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대 명품 전우를 소개합니다 시즌2] 해병대6여단 최석진 상병 - 국방일보

by 관리자 posted Feb 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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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대 명품 전우를 소개합니다 시즌2] 해병대6여단 최석진 상병.jpg

최석진 상병. 해병대6여단

 

[우리 부대 명품 전우를 소개합니다 시즌2] 해병대6여단 최석진 상병 1.jpg

대청도에 내걸린 최석진 상병의 합격 현수막.

 

 

[국빙일보 2023.02.17 인터넷] 최근 서해 최북단 대청도에 경사가 났다. ‘대청도 토박이’인 해병대6여단 최석진 상병이 군 복무 중 초등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대청고등학교 역대 졸업생 중 임용시험 합격자는 최 상병이 유일하다고 한다. 최 상병은 일약 대청도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마을에는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면사무소 입구 전광판에 그의 이름이 나올 정도다. 주경야독하며 꿈을 이룬 최 상병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원준 기자/사진=부대 제공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는 뜻의 교학상장(敎學相長). 해병대6여단 대청면대에서 임무를 수행 중인 최 상병이 인생의 길라잡이로 여기는 사자성어다. 육지와 동떨어진 대청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최 상병은 시골 학교를 다닐 때부터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초등학교 3학년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제가 학업과 교우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담임선생님께서 칭찬하고 격려해 주신 덕분에 힘든 순간을 이겨 낼 수 있었어요. 나중에 저도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초등학교 교사를 꿈꾸게 됐습니다.”

 

대청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최 상병은 육지로 먼 유학을 떠났다. 2017년 경인교육대학교에 입학해 4년의 교육과정을 착실하게 마쳤다. 그리고 응시한 초등교사 임용시험. 하지만 목표 달성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첫 번째, 두 번째 시험에서 연거푸 낙방하면서 자신감을 잃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꿈을 다 이룬 듯 기뻤습니다. 그런데 처음 치른 임용시험에서 소수점 차이로 낙방했죠. 아쉬웠지만 열심히 준비했기에 다시 도전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반의 준비를 한 두 번째 시험에서도 불합격했죠.”

 

두 번째 시험 결과가 나왔을 때 최 상병은 해병대 교육훈련단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있었다. 전화로 동생에게 불합격 사실을 전해 들은 그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고 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실의에 빠진 최 상병을 일으킨 것은 가족과 김성군(군무사무관) 대청면대장을 비롯한 전우들이었다. 이들의 응원과 격려로 다시 임용시험을 준비할 수 있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동생이 불합격 소식을 전하며 많은 위로를 해 줬습니다. 또 면대장님은 제가 틈틈이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덕분에 계속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최 상병은 대청면대에서 상근예비역으로 근무하며 하루 10~11시간씩 공부했다. 평일에는 새벽 3시까지 공부하고, 아침 일찍 사무실로 출근했다. 그야말로 ‘주경야독’하는 삶을 1년간 반복한 것이다. “세 번째 시험을 코앞에 두고는 하루 3~4시간만 잤습니다. 이번엔 기필코 합격하겠다고 각오를 다지면서요. 해병대로서 강인한 정신력을 키운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세 번째 응시한 임용시험 결과가 나온 것은 지난달 27일이었다. 최 상병은 마음을 졸이며 결과를 확인한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합격 조회는 오전 10시부터였는데, 너무 긴장해 손이 덜덜 떨렸습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도 엄습했죠. 그러다 ‘최종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는 문구를 확인했습니다. 고모와 여동생에게 가장 먼저 전화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울면서 통화한 기억뿐이네요(웃음). 정말 많은 분에게 축하를 받았습니다. 대청면대에서 근무하면서 임용시험까지 합격하니 너무나 기뻤습니다.”

 

최 상병의 성과는 역경을 딛고 수확한 열매이기에 더 돋보인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최 상병은 어렸을 때부터 여동생과 고모 댁에서 자랐다.

 

그는 앞으로 칭찬과 격려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자신에게 그랬듯이 말이다.

 

“합격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마음, 초심을 잃지 않고 늘 학생들 곁에서 함께 기뻐하고 슬픔과 아픔을 보듬어 주는 선생님이 되겠습니다.”  이원준 기자 < wonjun44@dema.mil.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