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메뉴보기 검색열기

▶ 본부중대 인사병 병장 백종협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6시30분 총기상과 동시에 조별과업 정렬을 떠났다. 간단한 인원 파악 및 국군도수체조, 조별과업을 부여받고 해산을 한 뒤 근무표를 확인했는데, 근무표를 보니 13시~16시까지 주간 3직 근무였다. 오늘 14시에 대 해상사격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훈련에 참가 하지 못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꺼림칙함이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난 근무 준비를 하고 중대원들은 방탄복을 준비하고 무장을 몸에 맞게 최적을 하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13시 근무 진입 후, 후임병인 김태우 해병과 평소와 같이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 때, 14시 35분 헬기장에서 '씨~웅 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무슨 소리지" 하고 그 방향을 쳐다보았다. "포 7중대의 K-9 자주포 사격이 왜 이렇게 크고, 큰 진동으로 느껴질까"라고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마을에서 포탄 소리가 2회 들렸다. 흰 연기가 무섭게 피워 오르고 있었다.

나는 선임근무자로서 후임 근무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김태우 상병과 함께 배수로 달려가 몸을 피했다. 배수로 들어가 있는데, 폭음과 충격파에 대비해 중대에서 교육받은 복지부동 자세를 취했다.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위병소 배수로 바로 옆 탄약반에서 '꽝'하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배수로에는 진동이 울리면서 위병소 창문이 깨지고, 내가 엎드리고 있는 머리 위로 총알 같은 파편이 흩어졌다.

나는 가슴이 뛰고 순간적으로. "아! 전쟁이 났구나!, 도대체 어디서 날라 온 포탄인가!, 포탄은 언제까지 떨어지는가! 어떻게 하면 살아남을 수 있는가!, 나는 절대 저 포탄에 맞지 않는다!"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배수로 바닥에는 전투복과, 얼굴이 젖어들 만큼 물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폭음 소리가 멈춘 뒤 나는 위병소 전화기로 중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전화기는 먹통이었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보기 위해 거점으로 가는 도중 중대 들릴 생각을 했다. 그리고 김태우 상병에게 긴장 하지 말고, 침착하자며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재차 말하고 중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신없이 뛰어갔다.

사실 김태우 상병보다 내가 더 겁에 질려 나 자신의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고 이렇게 격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중대로 가니 이미 중대는 소산을 마치고 텅 비어 있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대의 잔류인원을 다시 확인하고 혹시나 있을 화재에 대비하여 김태우 상병과 함께 중대의 차단기를 모두 내렸다.

그 순간, 나는 중대로 뛰어오는 중 탄약반 주위에 불길이 번지기 시작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김태우 상병과 나는 포탄이 떨어질까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불길을 그냥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죽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소화기를 들고 불이 번지기 시작한 탄약반으로 달려갔다. 탄약반 앞에서 소화기를 뽑고 진화를 시작했다. 초기 진압을 하는 도중 옆에서 소화기를 들고 목사님이 달려오셨다. 두려움을 안고 있던 나는 목사님이 오시자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생겼다. 화재를 진화한 후, 거점으로 뛰는 도중 나는 내 뺨을 때리면서 마음속으로 "정신 차려야 한다"며 계속 되새겼다.

거점으로 들어가니 마침 중대장님과 행정관님이 위병소 근무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이상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렇게 나를 신경 써주고 관심을 가져주신 분들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15시 20분경 북한의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거점 입구와 가까이 있던 중대는 거점 안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거점 안에서 지진과 같은 진동이 울렸다. 나는 거점이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되었고, 후임들의 눈빛에는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나 또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중대의 선임병으로서 겁에 질린 표정을 보이게 된다면 후임들에게 좋지 않다고 판단해 오히려 후임들에게"걱정하지 말라며, 이 상황에서 살아남게 되면 우리는 영웅이 될 꺼라고, 북한군과 한번 싸워 멋지게 영웅이 되자"고 후임들을 격려 했다.

그 뒤 몇 시간동안 더 이상의 포격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의 포격이 멎자, 부대본부 주위가불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중대장님은 선임병 몇 명을 뽑아, 밑으로 내려가서 모든 소화기, 등짐펌프, 물수건, 방화벨트 구성하기 위한 삽과 대비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방화벨트를 구성할 곳은 지금 연평부대에서 제일 중요한 지휘통제실 주위, 거점, 거점 발전기였고, 불을 끄지 않는다면, 모든 곳에 불이 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나와 몇몇 인원들은 중대장님의 지시를 받아 지통실 주위에 삽과 대비, 등짐펌프로 지통실과 거점 발전기로 더 이상 불이 넘어 오지 못하게 방화벨트를 만들었다.

