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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정신으로 독하게 달려온 그의 인생.그 인생을 알고 먹는 그의 요리는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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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리를 평가할 사람은 국내에는 없어. 내 책도 마찬가지고. 그 누가 감히 김원일을 평가하겠나.”
요리사 김원일(53)은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당당했다. 짐작은 하고 찾아간 인터뷰였지만, 그 자신만만함은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젊었을 때 한가락 했다는 그는 딱 ‘부산 사나이’ 라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전역하는 날 찍었다는 사진의 호리호리한 모습은 간데없지만 자신만만하고 호탕한 그 눈빛만은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세계 3대 요리학교인 아베노쯔지 조리사전문학교를 수료하고 프랑스 유학까지 다녀온 그이다. 장사꾼에게 상도가 있다면 손님에겐 객도가 있다며 싫으면 먹지 말라고 소리치는 그이지만, 테이블 세 개로 시작한 식당을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일식집으로 키워낸 것도 그이다. 휴가 나온 해병들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해병 356기로 입대했다는 그는 요리라는 한 길에 인생을 다 바친 부산 사나이였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 때 훈련 생각을 하면 아직도 아찔해. 요즘 훈련은 훈련도 아니지. 그래도 빨간명찰 달 때의 희열은 안해 본 사람은 말도 못하지.”
얼핏 봐도 다혈질일 것 같은 그는 아니나 다를까 타군에서의 위탁교육에서 사고를 치고 퇴교를 당한다. 갈 곳을 잃고 포항에서 군 건물을 짓는 일에 잠시 투입됐던 그는 영농반의 오리농장에 배치된다. 목장을 하는 집에서 태어나 군대에서까지 그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그이다.
그는 결국 호텔에서 잠시 일을 했던 것이 연이 되어 전역할 때까지 연대 본부에서 조리병으로 근무하게 된다.
그리고 전역 후, 부산 코모도 호텔에 취직하면서 요리는 점점 그의 인생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다. 몰려드는 일본인 손님들을 상대하기 위해 독학으로 일본어를 마스터했다. 이 때 인연이 닿은 한 일본 손님이 보내준 요리책은 김원일의 인생을 바꿔 놓는다.
“그 요리책을 보는 순간, 그 동안 요리랍시고 했던 것은 요리가 아니었던 거야. 돼지죽이었던 거야. ‘아! 요리도 공부를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지.”
유학을 가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을 왕복하는 화물선을 2년간 탔다. 배가 일본에 정박할 때면 요리학교 아베노쯔지를 찾아가 입학 절차를 밟았다.
“지금 생각하면 배짱도 참… 가방 하나에 옷이랑 일한사전, 한일사전 딱 두 개 놓고 2만 원 들고 간 거야. 그냥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해병대 정신으로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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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재일동포 사업가의 도움으로 나라 지방에 일할 곳과 숙소를 제공받았지만 오사카까지 통학하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부산에서 대구 정도되는 통학거리. 꼭두새벽부터 탄 기차 안에서도 그는 결코 쉴 수 없었다. 졸릴 때면 요리용 펜치로 허벅지를 꼬집어가며 공부에 몰두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학업과 일을 병행하며 힘들게 마친 유학생활.

최고의 학교에서 최고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자신만만해 있었다. 정통 프랑스요리와 일본 요리가 가능했고, 일본어
와 프랑스어도 능통한 그의 이력서.

하지만 서울 유수의 호텔에서 그는 번번이 퇴짜를 맞는다. 너무나 화려한 이력서가 문제였다.
서럽고 비참했던 그는 이틀 만에 다시 일본 땅으로 돌아갔다. 아베노쯔지의 이시나베 교수가 운영하는 식당에 취직한 그는 모든 궂은일을 도맡아 하며 교수와 직원들의 신임을 얻게 된다. 신문에 소개된 쥐사건도 이때의 일이다.
“고양이만한 쥐가 있는데 아무도 잡을 생각을 안 하는 거야. 밀대로 냉장고 밑을 쑤시니 쑥 나오더라고. 밀대로 치는데 안 죽길래 주먹으로 머리통을 박살 내버렸지. 그 때부터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지는 거야.”
그 자세를 눈여겨 본 이시나베 교수는 김원일에게 귀화를 권유했다. 제대로 키워보겠다는 것. 하지만 김원일이 이를 뿌리치자 프랑스 유학을 다녀오라며 추천서와 비행기 표, 학비와 용돈 20만 엔을 선뜻 내밀었다.
