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메뉴보기 검색열기
조회 수 438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5-3.jpg 이승만 대통령과 장제스 자유중국 국민당 총재 간의 정상회담이 끝난 7일 오후 6시, 손원일 제독은 집 주인 자격으로 간단한 칵테일파티를 열었다. 칵테일과 음료를 나누며 무더위도 식히고 가벼운 환담하는 자리가 파하자 이대통령은 자신의 별장에서 공식 환송만찬 행사를 주재했다.

이대통령은 만찬사를 통해 ‘오늘은 위대한 날’ ‘장 총통은 중국 국부 손문(孫文) 선생의 유일한 후계자’ 등 평소 쓰지 않던 표현을 사용했다.

회담의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싶었던 것 같다. 취임 후 처음 갖는 국제정치가와의 성공적인 회담에 지극히 만족한 표정이었다.장 총통도 답사를 통해 한중 두 나라의 운명적인 인연을 강조하는 답사를 낭독한 뒤에 다음과 같은 옛 시를 인용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해내존지기(海內存知己)
천애약비린(天涯若比隣)
(뜻이 통하는 벗이 세상에 있으면
(저 먼 하늘의 끝도 이웃과 같다)

이대통령 ‘오늘은 위대한 날’

기념 촬영·기념 식수 같은 공식행사 뒤에 숙소로 돌아간 장 총통은 중국과 인연이 있는 한국 측 인사들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충칭(重慶) 임시정부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 신익희 국회의장, 이청천(본명 池大亨) 국회 외무·국방위원장, 김홍일 육군사관학교장, 신석우 주중 한국대사 등이 면담했는데, 방한 직전 암살된 김구 선생에 대한 조의를 표하기 위해 아들 김신 장군을 면담할 때는 숙연한 침묵이 감돌았다.

출발 몇 시간 전 장 총통이 손제독을 불러 한국 체류 중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보살펴 준 데 대한 감사를 표한 일로 해군 장사병 모두가 감격한 기억이 새롭다. 이대통령도 해군의 노고를 크게 치하해 해군 전체가 격려를 받은 기분이었다.이대통령이 장 총통을 초청한 것은 38도선 이북 북한 정권이 적화통일 노선을 노골화하고 있는 데 대한 대비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소련 및 중국과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데 비해, 신생 한국은 제1의 후원국인 미국과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있어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당시 한국인 공통의 정서이기도 했다. 애치슨라인 정책으로 주한미군 철수가 결정돼 위기감도 더해졌다.

동지의식 공감대 형성 작용

가까이 있는 나라 가운데 믿을 만한 나라는 자유중국·필리핀·베트남 정도였다. 일본은 아직 적으로 취급하는 나라였다. 그중 장 총통의 자유중국을 가장 믿고 의지하고 싶었던 것은 같은 공산주의 피해국이라는 동지의식 때문이었다. 거기에 항일 독립운동기간 중 서로 의지했던 개인적 교분이 작용했다.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1947년 4월, 이대통령은 남쪽만의 단독정권 수립을 추진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귀로에 일부러 자유중국 타이베이를 찾아가 장 총통에게 협력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귀국 즉시 이대통령은 장 총통에게 환대에 감사하는 서한을 보내면서 한국 초청의사를 전했다.

이 서한을 받은 장 총통은 기회를 보아 한번 방문할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자신도 대륙에서 공산주의자들에 쫓겨 섬나라 타이완으로 피란한 신세여서, 반공주의를 신봉하는 나라끼리 뭉치고 협력하자는 제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남한 단독정권 수립 후 이대통령에게서 정식 초청을 받고 쾌히 응한 것이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1.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20-몽금포 작전

    몽금포는 북한 땅 황해도 서쪽 끝에서 황해로 길게 돌출한 작은 어항이다. 1949년 8월 이곳에 주한 미 군사고문단장 전용보트가 납북돼, 이를 찾아오기 위한 작전이 있었다. 공산진영이 이 작전을 내세워 6·25가 ‘북...
    Date2011.02.13 Category6대 공정식 Views8393
    Read More
  2.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18-함정 납북사건

    한반도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남북한에 각각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6·25전쟁 때까지 남북 간에는 체제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북한은 남로당을 조종해 남한사회의 혼란을 획책하기에 열중했다. 빈번한 납치와 ...
    Date2011.02.13 Category6대 공정식 Views7307
    Read More
  3. 최고회의 선서식의 김두찬사령관