주요 시설물 주위 3m를 삽과 대비로 나뭇가지, 잎들을 제거 하고 그 주위에 등짐펌프로 물을 뿌려서 완벽한 방화벨트를 만들었고, 불이 번져 오는 곳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불을 껐다. 큰 불을 거의 끈 뒤에도 혹시나 불씨가 다시 살아나 불이 다시 번질까봐 2시간 동안이나 지켜보며, 다시 살아나는 불씨들을 제거했다.

화재를 진화하고 거점으로 들어가니 22시가 지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중대 총원은 밖에서 고생하는 대원들을 생각하며 행정관님을 비롯하여 총원이 식사를 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정말 위급할 때야 말로 전우애가 최고조에 오른다는 것이 사뭇 느껴졌다.

다음날 새벽 위병소 근무에 임하게 되었다. 근무 중, '피~웅'이란 소리만 들어도 후임근무자와 정색을 한 뒤, 북쪽 하늘을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고 포탄이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하지만 적의 예기치 못한 도발에도 해병으로서, 연평부대원으로서, 본부중대원으로서의 내 자부심과 이 나라를 내 손으로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은 흔들림이 없다.

난 오늘도 주어진 임무들이 내 전우와 나라를 지킨다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11월 23일 뜨거웠던 그날을 떠올리며, 내가 가졌던 생각과 마음들을 뼛속 깊이 새기고,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우리는 반드시 이긴다!

 

 





  • 종협엄마 2011.05.21 00:12

    연평도 포격이 있던 2010.11.23 그날은 몸과 마음이 다 떨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오직! 무사하기만을 기도했었구나.. 연평도에 자식을 둔 부모님들은 다 그랬을것이다.. 다시 이 글을 접하고 보니 가슴이 찡하고 뭉클하여 기특하기 그지 없구나.  항상 어리다고만 생각했는데 대한민국의 장한 아들로서, 용감하고 책임감 강한 해병대원으로서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온  백종협 고맙다. 사랑한다.


  1. notice

    해병대 기수별 연도별 입대일자 1000기 이전

    해병대는 현재 매월 1개 기수를 선발하여 양성하고 있다. 해병대는 교육단에서 신병교육을 실시한 1975년부터 2011년까지는 매월 2개 기수가 입대하였으나 해병대 2사단 총기사건 이후 병영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2012년부터 월 2개 기수를 통합 1개 기수로 선발하여 양성하기 시작했다. 2012년 첫 입대한 기수는 1157기가 1...
    Date2021.08.24 By관리자 Views347501
    read more
  2. notice

    해병대 기수별 연도별 입대일자 1000기 이후 2009 - 2021년

    해병대 기수별 연도별 입대일자 2009년 - 2022년 해병대는 현재 매월 1개 기수를 선발하여 양성하고 있다. 해병대는 교육단에서 신병교육을 실시한 1975년부터 2011년까지는 매월 2개 기수가 입대하였으나 해병대 2사단 총기사건 이후 병영문화 개선의 일환으로 2012년부터 월 2개 기수를 통합 1개 기수로 선발하여 양성하기...
    Date2021.01.24 By관리자 Views306184
    read more
  3. 연평도 포격도발 부상한 병사 첫 전역자, 김용섭해병

    [조선일보] 2010년 12월 28일(화) 오전 03:0 27일 오후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한 집에서 예비역 병장 김용섭(22)씨가 해병대 연평부대 전우들과 찍은 사진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달 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부상한 병사 가운데 첫 전역자다. 민간인으로 돌아온 김씨는 "부모님을 뵈어서 기쁘지만, 아...
    Date2010.12.28 By운영자 Views6645
    Read More
  4. 전우회와 독립추진위의 두 신문광고

    해병대전우회의 조선일보광고와 해병대독립추진위의 동아일보 광고 캡춰사진입니다. 사진을 클릭하시면 원본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Date2010.12.27 By운영자 Views7521
    Read More
  5. 해병대의 두 장군

    해병대의 두 장군 나는 1997년 가을 해병대 사령부와 해병 제1사단 및 제2사단의 위관장교들을 대상으로 "공격 시 소총중대"라는 제목으로 90분 간씩 순회교육으로 강의한 일이 있다. 이 강의는 나의 제언으로 당시의 해병대 사령관(전도봉 장군)의 요청으로 순회교육 일정에 의거 실시되었다. 이 강의는 1958년 2월 미 제1...
    Date2010.12.22 By운영자 Views11005
    Read More
  6. 울지마라 해병이여 - 짐홀(533기)님의 연필화

