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LL NULL 해병닷컴 - 유도탄고속함 제원 및 함명 인물 세부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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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명 인물 세부 소개

 

❑ 故임병래 해군 중위(1922. 1. 17. ~ 1950. 9.14.)

 임병래 중위는 1922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나 광복 이후 해군 첩보부대 창설요원으로 활동했고, 1950년 4월 해군사관후보생 9기로 임관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특수공작대의 조장으로 선발되어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인천, 서울, 수원으로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는 영흥도 상륙작전에 참가해 큰 공을 세웠다.

 

 당시 인천에는 유엔군의 상륙작전에 대비해 북한의 정규부대와 보안기관이 경비와 검문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보수집 활동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임 중위는 대원들과 함께 북한 군관을 납치하여 월미도에 배치된 북한군의 병력, 장비위치, 경계상태, 지뢰부설 여부 등 중요한 군사첩보를 획득하고, 서울과 수원 일대를 비밀리에 왕래하면서 신출귀몰한 방법으로 북한군의 상황과 군사기밀을 탐지해 우리 해군 본부와 극동군사령부에 정보를 제공하는 등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 9월 13일 첩보대는 철수명령을 받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천상륙작전 개시 하루 전인 1950년 9월 14일, 일부 병력과 남아 잔무를 처리하던 임중위는 공작대의 활동을 탐지한 북한군 1개 대대의 공격을 받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다 대원들을 먼저 탈출시킨 뒤 퇴로가 차단되어 적에게 포위당하자, 포로가 될 경우 인천상륙작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우려하여 권총으로 자결했다. 정부는 그의 전공과 충절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미국 정부도 은성훈장을 추서했다.

 

❑ 故홍시욱 해군 이등병조(1927. 5. 27. ~ 1950. 9.14.)

홍시욱 이등병조(현재의 하사 계급)는 1929년 5월 27일 출생했으며 출생지는 미상이다. 1948년 6월 1일 해군 신병 10기로 입대해 6.25전쟁 이후 해군본부 정보국의 특수공작대로서 임무 수행을 위해 1950년 8월 22일 영흥도에 상륙, 진입하였다. 그 후 임병래 중위와 함께 인천과 서울 및 수원 등을 왕래하면서 수집한 첩보를 해군본부와 극동사령부에 제공하여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는데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둔 1950년 9월 14일 새벽 2시 옆 섬인 대부도에 주둔해 있던 북한군 1개 대대가 기습을 했고 당시 영흥도에 있던 해군 의용대와 해군 정보국 소속의 부대원은 중대장 임병래 중위의 지휘 아래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적에게 포위되어 위기에 처하였으며, 더 이상 퇴로는 없었다. 결국 그는 민족의 희망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서는 체포되어서는 안 된다고 결의하고 적을 사살하고 남은 마지막 한발을 자신의 가슴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정부는 그의 전공과 충절을 기려 1계급 특진과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으며 미국 정부도 은성훈장을 추서했다.

 

❑ 故홍대선 해군 삼등병조(1929. 1. 14. ~ 1952. 1. 4.)

홍대선 삼등병조(현재의 하사 계급)는 1929년 1월 14일 경기 수원에서 출생했으며 해군신병 12기로 입대해 6.25전쟁 당시 801함 단정장으로 서해안경비작전에 참가했다. 서해안 경비작전에 참가하고 있던 1952년 1월 4일 홍대선 삼등병조는 서해안 순위도에 모여 있는 주민 840명을 안전하게 피난시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당시 옹진반도는 북한 수중에 들어가 있었지만 홍대선 삼등병조는 위험을 무릎 쓰고 LST 801함과 함께 순위도에 도착해 피난민을 쉴 새 없이 수송하기 시작했다. 피난민의 약 절반을 수송했을 무렵 북한군이 전마선으로 순위도 상륙을 기도하며 피난민에게 총격을 가하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때 홍대선 삼등병조는 피난민 수송을 다른 단정에 부탁하고 자신은 단정을 타고 북한군의 포격과 총격을 유인하면서, 순위도 상륙을 기도하는 3척의 북한군 전마선에 돌진하여 차례대로 박살내었다.

 

그러나 단정의 뱃머리도 파손되어 항진이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자 홍대선 삼등병조는 적의 사격을 유인하기 위해 인근 예안리 해안에 상륙해 노출된 자세로 기관단총을 발사하며 스스로 표적이 되어 적과 교전하다 장렬히 전사했다. 살신성인의 희생정신으로 수많은 피난민을 구출하고 전사한 홍대선 삼등병조의 초인적인 행동은 군인정신의 귀감으로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52년 11월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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