유학 이후 그는 서울 힐튼호텔에 취직하게 된다. 하지만 그 생활이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재벌가 큰 손님과의 다툼이 문제가 되어 2년 만에 부요리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사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잘 나가는 국내 기업에서 그를 스카웃한 것. 대치동의 아파트와 자동차가 주어질 정도로 좋은 조건이었지만 그가 맡기로 한 600석 규모의 식당이 완공되기 직전 회사는 부도가 난다.

“조그만 아파트에 틀어박혀서 내내 책만 쓰면서 시간을 보냈어. 결국 출판사와 계약이 돼서 원고를 넘겼는데, 그 회사가 또 부도가 나버리더라고. 시련이 겹치니까 참 끝도 없는 거야.”
하지만 그 기구한 삶과 열정에 감동한 형설출판사의 회장이 선뜻 그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면서 그의 책은 그렇게 한 권, 두 권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rokmc37_027.jpg하루는 책에 들어갈 돈가스 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큰 아들 동현이를따라 놀러온 친구들에게 일류 요리사의 돈가스는 너무나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 끌려온 동네 아줌마들까지 사로잡아버린 그 맛. 그 아줌마들의 성화에 소스를 팔기 시작한다. 아름아름 소문이 나 작은 생수통으로 몇 백개를 팔았다.
“그걸 보고 마누라가 장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나봐. 친척들한테 돈을 빌려와서는 나한테 말도 없이 7평짜리 구멍가게를 하나 얻은 거야.”
’95년 7월 1일. 그렇게 테이블 세 개짜리 가게에서 일본식 요릿집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 달 동안 손님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온 동네 시정잡배 같은 손님에게서 입소문은 시작됐다고 한다.
“반바지 차림에 껄렁껄렁하게 “뭐 좀 할 줄 알아요?” 라면서 고등어회
1인분을 시키더라고. 임마가 몇 점 먹더니 자세가 달라져. 나갈 땐 정중히 실례했다며 나가더니 다음 날 양복을 차려입고 오더라고. 백발이 성한 노신사 한 분과….”
그 노신사는 한국영화협회 회장이었고 그 때부터 입소문은 시작됐다. 테이블 3개는 늘 만원이었고 가게 밖은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길게 늘어졌다. 테이블 3개로 하루에 400만 원씩 매출을 올렸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4개월 만에 빌린 돈을 다 갚고 24평 가게로 이사를 갔다. 가게가 커지자 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분당의 땅을 사고 지금의 건물을 지은 게 12년 전이다. 그 동안 얼마쯤 번 것 같은지 묻자 그는 100억을 불렀다. 하지만 그 돈을 다 책을 쓰는데 쏟아 부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요리사에게 중요한 눈이 망가질까봐 컴퓨터를 배우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쓴 70권 가량의 원고는 모두 노트에 손 글씨로 적혀 있다. 게다가 대부분이 한문이고 그림도 하나하나 손으로 그려 놨다. 가뜩이나 팔리기 힘든 고급요리책인데 그런 원고를 컴퓨터로 옮겨가며 책으로 내줄 출판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때려치워라. 그러면서 출판사를 만들어 버린 거야. 도서출판 원일. 더러워서 내가 만든다 이거야. 서점에서 책 팔자고 해도 됐다고 해버렸어.”
입소문을 타고 책을 사려는 사람들의 전화가 식당에 끊이지 않는다.
장부를 들춰보니 미국에서까지 주문이 들어올 정도이다. 한 권에 13만 원을 호가하는 그의 요리책. 하지만 확실히 그의 책은 질이 달랐다.
“된장찌개도 비법을 공개 안 하는 세상인데, 일본과 프랑스에서 배우고 34년간 연마한 고급기술을 다 공개하는 거라고. 시계나 가방에도 명품이 있는 것처럼 책에도 명품이 있는 거지. 내 책 사려면 가게로 와서 제 값을 치루고 사가라. 배짱인 거지. 자신이 있으니까.”
내년 2월이면 그의 자서전 ‘김원일의 외곬인생’을 포함한 나머지 6권의 책이 모두 발간될 예정이다. 촬영에 사용된 그릇이 1,100종류, 촬영 사진이 50만 컷. 재료비만 2억 원. 그릇 값이 2억 5천만 원, 사진촬영, 출장비가 3억 8천만 원, 인쇄비용 등을 합하면 10억 원이 훌쩍넘어간다. 이 정도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하다. 하지만 요리책은 표지의 때깔부터 남다르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그 방대함과 세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제자를 키우고자 한 그의 열정도 한 때는 ‘미쳤다’ 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 장인의 밑에서 혹독히 수련하며 일을 배우는 도제식 요리학원을 연 것은 ’94년 말이었다. 연간 학원비가 2,500만 원이 넘는 학원을 열어 4기까지 약 80명의 수강생을 받았지만, 이를 끝까지 마친 수강생은 단 10명이었다. 그 혹독한 방식에 제 발로 나간 학생들도 있었고, 퇴학당한 이들이 집단소송을 걸기도 했다.

