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최초의 사진이 촬영되고 1839년 파리에서 처음 다게레오 타입의 카메라가 시판된 이래, 카메라는 오직 미술만이 가지고 있었던 ‘장면을 만들어낼 권리’를 모든 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카메라가 시판되기 이전엔 오직 회화나 조각만이 화면을 구성하고, 현실을 재현할 수 있었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아름다운 장면을 눈 앞에서 놓쳐버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메라는 모든 이에게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 자기의 눈에 비친 아름다운 광경들을 셔터 한번으로 영원히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1826년에 8시간 노출을 하여 얻어진 최초의 사진 ‘창 밖의 풍경’
이렇게 만인에게 소유욕과 창작욕을 충족해준 카메라는 현실을 재현할 수 밖에 없다는 등의 여러 이유로 예술계의 외면을 받아왔다. 하지만 여러 사진작가들이 사진은 단순한 현실 복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고, 사진은 순간을 어떤 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게 잡아내며 찍는 이의 다양한 정서까지 반영하는 역동적인 성격을 지닌 예술의 한 장르로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여기, 삶의 여러 순간을 가감 없이 포착해낸 사진들과 그들에게 생명과 감정을 주었던 거장들을 담아낸 책들을 소개한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던 최고의 사진가
1908에 태어나 2004년에 숨을 거두기까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은 스페인, 미국, 멕시코, 인도, 중국 등을 여행하며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그는 사진을 예술의 반열로 올려놓은 진정한 사진작가로 평가되고, 그의 동료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세이무어 등과 함께 ‘매그넘’ 이라는 국제 자유 보도 작가 그룹을 1937년에 설립하는 등 사진이 보다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이이다. 그는 작은 라이카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기로 유명한데, 그 이유는 언제나 휴대 가능하기에 사람들에게 그 존재를 들키지 않고 ‘결정적 순간’을 담을 수 있기 때문이라 설명할 정도로 일상성을 강조한 작가였다.
수많은 사진집을 펴낸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지만, <내면의 침묵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은 그가 찍은 인물사진만을 엮은 책이다. 평소’ 결정적 순간의 포착’을 강조해온 그이기에 인물의 개성을 단번에 잡아내야 하는 초상사진은 그의 사진 철학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장르이다. 연출된 모습을 혐오하며 ‘모기가 물듯이’ 인물의 모습을 한 모습을 포착하고 자 한 그의 노력을 그대로 반영하듯, 실제 사진들을 보면 인물들은 하나 같이 자연스러우면서 (어느 정도의 포즈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성을 잃지 않고 있다. 오죽했으면 항상 도발적인 포즈를 취했던 마릴린 먼로 마저 그의 사진 속에선 자연스럽게 어딘가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까. 사진집 <내면의 침묵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을 읽다 보면 구도, 개성의 포착 등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던 재능의 소유자인 그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로버트 카파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는 전쟁터에서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보다
로버트 카파의 본명은 엔드레 애르노 프리드만이다. 본래 헝가리인이었던 그는 좌익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헝가리 정부로부터 추방되며, 신분을 감추기 위해 로버트 카파라는 가명으로 미국인 행세를 하게 된다. 스페인 내전 취재를 시작으로 그는 세계 제 2차 대전, 중일 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서 전쟁의 여러 순간을 포착해내는 종군 기자로서 명성을 펼치게 된다.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너무 멀리서 찍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던 그는 포탄이 떨어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전장에 뛰어들어 그 순간을 포착하고자 했고, 결국 베트남 전쟁에서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
로버트 카파가 전장의 사진만을 찍은 것은 아니지만, 역시 그를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단어를 꼽자면 ‘종군 기자’ 일 것이다.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그의 2차 대전 종군기를 엮은 책으로, 당시 무국적 상태였던 카파가 미국 잡지 <콜리어스>의 부탁으로 본격적으로 제 2차 대전에 참가 하게 된 상황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그가 좀처럼 촬영에 협조하지 않는 공군들 때문에 밤마다 그들에게 포커를 배웠다는 등의 에피소드는 ‘미공군 제 301폭격대의 조종사’와 같은 사진과 연관되어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특히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파도를 헤치며 전진하는 미군이나, 전쟁 마지막 날 총에 맞아 전사한 군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카파가 얼마나 전쟁에 가까이 참여했는지 증명하며, 책에 있는 로버트 카파의 사진들은 정확한 사실만을 포착했기에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었던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
김영갑
제주에서 제주인들의 이상향 ‘이어도’ 의 모습을 발견하다
자연과 사진이 좋아 모든 것을 버리고 평생 그것에만 몰두한 기인이 있다. 28살 젊은 나이에 제주도에 정착해 48살에 루게릭 병으로 요절하기 까지 김영갑은 오직 자신이 원하는 것을 쫓기 위해 살아왔다. 음식보다 필름이 더 중요했던 그는 짧은 생애 내내 제주도의 자연 풍광을 찍었으며, 그의 사진들은 제주에서 사는 사람들 조차도 알아 차리지 못했던 제주의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준다. 이런 김영갑의 작품들은 보는 이들에게 제주도가 어쩌면 제주도 사람들이 꿈꾸던 유토피아 ‘이어도’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그의 제주 생활에 대한 글과 사진이 어우러진 에세이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그의 사진뿐만 아니라 김영갑이라는 한 인물이 지니고 있는 고민과 철학이 묘사돼있다. 김영갑은 ‘바람 잘 날 없는’ 섬을 사랑하는 이답게 바람의 움직임을 사진에 즐겨 담았는데, 그의 사진 속에는 유난히도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억새나 유채꽃들이 많이 등장한다. 흔들리는 흐릿한 그들의 형체와 흔들림 없어 보이는 나무들과 바위들이 묘한 대조를 자아내는 사진이 특히 많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들은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덧붙여 질 때 사람들에게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솔직하게 써 내려간 그의 글은 독자들에게 그의 사진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김영갑의 에세이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다른 사람과는 너무나 다른 그에 대해 왜곡된 시선 없이 쓰여져, 그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이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강운구
어두웠던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군상을 담은 사진작가
강운구는 1960년대부터 조선일보의 사진작가를 시작으로, 군부의 지배하에 한국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해서 끊임 없이 탐구하고 사진을 찍었던 사진가다. 그는 한국의 구석구석을 찍는데 열중했으며, 특히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가 우리 고유의 것을 파괴하곤 했던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산업화의 전 후 모습을 자주 찍기도 했다. 그렇기에 어린 동생을 업고 있는 아이를 찍은 그의 사진엔 연민이 담겨있고, 산업화의 원인인 독재 정권의 모습을 찍은 사진에는 냉소적인 시선이 스며들어있다.
1969년부터 1984년까지의 그의 사진들을 모아 펴낸 <우연 또는 필연>은 한 곳에선 아직도 소와 함께 밭을 갈고, 또 다른 한 곳에선 가족들이 신식 카메라를 들고 기차로 피서를 가는 모습이 공존하던 당시 한국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당시 한국의 여러 가지 모습을 담아냈는데, 특히 책 군데군데 있는 풍경 사진들은 선조들이 그렸던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어떤 거룩함이 깃들어 있다. 보통 이들의 삶을 객관적으로 포착한 점에서 그의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성격을 띠지만 그의 사람과 조국에 대한 사랑을 사진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사진집은 휴머니즘적인 그의 사진과 함께, 당시의 암울한 시대상과 그 속에 있던 예술가들의 초상에 대한 조세희의 설명이 곁들여져 우리들에게 잊혀지고 있던 한 시대를 다시 상기시키게 한다.
<출처 : http://v.daum.net/link/199822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