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의 두 장군
나는 1997년 가을 해병대 사령부와 해병 제1사단 및 제2사단의 위관장교들을 대상으로 "공격 시 소총중대"라는 제목으로 90분 간씩 순회교육으로 강의한 일이 있다. 이 강의는 나의 제언으로 당시의 해병대 사령관(전도봉 장군)의 요청으로 순회교육 일정에 의거 실시되었다.
이 강의는 1958년 2월 미 제1군단(집단) 사령부에서 해병대 사령부로 "공격 시 소총중대"라는 제목으로 강의 요청이 와서 내가 같은 해 3월에 미 제1군단 사령부(Camp Red Cloud) 강당에서 50분 간 미군 위관장교와 하사관들 300여 명에게 강의한 내용이다.
최초 해병대 사령부에서는 통역장교 출신인 T소령으로 미군측에 명단을 제출했으나 보병장교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하여 그 불똥이 나에게 떨어저서 F.T.X.기간 중이어서 할 수 없다고 거절했으나 사단명령으로 이미 발령이 나있었다.
나는 별 수 없이 연대장(김용국 대령)의 무관심과 비아냥 속에서, "그 강의는 연대와 관계가 없는 네 개인의 일이니 F.T.X. 기간 중에는 훈련에만 전념하고 밤에 자는 시간에만 준비하건 말건 네 마음대로 하라"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부랴 부랴 F.T.X. 기간의 바쁜 틈을 타서, 물론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10일 간 준비하고 대타격으로 해병대를 대표하여 강의한 일이 있었는데 그 때의 강의 내용이다.
이 내용을 나는 언젠가는 우리의 후배 해병들에게, 특히 위관장교들에게 우리의 세대가 가기 전에 꼭 한번 강의할 것을 생각하고 강의개요를 500여 부를 준비하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전도봉 사령관이 나에게 1997년 가을에 기회를 허락해 주어서 이루어진 강의였다.
그런데 순회 교육 중 나는 아주 놀라운 사실을 목격하고 시대가 바뀌었구나 하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었는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 해병가족들에게 설명하므로서 우리 자신을 한번 되돌아 보고저하는 것이 이 내용의 목적이다.
그것은 해병대 사령부 참모장을 위시하여 사령부 근무 전장교, 부사관들이 해병대 사령부 강당에 꽉 찬 앞에서 강의를 마치고 해병 제1 및 2사단에 순회 강의차 먼저 포항에 갔을 때의 일이다. 해병대 사령부에서는 고맙게도 나의 강의 내용을 전부 녹화하여 내가 사령부를 떠날 때 나에게 건네주었다.
해병 제1 사단
경북 포항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해병 제1 사단 본부에 내가 도착했을 때(사단에서 제공한 KAL기편 항공권) 현관 앞에 사단장을 위시하여 참모들이 나를 영접해 주고 기념사진 촬영까지 했다. 나는 이들을 보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반가웠고 또한 해병대 선배장교로서의 어떤 자부심을 다시 갖게 되여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이번 나의 방문은 해병대 사령부가 박정희 정권의 어이없는, 허구한 구실로 해체된(1973년 10월 10일) 후 해병부대를 30년 만의 방문이었다.
사단에서는 나의 강의를 위해 '도솔관'에도 350명 정도의 위관장교들을 뫃이게 해 주었다. 이때의 사단장은 해군사관학교 출신 장군이었다.
해병 제2사단으로
그 다음에 나는 김포지역에 배치되어 있는 해병 제2사단으로 같은 목적으로 갔다. 특별히 이 지역(김포반도 북단 지역일대)은 1962년 겨을 내가 해병 제1연대 제2대대장으로서 심혈을 기울여 근무한 지역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꽤 감개무량했고 그 때부터 35년만의 방문이다.
이 두 장군을 보면서 내가 발견한 것은 이 두 장군의 장교로서의 성품과 기본 자세이다. 해사 출신 장군의 자세는 원칙에 입각한 행동이었고 해병학교 출신 장군의 자세는 적당히 요령껏 취한 행동이었다.
해군 사관학교에서는 원칙을 배웠고 해병학교에서는 요령을 배웠음을 단적으로 이 두 장군의 행동은 보여 주고있었다. 해병학교 출신 장군의 행동은 해병 정신과 해병대 전통에도 어긋난 행동이었다. 추측컨데 이 장군은 사령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됐다면 해병대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해병대에서 필요로 하는 장군은 이런 요령껏 업무를 처리하는 장교가 아니라 만사에 원칙을 중시하고 또한 그것을 준수하기 위하여 솔선수범하는 순수한 해병 정신의 소유자인, 그런 충실하고 건전한 장군이다. 거기에 더하여 교육 장소로 회의실에 전방부대라는 이유로 약 80명 정도의 인원을 집합시켰는데 강의를 마치고 나오면서 이들과 악수하면서 보니 대부분의 인원들이 부사관들이었다.
나는 소대장, 중대장을 대상으로 강의한 것이 아니라 분대장들에게 "공격시 소총중대"를 강의한 것이다. 나는 이걸 보고 아주 어처구니 없었다. 어쩌면 이럴 수 있을까? 해서 이다.
위의 두 장군은 내가 대령 때(1966년) 아마 민간학교를 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 두 장군을 비교해 보면서 해병학교 출신과 해군 사관학교 출신과의 큰 차이점을 보고 역시 해병대는 미국 해병대와 달리, 미국 해병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O.C.C.(장교 후보생 과정) 출신 장교들이 해군 사관학교 출신을 제치고 해병대 사령관이 되는 전통에 비해 한국 해병대 사령관은 반대로 해군 사관학교 출신 장교가 해병대 사령관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미 해병학교(Basic School US Marine Corps Schools Quantico, Va. 1954년)에 유학 중 관찰한 해사 출신 장교들의 미국(미 해병학교)에서의 무례했던 행태와 국내에서의 편가르기식 태도와 언행 등으로 인하여 내가 가지고 있던 해군 사관학교 출신 장교에 대한 나의 편견,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이 때부터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해군 사관학교 출신 장교에 대한 편견, 미 해병학교에서부터 시작된, 같은 것을 버렸다. 물론 사람나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선인들의 말을 나는 믿고 싶다.
해병 대령(예) 이근식
- 이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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