“장인정신, 예술가 정신이 제대로 담긴 사람을 키워보려 했어. 칼을 다루는 기술만이 아니라 전인적인 예술가를 키워보려고 했지.”
스스로가 혹독하게 일을 배웠고, 요리를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에 인생을 건 그이다. 하지만 칼을 잡기를 원했던 학생들은 붓글씨, 어탁, 꽃꽂이까지 하려 했던 그의 교육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편, 수강생들의 입장에선 강사진이 부실하고 커리큘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반발도 있었다. 뜻과 의욕은 좋았으나 식당과 학원을 동시에 경영하다 보니 생긴 문제에 대해서는 그 역시 아쉬워하고 있었다.
당시 학원으로 쓰이던 2층은 주인 없는 조리기구들로 가득해 휑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다시 최고의 요리학교를 세우겠다는 꿈rokmc37_025.jpg을 버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토록 요리에 미치게 하는가.
“혼이지. 요리라는 것은 사람의 혼이야. 음식은 곧 우리의 생명이기 때문에 혼을 다 불어넣어야 되거든. 그것이 안 들어가면 요리가 될 수가 없지. 요리는 소금, 물, 불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거야. 나머지는 손과 기술로 혼을 불어넣으며 도와주는 것뿐이지.”
그런 그는 요즘 서점가의 가벼운 요리책이나 우후죽순처럼 문을 여 닫는 식당에 대해 근심을 보낸다.
“어릴 때 누가 회초리를 들면 무서워서 오줌을 찔끔하는 경험이 있을거야. 생선도 마찬가지야. 생선을 바닥에 확 패대기치면 근육이 수축되면서 본능적으로 정자를 배출한다고. 그럼 맛이 없어. 다들 막 잡은 싱싱한 생선만 쫄깃쫄깃 하다고 좋아하는데… 시간이 좀 지나면사후 경직됐던 근육이 이완되면서 더 부드러워지고 맛도 더욱 풍부해지는 거야. 그 때가 가장 맛이 있는 거지.”
그의 가게에서는 생선을 잡자마자 회를 치지 않는다. 생선의 살이 가장 맛있을 때까지 숙성을 시켜 내놓는 그의 음식. 이는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하게 변형된 일식(日食)이 아닌 일본정통요리를 뜻하는 화식(和食)이라고 한다. 그 길에 자신의 모든 걸 건 사나이. 그 인생사의 전환점은 다름 아닌 해병대라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그의 큰 아들은 이미 해병대에서 복무 중이며, 작은 아들도 입대를 대기 중이다.
“주먹도 쓰고 껄렁하게 살던 내 인생이 해병대 덕분에 바뀌었어. 내자식들도 가서 도전정신이 뭔지, 해병대 정신이 뭔지 배워서 화끈하게 살라는 뜻이지.”
해병대 출신이라면 언제든지 제자로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김원일 요리사. 단, 제대로 된 정신을 갖고 올 것이라는 단서를 잊지 않았다.
생선과 밥을 조물조물 거리더니 투박한 접시 위에 초밥을 탁탁 올려놓는다. 일본 왕실에서 쓴다는 특제 간장에 살짝 찍어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쫄깃하면서도 너무나 부드러운 육질. 그 사이로 탱글탱글한 밥알이 씹히더니, 고추냉이의 알싸한 맛과 함께 어느새 생선과 하나로 어우러진다. 몇 번 씹고 넘기기 아까운 그 풍부한 맛에 씹고 또 씹는다. 이 맛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맛있다는 말보다 이 맛을 더 잘 표현할 말은 없을 것 같다.
며칠 후 인터뷰 원고를 정리하다보니 일전에 먹었던 그 초밥 맛이 떠오른다. 내가 씹고 있었던 것은 그냥 생선과 고추냉이와 밥 알갱이가 어우러진 초밥 덩어리가 아니었다. 요리에 미친 한 남자가 초밥에 담아낸 34년 외곬인생의 혼을 씹고 있었던 것이다. <해병대지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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