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 잡는 해병대’ 문화가 방아쇠를 당겼나

by 운영자 posted Jul 0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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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3월 인권위 ‘해병대 상습구타와 가혹행위 전통’ 직권조사 발표하기도
민항기 오인사격·총기난사 모두 상대방 음해로 사단장 구속된 2사단에서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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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권영재 해군 중앙수사대장이 강화도 해병대 총기난사 사고 진행경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해병대 2사단 소속 김아무개(19) 상병은 왜 동료들에게 케이(K)-2 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는가?

 동료 해안 초소병 6명의 사상자를 낸 김 상병의 범행동기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구타행위가 상당부분 줄어든 육군과 달리 해병대에서는 최근까지 구타 및 가혹행위가 상습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폐쇄적인 구태문화가 이번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가해자는 관심사병, 처지비관 메모도

 해병대 수사대장 권영재 대령은 5일 조사결과 브링핑에서 “현재까지 사고 원인은 사고자의 개인·심리적 문제에 비중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지만 부대와 관계된 부분도 있는지 함께 조사 중”이라고만 설명했다. 김 상병은 관심사병으로 분류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직접적인 범행동기와 연관이 있다는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권 대령은 “소속 부대에서는 사고자의 평소 행동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내부적으로 관심사병으로 분류한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일반 관심사병은 입대 전 인성검사에서 위험도가 높게 나오거나 부대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병사들이다. 김 상병은 입대 전 정신과 진료나 정신병력은 없었으며 인성검사 테스트에서 관심 소견이 식별된 것으로 확인됐다.

 권 대령은 “김 상병이 사건 직전 입에서 술 냄새가 나고 몸을 비틀거리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는 부대원 모 이병의 진술이 있었다”며 “부대 내에서 술병을 발견했지만 그것이 사고자가 마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문을 채취해 감식을 의뢰했다”고 전했다.

 

해병 수사반은 김 상병의 사물함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3쪽 가량의 편지 형식의 메모와 유서 형식의 메모지를 각각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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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해병대 총기난사 사고로 사망한 고 이승렬 병장의 친구로 알려진 해병대원이 오열하며 경기 성남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3쪽 가량의 메모에는 자신을 비관한 표현이 있었으며, 유서 형식의 메모지는 사고자의 것인지, 그 내용이 진실인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권 대령은 덧붙였다.

 메모장에는 “내가 싫다. 문제아다. 나를 바꾸려고 하는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반항했던 사회성격이 군대에서 똑같이 나오는 것 같다. 선임들이 말하면 나쁜 표정 짓고 욕하는 내가 싫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군 소식통은 전했다.

 김 상병이 총기를 절취할 수 있었던 것은 부대의 총기관리 실태가 허술했기 때문이었음이 조사결과 드러났다. 권 대령은 “총기 보관함의 열쇠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면서 “2명이 상하로 자물쇠를 분리 보관해야 하는데 1명이 관리한 것으로 식별됐다”고 강조했다.

 김 상병은 사건 직전인 오전 10시30분께 정준혁 이병과 대화하면서 “권승혁 일병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으며 정 이병은 “그렇게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상병은 오전 11시40분부터 11시50분 사이 전화부스 옆에서 이승렬 상병에게 처음 총격을 가했고 이어 부소초장실 입구에서 이승훈 하사에게 소총을 발사했다.

 이어 제2생활관으로 들어가 좌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잠을 자던 권승혁 일병에게 3발을 발사했으며, 우측 첫 번째 침상에서 자던 박치현 상병에게, 우측 두번째 침상에서 자던 권혁 이병에게 각각 소총을 발사한 것으로 조사 결과 확인됐다.

 김 상병이 K-2 소총을 발사할 당시 내무반에는 6명이 있었다.

 

인권위 “해병대서 상습 구타와 가혹행위 견디는 것이 전통” 

 국가인권위는 지난 3월24일 해병대 소속 연대 내 인권침해 상황에 대한 직권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후임병에 대한 선임병의 구타·가혹행위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가해 사병 8명을 재조사하고 사법처리하라고 해병대 사령관에게 권고했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한 해병대 부대원으로부터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진정을 접수하고 기초조사를 실시해 상습적인 구타 및 가혹행위 사실을 확인하고 올해 1월까지 해당 연대에 대한 직권조사를 벌여왔다.

