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출신 첫 해사 생도대장

by 운영자 posted May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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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 년 해군사관학교 역사상 첫 해병대 출신 생도대장 이영주(사진) 준장. 지난해 12월 해사 개혁의 신호탄격으로 생도대장에 임명, 지난 1년여간 교육혁신을 이끌어 왔다.

지난해 12월 6일 해사 연병장에서 열린 63대 생도대장 취임식에서 이 생도대장은 “강인한 사관생도 육성을 목표로 지금보다 더욱 강하고 패기찬 생도들을 육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는 “4학년 생도인 62기부터 1학년 생도인 65기까지를 ‘메이드 인 이영주’라고 자부한다”며 “지난 1년간 뼈를 깎는 고통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을 해 왔고 이를 따라 준 훈육관들과 생도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그는 지금까지의 혁신작업을 “해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며 “생도들에게 해사혼·전투적 사고·창의성 등을 스스로 갖출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 그동안 추진해 온 생도 훈육제도의 혁신 방향은?

“해사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인이면서 대학생활을 해야 하고 졸업 후에는 장교가 돼야 하는 생도들입니다. 그것도 그냥 군인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해군을 이끌어 가야 할 인재들입니다. 이들에게 ‘해사혼’을 심어 주는 것을 중심으로 혁신을 추진해 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충무해군과 필승해군 정신은 물론 전투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에서부터 생도생활까지 모든 것을 뜯어고쳤습니다. 그러면서도 생도들의 창의성은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생도들의 생활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명예심·희생정신 등 불멸의 해사혼 계승을 위한 훈련강화, 군인정신 함양, 지휘통솔 능력 강화 등은 물론, 불필요한 제도와 비효율적인 관행을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고 생도생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주요 규정을 개정했습니다. 단체의식 함양과 위계질서 확립을 위해 인식표(일명 군번줄)를 상시 패용하게 했고 중대별 단체 체력단련을 실시하고 충무의식을 월 2회로 확대했습니다.

또 지휘통솔 능력 배양을 위해 중대 구성을 4개 소대에서 3개 소대 9개 분대로 개정했고 내한훈련(일명 옥포만 의식)도 겨울철 월 1회로 강화했습니다. 이 외에도 매주 금요일 군기훈련을 평일 야간 불시 비상소집훈련으로 대체해 긴급상황 대처 능력을 배양했습니다.”

- 변화한 훈련내용에 걸맞은 조직의 변화도 필요했을 것 같은데?

“군사실습·훈련을 효과적으로 계획·집행하기 위해 군사훈련처를 신설, 교수부로부터 실습업무를 인계받아 업무체계를 단일화했습니다. 또 학년별 군사실습·훈련을 선 강의 후 실습 체계로 바꿔 연계성을 유지하고 생활교육과를 리더십과로 변경해 지휘통솔 교육을 강화했습니다.

또 생도대 행정·군수분야 참모기능 보강을 위해 기존의 인사행정과와 군수과로 지원처를 신설했고 훈육요원 역량 강화를 위해 기존의 훈련관의 명칭을 훈육장교로 변경하고 훈육관의 현장 근접 훈육활동 보장과 장기 파견시 직무대리를 위해 훈육장교의 선발기준을 초급지휘관 보직 이수자로 보강했습니다. 평가제도도 개선, 훈육평가 비율을 17%에서 40%로 대폭 상향 조정했고 평가의 객관성 제고를 위해 평가기준을 항목별로 세분화했습니다.”

- 지난 1년여간의 생도대장 생활을 되돌아보신다면?

“변화와 혁신을 통해 한 단계 발전을 요구하는 시기에 해병대 장군으로 처음으로 생도대장직을 수행한 것에 대해 부담은 있었지만 그만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송영무 해군참모총장의 지휘지침을 구현하기 위해 생도들을 군인다운 군인으로 훈육한다는 소신을 갖고 훈육장교·사관생도들과 고통을 함께해 왔습니다. 이제는 생도들 모습 속에서 ‘변화’를 느낄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낍니다.”

 

2007.10.30 글=이석종·사진=박흥배기자 seokjong@dema.mi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