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 밝히는 꺼지지 않는 등불이 해병대”

by 배나온슈퍼맨 posted Aug 2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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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일(왼쪽 셋째) 해병학교 35기 동기회 고문과 엄준걸(첫째) 예비역 대위, 고광호(넷째) 예비역 소령이 지난 11일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을 찾아 45년 전 내지 못한 기찻삯 100만 원을 건네고 있다. 철도공사 제공

 

45년 전 무임승차 기찻삯 갚은 해병학교 35기와 김무일 동기회 고문 / 2011.08.23

 

 “해병대 정신은 ‘더 퓨(The Few), 더 프라우드(The Proud)’다. 수많은 선배들이 그랬듯이 언제나 생각함에 신중하고 행동함에 과감한 해병대원으로 거듭나 주길 바란다.”

 

 백전노장의 해병대 노병은 “우리 해병이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따뜻이 조언했다. 하지만 “온누리를 밝히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바로 해병대”라고 아직도 자부심이 대단했다. 

 

 45년 전 내지 못한 135명 동기생들의 기찻삯을 뒤늦게 갚아 ‘군인정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해병대 노병들은 다시 한번 해병정신을 되새겼다. 

 

 김무일(68·예비역 대위), 고광호(68·예비역 소령), 엄준걸(69·예비역 대위) 해병학교 35기 동기들은 지난 11일 허준영 철도공사(코레일) 사장을 직접 찾아 100만 원을 건넸다. 

 

 지난 6월 임관 45주년을 맞은 35기 동기회는 이날 45주년 기념문집 편집위원장이면서 해병대 전우회 고문을 맡고 있는 김무일 고문이 동기들을 대표해 무임승차 기찻삯을 전달했다. 

 

 김 고문은 이 자리에서 “철없던 지난날 저질렀던 치기로 철도공사에 손해를 끼쳤으며 뒤늦게나마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면서 “해병학교 35기 장교회 이름으로 무임 승차했던 열차 찻삯을 갚기로 했다”고 밝혔다. 

 

 변상금액은 1966년 당시 경남 진해 경화역서 김해 진영역까지 1인당 75원씩 135명을 합산한 1만125원이다. 45년이 지났기 때문에 대략 100배 환산해 100만 원으로 결정했다. 

 

 김 고문은 “해묵은 일이고 큰 돈은 아니지만 우리 해병대와 철도공사가 어려운 시기에 적으나마 힘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모았다”고 말했다. 

 

 이에 허 사장은 “휴가도 잊은 채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우리 철도 직원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될 것”이라면서 “고마운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국민들이 철도를 믿고 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노병들의 정성에 화답했다. 

 

 무엇보다 아무도 모르게 기찻삯을 갚고 뒤늦게 사과하려 했던 노병들의 이러한 미담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예비역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김 고문은 “올해 임관 45주년을 맞아 기념문집을 내면서 기찻삯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이 나라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우리 군과 철도공사가 더욱 힘을 내고 사기가 올랐으면 하는 바람으로 비록 세월은 흘렀지만 뒤늦게 기찻삯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 

 

 당초 동기생들의 조용한 후불행사로 추진한 이날 미담이 너무 크게 알려져 조금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우리 군과 해병대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됐으면 하고 바랐다. 

 

 김 고문은 서울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법학과를 나와 66년 3월 해병대에 입대했다. 베트남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67·68년에 베트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청룡부대 수색소대장과 의장대장으로 하루도 쉴 틈이 없이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치렀다. 

 

 20여 명의 소대원이 산화했고 작전 중 가슴 관통을 당해 후송된 중대장을 포함해 4명의 중대장을 모셨다. 추라이·호이안 전선을 누비면서도 기적적으로 전장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 후 해병대 2사단 중대장과 해군 서울지구 헌병중대장을 끝으로 7년 7개월의 정든 군 생활을 마치고 예편했다. 