    1962년 최고회의 선서식에 김두찬 해병대사령관, 좌측 의장석에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출처 : 해병대60주년 사진전
    Date2011.02.11 Category5대 김두찬 Views7190
    Read More
  4. 1964년 미해병학교를 방문한 김두찬사령관

    사진 설명: 좌측부터: 김해근 소령(해간 8기 Jr. Course), 장대길 대령(특채 Sr. Course), Col. 교수부장, 김두찬 사령관, Lt. Gen. Cate CMDT, MCS. 이영우 준장(군수국장), 김성대 대령(인사국장), 이근식 중령(해...
    Date2011.02.11 Category5대 김두찬 Views5309
    Read More
  5. 장단사천지구 시찰당시 신현준사령관

    사진설명: 1952년10월 해병 제1전투단이 서부전선(장단, 사천강지역)에서 중공군과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신현준 사령관(중장 계급이었으나 당시 미 해병 제1사단장의 계급이 소장이어서 의전절차를 생략키 위하여 ...
    Date2011.02.11 Category1대 신현준 Views8351
    Read More
  6. 김석범사령관의 생애와 공적

    훈기번호 제159호 1. 생애(1914-1998) 1914년 11월 12일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에서 출생한 김석범(金錫範) 해병 중장은 만주로 건너가 1934년 신경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조국의 광복과 함께 만주로부터 귀국하여 ...
    Date2011.02.11 Category2대 김석범 Views8115
    Read More
  7. '빨간 팔각모' 김인식 해병대전우회 총재

    "대통령은 작전하는 지휘관이 아니다… 전투는 군인이 하는 것" “나는 백령도에서 대대장 2년 반, 서북 5개 도서를 관할하는 여단장 1년을 했다. 그때도 스스로 묻곤 했다. 만약 북이 제한적 도발을 해오면 우리 함정...
    Date2011.02.10 Category26대 김인식 Views6076
    Read More
  8.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17- ‘여순반란 사건’ 3

    몇 해 전 어떤 TV 방송에 여순사건 당시 해군에서 함포를 쏘아 양민 1000여 명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방송됐다. 너무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즉시 해병대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당시 우리 함정에는 함포가 아니라 대...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6272
    Read More
  9.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6- ‘여순반란 사건’ 2

    서울에서는 여수에 그런 폭동이 일어난 사실을 내 보고 전에는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모든 관공서와 기관 단체가 점령당했기 때문에 다른 채널이 없었던 것이다. 1949년 10월 20일 새벽 5시 박옥규 작전국장을 통해 ...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444
    Read More
  10.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5- ‘여순반란 사건’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 전남 여수·순천에서 일어난 반란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고난을 예고한 불행이었다. 육군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나는 첫 보직인 ...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098
    Read More
  11.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4- 해군·해병대 창설 손원일 제독

    해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군을 말할 때 손원일 제독을 빼고는 얘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광복 후 제일 먼저 군사단체를 만들어 국가방위를 예비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중국 상하이 중양(中央)대학교 항해학과를 나온...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443
    Read More
  12.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3- 이승만-장제스 회담

    이승만 대통령과 장제스 자유중국 국민당 총재 간의 정상회담이 끝난 7일 오후 6시, 손원일 제독은 집 주인 자격으로 간단한 칵테일파티를 열었다. 칵테일과 음료를 나누며 무더위도 식히고 가벼운 환담하는 자리가 ...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388
    Read More
  13.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2- 장 총통 환영 파티

    “오늘 귀국의 현명하신 영수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 지난날의 정을 나누게 된 것을 평생의 가장 유쾌한 일로 생각합니다.” 의장대를 사열한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진해 통제부 안에 마련된 ...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141
    Read More
  14.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1- 이승만-장제스 회담

    초창기 해군은 외교 업무까지 담당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나라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절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해군을 정상회담 경호·경비와 영접에 해군을 동원했던 것이...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620
    Read More
  15.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0- 창군 초기 대통령의 국군 순서

    지금 국군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은 ‘육·해·공’으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창군 초기 대통령이 입만 열면 ‘해·육·공’이라고 말해 육군의 신경을 자극했던 일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석에서는 물론 공식석상에서도...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03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 15 Next
/ 15
CLOSE

SEARCH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