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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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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은 연평도 지역에 대한 무차별 해안포 사격으로 해병대에 대한 도발을 감행했다. 수백발의 포탄이 연평도에 떨어졌고 연평도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연평도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 중이던 해병대 고(故) 서정우 하사와 고(故) 문광욱 일병은 북한의 무차별 포격에 전사했고 해병 1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민간인 피해도 커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당했다. 북한의 이번 포격으로 인한 피해복구에만 400억 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서해 5도는 북한과 인접해 있어 군사적 긴장감이 그 어느 지역보다도 높은 화약고. 때문에 강화도 및 서해 5도 지역의 방위는 해병대가 책임지고 있다. 북한의 이번 도발에 대해 해병대 전우회를 중심으로 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도발을 통해 해병대의 작전능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명백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 해병대는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며 또 어떤 목표를 갖고 발전해 나가야 할까? 공정식 제6대 해병대 사령관께 조언을 구했다.

공정식 사령관은 6·25전쟁 기간 중 도솔산 전투 등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며 해병대의 살아있는 역사이자 신화다. 사실 공정식 사령관은 우리나라 보다는 미국에서 더 유명한 인물이다. 1965년 미국을 방문한 그를 존슨 대통령이 비공식 접견했을 정도다. 이처럼 한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공정식 사령관을 직접 만났다.


6·25 전쟁영웅, 살아있는 전설

마린보이 : 6·25전쟁 당시 공정식 사령관님의 무용담을 말씀해 주십시오. 특히 미 해병대와 형제와 같은 관계를 맺는데 공사령관님께서 남다른 역할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공사령관 : 6·25전쟁 발발 후 한국 해병대는 1950년 8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 동안 치른 진동리전투에서 미 해병대와 첫 만남을 가졌습니다. 특히 미 해병 제1임시여단장 크레이그(Edward A. Craig) 준장 예하 5연대 3대대장 태플리트(R. Talpett) 중령을 알게 된 것은 하늘이 우리 해병대에게 내린 운명의 천연(天緣)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한국 해병대는 많은 것을 배우게 됐습니다. 우리도 훈련을 더 열심히 해서 저런 군대가 되어야겠다는 것을 직접 보고 느낀 것입니다.



마린보이 : 6·25전쟁 당시 대대장, 부전투단장 시절 공사령관님께서는 근접항공지원(CAS)을 수시로 활용해 많은 전과를 올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공사령관 : 도솔산 작전 당시 한국 해병대의 목표는 무려 24개 고지였습니다. 우리 해병1연대 3개 대대가 세 배면으로 나누어 시작한 공격은 대대단위의 작전이어서 초기에는 성과가 지지부진했습니다. 당시 나는 야간을 이용한 연대 규모의 기습공격밖에는 길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대식 연대장과 여러 참모가 동의해 줘 연대 규모의 야간 전투작전이 결정됐습니다. 작전준비에 분주할 때 토머스(Gerald C. Thomas) 해병1사단장이 우리 부대를 찾아왔습니다. 일선 대대장으로부터 야간 공격작전 구상을 직접 듣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해병대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함포와 항공지원, 야포지원을 요구한 것입니다. 토머스 장군은 그 자리에서 작전참모에게 미군의 적극적인 화력지원을 지시했고 그 약속은 계속 지켜졌습니다. 실제로 도솔산 작전 당시 한국 해병대는 미 해군의 미주리함 함포지원은 물론 해병11포병연대의 전 화력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마린보이 : 단순한 근접항공지원이 아니라 아예 미 해군과 해병의 함포, 야포, 공중폭격 등 동원 가능한 모든 화력을 지원 받으셨군요.

공사령관 : 당시 내 곁에는 앵글리코(ANGLICO : Air Naval Gunfire Liaison Company) 즉 미 항공 함포연락중대 소속 장교들과 야포·공병·통신·수송·의무 담당 고문관 등 30여 명의 미 군사고문단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지휘관인 내 옆을 따라다니다가 내가 요청하면 그들끼리 항공, 함포, 육상 포격 등 어떠한 수단이 가장 효과적일지를 협의해 가장 확실한 공격 수단을 택해 지원했습니다. 도솔산 작전 당시에도 작전 예정시간이 되자 먼저 16인치 함포 소리가 울렸습니다. 먼 하늘 저 너머에서 둔중한 포성이 들리는 가 싶더니 적진에 시뻘건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뒤를 이어 야포와 어느새 동쪽 하늘에서 나타난 F4U 콜세어 전투기 편대가 적진에 폭격을 퍼부었습니다. 함포와 야포, 거기에 공중포격까지 더해지자 초여름 밤 깊은 산속은 마치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흔들리고 골짜기가 들썩들썩했습니다.

마린보이 : 베트남 전쟁과 걸프전, 이라크 전쟁 등에서 보여준 미군의 집중포화는 정말 그 위력이 엄청나지요. 적들이 혼쭐났을 것 같습니다.

공사령관 :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도 우리 해병이 싸우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짜 형편없는 군대밖에 되지 못한다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그리고 도솔산 일대의 24개 고지 가운데 2개를 제외한 22개 봉우리를 우리 해병 1연대 1·2·3대대 장병들의 손으로 빼앗았습니다. 남은 2개는 미 해병대가 점령했습니다. 대대장으로서, 전투단장으로서, 그리고 베트남전쟁 파병에 관여한 해병대사령관으로서 나를 든든하게 해주었던 것은 형제 해병(Brother Marine)으로서 미 해병대의 신뢰와 전폭적인 지원이었습니다. 확실하고 충분한 지원 하에 진행된 미 해병대와의 여러 합동작전은 우리 한국 해병대를 용감한 해병으로 만든 훌륭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 해병대에서 한국 해병대의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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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보이 : 공사령관님께서 보시기에 우리가 미 해병대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요?

