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대대 천리행군 윤설영기자 동행기 - 입춘(立春)에도 아침 바람은 차다. 강원도 산골짜기에는 해가 늦게 올라온다. 영하 8도. 안개와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다. 귀와 턱이 시려서 인터뷰는커녕 말도 꺼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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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평창~ 경북 포항 430㎞ 오직 걸어서 이동

4일 설 연휴를 앞두고 기자가 행군을 함께한 해병대 수색대대는 겨울 혹한기 훈련이 한창이었다. 이날은 강원도 평창에서 경북 포항까지 백두대간을 따라 걷는 천리행군의 사흘째. 하루에 40㎞씩 13일간 총 430㎞를 걸어서 이동한다.

추위는 아침 행군에서 싸워야 할 또 하나의 적이다. 병사들의 걸음도 어제보다 빨라진다. 한참을 걷다 보면 앞의 병hbcom_su_555.jpg사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도 절대 뛰어선 안 된다. 내가 살짝 뛰면 저 뒤에선 100m 달리기를 해야 한다. 앞의 병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을 걷는다.

출발 전에 한 병사가 가슴팍에서 “이제 막 뜯은 거라 따뜻합니다.”라며 꺼내주었던 ‘핫팩’을 거절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한다. 따뜻한 마음은 고마웠지만 동생뻘 되는 병사에겐 심장과도 같은 손난로를 빼앗을 순 없었다. 출발한 지 1시간. 슬슬 무릎 뒤 정강이 근육이 당겨 온다. 행군은 ‘물집, 관절피로와의 싸움’이다. 행군 사나흘째에 접어들면 발 여기저기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한다. 지난해에는 열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한 병사가 결국 행군을 포기하기도 했다.

말할 힘도 없지만 ‘나´와 만나는 시간

군장무게 탓에 허리를 숙이고 걷고 있던 허의량(22)상병의 얼굴에선 장난기가 묻어난다.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2대째 해병대 수색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해병대 수색대대 동기들이 집으로 자주 놀러오는 것을 보고 군대는 당연히 수색대대밖에 없는 줄 알았다고 한다.

“지난번 휴가 때 아버지가 수색대대 동우회에 끼워주셨을 때는 정말 뿌듯했어요. 아버지도 자랑스러워하셨죠. 혼자 소 키우시느라 고생이실 텐데…설인데 전화도 못 드리네요. 아버지, 휴가나갈 때까지 몸 건강히 계세요.”

행군의 기본은 50분 행군,10분 휴식이다. 어깨에 40㎏이나 되는 군장을 메고 시속 7㎞의 속도로 걷는다. 군장을 메어보니 뒤로 자빠질 듯하다. 그래서 병사들은 “덩치 큰 조카 한명을 업고 다닌다.”고 표현한다. 아무리 조카라지만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짜증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단다.

행군 도중에는 대화가 없다.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다. 대신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손보배(22)병장은 걷다 보면 10년간 하다가 그만둔 ‘야구’에 대한 생각이 계속 떠오른다. 투수였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때 어깨 부상을 입고서도 더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싶은 욕망에 치료보다는 연습에 매진했다. 덕분에 학교는 그해 전국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지만 그는 야구를 빼앗겼다.

“작년 행군 때보다 몸이 덜 힘든 걸 보면 이곳에서 저도 많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요즘엔 제대 후에 야구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식사는 전투식량으로… 잠은 산골짜기서

점심은 전투식량. 끓는 물을 붓고 5분 정도 기다리니 제법 먹을 만한 잡채밥이 되어 나온다. 병사들은 질릴 대로 질렸는지 군장 속에서 케찹, 고추장을 꺼내 슥슥 비벼 먹는다. 국 대신 라면 하나를 끓여 5명이 나눠 먹는다. 그래도 이 시간이 천국이다.

다시 걷는다. 눈밭이다.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뽀도독 소리가 나기가 무섭게 발등으로 설탕 같은 눈이 쏟아진다. 신발이 젖지 않으려면 다음 발을 재빨리 옮겨야 한다. 눈에 눈이 부시다. 이미 눈밭에서 3주간 굴렀던 병사들은 눈빛에 탄 얼굴이 거무튀튀하다.

자꾸만 시계를 들여다보게 된다. 어디로 가는지보다 언제 쉬는지가 알고 싶다. 저 멀리 선발대가 걷고 있는 걸 보니 아직 휴식시간은 먼 것 같다. 추워진 날씨 탓인지 땀조차 나지 않는다. 왼쪽 발이 나가면 자연히 오른쪽 발이 따라와 의지와 상관없이 걷고 있다. 걷고 있어도 내가 걷고 있는 게 아니다. 뒤꿈치 까진 곳이 따끔거린다.

행군을 모두 마치고 군장을 푼 시각은 오후 4시. 병사들은 서둘러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7시반부터 이른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산골짜기의 해는 짧기도 하다.30분도 안 되어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도 들려온다. 다들 꿈속에서 집에 계신 부모님께 설인사를 드리고 있는 듯하다.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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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서울신문 윤설영기자의 고슴도치의 따가운시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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