의 난간을 따라 포복을 계속했다. 제2선 바리케이드도 무너졌다. 전투는 점점 본격화되었다. 서로간의 위협사격이 어느새 무차별 사격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제3선 바리케이드를 향해 용사들의 전진은 계속되었다. 제3선 바리케이드에서 낮처럼 밝은 헤드라이트가 비쳐왔다.

제3선 바리케이드에서 헌병 40여명 가량의 무차별 사격이 가해오고 있는 것이다. 해병들은 장애물에 막히면서도 좁은 난간을 따라 계속 포복을 하여간다. 혁명군 쪽의 지원사격도 가열되었다. 한강 인도교는 다시한번 6.25의 전상을 되씹고 있는 것이다. 해병들과 헌병들의 치열한 사격전은 혁명군으로 하여금 많은 시간을 인도교에서 머물게 했다. 마지막 보루인 제3선 바리게이트를 눈앞에 두고, 작열하는 총성속에 전진하던 해병 제2중대에 부상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대장 이준섭 대위를 비롯해 7, 8명의 사병이 총상을 입었다. 완강한 헌병들의 저지사격은 해병 제2중대에 예기치 않았던 총격전과 부상자를 내게 하면서, 혁명군의 전진을 지체케 하고 있었다. 제1대대장 오정근 중령은 제1중대로 하여금 제2중대와 임무를 교대하여 선두에 나가도록 명령했다. 이제 제2중대는 뒤로 서고 정비된 제1중대가 앞에 섰다. 치열한 응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제3선 바리게이트 GMC헤드라이트가 해병들의 직격탄에 파열되면서, 인도교는 다시 암흑의 세계로 변하였고 그제서야 헌병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한강 인도교는 혁명군의 전진을 거의 1시간 동안이나 묶어놓고 있었다. 실로 길고 긴 시간이었고, 참으로 길고 긴 인도교였다. 헌병들이 물러가고 제3선 바리게이트가 철거되면서 이윽고 해병들과 그 뒤를 이어 공수단 병력들이 한강을 도하한다

 

 20100316111411.jpg

 

 

- 서울진주 -

(1)한강 인도교에서 해병들과 헌병들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을 때, 그 지역을 담당하던 용산경찰서는 새벽 3시의 총성을 단순한 오발사건으로 생각해 버렸다. 관내 파출소에 연락해 보았으나 장소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다. 총소리가 연방 계속해서 울리자 시민들의 문의전화가 용산서로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시민보다 담당자인 경찰측이 더 했었다.

3시 40분쯤 북한강파출소로부터 해병들이 육군헌병들과 충돌하여 인도교를 포복으로 올라오고 있다는 급보가 전해왔다. 그러나 용산서는 이것도 단순한 충돌사고로 생각했다. 3시 50분쯤 잠을 자다가 유탄을 맞고 부상당한 신계동의 한 주민이 차에 실려 왔을 때 용산서는 그제야 당황하기 시작했다. 4시가 약간 지나서 해병대가 경찰서 문을 들어설 때까지도 그들은 상부로부터 하등의 지시도 받지 못했다. 당황한 일부 경찰관은 줄행랑을 놓았고 적대행위를 하던 경찰관은 모두 연금되었다. 이제 해병대와 공수단은 인도교를 건넜다. 캄캄한 밤, 장도영 장군의 명령에 따르는 진압군의 공격이 언제 어디서 가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호랑이를 잡으려면 어차피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는 것, 혁명군들은 앞에총의 자세로 긴장감 속에 한발 한발 서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한강로를 지나갔다. 삼각지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혁명군들은 무장한 정체불명의 수많은 군인들이 어두움 속에 길 양편으로 도열해 있음을 발견한다. 그들의 손에는 M1소총이 쥐어져 있었고 밤하늘에 희끗희끗 번쩍이는 대검들이 꽂혀 있었다. 일순간 진격하던 해병들이 주춤했다. 적인가 아군인가, 식별이 되지 않는 군대이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그들이 우리의 앞길을 막는다면 적일 뿐이다. 해병들은 충혈된 눈을 치켜뜨고 그들의 앞으로 나아갔다. 아, 그들은 적이 아니었다. 그곳에 배치되어 있던 군대는 혁명계획에 입각하여 미리 육군본부 광장에 스며들었던 제6군단의 포병단이었다. 그들은 인도교의 교전으로 인하여 늦게 진입해 들어오는 혁명군을 따뜻하게 환영하고 있었다. 삼각지에서 조우한 혁명군들의 표정에는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선의의 미소가 감돌았다. 그들은 모두 “시내는 조용하니 차를 타고 가라.”고 외쳐 주었다.