    그림 크기 : 47 * 39 울지마라 해병이여..... 그대의 눈물은....... 오래전 그저 그런 해병이었던 이 못난 선배 가슴을 찢어 놓는구나........ 아무것도 그대들에게 해줄수 없는 못난 선배는..... 그저 목메이는 슬픔과 가슴속 깊이 터져나오는 증오만 가득할 뿐이네...... 고 서 정우 하사 고 문 광욱 일병 우리는 기어코 ...
    Date2010.12.20 By운영자 Views8410
    Read More
  7. 해병대 - 강원일보 언중언

    군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 중 하나라는 것은 국방의 중요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명예와 충성심으로 상징되는 군은 군기와 사기를 먹고사는 집단이다. 전장에서 병사의 일탈과 실수에 일벌백계의 처단을 내리고 흩어지는 기세를 결집했던 극단의 처방은 모두 군기와 사기였다. ▼춘추전국시대 무패신화의 장군, 오기...
    Date2010.12.20 By운영자 Views4291
    Read More
  8. No Image

    자랑스런 대한의 아들, 믿음직한 아들

    연평도 해병대 포7중대(중대장 김정수 대위)가 있는한 대한민국 안보는 이상없습니다. 북한의 기습 폭격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신속하게 중대원들을 지휘 큰피해 없이 대응 사격을 할수 있었는것은 불굴의 해병대 정신과 중대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지 않으면 있을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정말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런 ...
    Date2010.12.14 By지킴이 Views4222
    Read More
  9. No Image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사수 병장 정병문

    ▶제7포병중대 3포 사수 병장 정병문훈련이 끝나서 한결 수월한 기분으로 포 정리를 하고 있었다. 기준 3포로서 아쉽게 늦게 쏜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수입을 하던 도중 타 중대 사격소리인가 하는 포성소리가 들렸다. 우린 정리를 하며 서로 격려의 말을 주고받으며 4포가 불발탄 처리절차를 잘 해야 할 텐데 하며 아쉬...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5479
    Read More
  10. No Image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조종병 상병 박태민

    ▶제7포병중대 자주포 조종병 상병 박태민11월 23일. 이 날은 휴가를 나가는 날이었다. 모든 걸 마치고 배터에 가서 표를 끊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는데 배가 보이기 시작하는 동시에 마을 쪽에 포탄이 한두 개 떨어지더니, 소나기가 오듯 수십 발의 포탄이 마을을 뒤엎었다. 순식간에 건물들이 날라 다니고 이곳저곳에...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7418
    Read More
  11. No Image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인사병 병장 백종협

    ▶ 본부중대 인사병 병장 백종협2010년 11월 23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6시30분 총기상과 동시에 조별과업 정렬을 떠났다. 간단한 인원 파악 및 국군도수체조, 조별과업을 부여받고 해산을 한 뒤 근무표를 확인했는데, 근무표를 보니 13시~16시까지 주간 3직 근무였다. 오늘 14시에 대 해상사격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3452
    Read More
  12.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의무병 이병 윤성문,강병욱

    ▶의무실 의무병 이병 윤성문 윤성문 이병 2010년 11월 23일 포 훈련을 하고 있던 중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것도 훈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동기가 파편에 맞는 것을 보고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여기저기에서 포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 공포는 물 밀...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4741
    Read More
  13. No Image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기상반장 중사 신용한

    ▶포7중대 기상반장 중사 신용한2010년 11월 23일. 날씨는 어느 날보다 좋았다. 난 오늘도 평상시와 동일하게 보급업무를 수행하고 오후에 있을 중대 ATT평가 사격 통제관으로써 탄종, 신관, 장약, 발수를 확인한 후 사격 시 15분전에 3포상으로 이동하여 사격준비 상태 및 3포 인원들에게 장비 이상 유무와 안전 교육을 실시...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5043
    Read More
  14. 연평도포격 현장수기 - 중사 안준오

    ▶ 인사과 일보담당 중사 안준오뒤돌아보면 마땅히 기여한 바도 없으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준 인사과 간부들에게 감사하고 교훈으로 간직하고자 수기를 기록한다. 우리 연평부대 인사과는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각자가 맡은 임무의 수행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인...
    Date2010.12.14 By관리자 Views540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 27 Next
/ 27
CLOSE

SEARCH

CLOSE