 한 이병은 군기를 잡아야 한다는 이유로 선임병으로부터 지난해 8월 이층침상에 매달린 상태로 복부, 가슴 등을 맞아 늑골과 흉골이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입고 입원치료를 받은 것으로 인권이 조사결과 밝혀졌다. 이 이병이 고통을 호소하자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에게 “축구를 하다 다쳤다”고 진술하도록 강요했다.

 해병대 간부들도 사단장에게 알리지 않고 가해자 중 1명에게 영창 10일간의 행정처분만을 한 것으로 드러나는 등 조직적인 은폐를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이병도 선임병의 구타로 늑골에 골절상을 입어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으나 분대장 등 지휘관들은 작업도중 다쳤다고 보고하라며 사건을 축소하려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도 이 연대 소속 일부 선임병들은 “청소 상태가 불량하다” “선임기수를 외우지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후임병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했고, 많은 양의 밥을 빨리 먹도록 강요하는 등 가혹행위를 한 사실도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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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열린 강화도 해안 소초에서 발생한 해병대 총기 난사 사고 관련 군 관계자 브리핑에서 유가족이 사고상황 발표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인권위는 지휘관들이 사건을 은폐·축소하는 데 앞장서온 사실을 중시하고 해군참모총장에게 해당 사단장·연대장을 경고조처하고 지휘계통 관련자 11명을 징계하도록 권고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가해자 대부분이 후임병 시절 유사한 행위를 당했고, 이를 견디는 것을 일종의 ‘전통’으로 알고 있었다”면서 “구타를 묵인하는 병영문화 변화와 지휘감독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군관계자들은 해병대의 구타·가혹행위 용인 문화는 인권위로부터 직권조사를 받은 연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돼온 해병대의 잘못된 전통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15일 백령도의 해병 6여단에서는 이아무개 상병이 자신의 개인화기인 K-2 실탄을 맞아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해병대쪽은 자살을 한 것으로 판단하면서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한 차례도 설명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이 상병에 대해 구타 등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육군과 해군 등에서도 과거 구타와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았으나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군 중면 최전방 지피(GP) 내무반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건 이후 적어도 구타·가혹행위는 크게 줄었다.

  당시 김동민 일병(당시 22)이 수류탄 1발을 던지고 K-1 소총 44발을 발사해 8명을 숨지게 하고 2명을 부상입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나 이후 군부대의 잘못된 문화를 바로 잡는 큰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9년 말 전방부대를 제대한 김명갑(24)씨는 “대대에서 구타사고가 발생하면 사단 전체에서 비상이 걸려 훈련이 중단되고 정신교육이 벌어지는 등 구타 및 가혹사건에 대해 군간부들이 노심초사하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후임병이 선임병을 화장실에서 선임병을 때린 사건이 있었지만 해병대와 같은 구타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후임병이 사고칠까봐 선임병이 늘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최정예 부대 해병대 위상 

 이번 총기난사 사건 이전에도 해병대는 최정예 부대라는 일반인의 인식과 달리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구타와 가혹행위로 유지되는 전근대적인 군기는 유지하고 있었으나 진정한 의미의 군기는 크게 빠진 모습이었다. 지난해 5월 유낙준 해병대 사령관을 음해한 혐의로 2사단장을 맡은 박아무개 소장과 홍 아무개 소장 등 2명의 해병대 군장성이 구속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 소장은 7월 전역을 앞둔 홍 소장과 함께 “지난해 6월 취임한 유 사령관이 여권의 핵심 실세에게 수억원의 금품을 건네 이 핵심 실세의 입김으로 경쟁자를 제치고 진급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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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오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군 관계자들이 강화도 해안 소초에서 발생한 해병대 총기 난사 사고 사망자들의 분향소 설치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사진 뉴시스
 군내에서는 유독 해병대에서 진급과 관련한 음해투서와 금품수수 의혹이 빈발해 해병대 사령관이 불명예 퇴진을 한 사례를 지적하면서 “이것도 해병대의 전통”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서해 교동도 대공감시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해병대 초병 2명이 아시아나 민항기를 미확인 비행체로 오인해 예광탄 등 99발을 경고 사격을 가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대공감시초소의 임무는 미확인 비행체를 포착하면 1차적으로 강화도의 레이더 관제소에 통보한 뒤 2차 대응지침을 받아야 하는데도 무작정 경고사격한 뒤 인근 부대에 보고해 논란이 일었다. 오인사격과 총기난사 등 두 사건 모두 사단장이 구속된 해병대 2사단에서 발생한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지적이다.

<한겨례신문 김도형 선임기자/트위터 @aip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