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0_26.jpg < 권오갑 현대오일뱅크 사장> 지금으로부터 83년 전인 1929년 일입니다. 경기도 시흥이 고향인 어머니는 열일곱 살 꽃보다 아름다운 나이에 청계산을  넘어 안동 권씨가 모여 사는 판교 금토마을로 시집을 오셨습니다. 위로 딸 둘을 낳으시고 이후 아들 셋을 낳으셨는데, 맨 마지막이 바로 저였습니다.
   
   어머니는 유난히 몸이 약하셨습니다. ‘오십을 넘기기 힘들겠다’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곱 살 어린아이였던 저는 ‘아!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어머니가 없으면 난 어떻게 하지?’ 심각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해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저희 형제들은 자기가 먹은 밥그릇을 부엌으로 가져다 놓거나 잠자리를 펴고 개는 일, 우물에서 물 길어오는 일 등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종갓집 며느리였던 어머니는 몸은 허약하셨지만, 시부모님을 모시면서 대농(大農)집안이라 농사일을 많이 하셨고, 수없이 드나드는 친척들과 집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모두 챙기셨습니다. 밤이 되면 항상 기진맥진한 모습이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소한 체격으로 그 힘든 일들을 다 하신 어머니가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입니다. 힘들게 생활하시면서도 불평 한마디 하지 않으신 어머니는 매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일어나 터주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들의 건강과 집안의 평안을 위해 빌고 또 비는 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으셨습니다.
   
   과수원에서 복숭아와 사과를 수확할 때면 벌레 먹지 않은 좋은 과일은 이웃과 웃어른에게 주시고, 까치가 먹어 생채기가 난 과일이 더 맛있다고 웃으면서 가족들에게 내오시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지금도 저는 모든 음식을 보면 좋은 것보다는 크기가 작거나 흠집이 있는 것부터 손이 가는 습관이 있는데,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보고 배운 어머니의 심성과 가르침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머니는 늘 소식(小食)을 하고, 화를 내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잠을 잘 주무셨습니다. 일생을 사시면서 다른 사람에게 불편한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신 분이었고, 자식들 앞에서도 단 한번 얼굴을 붉힌 적이 없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1년 365일을 늘 그 모습으로 평생 살아오셨으며, 몸은 약해도 이런 생활 태도와 습관 덕분에 백수를 누리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머니께서는 어려서부터 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맞은 사람은 두 다리 뻗고 자지만 때린 사람은 다리를 오그리고 잔다고 하셨지요. 절대 남의 물건을 탐해서도 안 되고, 남을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대학시절 집안 사정으로 등록금을 내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엄했던 아버지께는 감히 말하지 못하고 어머니께 돈이 꼭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디에 쓸 거냐고 일절 묻지 않으시고 며칠 뒤 돈을 구해주셨습니다. 그때 등록금을 내줬던 친구는 여러 해 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주신 돈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의 대학 등록금을 냈던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도 그제서야 옛날에 당신이 갖고 계시던 금비녀와 금반지를 팔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아마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런 것일 겁니다.
   
   서해 연평도에서 해병대 전포대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일도 떠오릅니다. 육지에서 1주일에 한 번씩 배가 들어오는데 어머니는 어김없이 2주에 한 번꼴로 제게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어머니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30분은 족히 걸릴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가 배를 기다리곤 했습니다.
   
   연평도 근무 시절 어머니 편지를 30여통쯤 받았는데, 편지는 한결같이 집안 소식을 전하는 내용 절반과, 항상 몸 건강하라는 내용이 절반이었습니다. 저는 섬에서 돈 쓸 일이 많지 않아 당시 중위 월급을 우체국에서 소액환으로 보내드렸는데, 나중에 제대해 보니 부모님께서 그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그대로 모아두셨다가 몇 배로 보태셔서 자그마한 아파트를 장만하여 주셨습니다.
   
   지난해에는 동네분들과 친척 어른들을 모시고 백수(白壽)를 맞으셨고, 2012년 새해가 밝으면서 드디어 100세가 되셨습니다. 지금부터 12년 전, 아흔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 “네가 어머니를 잘 모셔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모시고 있지만, 항상 부족하다는 생각과 함께 어머니를 뵐 때마다 제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몸이 약하신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가장 큰 노력을 하신 분은 큰누님이셨습니다. 큰누님은 어머니가 50대 때부터 어머니 건강을 위해 온갖 뒷바라지를 다 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 계셨던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모시고 어머니를 위해 지금도 애쓰고 있는 아내에게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요즘에는 작은형님과 작은누님이 어머니를 더 열심히 모셔 주셔서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금은 조금 야위셨지만 열일곱에 시집와서 100세까지 무려 83년 동안 금토마을 한 곳에 사시는 어머니는 집안일을 도와주시는 아주머니에게 농담도 할 정도로 여유가 있으십니다. 또 가끔은 동네 노인분들과 화투도 치면서 건강하게 살고 계십니다. TV에 나오는 뉴스도 정확하게 알아들으시고, 불경도 읽으시는 등 모든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뵐 때마다 자식된 입장에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생전에 아버지께서는 남자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고, 일을 하려거든 큰 세상에 나가 큰일을 해야 한다며, 어떤 일에 뜻을 세우면 절대 물러서지 말고 끝까지 성취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과 어머니의 반듯한 심성을 배울 수 있었던 저는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된 것은 역시 부모님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어머니께 편지를 쓰는 것은 장교 훈련 시절, 연평도 군 복무 시절, 영국 런던 근무할 때 이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 편지를 써 달라는 의뢰를 받고 처음에는 정말 많이 망설였고, 두세 차례 거절하였습니다. 그 시대 그렇게 살지 않았던 부모가 어디 있었을까 생각하면 괜히 제가 생색내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습니다. 제 나이도 어느덧 60이 넘었지만, 어머니는 지금도 항상 제게 먼저 전화하시어 저를 어린아이처럼 걱정해 주십니다. 올해부터는 제가 자주 전화 드리겠습니다. 더욱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어머니.
 

 

< 출처 : 주간조선 http://weekly.chosun.com >


  • 자병이 2012.01.24 08:20
    선배님의 사모곡을 읽고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저 첫 휴가때에 작업복을 입고 다녔는데 미쳐 팔각모를 준비하지 못해서 민머리로 다녔더니, 고향부천에서 김포마송까지 가셔서 내 머리에 맞는 팔각모를 사오셔서 내 머리에 씌워주셨던 우리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입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 어언 14년이 되어갑니다.
    집안을 일으키는데 네가 중심이 되어라 하신 어머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겠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 -해병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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