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고 정태석 전 해병대사령관
<오래된 기사인것 같습니다.
검색을 하다보니 중앙일보에 2002.02.23 12:13에 입력된 기사입니다. >
지난 17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정태석(鄭台錫)
전 해병대사령관은 진정한 군인정신을 발휘한 무장이었다.
지난 21일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치러진 장례식에서 김명환(金明煥)
해병대사령관은 조사(弔詞)
를 통해 "고인은 의롭고 정의로운 외길을 걸으면서도 주위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한몸에 받아왔다" 고 추모했다.
192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50년 해군 소위(해사 3기)
로 임관해 한국전쟁에 참전한 뒤 65년 해병 제2전투단 초대 참모장 겸 여단장으로 베트남전에 참가, 캄란.토이호아 전투 등에서 연전연승하며 '상승불패' 의 해병대 전통을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또 77~79년 제12대 해병대사령관으로 재직할 때는 전투력 향상은 물론 한.미 해병대간 협력을 공고히 하는 등 군사외교에도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고인은 타고난 군인이었다.5.16 후 혁명정부가 "우리와 함께 일하자" 고 청했지만 그는 "군인으로 은퇴하는 게 가장 큰 꿈이자 영광" 이라며 군에 남았고, 이후 거듭된 정권의 부름에도 끝내 군복을 벗지 않았다.
전역 직후 신군부의 동참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한 것 역시 이같은 신념 때문이었다. 제15대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박희재(朴喜宰.68)
예비역 중장은 "본인의 공로도 모두 후배에게 돌려 승진이나 포상 등을 배려하곤 했다" 며 "틈틈이 후배들을 불러 쌀밥을 정성스레 지어주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고 말했다.
73년 해병대가 잠시 해군에 편입됐을 때 세력이 미약했던 해사 출신 후배들이 "이제 뭉칠 때가 왔다" 며 반겼지만 "지금은 화합할 때인데 무슨 얘기냐" 며 되레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지금도 후배들 사이에 회자되는 얘기다.
고인은 가정에서도 근검과 교육을 신조로 삼았다. 둘째아들 연국(淵國.44.미 캘리포니아대 교수)
씨는 "10년이 넘은 옷을 해질 때까지 입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직접 세차를 할 정도로 근검절약하셨다" 고 회고했다.
사령관 시절 휴가 나와 집 주위를 청소할 때는 워낙 남루한 옷을 입고 있어 고인을 청소부로 착각한 이웃들이 "우리집도 청소해 달라" 고 부탁할 정도였다는 것.
고인은 아들 네 명 모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게 할 만큼 교육열이 대단했다. 막내아들 연인(淵仁.39.계명대 교수)
씨는 "어린 자식들 연필 깎아주는 게 아버님의 유일한 낙이셨다" 며 "전역하신 후에도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교육뿐' 이라며 자식들 뒷바라지에 전념하셨다" 고 전했다.
군인 시절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고인은 권력을 휘두를 만한 위치에 있었지만 "군인의 자식이 국방의 의무를 소홀히 해서야 되느냐" 며 중이염을 앓던 막내를 빼곤 모두 해병대에 보냈다.
고인의 비서실장이었던 박종수(朴宗秀.60)
예비역 준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무관으로 부하가 잘못해도 소명할 기회를 주곤 해 후배들의 신망이 두터웠다" 며 진정한 군인의 사표(師表)를 남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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