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완의원의 해병대포스
지난 2008년 장관직 임기를 마치고 제 10대 호남대학교의 총장으로 지내며 잠시 공직을 떠났던 장 의원은 지난 7.28 재보선에서 광주 남구에 출마해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아직은 일할 나이고 건강하기 때문에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다부진 각오를 내보이고 있다. 50대 후반의 나이에 국회의원으로의 첫 걸음을 시작한 장 의원. 인생의 새로운 막을 다시 올린 그의 지난 날은 어떠했을까. 장 의원의 성장사를 사진으로 풀어봤다.
◆ 풍요로운 가정환경 속 비극, "형과 동생 잃고 한동안 방황해"
장 의원의 아버지는 교장으로만 만 40년을 재직하며 교육계에 평생을 바쳤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시대 교장직에 있던 일본인들이 해방과 동시에 물러나며 29세에 교장으로 부임했다. "아버지가 아마 그 당시 선생님들 중에서는 근무 연차가 많은 편에 속했었나봐요. 그 때는 임기도 없고 해서 결국 일흔에 정년 퇴직하실 때까지 교장을 하셨죠. 6년 전쯤 돌아가셨지만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교장선생님 댁 둘째 아들이었던 장 의원은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일찍부터 공부도 잘해 가정에서 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예쁨 받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같이 온다는 말처럼 그에게도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 2번이나 찾아왔다. 바로 형제들의 죽음이었다.
"형님이 저보다 7살이 많으셨었는데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전사하셨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셨죠. 그리고 또 무슨 일인지 제 바로 밑 동생도 군대를 갔다가 목숨을 잃었죠. 지금이야 몇 십년 전 일이라 이렇게 말도 꺼낼 수 있지만 그 때는 한동안 참 힘들었어요.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싶기도 했고요. 극복하기까지 참 많은 눈물을 흘렸었죠."
◆행시 합격 후 해병대 지원, "야학 지도했던 건 군 시절 가장 큰 보람"
군대에서 형님과 아우를 잃어 '군대'라는 말만 들어도 괴로움이 몰려와 피할 법도 한데 장 의원은 특이하게 해병대에 자원했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해 기획예산처 사무원으로 약 2년 간 일하다 해군 장교 시험을 보고 해간 60기로 해병대에 입대했다. "기왕 군생활 하는 것이라면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원했어요. 형제들을 잃고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럴수록 부딪혀 봐야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최고의 선택이 됐죠."
백령도 앞바다를 지켰던 시절을 회상하자 군생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듯 다양한 표정이 장 의원의 얼굴에 스쳤다. 그는 거의 매일 배트로 30대 가량을 맞아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멍이 사라지지 않았던 기억, 눈오는 겨울 밖에서 눈사람이 될 뻔한 기억을 떠올리며 아찔해 했다. 하지만 이내 백령도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부를 가르쳤던 기억을 떠올리며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군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에요. 한 1년 정도 애들을 가르쳤었는데 어찌나 배움의 열정이 있던지 매 수업 때마다 뭐라도 더 가르쳐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저절로 들 정도였죠. 나중에 제대할 때는 애들하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며 나보다 더 어렵고 약한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었고, 그런 마음이 '제가 정부 부처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는데 큰 동기를 부여했던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미소)"
◆ 7년 열애 끝 결혼, "연애 소질 없어 아내 아니면 결혼 못 했을지도"
일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던 장 의원이었지만 막상 아내와의 연애 얘기를 할 때는 수줍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현재 아내와 7년 간의 열애 끝에 결혼해 슬하에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두고 있다. 아내와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대학 3학년 때 아내를 학교 축제 파트너로 소개 받았죠. 근데 막상 축제 당일에는 같이 못 있었어요. 아내가 그 때 무슨 공연이 있다고 못 왔거든요. 그리고 그냥 그렇게 알고 지내다가 대학 4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남을 가졌죠."
오랜 기간 연애하며 둘 사이에 큰 고비는 없었는지 물었다. 장 의원은 해병대를 자원하며 한 번 헤어질 뻔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아내한테 "기다리지 말고 다른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 제대하고 나올 때까지 지고지순하게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큰 감동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골인했다.
"아내가 소위 ‘이대 나온 여자’에 얼굴도 예뻐서 절 기다리지 않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끝까지 신의를 지키더라고요. 제가 연애에는 소질이 없어서 아마 아내가 아니었으면 결혼도 무척 늦게 했을 텐데, 다행이죠.(웃음) 그리고 생각해보면 아내가 집안살림을 전적으로 도맡아 줘서 제가 밖에서 나라살림을 꾸리는데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고맙고 또 사랑스러운 여자예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서로 의지하면서 평생을 살아가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네요."
<사진=장병완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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