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인사병 병장 백종협

by 관리자 posted Dec 1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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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부중대 인사병 병장 백종협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6시30분 총기상과 동시에 조별과업 정렬을 떠났다. 간단한 인원 파악 및 국군도수체조, 조별과업을 부여받고 해산을 한 뒤 근무표를 확인했는데, 근무표를 보니 13시~16시까지 주간 3직 근무였다. 오늘 14시에 대 해상사격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훈련에 참가 하지 못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꺼림칙함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난 근무 준비를 하고 중대원들은 방탄복을 준비하고 무장을 몸에 맞게 최적을 하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13시 근무 진입 후, 후임병인 김태우 해병과 평소와 같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때, 14시 35분 헬기장에서 '씨~웅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무슨 소리지" 하고 그 방향을 쳐다보았다. "포 7중대의 K-9 자주포 사격이 왜 이렇게 크고, 큰 진동으로 느껴질까"라고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마을에서 포탄 소리가 2회 들렸다. 흰 연기가 무섭게 피워 오르고 있었다.

나는 선임근무자로서 후임 근무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태우 상병과 함께 배수로 달려가 몸을 피했다. 배수로 들어가 있는데, 폭음과 충격파에 대비해 중대에서 교육받은 복지부동 자세를 취했다.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위병소 배수로 바로 옆 탄약반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배수로에는 진동이 울리면서 위병소 창문이 깨지고, 내가 엎드리고 있는 머리 위로 총알 같은 파편이 흩어졌다.

나는 가슴이 뛰고 순간적으로. "아! 전쟁이 났구나!, 도대체 어디서 날라 온 포탄인가!, 포탄은 언제까지 떨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나는 절대 저 포탄에 맞지 않는다!"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배수로 바닥에는 전투복과, 얼굴이 젖어들 만큼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폭음 소리가 멈춘 뒤 나는 위병소 전화기로 중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는 먹통이었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거점으로 가는 도중 중대 들릴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태우 상병에게 긴장 하지 말고, 침착하자며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재차 말하고 중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뛰어갔다.

사실 김태우 상병보다 내가 더 겁에 질려 나 자신의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이렇게 격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대로 가니 이미 중대는 소산을 마치고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대의 잔류인원을 다시 확인하고 혹시나 있을 화재에 대비하여 김태우 상병과 함께 중대의 차단기를 모두 내렸다.

그 순간, 나는 중대로 뛰어오는 중 탄약반 주위에 불길이 번지기 시작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김태우 상병과 나는 포탄이 떨어질까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불길을 그냥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소화기를 들고 불이 번지기 시작한 탄약반으로 달려갔다. 탄약반 앞에서 소화기를 뽑고 진화를 시작했다. 초기 진압을 하는 도중 옆에서 소화기를 들고 목사님이 달려오셨다.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나는 목사님이 오시자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화재를 진화한 후, 거점으로 뛰는 도중 나는 내 뺨을 때리면서 마음속으로 "정신 차려야 한다"며 계속 되새겼다.

거점으로 들어가니 마침 중대장님과 행정관님이 위병소 근무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이상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나를 신경 써주고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15시 20분경 북한의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거점 입구와 가까이 있던 중대는 거점 안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거점 안에서 지진과 같은 진동이 울렸다. 나는 거점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고, 후임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 또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중대의 선임병으로서 겁에 질린 표정을 보이게 된다면 후임들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해 오히려 후임들에게"걱정하지 말라며, 이 상황에서 살아남게 되면 우리는 영웅이 될 꺼라고, 북한군과 한번 싸워 멋지게 영웅이 되자"고 후임들을 격려 했다.

그 뒤 몇 시간동안 더 이상의 포격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의 포격이 멎자, 부대본부 주위가불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대장님은 선임병 몇 명을 뽑아, 밑으로 내려가서 모든 소화기, 등짐펌프, 물수건, 방화벨트 구성하기 위한 삽과 대비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방화벨트를 구성할 곳은 지금 연평부대에서 제일 중요한 지휘통제실 주위, 거점, 거점 발전기였고, 불을 끄지 않는다면, 모든 곳에 불이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와 몇몇 인원들은 중대장님의 지시를 받아 지통실 주위에 삽과 대비, 등짐펌프로 지통실과 거점 발전기로 더 이상 불이 넘어 오지 못하게 방화벨트를 만들었다.

주요 시설물 주위 3m를 삽과 대비로 나뭇가지, 잎들을 제거 하고 그 주위에 등짐펌프로 물을 뿌려서 완벽한 방화벨트를 만들었고, 불이 번져 오는 곳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불을 껐다. 큰 불을 거의 끈 뒤에도 혹시나 불씨가 다시 살아나 불이 다시 번질까봐 2시간 동안이나 지켜보며, 다시 살아나는 불씨들을 제거했다.

화재를 진화하고 거점으로 들어가니 22시가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중대 총원은 밖에서 고생하는 대원들을 생각하며 행정관님을 비롯하여 총원이 식사를 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정말 위급할 때야 말로 전우애가 최고조에 오른다는 것이 사뭇 느껴졌다.

다음날 새벽 위병소 근무에 임하게 되었다. 근무 중, '피~웅'이란 소리만 들어도 후임근무자와 정색을 한 뒤, 북쪽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고 포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하지만 적의 예기치 못한 도발에도 해병으로서, 연평부대원으로서, 본부중대원으로서의 내 자부심과 이 나라를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흔들림이 없다.

난 오늘도 주어진 임무들이 내 전우와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11월 23일 뜨거웠던 그날을 떠올리며, 내가 가졌던 생각과 마음들을 뼛속 깊이 새기고,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