 

 전역 후에 남보다 훨씬 뒤늦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유일한 자산인 해병대정신’으로 뼈를 깎는 피나는 노력으로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렸다. 현대모비스 전무, 기아자동차·현대제철 부사장을 거쳐 현대자동차 부회장으로 초고속 ‘특진’하며 군 출신 최고경영자(CEO)로서 모범과 역량을 과시했다. 

 

 김 고문은 해병학교 35기 동기회장을 거쳐 지금도 동기회 고문·해병대 해강회 회장을 맡아 군·안보 관련 예비역 활동에도 적지 않은 힘을 보태고 있다. 

 

 최근 우리 군의 병영문화 혁신과 관련해 “요즘 젊은이 10명 중 8명은 오랫동안 자기만의 구축된 삶의 공간에서 생활한다”면서 “이러한 젊은이들이 갑자기 군 생활을 하다 보면 상당한 혼란과 상실감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우리 군의 일선 지휘관들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신세대 장병들의 행동 양식과 생활 방식을 깊고도 폭넓게 고려해야 할 것”이라면서 아울러 “우리 국민들도 ‘자기 자식만 귀하다’고 감싸려 들지 말고 앞으로 공동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자질 향상에 힘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나라가 위험에 빠졌을 때 이 나라를 지키는 우리 군의 의연한 모습에는 항상 따뜻한 눈길과 변함없는 성원을 보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고문은 해병대 후배들에 대한 따스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 고문은 “아직도 해병대는 ‘귀신잡는 해병’ ‘신화를 남긴 해병’의 전통처럼 우리 군의 최강의 전투부대”라면서 “해병대 군문을 거쳐간 수많은 선배들은 추호도 미래를 기다린 적 없이 언제나 ‘오늘’이 소중한 미래였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 고문은 “높이 나는 새가 더 멀리 볼 수 있듯이 더 높이 날아 오를 때 더 넓은 찬란한 세상을 만날 것”이라면서 “결코 남을 따르려 하지 말고 남이 우리를 따르게 해 이땅의 애국자가 되는 날이 바로 진정한 해병이 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 김무일 고문이 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위국헌신 군인본분' 장병이 품을 군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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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참전용사이며 해병대 전우회 고문인 김무일 해병대 해강회 회장은 우리 사회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군인정신 확립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중근 장군의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야말로 우리 장병들이 가슴 깊이 품어야 할 상무정신이라고 강조했다. 

 

 김 고문은 “지난 봄 영국의 왕위 계승 서열 두 번째인 왕세손 윌리엄 2세가 결혼식에서 입었던 붉은색 결혼 군복은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선에서 큰 전공을 세우고 개선한 영국 육군 아이리시(Irish) 연대의 예복”이라면서 “30여 년 전 결혼한 찰스 황태자도 그 당시 민간인 신분이면서도 대영제국의 해군대령 복장으로 결혼했다”고 설명했다.

 

 또 “영국의 유서 깊은 웨스트민스턴 대사원 인근에 있는 세인트 폴 성당의 양지 바른 현관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두터운 전사자 명부가 매일 한 장씩 넘겨진다”면서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아침 행사로 전사자들에게 밝은 햇빛을 쐬어주는 국가의 배려다”라고 덧붙였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제국은 상무정신으로 온 국민을 하나로 묶고 국가 유사시 왕족·귀족들이 선봉에 나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바로 상무정신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영국의 명문 이튼 스쿨의 중앙홀에는 아직도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값진 희생을 치른 2000여 명의 이 학교 출신의 고귀한 명단이 아로새겨져 이들의 용기를 영원히 기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 고문은 최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제공항에서 목격한 한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한가한 시골공항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갑자기 마치 약속이나 한 듯 차려자세를 취하고 경례를 부쳤다. 뒤이어 아이들의 가족들도 일제히 열렬한 함성과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김 고문은 “모든 시선이 모인 곳에는 다름 아닌 전투복에 배낭과 개인화기로 무장한 미국 해병대 장병들이 있었다. 이들은 방금 군용기에서 내려 아프가니스탄으로 환승하는 것이었다”면서 “철 모르고 뛰놀던 아이들에게서도 군을 향한 존경심이 진정으로 묻어났다”고 말했다. <국방일보 김종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