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생활을 마치며 - 이정

by 운영자 posted Aug 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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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해병대사령부 병장 이정희(이정)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강한 군대 사랑하는 해병대여

 

2008년 10월 19일 입대를 하루 앞둔 나는 가족들과 지인 몇 명과 함께 포항으로 출발하며 “아~! 내가 정말 해병대를 가는구나. 이정_01.jpg이제..” 실감을 하게 되었다.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지! 이왕 갈 거면 해병대 가라! 잘 생각했어!”라고 하시며 입대전 무척이나 담담한 모습으로 말씀하시며 격려하시던 어머니, 그렇게 쿨한 모습으로 아들의 마음을 다독여주셨던 어머니께서는 막상 입소식이 끝나고 헤어지려하니 무표정한 어머니의 붉어진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교육훈련단 상승관 앞에서 400여 명의 동기들 틈에서 함께 부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눈물을 훔치고 계시는 어머니를 바라볼 수 없어, 어머니를 남겨두고 도저히 발이 떨어질 거 같지가 않아 최대한 빨리 등을 돌리며 동기들 손을 붙잡았다. 신병 제2교육대로 발을 돌리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 병장 계급장이 퍽 어울리는, 남은 군 생활보다 전역 후의 내 미래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즈음이다.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입대 전 가수로서 창작가로서 배우로서 방송인으로서 여러 방면으로 활동을 해오던 “이정”이라는 이름으로 10년 가까이 살아온 나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한 군 입대를 떠들썩하게 언론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정말 조용히 입대를 하고 싶었다. 심지어 같이 입대한 동기들 중에도 “우와.. 이정이랑 진짜 똑같이 생겼다..”라며 내가 바로 그들이 얘기하는 진짜 ‘이정’이라는 생각도 못한 동기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데뷔할 때부터 어머니와 누나를 책임지고 보살펴야 할 집안 사정으로 인해 군 입대가 많이 늦어졌지만 군입대를 더 이상 연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고 나는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수많은 연예계 선배들의 군 생활을 봐왔던 나는 ‘연예병사’라는 말 자체도 싫었고 내 개인적인 생각엔 그런 연예병사로서의 생활들은 무척이나 무료하고 무의미하게 다가왔다. 물론 내가 직접 생활을 안해 봤기에 단정 지을 수는 없었겠지만 그때 당시엔 그랬다. 그래서 나는 군대를 가면 다른 대원들과 함께 훈련도 받고 생활관 생활도 함께 하고 진정한 해병대로 거듭나고 싶었다. 내 특기를 발휘하지 못하는 시간이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던 건 사실이지만 군 생활을 통해서 분명 배울게 있다고 생각했고 삼군 중에 유일하게 연예병사 제도가 없는 해병대를 택하게 되었다.


민간인에서 군인으로 또 해병으로 만들어지는 신병 교육 훈련 기간 중에도 연예인이라는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많게는 10년 차이가 나는 동기들과 생활하면서 누구보다 모든 훈련과 과업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였고 결국엔 내 진심이 보여질 수 있었고 빨간 명찰을 처음 가슴에 맞이할 때에도, 수료 후 부대배치를 받고 도열을 할 때에도 그 누구보다 가슴 벅찬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부대 배치 후 나에게 주어진 해병대사령부 인사처 모병홍보병이란 직책으로 낯선 곳에 처음 와서 선·후임간의 예의도 배워야 했고 간부와 병 사이의 예의도 그리고 새로운 환경과의 모든 질서와 군인으로서의 마음가짐과 “가수 이정”이 아닌 “해병 이정희”로 생활을 해야 하는 방법을 배우고 찾아가며 차츰 해병으로서 담금질이 시작되었다.
입대 직후 개인적인 안 좋은 일들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유격, 사격, 수류탄 투척 훈련 등 훈련을 받으며 흘리는 땀으로 잊
이정_02.jpg

어버릴 수 있었다. 특히 해병공수 166차 교육의 기회를 어렵게 얻게 되어 하늘을 날아오르면서 낙하산 하나에만 의지한 채 그동안 쌓였던 모든 설움과 힘들었던 일들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또한 모병홍보병 직책으로 각 지방 병무청 및 각 대학 등을 다니면서 군 입대자에게 해병대를 홍보하고 모집하는 업무를 지원하면서 해병대로서의 자부심을 느꼈었고, 조직과 나에 대해서 돌아 볼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이렇듯 나는 해병대가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었을 이 많은 가르침에 다시 한 번 감사함을 느끼고 내 자신을 돌아보고 단단하게 단련되고 성숙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이 가슴 벅차는 감동을 어찌 느낄 수 있었을까?


이제 전역 후에도 군 복무를 하면서 수많은 일들을 겪고 그 속에서 나에게 왔던 모든 가르침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해병대 출신으로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역할을 다할 것이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며,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서북도서 및 전·후방에서 교육훈련과 경계근무에 최선을 다하는 해병대 장병 및 국군 장병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느끼며 작지만 강한 군대인 내가 사랑하는 해병대의 건승을 기원한다. <해병대지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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