공사령관 : 미 해병대는 미군이 맡아서 해야 할 가장 어려운 전투임무인 상륙작전과 내륙도시의 시가전 등을 수행합니다. 그 외에 대사관 요원의 안전을 위한 경호경비활동과 ‘신속대응군’이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속도(速度), 영향력(影響力), 만능성(萬能性)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미 해병대의 이러한 부분, 특히 그 중에서도 해병대의 전반적인 작전능력을 배가할 수 있는 항공전력의 확보가 시급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 해병대에 비해 우리는 항공전력이 전무합니다. 과거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쟁 당시보다도 못한 상황인 것입니다. 최소한 기동헬기라도 해병대가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공지기동해병대 건설을 통해 이번과 같은 북한의 도발에 신속히 대응함은 물론 해병대의 전쟁억지력과 활동영역을 더욱 배가할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나는 미 해병대와 함께 전투를 하면서 그들의 전투능력, 병영생활, 해병정신 등 모든 것을 우리 군, 특히 한국 해병대에 고스란히 옮겨 심고 싶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나라가 부강해야 하고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폐허의 나라가 굳건히 서야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그 운명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가난을 마치 운명처럼 생각하던 우리에게 미국 특히 미 해병대는 훌륭한 자극제였습니다.

마린보이 : 미 해병대는 태평양 전쟁 이후 강력한 항공전력을 갖추고 혁혁한 전공을 세웠습니다. 한국 해병대의 독자적 항공전력 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공사령관 : 우리 해병대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을 치르면서 ‘무적해병’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강한 정신력과 함께 미 해병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6·25전쟁은 물론 베트남전쟁을 수행하면서 미 해병대가 똑같은 첨단 장비 등을 지원하는 등 군원을 아끼지 않고 스폰서 역할을 다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가 당시 육군보다 해병대가 최신 항공기를 보유한 것입니다. 만약 연평도에 해병 항공대가 주둔하고 있었다면 북한은 결코 도발을 시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해병대 해체로 인해 해병대 편제 하에 있던 항공대 즉 비행장은 물론 항공기, 조종사, 정비사 등은 모두 해군 항공대로 인계됐습다. 그로 인해 김포반도 및 서해 5개 도서를 포함하는 광(廣)정면의 방어작전을 수행하는 해병대가 항공전력이 전무한 ‘앉은뱅이 해병대’로 전락되어 있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도 크나 큰 손실입니다. 그래서 해병대의 오랜 숙원인 공지기동해병대의 건설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시작된 해병대 조종사 양성에서 더욱 진일보하여 명실 공히 해병대 항공전력이 창설될 수 있도록 강력히 주장해야 합니다. 특히 북한의 명백한 도발로 해병대와 국민이 큰 피해를 입은 지금 바로 이때야 말로 해병대 항공전력 확보를 위한 최적기입니다.

마린보이 : 공사령관님 말씀이 맞습니다. 미 해병대의 경우 회전익기와 고정익기의 특성을 동시에 갖춘 MV-22 오스프리를 수 십대 보유, 전천후 강습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F/A-18과 같은 전투기는 물론 AV-8B V/SROL 공격기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가까운 미래에는 F-35B 스텔스 전투기도 보유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 해병대가 세계 어디에서도, 독자적인 작전을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전투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입니다. 지금 당장은 힘들지만 궁극적으로 우리 해병대 역시 독자적인 항공전력 그것도 고정익 전투기를 보유해야 합니다.


북한의 도발, 용납해서는 안돼

마린보이 : 공사령관님께서는 이번과 같은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공사령관 : 무엇보다도 확고한 한미동맹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병대는 굳건한 한미동맹의 바로미터 혹은 가교와 같은 존재입니다. 일예로 1992년 창설된 기존의 CMFC는 연합사의 전략 예비부대 성격으로 전시지원사령부였지만 새로 만들어진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는 전투작전사령부입니다. 이는 지금까지 한·미 해병대가 전시 지원기능의 보조적 역할에서 향후 전시에 주도적으로 전투 수행 역할을 확대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2008년 CMCC의 창설은 한반도 유사시 대북 후방기습능력을 대폭 향상시킨 상륙군사령부의 출범입니다. 또한 전작권이 이양되면서 한미연합사(CFC)가 해체되더라도 상륙 돌격부대의 전투력은 더욱 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해병대 스스로 대응능력을 배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상륙기동헬기 확보를 통한 공지기동해병대 건설이 될 것입니다. 진정한 국가전략 기동군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장비와 작전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마린보이 : 말씀을 듣다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공사령관님께서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공사령관 : 미 해병대에 대해 많이 언급했는데 그것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해병정신을 배웠고 상륙작전 전술교리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해병대 존재가치는 ‘충성’에 있음을 배웠습니다. 이 충성은 하나님, 조국, 해병대 그리고 전우 해병을 위한 자기희생을 말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가 아닌 이타주의를 말합니다. 앞으로 한·미 해병대는 공동운명체적인 존재를 상징하는 한·미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의 기치 아래,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나가 세계 평화를 위해 헌신하기를 염원합니다. 끝으로 연평도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고귀한 생명을 바친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사무친 한(恨)과 넋(靈)이 가슴을 저밉니다. 나는 3남 2녀가 모두 장성하여 출가해 12명의 손자와 손녀를 두었습니다. 이중 아들 3형제와 손자 2명이 해병대에서 복무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이 남의일 같지 않습니다. 유가족에게 사의를 표하며 전사한 해병의 명복을 빕니다.

                                                                                         '날아라 마린보이' 계동혁 기자

 

출처 : 해병대 공식 블로그 '날아라 마린보이( http://rokmarineboy.tistory.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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