6군단 포병단의 따뜻한 환영을 받은 해병대와 공수단은 시가전의 위험이 없음을 알자 곧장 차에 올랐다. 한강 인도교의 격전으로 말미암아 늦어진 계획시간의 차질을 메꾸어야 했다. 박정희 장군은 손수 공수단 1개소대를 이끌고 남산 중앙방송국으로 달렸다. 해병대와 공수단 주력부대는 서울역 방향으로 달렸다. 서울역 앞에는 약간의 경찰병력이 포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혁명군의 적수가 아니었다. 가볍게 그들을 격퇴시킨 혁명군은 이제 그들이 맡은 목표지점을 향해 힘차게 GMC의 페달을 밟는 것이다. 해병대는 치안국과 시경이 그 점령목표였다.

치안국 점령을 명받은 해병 제3중대와 제6중대는 4시 30분경 치안국을 완전히 포위했다. 중대장의 발포를 신호로 일제히 담을 넘어 뛰어 들어갔다. 개머리판을 옆구리에 댄 체 구부려쏴 자세로 밀려들어오는 해병들...... 이 광경을 본 내무부 차관 및 각 과장들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놓았다. 시경은 해병 제1중대와 제5중대의 담당이었다. 별 저항도 받지 않은 채 그대로 접수되었다. 지하실에 숨어있던 경관들이 스스로 총을 버린 채 걸어 나왔다.

여세를 몰아 해병 1개 소대는 시청을 지나 중앙전신국으로 달렸다. 유선망의 운용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전원실의 퓨즈가 해병대 장교에 의해 절단되었다. 야간근무를 하던 여자 교환수들은 놀라서 토끼처럼 뛰었다. 그녀들은 처음에는 공산반란군의 침입으로 오인하고 무척 당황해하였다. 하지만 해병대 장교의 설명으로 비로소 혁명군임을 알고 안심을 하는 것이었다.

 

(2) 공수단 일개소대는 박정희 소장과 함께 방송국을 점령코자 출발했으며, 또 일개소대는 혁명공약, 선언문 등을 인쇄하고 있던 광명인쇄소에 급파되어 경비임무를 담당했다. 이곳에는 김종필 중령 등이 돌아가는 윤전기를 독려하고 있었다. 그 외 공수단 주력은 시청 앞에 그 지휘본부를 두고 반도호텔을 점령하고 장면총리 이하 정부요인 체포의 임무에 당해 있었다.

행동대는 반도호텔로 직행하고 병력의 일부는 장면 총리의 퇴로차단과 광화문과 미 대사관 주변에 잠복했다. 그러나 반도호텔 808호실은 텅 비어있었다. 혁명군 도착 15분 전에 이미 장 총리 부부는 호텔 동쪽 문을 빠져나와 미 대사관을 거쳐 혜화동 방향으로 도주한 뒤였다. 반도호텔을 포위하고 있던 공수단은 장면총리를 놓쳤으나, 혁명급보를 듣고 장면 총리를 만나러 반도호텔로 달려온 현석호 국방장관과 한통숙 체신부장관 및 김업 국방부 사무차관 등 정부요인을 체포하는 개가를 올렸다.

또한 공수단 1개 소대를 이끌고 중앙방송국을 접수한 박정희 장군은 공산반란군으로 착각하고 도망쳐버린 아나운서와 기술자들을 찾느라고 고생을 했다. 원래 중앙방송국에는 장도영 참모총장의 지시로 헌병 60명이 경비하고 있었는데 박정희 장군 일행이 도착하기 10분전, 그러니까 4시 20분경 철수해버렸기 때문에 손쉽게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취를 감춰버린 아나운서와 기술자들을 우여곡절 속에 겨우 찾아내면서 그들은 예정대로 새벽 5시에 가까스로 혁명의 방송을 내어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혁명의 소리는 그 순간에도 혁명을 반대하고 있는 장도영 장군의 이름으로 울려 퍼졌다.

친애하는 애국 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의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이 이상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 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군사 혁명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만 그친 반공체제를 재정비 강화할 것입니다. 둘째, 유엔 헌장을 준수하고 국제 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할 것입니다. 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 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 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 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 다섯째, 민족적 숙원인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의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 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

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궐기군 만세!

감격어린 혁명 제 1성이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울려 퍼졌다. 육군항공학교장 이원엽 대령이 여의도 공항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이미 이 대령의 지시로 몰래 상경한 교관조종사 5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그들은 이 대령의 지시대로 기꺼이 하늘에 떠서 새벽의 서울거리에 10만장의 혁명전단을 살포했다. 5월 16일의 아침은 몹시 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19는 저공비행을 감행하면서 혁명군의 사기를 북돋우는 시위편대로 힘차게 하늘을 날아서 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