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에서 전사한 병사의 편지가 43년 만에 가족에게 전달됐다.
100607_21_1.jpg
편지를 쓴 주인공은 1968년 1월 30일 베트남 꽝남성 추라이 전투에서 전사한 고(故) 권순관 일병. 강릉에 살던 그는 66년 12월 만 17세에 입대해 해병대 청룡부대에 배치 받았다. 68년 12월 6일 그는 전선에서 애틋한 정을 담아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는 먼저 제대한 같은 소대 동료 편에 부쳐졌다. 그러나 권 일병은 55일 뒤 전사했다. 소식을 접한 동료병사는 편지를 전해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편지를 전달하지 못했다. 편지는 후회와 자책에 시달리던 이 병사가 최근 강릉보훈지청에 빛바랜 편지를 우편으로 보내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권씨의 2쪽 분량의 편지는 ‘부모님 전 상서’로 시작해 “형님과 여동생, 큰댁 모두 두루 평안한지요. 외할머님 병환이 나으셨다니 기쁘군요”라는 등 고향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이 담겨 있다. 이어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이 하루 서너 번은 됐지만 그때그때 잘 모면했다”면서 “머지않아 (위험한 임무에서) 빠질 수 있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구절도 들어있었다. 죽음을 미처 예감하지 못한 권씨의 글은 안타까움을 더했다. 편지를 전달하는 삼척 출신 소대원에게 잘해달라는 당부의 글도 포함돼 있다.

편지를 받은 강릉보훈지청은 권씨 유족들의 주소지를 파악해 부친 권혁기(87)씨가 서울 상계동에 거주하고 있는 것을 확인, 연락을 받고 한숨에 달려온 권씨의 여동생 순애(55)씨에게 지난 4일 편지를 전달했다.

순애씨는 당일 강릉에 있는 모친의 산소를 찾아 편지를 읽어 드렸다. 아버지는 현충일인 6일 편지를 품에 품고 순애씨와 함께 권 일병이 잠들어있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늙은 아버지는 “편지 잘 받았으니 이제 편히 쉬어라”고 말이 없는 아들에게 당부했다.

순애씨는 “오빠의 마지막 유품인 편지가 40여년의 세월을 넘어 이렇게 돌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오빠가 전사한 뒤 화병으로 평생을 고생하시다 4년 전에 눈을 감은 어머니께 뒤늦게나마 오빠의 마지막 소식을 전해 줄 수 있어 너무나 다행”이라고 눈물을 글썽였다.

강릉보훈지청 관계자는 “편지를 전달하기로 한 소대원은 편지를 제때 전하지 못한 죄책감에 백발이 성성해지도록 편지를 간직하다 뒤늦게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말했다.

강릉=정동원기자 cdw@kmib.co.kr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97 도솔산지구 전승행사 file 운영자 2010.06.05 8604
796 KBS <병영체험 진짜사나이> 방송안내 운영자 2010.06.05 22306
795 해병대 복무 이정 현충일 맞아 프로야구 애국가 열창 file 운영자 2010.06.07 14617
» 아들아, 43년 전 편지 잘 받았다 부탁받은 동료, 전사 소식 듣고 고민하다 못 전해 file 운영자 2010.06.07 14024
793 야생화 만발 산길엔 무심한 정적만… 한국전쟁 격전지 양구 트레킹 file 운영자 2010.06.10 15472
792 2010 KFN 국군방송 창작영상물 공모전 file 운영자 2010.06.12 13813
791 해병대 보트가 내륙까지..도솔산문화제 열려 file 슈퍼맨 2010.06.13 14160
790 [국민일보 말도 르포… “최근 北 포성 부쩍 늘었어요” file 운영자 2010.06.15 15537
789 성명서 낭독하는 최병국 해병대구국결사대장 4 file 해순이 2010.06.18 16996
788 연평해안서 폭발물 터져… 탐색작업하던 해병 부상 슈퍼맨 2010.06.18 13243
787 도솔산축제 IBS 해병대 보트 체험 참가신청서 file 슈퍼맨 2010.06.18 14730
786 양구 제13회 도솔산문화제 개막 file 운영자 2010.06.19 19004
785 산골마을에 등장한 해병대 상륙용 보트 file 안기선 2010.06.21 15757
784 강기천 전 해병대사령관 군민장학기금기탁 1 file 운영자 2010.06.25 15007
783 부산시가지 행진중인 해병대원들 file 슈퍼맨 2010.06.26 17947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55 Next
/ 5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